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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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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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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53.

“고정된 좌표 값이라 해도 DK는 너무하잖아!”

빙글뱅글은 초조함에 몸을 떨었다. 사실상 퀘스트의 A조건은 날아간 거나 마찬가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떠오르는 것은 리퍼의 존재.

리퍼를 따돌리고 움직였으니 후환이 두려웠다.

그동안 리퍼가 신성왕국에서 마법사를 어떻게 해치웠는지 보아온 빙글뱅글이다.

암살자인 리퍼는, 상성이 나쁜 마법사를 상대로 선전……아니 압도했다.

마법사가 탐지하든 말든 그냥 달려들어 목숨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되면 남들 눈에는 멀쩡히 서있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죽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NPC도 아니고 유저가 이유 없이 갑작스레 죽는 건 있을 수 없다.

독에 당했든, 누가 화살을 날렸든, 아니면 암살자가 근처에 있든.

유저가 죽을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탐지를 쓴다, 사람을 풀어 찾는다 해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리퍼는 멀리 달아난 뒤니까.

그렇다고 몸에 남은 흉기의 흔적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저가 죽으면 시체도 남기지 않고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는 건 ‘주문을 쓰려던 마법사가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는 사실뿐이다.

흔적도 남기지 않는 암살자의 존재에 바하르칼 유저들은 동요했고, 덕분에 아이린을 지키는 일은 수월해졌다.

처음부터 모든 걸 지켜본 빙글뱅글은, 리퍼가 특수한 스킬로 인해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급습에 최적화된 타입의 암살능력.

그것은 이동속도는 물론이고, 공격속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니 누가 봐도 죽은 사람이 이유 없이 급사한 걸로 보인다.

빙글뱅글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돼. 그놈에게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장이야.”

그동안 리퍼가 해 온 대로라면, 부활장소에서 기다렸다가 또 죽이기를 반복할 것이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지금 빙글뱅글은 이단 심문관에게 쫒기는 상태다. 이곳에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을 게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리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리퍼 입장에서는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

네크로맨서인 빙글뱅글을 그냥 이단 심문관의 손에 넘기면 된다. 아니, 이단심문관과 직접 만날 필요조차 없다.

한번이라도 죽이면 된다.

엔틸리움에서 부활한 빙글뱅글은, 성기사들과 이단심문관의 열렬한 환영 속에 처벌받을 것이다.

네크로맨서에 대한 처벌은 최하가 네크로맨시 등급의 강등.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당연히 처형.

빙글뱅글은 자신이 처형당할 거라 예상했다.

‘신성왕국에서 마물을 소환했으니 당연하지.’

겉보기로는 게임 속 규정에 따른 캐릭터의 삭제-처형의 모양새이니, 빙글뱅글은 어떻게 대항할 도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더 오션’ 서버오픈 일주일간 벌어졌던, 인육만두 사건과 똑같다.

인육만두처럼 NPC를 협박하고 무고한 이들을 죽인 건 아니지만, 신성왕국에서 네크로맨시를 사용해 마물들을 소환해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원인은 빙글뱅글이 제공한 셈이니, 체포하겠다고 병력이 들이닥치면 손도 못써보고 당하고 만다.

‘난 다른 캐릭터는 하나도 키우고 있질 않아. 빙글뱅글이 처형당하면, 레벨 1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해킹으로 입은 피해 복구는 어떡하라고.’

빙글뱅글은 머리를 짜내었다. 어떻게든 리퍼를 구워삶아서, 이 모든 게 사고였음을 어필해야 한다. 리퍼는 지하구조물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린이 텔레포트 되는 현장에는 자신과 W밖에 없었다. 붕괴된 현장에서 살아남은 건 빙글뱅글 하나뿐.

‘이야기를 짜 맞춰보자.’

빙글뱅글은 이야기를 각색하여, 자신이 만든 골렘을 다른 마법사들이 만든 존재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W가 변수로 끼어들어 옥신각신하던 중에, 텔레포트 장치를 건드려 좌표 값이 어긋났다고 둘러댄다면…….

