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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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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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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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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에게 가까워지는 이들

DUMMY

"신이 될 수 있다면 뭘 할래, 이엘?"


그런 질문에 대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오, 저는 기아와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구원할 겁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을 없애 버리는 거죠.


그렇게 대답하면 만족하셨을까.


"잘 모르겠는데요······."

"너는 그런 생각도 안 하면서 살아?"


아니,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건가? 맹세코, 나는 단 한 번도 만일 내가 신이 된다면 뭘 할지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스승님은 실망한 표정으로 흑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지, 신비한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능력을 얻을지. 이 세상에서 뭐든지 단 하나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뭘 내 마음대로 조종할지."


"실망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지만 안 해봤는데요."

"다들 그런 생각 하면서 사는 거 아니야?"


정말로?


"대체 언제 말입니까?"

"심심할 때."

"확실히, 심심하실 일은 없겠네요."


분명 그건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그날의 일을 머릿속 깊은 곳에 처박아 두고 잊고 있었던 것이다. 파리스의 말이 그날의 기억을 건져냈다. 마치 물속에 낚싯대를 집어넣어 무언가를 낚아 올리듯이.


내가 열다섯 살 정도였을 때의 이야기일까. 누군가가 사월 근처의 소도시들을 오가며 일반인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소하게는 다리에 찰과상을 입은 사람부터, 크게는 머리가 깨질 뻔한 사람도 있었다. 스승님은 그 사건을 본인이 맡기로 했다.


"죽일 것까지는 없겠지, 팔 하나 정도 부러뜨리면 더 이상 그런 짓은 못 할 거 아냐."


그런 말을 하고는 정말 범인을 잡아 팔을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나에게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남겼다.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스승님을 데리러 갔었다. 사월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술집까지.


"왜 데리러 오라고 하셨는지 알겠네요."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으니까. 스승님은 맥주를 안주로 독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미 테이블 위에는 빈 병이 세 개 정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늘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몰라."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길래 이렇게 드셨습니까?"


그때의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고 착각했었다. 주제넘게 충고나 조언을 하기도 하고, 스승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간 큰 짓이다. 아니, 저 술버릇은 사리 분별이 잘 되는 지금이라도 잔소리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놀라지 마라, 이엘."


낡은 술집은 떠들썩하고 지저분했다.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 스승님의 속삭이는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 입에 한껏 귀를 가져다 댔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대."


그 대화는 사실상 거기서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신이 되면 뭘 할지에 대해 스승님을 만족시킬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으니까. 정말 기아와 가난 이야기라도 꺼냈다면 더 길고 의미 있는 대화가 이어졌을까. 스승님은 정확히 네 병째의 술을 깔끔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사월로 돌아왔다.


왜 하필 지금 그 일이 떠오르는 걸까. 나는 인위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그러면 찝찝한 느낌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성물이 있으면 신을 강림시킬 수 있답니까?"

"이 사람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네요. 총 일곱 개나 필요하다는 것 같지만."

"그런 건 꼭 일곱 개더라고요. 안 그래요? 여섯 개도 여덟 개도 아니고."


파리스가 픽 웃으며 편지 봉투로 부채질을 했다. 사실, 종교인들이 특이한 의식을 치르려 하는 것도 언제나 흔한 일이었다. 아직도 남부 지방에서는 종종 인신 공양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흰과 그의 가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어딘가에는 인신 공양 같은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일단은 학장님께 여쭤봐야죠. 기본적으로 종교인들의 방문을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의외네요, 문전 박대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러면 안 되죠, 마법사의 비서에게 제일 중요한 직무가 뭔지 아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걸 안다면 나도 마법사의 비서를 하고 있겠지. 파리스가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원한을 사지 않는 거거든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이번에 오월에서 생긴 일 보십쇼."

"그건 원한 때문에 생긴 일이라기보다는······."


길게 설명하려다 포기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할 주제가 안 되는 것 같았으니까. 루토 시칼트라가 단순히 예산을 타내기 위해 쓴 제안서가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쉽게 그녀를 탓하는 게 된다.


누가 알았겠는가, 어떤 제국 사냥꾼들은 정말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는걸.


"파리스, 밖에 있어? 잠깐 와볼 수 있을까?"


문 안에서 들린 건 인형사의 목소리였다. 나와 파리스는 그가 레몬을 고치고 있던 응접실로 달려들어 갔다.


놀랍게도, 레몬은 자기 발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몬."

"이엘 알체이라에게 좌표를 설정. 본 기체는 3시간 28분간의 기억이 없다. 보안 장치가 한 번 작동되었음."


"완전히 고쳐진 겁니까?"

"아, 네, 뭐. 일단은요. 사람으로 치면 후유증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분간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제가 가지고 있던 장비로 충전했고요."


"안 그래도 어디다 부탁해야 할지 깜깜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파리스, 엘펜슈타인 남은 거 좀 없을까? 한 잔 딱 하고 가면 완벽할 것 같은데."


그는 제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가방에 모아 넣고 방을 나섰다. 파리스가 그를 배웅하려 뒤를 따랐고, 레몬은 나와 둘이 남은 걸 완전히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산드린 카잔치카가 보안 장치를 망가뜨렸다. 그러나 고의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임."

"그걸 어떻게 알지?"


"본 기체에 특수한 보안 장치가 가동 중임. 그 보안 장치의 조건이 산드린 카잔치카와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일시적으로 기능이 정지된 건 그것 때문."

