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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192
추천수 :
926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22 18:30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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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혼돈의 꽃

DUMMY

"그래도 일단 일은 잘 풀린 편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네."

"일이 잘 풀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음."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나와 레몬은 아침을 먹으며 내가 해낸 일과 해내지 못한 일에 관해 토론했다.


우선 시칼트라 학장에게 영혼석 감정을 부탁하는 일은 아주 쉽게 성공했다. 그건 둘 다 가짜였고, 이제 곧 루토 시칼트라를 통해 더 자세한 분석 결과를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오늘 치안관리부의 추가 조사 경과를 듣기로 했어. 근데 왜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까."

"이엘은 사사야 타테지아가 무언가 나쁜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레몬은 창가에 놓인 소파에 걸터앉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연기를 하는 기능까지 있다니.


"정확히 따지자면, 누군가 나쁜 일을 꾸몄다면 그게 그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무슨 차이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지만.


"윌 로체스티아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 치안관리부 조사관들이 실종되고 있다고 했잖아. 팔경 지구 일가족 살인 사건도 그 실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그래서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그 범인으로 의심한다고 했다. 근거는 현장에서 영혼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나왔기 때문이고."


"그건 가짜였지, 그러니까 유리오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건가?"


치안관리부에서 정말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 유리오를 의심했던 거라면 그렇게 되겠지. 물론 나는 그들이 유리오의 총을 빼앗기 위해 누명을 씌우는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이엘의 생각이 궁금함. 사사야 타테지아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치안관리부 조사관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잖아? 팔경 지구 일가족 살인 사건들도 그 일부였고. 치안관리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대대적인 개혁을 했어, 그 과정에서 그 여자 입장에서는 방해가 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겠지. "


그런 사람들을 마침 형편 좋게 마법 무기로 제거한 거라면? 시신만 나오지 않으면 어차피 실종이다. 레몬은 손가락으로 제 턱을 긁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추측이다. 근거가 없다는 점을 빼면."

"근거를 대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냐?"


치안관리부에 대한 악감정, 특히 그 부장에 대한 의심을 뭉쳐 만들어낸 악담에 가까운 가설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게 아예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지워낼 수가 없군.


"그 가설을 증명하려면 아주 많은 근거가 필요하다. 첫 번째 근거부터 말해 보겠음."

"사사야 타테지아가 마법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것도 영혼석을 만들 수 있는 종류의 마법 무기다. 어중간한 무기로는 어림도 없음."


그런 마법 무기를 신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까. 모든 마법 무기는, 특히 고등 마법 무기는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사월에 신고된 고등 마법 무기는 단 두 개. 내 총과 유리오가 가지고 사라진 총이었다.


고등 마법 무기는 만드는 일 자체도 어렵고, 허가가 잘 떨어지지 않아 아마 다른 대도시의 형편도 비슷할 텐데.


"역시 이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 같네."

"아니다, 이엘 알체이라. 잘 생각해 봐야 함. 얼떨결에 아주 유효한 가정을 했다."

"뭐가 유효한 가정이라는 거야?"


치안관리부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신고하지 않은 고등 마법 무기를 뻥뻥 써댈 수 있을 리가.


···아니다. 치안관리부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고등 마법 무기의 소유자는 그걸 어디에 신고하지?"

"치안관리부에."


그러니까 치안관리부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사람이라면 무기를 숨길 수도 있다. 충분히 사용할 수도 있을 거고.


"이거, 사실 정말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인 거 아닐까?"

"이엘은 발을 들였다기보다는 끌려왔다."


따지자면 그렇긴 하지. 난 그냥 평범하게 택시나 몰고 화분에 물이나 주면서 지내고 싶었다고.


"어쨌든, 사사야 타테지아가 의심스럽다는 것과 별개로 연구소를 테러한 건 진짜 제국 사냥꾼들이었어. 그건 치안관리부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그럴 능력이 되었다면, 뒤에서 같잖은 수작질을 부릴 필요가 없다. 그냥 안전사냥부와 중앙마법부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레몬."

"뭐지?"


"팔경 지구에서 나온 돌, 그리고 연구소에서 찾았다며 치안관리부 쪽이 내밀었던 돌. 이 두 가지는 모두 가짜라고 했지."

"그렇다."

"그건 누군가가 가짜 영혼석을 만들었다는 뜻이잖아?"


레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했을까. 다른 사람들을 교란하기 위해서?


"루토 시칼트라가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가 밝혀지면 아주 재미있겠는데."

"그러고 보니, 이엘 알체이라에게 하나 부탁할 게 있음. 자나와 통신이 필요하다. 보안 장치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야 함."


그러고 보니까 그 문제도 있었지. 그는 레몬의 회로에 아실카 시칼트라의 마력이 접근하는 걸 차단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그 이유를 물으면 곧이곧대로 대답해 줄까?


"일단 자나에게 먼저 연락하자."


냉장고를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던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다. 레몬이 한 손가락을 들어 공중에 글씨를 썼다. 그 손가락이 지나는 곳마다 빛나는 글자가 떠올랐다.


하나, 자나에게 연락해 레몬이 고장 났었다는 사실을 보고할 것.

둘, 루토 시칼트라를 찾아가 가짜 영혼석의 분석 결과를 들을 것.


"다음은?"

"파리스가 도움을 달라고 했어. 무슨 교단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예정이라고 했었지."


셋, 파리스 마벨을 도울 것.