‘좋아……급조해낸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아.’

빙글뱅글은 일단 리퍼와 대화를 나눠보려고 메신저 창을 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차단하고, 오직 리퍼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리퍼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볼일이 있는 건 자신이지 리퍼가 아니다.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기다린 거였지만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내키지 않았지만 빙글뱅글은 메신저 창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리퍼님이 ‘빙글뱅글’님을 수신거부 설정했습니다.>


“날 차단했다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리퍼 역시 아이린을 원한다.

퀘스트의 A조건인 아이린을.

어떤 식으로든 감시할 수단을 마련해두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즉각 알아차릴 수 있게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빙글뱅글은 각오를 다졌다.

아이린이 마계로 떨어진 사실을 리퍼가 알게 되면 싸워야 할 테니까.

그러나 적어도 대화의 여지는 남겨둔 것으로 생각했었다.

즉각 공격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퍼의 스타일대로라면 당장 자신을 공격하고도 남았다.

설사 자신이 지금 유령상태라 해도 말이다.

유령을 공격하는데 쓰이는 무기와 소모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착각에 불과했군.”

이젠 알 수 있었다. 리퍼는 싸울 생각이다.

빙글뱅글은 유령상태의 몸을 움직여 지상으로 향했다.

어차피 유령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도망치려면 지상으로 올라가 죽음을 ‘거부’하고, 육체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

“리퍼는 그때를 노리겠지.”

지상에 올라서자마자 빙글뱅글은 얼어붙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구덩이였는데, 포탈이 가동되고 지하구조물이 폭삭 주저앉아 생겨난 지형이었다. 이건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문제는 갈라진 땅의 틈에서 용암이 솟아나오고 있다는 것.

유령상태로 지하를 헤집고 다닐 때만해도 보지 못한 것이기에 빙글뱅글은 당황했다.

“이제 막 시작된 건가? 아니면 내가 그런 곳만 피해 다녔던 건가?”

빙글뱅글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이 정도는 냉기속성으로 이겨낼 만하다. 직접 닿지만 않으면 괜찮다.

하지만 가까스로 찾은 냉정은 곧 깨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지면에 틀어박혔다. 흙이 튈 정도로 요란하진 않으나, 지면의 균열은 깊게 번져나갔다. 흡사 우박이라도 퍼붓듯, 무수히 많은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아직 부활하지 않은 영혼 상태이지만, 온몸이 저릿저릿할 만큼 농밀한 마력의 덩어리다.

“매직 애로우라고?”

포탈이 가동되면서 이미 주변의 EMP는 엄청나게 소모된 직후.

당연히 주변의 EMP(환경마력)가 이쪽으로 몰려들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된다.

하늘에서 방전을 일으키는 빛 덩어리들이 생겨났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그저 흐름에 밀려 압축된 고농도의 마력이 스스로 주문의 형태를 띤 것이다.

그것들은 생기자마자 지상을 향해 쏘아졌고, 뒤이어 새로운 빛 덩어리가 생겨났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매직애로우 때문에 지상은 이미 초토화중이다.

이 모든 것은 EMP가 빠르게 채워지는 과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 많은 매직 애로우에 얻어맞으면, 부활하자마자 전신이 걸레짝이 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부활을 미룰 수는 없지.’

부활할 장소를 찾다보니 매직 애로우를 아주 못 피하는 건 아니었다.

매직 애로우가 자주 떨어지지 않는 장소가 있었다.

이 용암지대의 가장자리 부분과 상대적으로 높은 고지대였다.

먼저 빙글뱅글은 높은 곳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뒤엉킨 EMP때문인지, 유령상태로 더 높은 고지대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장자리 부분을 이용해야 했다.

절벽을 몇 걸음 앞두고 빙글뱅글은 멈췄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사용했다.

용암이 펄펄 끓고 매직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구덩이에서, 네크로맨서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였다.

미지의 차원이 열렸다.

빛이 존재치 않는 영원한 그늘 속, 깊은 어둠에서 빙글뱅글의 육체가 드러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친 육체는, 열기로 일그러진 대지위에 몸을 눕혔다.

