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169
추천수 :
926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27 18:30
조회
28
추천
4
글자
13쪽

뜻밖의 조력자

DUMMY

"싸움 잘하냐?"

"보통?"

"그래, 잘 해봐라."


남자는 뒤로 훌쩍 뛰어 창고 안쪽으로 움직였다. 젠이 검을 든 채 그를 따라 달렸다.


"잘 봐라, 뒤쪽."


유리오는 머리 잃은 인형을 다시 마주했다. 천장에서 똑같이 생긴 인형 두 체가 더 떨어져 내렸다.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맨 앞에서 다가오던 인형의 팔 하나가 날아갔다. 한 번 더 휘두르자 다른 팔 한쪽도, 이내 지지할 구석을 잃어버린 몸통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렇게 강한 상대는 아니야. 이건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형들을 베어 넘겼다. 이것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다행히도 그것들은 너무나 사람 같지 않았다. 벨 때의 감각도 인간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목적이 뭐냐?"

"없어. 그냥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빼앗아서 팔아 치우는 거지."


한마디로 강도 같은 거군. 젠 쪽을 돌아보자 그는 도끼창 같은 무기를 든 남자와 싸우고 있었다. 유리오는 이 이상한 인형들을 무력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인형을 쓸 줄 안다면 마법사일 텐데, 왜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유리오의 질문에 남자의 얼굴이 불만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제국 어디서나 마법사들은 좋은 취급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어디 가서 제 밥 한 그릇 못 챙겨 먹을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알 거 없다. 그 총이나 내놓고 꺼지든지, 아니면 죽든지."

"푸른 불꽃은 어디로 갔지? 원래 여기 있던 사람들은?"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확실한 건, 원래 젠이 만나려던 이는 이미 여기를 떠난 지 오래라는 사실이었다. 아니면 여기를 떠난 게 아니라 세상을 떠났거나.


유리오는 세 번째 인형을 베어 넘겼다. 아니, 정확히는 넘기려고 했다. 피부의 감각이 단단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소재로 만든 물건 같았다. 인형의 입이 열렸다.


"레타르단나, 루 로아······."


유리오의 검이 인형의 머리를 몸에서 떼어냈다. 심지어 인형조차 마법을 사용하잖아. 인형들은 지붕에 조그맣게 뚫려 있는 구멍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분명 그 개체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위에 얼마나 많은 개체가 있을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젠, 괜찮아?"

"지금까지는."


다시 금속성의 물체가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이런 동네라면 당연히 강도나 용병 떼거지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긴 하지만 남자는 유리오가 차고 있던 총을 한 번에 알아봤다. 심지어 총신이 보이지 않도록 감싸 놓았는데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형의 잔해는 열 구가 넘어갔다. 그런데도 인형들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총을 두고 가면 살려주겠다, 알첸브라임."


유리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남자는 어느새 그네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가 싸늘한 눈으로 유리오를 내려다보았다.


"버들가지의 문양을 보고 여기를 찾아왔지,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미 너를 찾는 눈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았지?"

"너는 이미 유명해, 우리 사이에서는."


인형들은 계속해서 귀찮게 들러붙어 왔다. 유리오는 투덜거리며 다시 또 하나를 베어 넘겼다. 어쩌라는 거야, 대화를 할 거면 이 고물들이라도 좀 치우든가. 싸울 거면 귀찮게 말을 걸지 말든가.


"그리고 아무도 너를 죽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네 총을 가져오라고만 했지. 무슨 뜻인지 알겠냐?"


어느샌가 젠 역시 수많은 인형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남자가 조그맣게 주문을 외자 바닥에 흩어져 있던 인형들이 제 몸의 부서진 조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깟 총 그냥 풀어서 바닥에 던져버릴까, 유리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가지고 나왔던 건 이게 엄마의 유품이나 마찬가지라서였는데.


