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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187
추천수 :
926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07 18:30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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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감기지 않는 눈, 영혼의 조각

DUMMY

"이 육체는 이제 완전히 파괴됐어요."

"죽는 겁니까?"


자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마치 힘없는 사람의 동작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목 부분의 관절을 구동하는 데 문제를 겪고 있을 뿐이었다.


"안타레스에서 저에 대해 들으셨겠죠, 이엘 씨."


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자나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흐느적거리는 몸을 레몬이 단단히 붙잡았다.


"저는 보통 사람처럼 죽지는 않아요. 그 어떤 방식으로 이 몸이 파괴된다고 해도."


그 말을 누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의 머리 위쪽은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다. 머리 뚜껑이 가리고 있어야 할 기계 장치들이 드러나 있었다.


이엘은 그의 복부 중앙에 나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간의 몸에 저런 구멍이 생겼다면, 그 인간은 무조건 죽을 것이다.


의자 아래의 바닥에 구르고 있는 건 자나의 한쪽 다리였다. 인간을 닮은 무언가가 이 정도로 망가져 있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초연함을 유지할 수 없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죠?"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이엘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건 마치 유언이라도 듣는 분위기잖아. 자나가 왼쪽 팔을 들려다가 포기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어깨 관절이 빠져 버린 모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영혼석을 훔쳤죠. 알고 계시겠지만 그건 이엘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정확히는 당신에게 레몬을 붙여 함께 보내기 위해서."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이엘 씨는 저를 의심하고 계시죠? 제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 때문에 당신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 제가 조금만 더 저를 믿어 달라고 말씀드렸죠. 다시 만나면 모든 걸 설명해 드리겠다고. 저를 믿어 주셔서 고마워요."


특별히 자나를 믿으려 한 건 아니었다. 자나를 나서서 의심하지 않았을 뿐. 이엘은 문득, 자신이 꽤 많은 순간 그런 선택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인간이었다.


"이 몸은 완전히 새로 만든 가짜 몸이죠. 인제 와서는 이게 제 영혼의 그릇이니까,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의미가 없습니다만."


자나는 멀쩡한 오른쪽 팔을 들어 제 이마를 가리켰다.


"원래, 그러니까 끔찍한 사고를 겪기 전에. 저는 세 번째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요조랍니다, 이엘 씨."


자나는 로체를 만났을 때 세 번째 눈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기는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에게 볼 게 많은 곳이라면서, 마치 잘 안다는 듯이. 그때의 이엘은 그 모습을 보며 자나가 아는 척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야.


"그 사고를 겪고 나서 제 세 번째 눈은 사라졌죠. 그러니까, 여기서 사라졌다는 건 물리적으로 말입니다. 제 안구는 완전히 파괴됐으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세 번째 눈은 없어진 겁니까?"

"아뇨, 저는 세 번째 눈을 감을 수 없어졌어요."


자나의 몸을 받쳐 들고 있던 레몬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레몬은 꽤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눈을 감을 수 없어졌다니.


이엘은 로체가 자기 눈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요조의 세 번째 눈은 감기만 하면 그 기능을 잃어버린다고. 로체 자신은 분명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있지만, 그 눈을 감으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다면 자나는 그 이후로 평생 무언가를 보며 살아왔다는 건가?


"당신은 뭘 봤죠?"

"이엘 씨. 저는 미래를 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미래를 본다니. 이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나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잠깐, 세 번째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항상 미래를 보고 있다는 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 날 저는 당신이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죽는 미래를 봤습니다. 그 요조 여자 조사관도 함께였죠. 저는 그걸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석을 훔쳐 당신을 새서림으로 오게 했어요."


내가 죽는 미래라니. 이엘은 초연한 태도를 가장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자나는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만약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겁니다. 하지만 좀 더 이야기가 복잡해졌겠죠. 저는 인형의 집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레몬을 붙인 겁니까? 혹시나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서?"


"그렇죠. 당신이 연구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끈다고 해도, 또 무슨 위험한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레몬은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강합니다. 레몬이 있다면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잠깐."


이엘이 손을 들어 자나의 말을 막았다. 그는 분명 자신이 죽는 미래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는 누군가가 마법 무기로 살해당했다.


···그 무기는 그의 스승인 이쉐 알첸브라임이 가지고 있을 마법 총이었다.


"당신이 본 미래에서 나를 죽인 사람은 누구죠?"

자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꽤 고통스러워 보였다. 묘한 일이었다.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평온한 얼굴을 하는 그를, 정말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고작 이런 질문이라니.


"제가 대답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이엘 씨."