그 즉시 빙글뱅글의 혼은 육체로 빨려 들어갔다.

“크으…생각보다 뜨겁군. 소환!”

펄쩍 뛰다시피 하며 몸을 일으킨 빙글뱅글은, 한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방패가 손에 잡혔다.

땅속에 두고 나온 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방패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통곡의 벽!”

방패에서 튀어나온 냉기가 주변에 뿌려졌다. 주변의 열기가 삽시간에 걷혀나갔다.

이 스킬은 원래 얼음벽을 여럿 세워, 단거리 이동 지점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얼음벽을 통하면 단숨에 용암 구덩이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음벽이 생겨나지 않았다.

용암이 들끓는 환경이다. 고작 아이템으로 만들어내는 얼음이 유지될 리 없었다.

“혹시나 하고 써봤더니. 역시로군.”

빙글뱅글은 다른 손에 매직스틱을 꺼내들었다. 다른 빈손으로는 꼼꼼하게 수인을 맺으며 술식을 짜나갔다. 그러자 발밑에서부터 파르스름한 빛 무리가 퍼져나갔다.

마법사가 되면 누구나 배우는 기초적인 주문인 배리어다.

EMP의 뒤엉킨 흐름이 술식의 원활한 전개를 방해했지만, 배리어가 허리까지 전개되는 속도는 불과 5초에 불과했다.

이정도면 이제 갓 마법을 배운 초급 마법사의 수준.

보통 배리어가 0.5초라는 찰나의 순간에 발동되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느린 것이다.

하지만 EMP가 제멋대로 뒤집히고 얽혀 주문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고작 배리어라도 사용 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이건 다 레드오션 시절부터 쌓은 경험 덕분이다.

당시 빙글뱅글은 중급을 넘어 고급 마법사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빙글뱅글은 정교하게 마력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제 비어있는 곳은 머리를 비롯한 어깨위쪽 뿐이다.

몇 초 뒤면 배리어가 거기까지 단단히 감싸 보호해줄 것이다.

누군가 빙글뱅글을 공격할 거라면 지금이 그때.

아니나 다를까.

비어있는 등을 노리고 용암을 닮은 시뻘건 화염이 덮쳐들었다.

“코로나!”

아슬아슬하게 완성된 배리어가 화염을 맞고 찌부러졌다. 절로 헉 소리가 날 타이밍이었으나, 빙글뱅글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미 배리어로 공격을 막아냈다.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그는 용암의 강 저편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용암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빙글뱅글과 달리, 상대는 용암을 지척에 두고 서 있었다.

“뜨겁지도 않단 말인가?”

혹시 자신을 쫓아온 이단심문관일지도 모른다.

즉시 상대가 입은 옷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곧 긴장을 풀었다.

상대의 옷은 용암이 내뿜는 빛에 물들어 붉게만 보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원래 색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이단심문관의 옷은 검정색.

하지만 상대의 옷은 회색, 혹은 좀 더 화려한 컬러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단지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군데군데 찢겨진 부분 때문에 누더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단한 방어구는 아닌 것 같고……그나마도 내구도가 한계. 용암지대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내구는 더 빨리 닳겠지.”

이제 상대에 대한 관심은 식어버렸다.

가까스로 친 배리어 덕에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매직애로우로부터 안전해졌지만, 까딱 잘못하면 죽을 상황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EMP가 미쳐 날뛰니 마법도 제대로 쓰기 힘들고, 흐르는 용암으로 인해 발 딛을 땅은 점차 줄어만 갔다.

지금 중요한 건 일초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

빙글뱅글은 비행주문을 준비했다.

“아무리 컨트롤에 집중해도 완전한 비행은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크게 도약하는 정도로도, 이 용암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비행주문에 집중하는데 다시 등짝을 노리고 화염이 덮쳐들었다.

조금 전 무시했던 상대가 다시 공격해오고 있다.

“죽고 싶나!”

용암의 강 너머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내 얼굴을 잊어버렸나? 이러면 기억해내는데 도움이 될까?”