"특수한 보안 장치라, 뭔지 나한테 말할 수 있어?"


레몬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이렇게 사람처럼 행동하고는 하지. 그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심어 놓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무서울 때가 있었다.


"일단, 본 기체는 이엘 알체이라와 특정 거리 이상 멀어질 경우 보안 단계가 상승함. 여기에서 특정 거리란, 거리 단위로는 약 1km 가량."

"왜 그런 걸 미리 알려 주지 않은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본 기체의 경우, 그 보안 설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이제 얻었음. 자나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 있음."


결국 레몬이 내 침대에까지 들어오려고 했던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던 거네. 나와 루토 시칼트라는 처음에 만났던 카페에서 꽤 멀리 떨어질 때까지 걸었다. 게다가 물속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아까의 나는 레몬에게서 상당히 멀어졌던 셈이다.


"아까는 내가 너한테서 좀 멀리 떨어지긴 했지. 그건 알겠어. 하지만 산드린 카잔치카가 특별히 요주의 인물인가? 평범한 마법사잖아. 우리를 호의적으로 대해 준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 대상으로 그렇게 과도한 경계를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본 기체는 아레인스터의 학장, 아실카 시칼트라와 유사한 마력을 운용하는 사람이 회로에 접촉하려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산드린 카잔치카의 경우, 아실카 시칼트라의 셋째 딸임. 두 사람의 마력 구조는 대략 70%가량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됨."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을? 왜?"

"이유는 불명. 자나가 그렇게 설정해 두었다."


이건 또 상상도 못 한 전개인데. 분명 나름의 이유는 있을 테지만, 굳이 아실카 시칼트라를 경계 대상으로 설정했다고?


자나는 처음부터 레몬을 아레인스터로 보낼 셈이었던 건가. 이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는 문제였다.


"숙소로 돌아가자, 레몬."

"이엘 알체이라의 제안에 찬성함. 덧붙여, 전원이 꺼져 있는 동안 마력이 충전되었음. 이제 새서림에 돌아갈 때까지는 문제없이 작동할 것으로 추정됨."


우리는 조용히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산드린은 보이지 않았고, 루토 역시 아직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인사를 남길 사람은 파리스밖에 없었다.


"파리스 씨, 오늘은 일단 돌아가야겠습니다. 여기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리해야 할 게 있어서요."

"아아, 네. 얼마든지 그러시죠. 내일 오후에 다시 오실 거죠? 아까 말씀드린 일로 상의를 좀 하고 싶은데요."


아이니 교단과 관련된 일인가. 그거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줘야겠지. 어쨌든 파리스는 인형사를 불러서 레몬을 고쳐주었으니까.


"그러죠. 내일 점심시간 이후에 오겠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인사 전해주세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나와 레몬은 아실카 시칼트라의 성을 빠져나왔다. 이미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공기는 낮보다 훨씬 싸늘했다. 이 시간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갈 줄이야.


"실감이 나?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 건지."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건 그만큼 얻은 게 많다는 뜻임."

"얻은 거라."


확실히, 얻은 게 많다고 못 할 것도 없지. 오늘은 내가 사월 촌놈이라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된 날이기도 했다.


"유리오가 있는 곳을 찾을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냈어. 그게 가장 큰 수확이야."

"루토 시칼트라가 이엘을 도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임."


한 마디로 이건 수상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제국 사냥꾼들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데.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어쩌지, 레몬?"

"인간의 머리는 그렇게 쉽게 터지지 않음. 인간의 머리를 터뜨리는 데 필요한 압력은······."

"그만."


분명히 내가 농담 기능을 끄지 않았었나?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이건 밖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집에서는 잠옷으로 갈아입기 전에 절대로 침대에 눕지 않았으니까.


"일단 좀 씻어야겠어."


안타레스는 사월보다 훨씬 습한 도시였다. 그 말은, 내 옷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분명 루토 시칼트라와 함께 시그니 호수 아래로 내려갔었다. 현실 같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옷을 대충 벗어 던졌다. 그 호수가 깨끗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더러운 물이었다면 시칼트라 학장의 집에서 샤워했을 텐데.


"루토 시칼트라가 나를 도우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이엘 알체이라가 매력적인 남성이기 때문임."


아무래도 전원이 껐다 켜지면서 농담 기능의 설정이 초기화된 모양이었다. 나가자마자 그것부터 꺼야지.


"농담이지? 일단 그 사람은 실비나의 언니잖아. 너 같으면 네 동생과 몇 년을 사귄 남자와 굳이 엮이고 싶겠어?"


아니, 레몬이 그런 감정을 이해할 리가 없지. 괜히 말했다. 역시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속옷과 가운을 걸쳐 입고 머리카락을 털며 나가자 레몬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이거, 설마 내가 민망해할까 봐 이런 식으로 앉아 있는 건가.


"아실카 시칼트라는 그 능력뿐 아니라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한 인물임. 그리고, 루토 시칼트라는 그 아실카 시칼트라의 딸이다."

"그게 뭐?"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문득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실비나가 '시칼트라'를 욕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했던 말이 있는데."

"그게 뭐지?"

"그렇게 말하더라고. 시칼트라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걸 다 빼앗아 간다고."


그게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적용되는 거였을까.

나는 피곤함에 비틀거리며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오늘은 도중에 깨지 않고 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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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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