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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28 18:30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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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안부 인사

DUMMY

나도 모르게 뒷머리에서부터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건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그것이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대로변은 텅 비어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옆으로 자동차가 다니고 있었는데. 여기를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옆을 돌아보자 젠은 마치 아주 무서운 걸 본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넌 누구야?"


내가 그렇게 묻자 그것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할아버지 같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너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니라."


물구나무를 선 그것의 목이 서서히 시계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그것은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물구나무를 선 사람의 머리는 똑바로 서 있을 때와 비교하면 상하가 반대로 뒤집히기 마련인데.


저렇게 있어도 목이 부러지지 않는 건가?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젠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냐고 물어보려는 찰나에, 젠은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젠. 괜찮아?"


아무리 봐도 괜찮지 않아 보여. 그것은 물구나무선 팔로 내게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이런 감에 의존하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

"어머, 그런 나쁜 말을 하다니요. 아이니의 자식들과 어울리더니 안 좋은 걸 닮아 버렸구나, 언니."

"무슨 짓을 한 거야? 나한테 바라는 게 뭐지? 너도 이 총을 노리는 건가?"


총을 가지고 싶다고 하면 풀어서 던져 줘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어찌어찌 싸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젠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하지만 그것은 재미있다는 듯 후훗, 웃었다. 그 웃음도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 같았다.


"그런 허접한 물건은 바라지 않아요. 그걸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가씨 주위에 모여드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아가씨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에너지 때문이었지."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란다, 아가야. 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어.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에너지가 생겨. 나는 그 에너지를 추적해서 너를 찾아낸 거야."


무섭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달려 도망치고 싶었다.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무섭다. 하지만 도망쳐 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거야. 이건 날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도망쳐 버리면 젠은 어떻게 되지?


그것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붉은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은 소름 끼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를···왜 찾았는데?"

"만나고 싶었거든."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그것이 바닥에서 팔을 떼더니, 순식간에 몸을 뒤집었다. 똑바로 서자 나는 그것을 한참 올려다보아야 했다. 키가 2m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팔다리가 길었다. 거의 팔이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오히려 똑바로 서고 나서야 이게 이상한 존재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 났다.


"나를?"

"그래, 아무 방해 없이 말이야."


그것은 방해라는 단어를 발음하며 젠을 살짝 쳐다보았다. 젠은 바닥에 쓰러진 채 그것을 올려다보려고 애썼다. 내가 그것과 젠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왜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 거지?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신이 될 수 있어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말투는 왜 이렇지? 소녀처럼 말했다가, 노인네처럼 말했다가, 이상한 문어체로 말했다가. 엉망진창으로 그러는 통에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이 더 강했다. 게다가 그 내용하고는.


젠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그것은 젠의 손을 짓밟았다.


"건드리지 마세요. 젠에게 해를 끼치면 여기서 도망칠 테니까."


물론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여기서 나나 젠이 죽게 될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도망치려는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건드리지 않을게,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럴 수는······."

"내가 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이미 들었으니까. 신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신의 그릇이 될 수 있다지."


그리고 그건 나뿐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가 신이 되기 위해 사월을 떠난 거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것이 입꼬리를 찢으며 웃었다.


"그렇게밖에 말하지 않았구나, 아이니의 자식들. 가장 중요한 걸 숨겼어."

"뭘 숨겼다는 거야?"


그것은 허리를 숙이고는 목을 빼서 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 눈빛. 저 새빨간 눈동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는 그것이 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지만······.


솔직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니의 그릇이 될 수 있는 건,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 않은 자이니라."

"사람을 죽이지 않은 사람만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뭐야, 그렇다면 엄마는 신이 될 수 없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허무함 때문일까, 내가 품고 있던 공포는 아까에 비하면 흐릿해져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너를,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신으로 만들고 싶다."

"나를?"

"듣지 마. 헛소리니까."


젠이 땅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것이 밟았던 손은 이상하게도 검게 변해 있었다. 마치 물든 것처럼.


"누가 당신에게 반대할 권리를 주었나요?"

"누가 주어야만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닐 텐데."


그것이 젠을 쏘아보았다. 젠은 입가의 피를 대충 소맷자락으로 닦아냈다. 그러고는 바닥에 피 섞인 침을 한 번 뱉었다. 그 얼굴은 창백했다.


"나는 아이니의 아들로서 아이니의 그릇에 어울리는 자를 찾을 의무가 있어."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아이니의 그릇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가?"

"그건······."


아니, 잠깐만. 나는 신이 되고 싶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누구 마음대로 나를 빼고 신이 되라느니, 신의 그릇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느니 하는 거야. 내가 그 불만을 입 밖으로 내려는 순간 그것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네가 아이니의 아들이라, 과연 그럴 것 같아?"