무슨 짓을 했는지 상대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치렁치렁하게 변했다. 틀어 올린 머리를 푼 게 아니라, 짧았던 머리가 길어진 것이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스킬.

빙글뱅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무너지는 흙더미를 헤치고 살아남았다고?”

“생존을 위한 스킬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냐!”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자의 목소리다.

자세히 보니 거의 누더기 꼴이 되어 있는 겉옷에, 초록과 노랑으로 이루어진 큼직한 체크무늬가 있다. 하의는 짧은 반바지차림이었고, 부츠는 발가락이 드러나 있다.

저 구성은 초급 아처의……그것도 여성용 복장.

W도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빙글뱅글의 주변으로 마력이 발산되었다.

너무도 짙은 마력의 파장 때문에, 빙글뱅글의 모습이 순간 마력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오냐! 이번엔 확실하게 죽여주마!”


◇◇◇◇◇◈◇◇◇◇◇◇◈◇◇◇◇◇◇◈◇◇◇◇◇


리퍼의 요구는 리퍼를 사로잡을 타이밍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레벨도 높고 전투경험도 많은 빙글뱅글을 상대로 생포는 무리. 그만큼 위즈는 약했다.

그 점은 리퍼도 인정했다.

“네가 가진 최강의 공격을 퍼부어도 안 죽을 거다.”

“그건 말해주지 않아도 압니다.”

“아니. 다른 얘기다. 놈은 네크로맨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죽지 않는다. 나로서도 쉽게 죽이지 못한다.”

“네크로맨서가 아닌 그냥 마법사는 죽일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사실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는 거 아닙니까?”

“아이린을 지키려고 내가 죽인 용병마법사는 50명이 넘는다. 모두 하루 안에 처리했지.”

사실을 부풀린 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가 아이린 암살을 막기 위해 마법사들을 견제한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위즈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말한 죽음을 ‘거부’한다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겁니까? 스킬?”

“네크로맨서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손으로 죽음을 맞이한 뒤, 그 죽음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집어 넣어버리는 것이다.”

으스스한 내용이었지만,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의 컨셉과는 부합한다.

중요한 건 그 ‘죽음’이란 게 무엇이냐는 것.

“뭘 어디에 넣는 겁니까?”

“그건 나도 알지 못한다. 네크로맨서는 키워보질 않았으니까. 다만 이 의식을 통해 네크로맨서는 사망 페널티에서 자유로워진다. 레벨에 따라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 한번은 죽어도 괜찮지.”

“그럼 포탈이 가동되면서 깔려죽은 건 무효. 두 번째는 진짜 죽음이 되는 겁니까?”

“그럴지도.”

“부활하는 순간을 노려야겠네…….”

“그건 빙글뱅글도 잘 알 것이다. 방비는 해두겠지.”

“그래도 그때가 아니면 언제 공격이 통합니까?”

빙글뱅글은 물리적으로는 방패, 그리고 마법적으로는 배리어로 방어한다.

이렇게 2중의 방어를 하는데다가, 네크로맨서이니 주변에 소환물까지 세워둘 것이다.

아직 신성왕국이니 눈치 보느라고 네크로멘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위즈는 빙글뱅글이 궁지에 몰려 있으니 모든 수단을 동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까운 엔틸리움에서 그 난리를 치고, 여기까지 오면서 혼돈의 짐승까지 풀어놓았어. 이미 성기사가 출동했을 거야.’

뿐만 아니라 일행들이 머물던 폐허는, 바하르칼의 전(前)용병단장 스컬그레일이 잠시 쉬다 간 장소이다. 그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감시의 눈이 폐허에 남겨져 있었다.

그중에는 신성왕국에서 보낸 자도 있을 것이다.

폐허의 지하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는데 그걸 가만 보고 있을까?

자국의 땅에서 벌어진 이변이니 이미 보고되고도 남았다.

‘나 같으면 당장에 성기사를 보냈을 거야.’

혼돈의 짐승까지 염두에 둔다면 이단심문관도 이미 출발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빙글뱅글이 소극적으로 싸울 리 없다.