이엘은 저도 모르게 무릎이 풀려 쓰러질 뻔했다. 레몬이 그의 팔을 붙잡아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알첸브라임을 유리오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안타레스에서 그게 가짜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셨죠?"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영혼석이 하나 나왔어요. 치안관리부에는 알리지 않고 그 영혼석의 분석을 맡겼습니다. 그건 분명히 누군가 알첸브라임으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증거품이에요."

"그렇군요."


"처음부터 스승님은 자기 총을 두고 떠날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완벽하게 모조한 가짜를 두고 진짜는 늘 자기가 지니고 있었어요."


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무래도 좋다. 그건 원래 이쉐 알첸브라임의 물건이니까. 하지만 왜? 자나가 본 미래에서 왜 나를 죽였지? 이엘은 도저히 그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제국 전체에서, 그를 살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쨌든, 당신이 죽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당신은 내 계획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던 건···그걸 직접 봤기 때문이군요."


그렇다면 그 참사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던 건가? 자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시선을 내렸다.


"그런 생각을 했겠죠.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 통신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곧 테러가 일어날 예정이니 모든 연구원을 대피시키라고. 그랬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안 되겠죠. 그런 게 가능하다면 당신이 시도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몇 년 전 일이지, 이제는 잊어버렸어요. 어느 날 친구가 죽는 장면을 봤습니다. 열차 사고였어요. 어떻게 해서든 그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로 친구에게 달려가서 말했죠. 네가 죽는 미래를 봤다고. 오늘은 열차를 타지 말고 공간 이동 마법으로 가자고."


이엘은 그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예상했다. 레몬 역시 차갑게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누가 저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가요, 하이넨이었나. 하이넨이 그런 말은 안 했습니까? 제가 사고를 당했을 때 다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단지 친구를 구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육체를 잃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잃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엘 씨. 당신을 구하려고 한 게 내 최선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성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심입니다."


자나의 목소리에 서서히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으려는 듯 몇 번 기침했다. 이엘은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영혼석을 이용해서 뭘 하려고 한 겁니까?"

"그래요, 그 이야기도 해야 했는데. 우리한테 시간이 없네요. 하지만 그건 너무 길어요. 그 긴 내용을 전부 말하기에는 이 몸으로 버틸 자신이 없어요."


"보통 사람처럼 죽지 않는다는 건, 죽긴 죽는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죠. 저는 죽습니다. 하지만 다른 육체에 다시 살아날 거예요.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당신의···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영혼은 안전한 겁니까?"

"네, 제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이 그릇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으니까, 다시 살아나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나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의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오른팔로 레몬의 팔을 꽉 붙잡았다.


"레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두 사람이 제게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데. 아쉽군요."

"저는 이 인형에게서 아주 익숙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가 잘 아는 사람 같았죠."


다른 모든 걸 제쳐 놓고서라도 이것만은 들어야겠어. 그는 말을 이었다.


"이 인형의 좌표는 분명 제게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레스에서 우리가 잠시 따로 행동하게 됐을 때, 이 인형은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누군가를 구했습니다."


분명 산드린이 손을 대고, 보안 장치가 망가진 후의 일이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레몬은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인형은 기억을 가지고 있죠. 입력된 지식이 아니라, 고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자나는 확연히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의 육체에는 원래 생기 같은 게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레몬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 가장 강하다고 했었죠. 그건 분명 기술적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유능한 인형사가 최고의 기술을 사용해서 만들었으니 병기로서도 강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요, 이건 걸작이에요."


"하지만 정말 그게 다입니까? 이게 최강의 인형인 건···최강의 인간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의 무릎을 꽉 붙잡던 손. 처음 보는 검은이파리사월야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 유리오를 구하러 갔던 것. 그녀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말했던 것.


자나는 레몬의 손을 붙잡았다. 마치 죽기 전에 손녀의 손을 붙잡는 노인처럼.


"처음부터 말할 수는 없었어요. 당신이 연구소에서 확실히 목숨을 건지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자나의 목소리는 이제 귀를 기울이면 듣기 힘들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몇 년 전 저는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의 영혼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어요.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이 그렇게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떠올렸죠. 내가 사고를 겪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학술적으로 이보다 더한 발전을 이뤘겠구나."


"정말 파괴되어 있었습니까? 아니면···마모되어 있었습니까?"

"둘 다였습니다. 닳을 대로 닳아 버린 돌이라고 해서 깨지지 않는 건 아니겠지요, 이엘 씨."


레몬이 자나의 손을 꽉 쥐었다.


"저는 그 깨져 버린 영혼의 파편 하나를 레몬에게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이 깨어나지 않도록 보안 마법을 걸어 두었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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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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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북쪽 끝 +1 22.09.23 43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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