"우리라는 게 누구야? 내 목에, 아니, 이 총에 현상금이라도 걸려 있다는 거야?"

"아, 뭐, 대충 비슷해."


드디어 인형 하나가 유리오의 뺨에 생채기를 냈다. 그녀는 화끈한 느낌에 그만 검을 놓칠 뻔했다. 젠은 기다란 검으로 한 번에 몇 구씩 인형들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그가 인형을 쓸어버리는 속도보다 새로운 인형이 달려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어. 유리오는 슬슬 팔이 저리는 느낌에 손에서 힘을 뺐다. 도망가자고 해야겠다. 그녀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때, 누군가가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사실 그걸 문을 열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다란 철문이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반으로 갈라져 버렸으니까.


유리오와 젠은 물론, 남자의 시선까지 그 문 안쪽으로 향했다. 갈라진 문의 한쪽이 창고 안으로 떨어졌고, 거기에 인형 몇 구가 깔렸다. 직전까지 유리오와 젠을 향해 달려들던 인형들은 모두 그 움직임을 멈춘 채였다.


"누구?"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나서야, 유리오는 아차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몇 걸음 정도를 물러서자 어느새 젠이 그녀의 바로 옆까지 다가서 있었다.


"인간이 아니야, 저건."


그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인간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 인형이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의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고운 레몬 빛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후 4시 23분을 기해 유리오 알첸브라임에게 예비 좌표를 설정한다."


그 인형은 오른팔을 남자가 올라타 있는 그네 쪽으로 치켜들었다. 이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연기구름이 창고 안을 휩쓸었다. 젠이 팔을 들어 유리오의 머리 쪽을 막았다.


"빨리 이쪽으로."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인형이 서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창고를 빠져나오자 건물 뒤편으로 난 좁은 계단이 보였다. 인형은 그쪽을 가리켰다.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계속 달려라. 적대적 기척이 감지됨. 유리오 알첸브라임의 현재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일 것으로 추정. 도망치는 쪽이 최선이다."

"잠깐만."


유리오는 등을 돌려 떠나려는 인형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기운이었다. 마치 그녀가 아는 사람인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그 총을 쏘면 안 된다, 유리오."


인형은 그녀의 팔을 털어내고 달려 사라졌다. 이어 골목 안쪽에서 몇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유리오는 저도 모르게 인형이 달려간 방향으로 따라가려고 했다. 젠이 그녀를 잡아끌어 저지했다.


"안 돼, 도망가야 해. 여긴 이미 장악당했어. 아레인스터로 가서 다른 녀석들과 합류해야지."

"저대로 보내도 되는 걸까?"

"응."


두 사람은 창고 옥상으로 올라섰다. 이상하게도 아까 그 인형들이 쏟아졌던 구멍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인형 백만 개가 위에 대기하고 있다든가 하지도 않았다. 드럼통 몇 개와 고물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오른쪽으로 달리라고 했지?"


두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올려다보았던 널빤지 같은 다리들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건물 두어 개를 겨우 건너뛰었을 무렵부터 추적이 따라붙었다. 뒤쪽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두 사람의 신경을 흔들었다.


"란도."


젠이 조그맣게 주문을 외자 뒤에서 비명이 솟았다. 유리오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사짜 아니었어?"

"사짜지. 어지간한 좀도둑들한테는 사짜면 충분해."


지붕 위며 건물 난간 사이로 난 좁은 길 사이로 도망치는 건 오히려 편한 일이었다. 달릴 때마다 발밑의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며 떨어져 내릴 것 같다는 점만 빼면.


머리 바로 위에서는 전선이 흔들렸다. 잘못 건드렸다가 감전되는 건 아닐까. 유리오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적어도 이쪽 동네에는 이미 쫙 깔린 것 같은데."

"난 내가 이렇게 거물인 줄 몰랐어."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네 총이지."