잡히면 처형당할지도 모르는데,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위즈의 생각이 길어지자 리퍼가 입을 열었다.

“무슨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EMP 때문이지.”

“EMP……아!”

포탈이 가동되면서 소모된 EMP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폐허근처는 EMP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속에서는 그 어떤 주문도 사용할 수 없다.

마법이 봉인된 마법사라니. 이건 생각보다 손쉬운 상대다.

“그렇다면 발견즉시 공격하면 다 통한다는 말?”

“아니. 하나도 안 통할 거다.”

“마법사가 마법을 못 쓰는데 어떻게 버틴단 말입니까?”

“그건 그놈이 사이비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사이비 마법사.

그 말에 위즈는 뜨끔했다. 자신도 무능력자상태로 마법을 배워 사용 중이다.

설마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 본인 얘기 같아서 찔리나 보군. 안심해. 빙글뱅글은 전혀 다른 경우니까.”

리퍼는 빙글뱅글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었다.

듣고 보니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었다.

자신처럼 이런 저런 조건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내가 방패를 통해 이 공간으로 들어온 것도?”

“그렇지. 이정도의 정보를 받았으면, 어서 튀어나가 싸우라고.”

리퍼가 알려준 대로라면, 빙글뱅글도 무적은 아니었다.

아니, 그 약점만 집요하게 노리면 이길 수 있다!


◇◇◇◇◇◈◇◇◇◇◇◇◈◇◇◇◇◇◇◈◇◇◇◇◇


막상 등 떠밀려 나와 봤더니 빙글뱅글은 아직 부활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았다.

지금 서 있는 용암지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매직 애로우다.

범위 공격이나 다름없는 숫자가 떨어지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딴 짓하면 벌집이 될 판이다. 배리어라도 펼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처음엔 위즈도 배리어를 펼쳐보려 했다. 하지만 마력 컨트롤이 자꾸만 꼬여 포기했다.

그 대신 섀도 런으로 매직 애로우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용암과 치솟는 화염으로 인해 용암지대는 전체적으로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다. 바깥과 달리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아니기에, 여기서 쓰는 섀도 런은 자신의 그림자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수준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위즈는 매직 애로우를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매직애로우가 지면에 박히기도 전에 공중에서 녹아 없어진 것을 보고난 뒤였다. 그 즉시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을 발동했다.

매직 애로우는 환한 빛 덩어리로 보였는데, 그것이 옅어지며 넓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술식으로 재구성된 매직 애로우가 다시 마력으로 환원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위즈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포탈의 가동으로 EMP가 크게 소모되었다.

⇓ ⇓ ⇓

소모된 EMP만큼의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른 지역의 EMP가 몰려온다.

⇓ ⇓ ⇓

EMP가 미쳐 날뛰며 거센 흐름을 만든다.

⇓ ⇓ ⇓

그 과정에서 매직 애로우가 생겨난다.

⇓ ⇓ ⇓

매직 애로우는 응축된 EMP조각이다.

⇓ ⇓ ⇓

따라서 매직 애로우가 날아드는 곳은, EMP의 흐름이 극도로 불안한 곳이다.


즉, 매직 애로우가 허공에서 녹아 없어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 이 지역에 EMP를 채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EMP가 안정적인 곳에는 매직 애로우가 날아들 가능성이 낮다는 뜻.

“오오!”

위즈는 매직애로우의 움직임을 살피며 용암지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직 애로우가 한번 떨어진 장소에 서 있으면, 적어도 5턴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중에는 거의 매직 애로우가 떨어지지 않는 장소도 있었다.

마치 포탄이 떨어진 구덩이에 숨어 있으면, 포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확률상의 통계와도 비슷했다.

그래서 위즈는 그런 안전한 장소들을 전전하며 빙글뱅글을 기다렸다.

위즈의 발끝이 흐르는 용암의 강 근처에 머물렀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화염돌격 스킬을 발동시켰기 때문에, 실제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시각적으로만 그런 것이다.