"그래, 대강 그 정도네. 그 정도라고 쉽게 말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우편물이 왔는데요."


갑자기 웬 우편물?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문을 열려는데, 레몬이 문을 향해 오른팔을 가만히 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팔에서 뭐가 발사되는지 직접 봤던 입장에서,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나는 레몬의 팔을 슬쩍 누르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서 있었다. 그가 내게 두꺼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누구 앞으로 왔던가요?"

"702호, 이엘 알체이라 님 앞,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직인이 찍힌 우편물은 본인 수령이 원칙이라서······."


종이봉투는 보기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 하여튼 나는 봉투를 받고, 우편물을 받았다는 확인서에 서명한 뒤 그를 돌려보냈다.


"이게 뭘 것 같아, 레몬?"


종이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겉봉에는 종업원이 말한 대로, 이 방의 호수와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필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삐뚤빼뚤한 서체였다. 아마 반대쪽 손으로 썼다거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쓴 모양이었다.


"위험 요소를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함. 이엘 알체이라의 승인이 있을 시 수행한다."

"그런 기능이 있어?"


이 정도 되면, 이제 레몬에게 없는 기능이 뭔지가 더 궁금해지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몬은 왼손을 들어 봉투 위의 허공에 가져다 댔다. 손끝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났다. 제발 안에 있는 물건이 멀쩡한 상태였으면 좋겠군.


"언제쯤 끝나는 거야?"

"적대적인 마력이 감지되지 않음. 이 물건은 안전하다. 적어도 마법적으로는."


레몬이 손을 뗐다.


"열어도 된다는 뜻이겠지? 봉투를 여는 순간 독침이 튀어나오고, 정체불명의 균에 감염되어 병을 앓다가 죽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은 없겠지?"

"이엘 알체이라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걸로 추정됨."

"그래, 그래. 죽는 건 나지 네가 아니니까."


봉투는 고작 테이프 한 겹으로 봉해져 있을 뿐이었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독침이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안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마트료시카인가. 봉투 안에 또 봉투라니."


손을 집어넣어 비닐봉지를 꺼냈다. 반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안이 들여다보였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하얀 가루였다.


그밖에 다른 물건이나 메시지 같은 건 없었다. 가루는 작은 맥주잔 하나에 가득 찰 정도로, 상당히 양이 많았다. 봉투가 보기보다 묵직했던 건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게 뭔지 알겠어?"

"이렇게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음. 섭취해 보면 알 것 같다."

"잠깐, 이걸 먹겠다고? 무조건 말려야 할 것 같은데."


레몬이 손을 뻗어 내 손에서 봉투를 가져갔다. 입구를 살짝 열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양을 꺼냈다.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도, 이런 걸 먹겠다는데 말려야 하지 않을까?


"뭔지도 모르는 가루를 그냥 집어삼키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된다. 이엘이 먹는 것보다는. 인간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성분이라도 내게는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못함."


그렇게 들으니, 확실히 그 말이 맞긴 하군. 적대적인 마력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했다. 레몬을 해칠 수 있는 건 아주 강한 물리력, 혹은 마법적인 힘이다.

하지만 이 가루, 마법적으로는 안전하다고 했지.


"그걸 먹으면 그게 뭔지 알 수 있어?"

"엄밀히 말하자면,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는 게 좋다. 지폐를 세어 주는 계수기에 지폐를 넣는 걸 계수기가 지폐를 먹는다고 말하지는 않음.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본 개체에 이 가루를 집어넣는 건, 내가 이 가루를 먹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 네 말이 맞네. 결국 또 내 생각이 짧았구만."


내가 레몬과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레몬이 이 가루를 먹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데 말이지. 레몬은 가루를 얹은 손바닥을 코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면 굳이 냄새를 코로 인식해야 할 필요는 뭐란 말인가? 발로 밟으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판독할 수 있게 만들든가. 이렇게 인간처럼 만들어 놓고, 인간처럼 생각하지 말라니.


"무슨 냄새가 나?"

"아무런 냄새도 없음."


레몬이 가루를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별 반응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새삼스레 긴장하게 되었다.


"하라딘이군. 마약으로 분류되는 성분이다."

"마약이라고?"


이걸 누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한테 보냈지?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를 다시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바닥으로 흰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꽃이네."


그건 거의 압사 당했다고 할 정도로 눌린 꽃이었다. 가루의 무게 때문에, 봉투 바닥에 눌려 붙어 있던 모양이었다. 꽃대를 만지자 강한 향이 났다.


"이 꽃은······."

"아카시아야. 맞지?"


레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꽃을 주워 테이블 위, 봉투 옆에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데, 대체 이건 뭐란 말이야.


"혼란스럽군."

"아카시아는 아리나딘의 꽃이다."


분명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다. 도달이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었지. 아카시아는 아리나딘의 꽃이라고 말이다.


"이 가루를 보낸 게 아리나딘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납득이 가네."

"아리나딘은 혼돈의 또 다른 이름, 아리나딘을 믿는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혼돈을 원한다. 그들은 세계에 혼돈을 불러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려고 듦."


그래, 그건 나도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계에 혼돈을 불러오는 게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레몬이 다시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여 글씨를 썼다.

"넷, 아리나딘 교단의 꼬리를 잡을 것."

"오늘 밤에는 해야 할 일이 열 개 정도로 늘어나 있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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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결착 22.12.01 25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1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3 1 12쪽
137 실종 22.11.25 26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3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3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2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2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3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9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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