젠이 몸을 숙이더니 발밑에서 날아온 무언가를 잡아챘다. 화살이었다. 그는 그걸 원래 날아온 자리로 다시 던져 돌려보냈다.


"안 되겠어, 저쪽 계단으로 빠져나가자."

"여기를 빠져나간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이랑은 어떻게 합류하지?"

"나중에 생각해, 무슨 일이 있다고 한들 우리보다는 안전할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리오가 가지고 있는 총을 빼앗으려는 거라면 다른 일행들 쪽을 노릴 이유는 없었으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쪽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처럼 노골적인 공격은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은 학교로 갔을 테니.


젠이 한 번 더 추격자들의 발을 묶었다. 그러고 두 사람은 샛길 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다행이야."

"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주변에 있는 건물은 전부 다 평범한 민가처럼 보였다. 아까까지 그들이 있던 곳과 바로 인접해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빨랫줄이나 고추 같은 걸 널어 말리고 있는 풍경. 한 블록만 넘어가면 약에 취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데.


"누구였을까, 그거."

"뭘 말하는 건데? 아까 그 인형?"


젠은 아까 창고에서 두 사람을 구해준 인형의 존재를 이제야 떠올렸다. 그건 척 보기에도 고급품이었는데. 물론 외모부터 일반적인 인형들과는 차이가 컸다. 하지만 가장 말도 안 되는 건 두꺼운 철문을 파괴할 정도의 출력이 나온다는 점이다.


고작 인형이 그렇게 강하다니.


"마법은 매개로 삼는 수단이 많을수록 그 힘이 약해져. 그러니까, 내가 직접 마법으로 레이저를 쏘는 것과 레이저를 쏘는 보안 장치를 설치해서 그 장치가 레이저를 쏘는 건 출력이 다를 수밖에 없지. 저건 마법으로 움직이는 인형일 텐데 저 정도로 강하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렇구나. 그래서?"

"그러니까 저 정도의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 거라는 거지.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어."


유리오는 그 인형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아는 사람 중에 인형사가 있어?"

"있겠어? 그냥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두 사람은 조심스레 대로변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보는 눈이 많으니 골목에서처럼 공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물론 가능한 한 빨리 일행을 만나는 쪽이 안전하겠지만. 그들은 아레인스터 부지가 있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미안하다, 괜한 짓을 해서. 흥신소를 찾겠다는 생각만 안 했어도 방금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유리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젠은 그 얼굴을 마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사과 같은 걸 할 줄 아네,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젠."

"사실은 사실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이 총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위험에 처한 거겠지.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예전에는 훨씬 더 무방비 상태로 돌아다녔거든, 자랑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 총을 노리는 세력이 생겨난 게 수상하다고?"

"뭐, 그런 거지."


마법 총은 두어 겹의 천으로 감싸여 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는 그게 총이라는 걸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아까 그 남자는 어떻게 알아본 거지?


그러고 보니까, 그 남자는 죽었으려나. 폭발이 크기는 했지만, 목숨은 부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겠네.


"총은 핑계일 가능성은? 네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했다거나."

"양심적으로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는데. 나는 사람을 죽인 적도 없단 말이야."

"하긴, 냉정하게 보면 너는 굳이 원한을 품을 만한 위치도 못 돼."

"묘하게 기분이 나쁜걸."


하지만 젠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총을 노린다고 보는 쪽이 훨씬 타당한 결론이군.


"거물이 되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

"근데, 거물이 되는 게 좋은 거야?"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하며 걷던 두 사람의 발이 우뚝, 하고 동시에 멈췄다. 넓은 길 한가운데에 사람 한 명이 서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도 물구나무를 선 채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지각 사과 및 연재 관련 공지 22.12.08 77 0 -
142 추심 +1 22.12.03 64 2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2 2 12쪽
140 결착 22.12.01 25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0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3 1 12쪽
137 실종 22.11.25 26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2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3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1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5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2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4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8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39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3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3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8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5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