화염의 발자국 같은 걸 밟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뜨거운 용암이 강처럼 흐르는 근처에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당신은 용암지대에 있습니다.>

<화염의 발자국이 3개 중첩됩니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효과가 중첩됩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이런 상황이라, 화염돌격의 시너지 스킬을 마구 날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맙게도 빙글뱅글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위즈는 다짜고짜 코로나를 먹였다. 처음엔 무시하던 빙글뱅글도, 열 받았는지 마력을 마구 발산해대며 소리질러댄다. 위즈는 계속 빙글뱅글의 성질을 긁었다.

“코로나!”

이번엔 화려하게 돌려차기를 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부챗살처럼 펴지면서, 위즈의 몸을 감쌌다.

전투에 방해가 될까봐 짧은 머리카락을 고수했지만, 빙글뱅글을 도발하느라 카무플라주를 이용해 다시 찰랑이는 길이로 되돌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큰 동작을 구사할 때마다 시야를 가리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 여유가 있음을 일부러 드러내려고 한 일이다. 게다가 이쪽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긴 머리는 필요했다.

위즈는 은근슬쩍 머리카락의 길이를, 살짝 줄여 허리위쪽으로 오게 했다.

실리와 적당히 타협한 결과다.

“내가 노려야 할 건, 빙글뱅글이 가진 아이템.”

위즈는 빙글뱅글이 가진 방패에 시선을 주었다.

냉기 속성을 가진 그 아이템이야말로 위즈가 노릴 1차적인 목표.

빙글뱅글이 이 용암지대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방패의 영향이 크다.

냉기 속성의 주문을 주로 사용하는 빙글뱅글이니, 춥고 뜨거움에 대한 저항력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저항력만으로 저렇게 멀쩡히 서 있는 건 불가능하다.

위즈만 해도 화염돌격 스킬을 유지하지 않으면, 당장 열기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게 변해버린다. 하지만 빙글뱅글은 위즈처럼 어떤 스킬에 의지하는 게 아니다.

‘배리어 말고는 그 어떤 주문도 사용하고 있질 않아.’

빙글뱅글 앞에 나타나기 전부터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검푸른 빛이 어린 눈동자가 빙글뱅글의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마력의 흐름은 오직 배리어에만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역시 아이템의 영향이다.

이미 리퍼에게 귀띔을 듣기도 했기에, 그 아이템이 저 방패라는 건 알고 있다.

냉기를 내뿜는 방패가 사라지면, 빙글뱅글은 지형에 의한 페널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가상현실 속에서 느끼는 찜통더위는, 마법사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순한 온도변화는 거의 진짜처럼 구현되는 게 가상현실게임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용암지대야. 이 찜통더위 속에서 캐스팅을 할 수 있을까, 빙글뱅글?’

위즈는 춤을 추듯 발을 통통 굴렸다.

폐허 속 지하구조물에서는 발로 쓰는 스킬이 봉인되었지만, 이곳은 아니다. 위즈의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화염발자국이 중첩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염의 발자국 17개를 밟았습니다.>

<화염의 발자국 21개를 밟았습니다.>

<화염의 발자국 24개를 밟았습니다.>

:

:

<화염의 발자국 51개를 밟았습니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효과가 중첩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어 시너지 스킬 디아볼릭 브레스(Diabolic Breath)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아볼릭 브레스.

화염의 발자국을 50개 이상 중첩시킨 상태에서, 암(暗)속성 스킬을 쓰면 발동되는 화염돌격의 또 다른 시너지 스킬.

그 위력은 이미 엔틸리움의 지하수로에서 암살자들을 상대로 검증했다.

데미지의 20%가 암 속성으로 들어가니, 방어하기도 마땅찮을 것이다.

광(光),암(暗),성(聖),마(魔)는 매우 희귀한 속성.

그 반대되는 성질을 쉽게 찾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위즈는 그중에서도 암(暗)속성의 스킬, 섀도 런을 배웠다.

‘당장이라도 섀도 런을 사용하면 돼.’

하지만 어째서인지 위즈는 망설여졌다.