피를 토하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젠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것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즐겁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뱀의 알을 새 둥지에 가져다 놓는다고 뱀 새끼가 새 새끼가 되지는 않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 젠이 그런 말을 했었지. 아리나딘이라는 신이 제 출생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고. 그것은 젠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본인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뱀의 새끼로 태어났다면 새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내가 뱀이라는 거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거늘."


그것이 젠을 무시한 채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찾아낸 가장 완벽한 그릇은 너다, 유리오 알첸브라임."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가?"

"그런 사탕발림 같은 말에 넘어갈 사람은 없어."


그것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원래도 주름진 얼굴에 극단적인 표정. 마치 연극을 하기 위해 만든 가면 같았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봐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오빠."

"나를 죽여도 유리오가 신이 될 일은 없을 거다."


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우리가 서 있는 거리를 휘감았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건 나와 젠밖에 없었다. 모든 게 아무런 미동도 없이 우뚝 서 있었다.


이 모든 게 가짜구나. 원래라면 펄럭거려야 할 현수막이나 깃발 따위도, 길가에 버려져 있는 비닐 쓰레기도.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들 하지."


바람은 점점 더 강해졌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떤 인간들은 그 무엇이 될 권리조차 얻지 못하느니라."


그것이 젠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젠은 마치 종잇장처럼 날아가, 뒤쪽에 있던 가로등에 등을 부딪치고 쓰러졌다. 나도 모르게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뱀의 새끼가 하늘을 날려고 하는 것도, 가장 위대한 뱀에게 감히 송곳니를 들이대는 것도. 허용되지 않은 일이지. 안 그래, 언니?"


바람은 잦아들었다. 그것이 내게 불쑥 몸을 들이밀었다. 그것은 마치 우비처럼 보이는 기다란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마치 마술사처럼 무언가를 꺼냈다.


아카시아 꽃다발이었다.


"아카시아는 아리나딘의 꽃."

"그래, 그리고 저는 아리나딘의 사자랍니다."

"아리나딘의 사자가 왜 아이니의 그릇이 될 자를 결정하려 하지?"


이건,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 이건 월권이잖아.


"우리는 세상 어디에나 있으며 그 어떤 일에도 제 이름을 쓰기 때문이오."

"헛소리라는 건 알겠어."

"그 어떤 헛소리도 현실이 되면 더 이상 헛소리가 아니게 되지."


그것은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향기가 진동하는 그 꽃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그 꽃다발을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것이 젠의 손을 짓밟았던 것처럼 짓밟았다.


짓밟히고 나서야 향기가 더 강해지는 걸 보면, 이건 진짜인가 봐.


"젠의 말이 맞아."


나는 시선을 내렸다. 마법 총을 감싸고 있던 천 역시 강한 바람에 날려 너덜거리고 있었다. 아까 그 예쁜 인형이 그런 말을 했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총을 쏘지 말라고. 그 말을 듣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젠을 어떻게 만들든 내가 나서서 신이 되겠다고 할 일은 없어."


분명 지금의 나는 이 총을 쏠 수 있을 거야.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내가 이 총을 쏠 수 없었다면 내게 그런 말을 남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어요, 언니. 나는 언니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한 적이 없는걸요. 언니를 신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지."


그것에게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것은 마치 부끄러워하는 소녀처럼 손으로 양 뺨을 감쌌다.


"물론 언니가 스스로 원했더라면 가장 좋았겠지요. 하지만 언니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이름 쓰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풀었다. 그것을 겨누자 그것은 짐짓 과장된 태도로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한 가지 알려 주지, 그 총을 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느니라."

"내가 이 총을 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네."


곁눈질로 젠을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처박힌 상태 그대로 움직임이 없었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어쩌면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내가 이걸 정말 쏠 수 있을까?


내가 방아쇠를 당긴다면 총알이 나갈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이 총을 쏠 수 있다.


그런데···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망설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 총은 네 영혼을 망가뜨리지도 못할 게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 뒤에서 젠이 쿨럭, 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려고 했다.


그 순간, 하늘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틈새에서 누군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착지하면서 내 앞에 서 있던 그것을 반으로 갈랐다. 그것의 상반신이, 아니, 상반신처럼 보이던 것이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어떻게, 이, 이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남자친구냐?"


이엘 알체이라가 내 뒤에 쓰러져 있는 젠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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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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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추심 +1 22.12.03 66 3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3 2 12쪽
140 결착 22.12.01 26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2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4 1 12쪽
137 실종 22.11.25 29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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