디아볼릭 브레스는 시너지 스킬인 만큼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화염의 발자국도 그만큼 많이 밟아주어야 했다. 용암지대라 화염의 발자국이 빨리 중첩되는 것을 감안해도, 그 준비시간은 꽤나 긴 편이다.

상대가 대처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빙글뱅글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왜지?’

흡사 위즈가 먼저 공격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위즈는 보험을 들어두기로 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학살자의 망령을 꺼내 역수로 감아쥔 것이다.

겉보기엔 시뻘겋게 녹이 슬어 볼품없는 칼이지만, 마력만 불어넣으면 망령의 힘으로 육체적 능력이 향상된다. 도약력을 비롯한 전반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지는 것이다.

위즈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빙글뱅글이 무슨 꿍꿍이이던 적어도 쉽게 당하진 않겠지.’

위즈는 빙글뱅글을 노리고, 코로나를 사용하며 섀도 런을 발동했다.

몸이 그림자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대신, 코로나로 일으킨 불길에 새로이 보랏빛 화염이 깃들었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불길은 빙글뱅글의 배리어를 단숨에 관통하고, 그 육신을 삽시간에 녹였다.

“녹였다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속성에 저항력을 가지긴 힘든 법.

그리고 디아볼릭 브레스는 [화염+암] 속성의 공격이다.

즉, 화염저항을 가진 자들에게 어떻게든 데미지를 주기 위한 스킬인 것이다.

절대 필살기나, 결전기 같은 게 아니다. 야금야금 데미지를 입히기 위한 기술이다.

그런데 하급 암살자도 버텨낸 기술을 맞고, 마법사인 빙글뱅글이 리타이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 마력을 힘껏 불어 넣었다.

위즈의 마력을 먹은 고스트 블레이드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가드에 박힌 커다란 붉은 구슬부분에서다.

이렇게 아이템에 손으로 직접 마력을 공급하는 것은, EMP의 흐름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위즈는 즉시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이 영혼은 강렬한 전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같습니다.>

<이 영혼은 당신을 도와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영혼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20의 마력이 소모되고,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50의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학살을 가로막는 자’ 칭호의 효과로 인해, 위력이 1/2로 줄어듭니다. 대신 폭주하지 않습니다.>

<근성과 집중력 스탯의 영향으로, 영혼을 다시 잠재울 수 있습니다.>


“어어?”

위즈의 몸이 용암의 강을 도약해 펄쩍 뛰어넘었다. 위즈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제까지의 패턴으로 미루어보건대, 학살자의 망령은 깨어나자마자 위즈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로 싸우기를 원하는 강한 의지를 전해왔는데, 지금은 대화 대신 곧바로 위즈의 몸을 조종하고 있다.

“무슨 짓이야!”

『공격이다.』

펄쩍펄쩍 뛰어 고지대로 오르는 와중에도 위즈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나의 식물이 이제 막 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용암지대에 식물이 자라다니, 상식 밖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너무 거대하기까지 하다.

삽시간에 거리를 벌렸음에도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

플레임 플라워처럼 주문으로 만들어진 형상이 아니라, 실체를 가진 식물이다.

위즈에게 너무도 익숙한 광경이다.

“저건 사이테리아잖아!”

환경, 먹이에 따라 다양한 변종이 존재하는 마계의 식물이 용암지대에 꽃을 활짝 피웠다.

그것은 곧장 뻗어낸 뿌리를 용암에 담갔다. 처음엔 불이 붙는 것만 같던 뿌리는, 잠시 후 게걸스레 용암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계의 생물이라 해도 용암에 닿고도 멀쩡할 수는 없다.

라이칸스로프 같은 마물은 물속에서도 숨을 쉬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펄펄 끓는 용암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그게 당연한 이치요 상식이다.

하지만 용암을 빨아먹고 변이하는 사이테리아를 보고 있자니, 용암에 닿으면 모든 생물이 죽는다는 상식은 이제 깨져야 할 것 같다.

사이테리아의 뿌리에 붉은 줄무늬가 생겨났다. 용암의 주홍색을 닮은 선명한 무늬는, 마치 잎사귀에 퍼진 잎맥처럼 크게 번져나갔다. 줄기를 타고 오른 세로줄 무늬는 잎사귀 아래에 머무르며 기다란 덩굴줄기 같은 기관을 만들어냈다. 끝부분이 고사리처럼 둥글게 말린 그것은 아무리 봐도 콩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잎 부분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바스러졌다.

위즈의 눈에는 필요 없는 기관을 잘라 내버리듯 생경한 변화였다.

사이테리아의 꽃은 더욱 환한 주홍색을 머금고 타올랐다.

불의 꽃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 것이라고 위즈는 생각했다.

만약 저 자리에 서 있었다면, 꼼짝 못하고 사이테리아에 짓뭉개졌을 것이다.

‘가만? 학살자의 망령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은, 칼을 쥔 나 말곤 없을 텐데?’

위즈는 붉은 구슬장식이 박힌 거도(巨刀)를 내려다보았다.

이 무기는 아쿠에리언과 우연히 얽히면서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에 영혼이 들어 있다는 것만 빼면 그렇게까지 특별한 메리트를 못 느꼈다.

칼에 깃든 힘을 이용해 잠깐 동안 전투력을 강화시킨다. 이건 기능적인 면이고,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컨셉이나 기능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학살자의 망령’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말이다.

게다가 칼 속에 깃든 망령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칼을 쥔 위즈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걸 확인한 것은 오늘 저녁이었지.’

골렘을 꺼내든 빙글뱅글과 싸우면서, 동료를 일부러 부르지 않고 힘겹게 싸우는 위즈를 가리켜.

이지 없는 껍데기들이 아우성을 친다고 말했었다.

그때 위즈는 빙글뱅글이 소환한 악령을 가리키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런저런 조건을 재고, 싸울 때 생각이 많은 위즈를 깨우치는 말이었다.

‘그때 학살자의 망령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나로 한정된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외부의 공격을 알아차리고 피하게 하는 걸 보면…….’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게 말을 걸었다.

“공격이 들어올지 어떻게 알았지?”

『나는 마력이 없다……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이 칼은 내가 깃들어 있을 뿐……육체는 아니다. 그래서 타인의 마력을 공급받지 못하면…싸울 수 없다.』

“그래서?”

『마력을 공급해준다는 것은……정신을 하나로 공유해준다는 것. 그래서……난 그대의 눈과 귀가 아닌, 다른 감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시간도 청각도 아니라면……육감 말인가?”

『그렇다. 그것이 전투에 응용되면……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말이 쉽지 그런 불분명한 걸 믿고 어떻게 싸워?”

『공격이…날아드는 것을 보고 싸우면…늦는다. 무기를 뽑는 소리를 듣고…대응해도 늦는다. 독 냄새를 맡고 대비해도 늦는다. 공격에 당해 고통을 느낀 뒤 대처해도 늦는다. 쓰러진 뒤 방어해도 늦는다. 그 모든 공격을 예상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그대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말을 더듬지 않네?”

『그대가 날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학살자의 망령과 싱크로율이 100%가 되었습니다.>

<망령이 5.2%만큼 기억을 회복했습니다.>

<망령이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는데 더욱 유리해집니다.>

<모든 스킬과 공격이 본래 위력을 발휘합니다.>

<망령과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활해집니다.>

<망령이 당신의 신뢰에 응답해, 소모치가 조정됩니다.>

<스킬 사용시 마력 소모, 20⇒15로 감소>

<일반 공격시 스태미나 소모, 50⇒35로 감소>

<특수한 스킬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직관반응>


『잠시만 내게 몸을 맡기라. 그대에게 나의 싸움을 보여주겠다.』


작가의말

솔깃한 심정도 있었습니다만.

공모전에는 참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선호작, 조회수, 추천은 물론이고......
기존의 연재분(+댓글)까지 초기화된다고.

그렇다면 [또 다른 셸터] 에는 142화만이 덜렁 올려지는 꼴이 됩니다.
앞 뒤 상황은 뚝 잘라먹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셈이지요.
차라리 연참에 참가하면 참가했지, 공모전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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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5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5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1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1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4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4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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