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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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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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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1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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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8.

텔레포트와 같은 순간이동 계열의 주문들은, 대상을 멀리 이동시키기 위해 막대한 양의 마력을 소모한다.

위즈의 섀도 런도 이동거리가 길어지면 마력의 소모가 커진다.

하물며 대륙을 단숨에 이동하는 장치라면 순간적으로 잡아먹는 마력이 어마어마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포탈을 여는데 EMP만으로 800만의 마력이 소모되며, 초당 1만의 마력을 불어넣어주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인간은 오직 witch밖에 없었다.

“1만? 초당 1만의 마력을 넣어야 한다고? 그게 인간이야?”

『마스터는 인간 맞다.』

“대단한 건 알겠는데……그래도 1만은 너무하잖아?”

『다시 한 번 말하지. 포탈이란 건 그렇게 쉽게 사용할 장치가 아니다.』

“아무튼 포탈이 마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다는 건 알겠어. 그게 왜 지하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건데?”

포탈이란 원래 개방된 장소에 구축되어야 한다.

‘마력의 진공효과’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야금야금 주문으로 마력을 소모할 때와는 달리, 포탈이 가동 시에 잡아먹는 마력은 순간적으로 800만에 육박한다.

따라서 EMP가 저절로 채워지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포탈을 중심으로 마력이 완전히 사라진, 그야말로 무(無)의 공간이 생겨나게 된다. 뒤이어 마력 없는 무의 공간을 향해 주변의 마력이 밀어닥치게 된다. 이때 마력이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 기세만으로 주변의 지형지물이 파괴될 지경에 이른다.

『쉽게 말해 매직캐논이 수천발이 날아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법사가 품은 고유마력도 아니고, 그냥 환경마력(EMP)이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고?”

『꼭 포탈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다. 전설의 주문인 미티어 스웜을 사용했을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뭐야. 불덩어리 맞은 다음에, 매직미사일 수천발이 다시 두들겨 패는 거네?”

『그래서 최상위 주문으로 갈수록 무서운 것이다.』

“witch는 그걸 알았을 거 아냐? 그런데 어째서 이런 지하에 포탈을 만든 건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300년 전의 항마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승리를 이끈 자들의 이야기는 멋들어진 영웅담으로 전승되었고, 술집에서 흥얼거리는 힘찬 노랫가락으로 변했다. 하지만 항마전쟁은 영광스러운 역사가 아니었다.

항마전쟁은 시작부터 끝까지, 마족의 압도적인 승리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면 왕국들이 멸망하고, 땅이 조각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일이 잇따랐다. 큰 나라들은 잘 버텨내고 있었지만, 주변의 소국들이 하나둘 함락되면서 고립되었고. 결국엔 파상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둘 마족들에게 짓밟혔다.

대군을 모아 정면승부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번번이 실패해 인간들의 사기만 떨어뜨렸다.

결국 적장인 볼가를 직접 치지 않고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렇게 꾸려진 것이었다. 결사대는.

동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외면하고, 적의 본진 한가운데에 뛰어들 미치광이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인간에게 불리해질 것은 분명한 이치.

결사대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볼가의 코앞에 당도해야 했다.

그래서 witch는 포탈을 만들었다.

포탈은 텔레포트 주문으로는 꿈도 못 꿀, 초 장거리 이동을 가능케 하는 장치.

그 존재를 마족이 눈치 챈다면 훼방이 들어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witch는 지하에 포탈을 구축했다. 지하라면 마력의 파동을 숨길 수 있었다. 또한 포탈을 사용한 직후, 열려진 포탈을 따라 마족들이 들어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력의 진공효과’로 인해 땅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레 포탈이 함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핏스톤의 이야기를 들은 위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그렇다면 뭐야. 결사대를 보내고 붕괴된 걸 누가 다시 이용하려 한단 말이잖아. 300년 전, 귀환자들이 포탈을 열려고 했다지? 그때 그들은 땅속 깊이 파묻힌 포탈에 어떻게 접근하려 한 거야?”

『그들 중에는 마법사도 있었다. 땅파기 주문을 쓴다면, 시간은 걸려도 언젠가는 파냈을 거다.』

비로소 위즈는 악령들이 어떻게 이번 일을 꾸미게 된 건지를 이해했다.

악령이란 소환된 장소에 죽은 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이 폐허에서 소환된 악령 중에는, 살아 돌아온 결사대의 기억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골렘의 심장에 깃든 순간, 결사대의 기억을 가진 악령은 지하의 포탈의 존재를 기억해낸다.

죽은 결사대 중에는 마법사도 있었으니, 파묻힌 포탈로의 접근법 역시 있었을 것이다.

흙속을 헤엄치듯 이동하는 골렘의 능력을 이용해, 땅속의 포탈로 향한 게 그것이다.

“골렘의 심장 속에 들어 있는 악령 중에 마법사의 기억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로군…….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이 구조물들은 다 뭐지? 설마 이것들도 포탈의 일부인가?”

지금 위즈는 이리저리 꺾이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이곳은 미로처럼 복잡한 느낌은 없었지만, 적어도 목적지를 빙 둘러가게 하려는 의도로 지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포탈 주변에 이런 구조물은 없었다. 이건 나중에 세워진 듯하다.』

“누가 어째서 그랬는지는 당연히 모르겠군…….”

『그렇다.』

“그나저나 기분 나쁜 감각이 드는데?”

핏스톤이 자신의 감지능력으로 확인해주었다.

『전방에 구울 3마리다. 엘리트 급은 아니고 배회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군.』

“또 길 막기라 이건가?”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학살자의 망령을 양손으로 거머쥐고선 종종걸음질치며 구울에게 달려들 뿐이다. 섀도 런을 사용한다면, 이 어두운 통로에 구울이 몇 마리가 있든, 그냥 넘어가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하나하나 해치우고 지나가야만 했다. 그 때문에 아이린을 찾는 게 늦어지고 있었다.

지금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할 수 없었다.


◇◇◇◇◇◈◇◇◇◇◇◇◈◇◇◇◇◇◇◈◇◇◇◇◇


처음 섀도 런을 사용하려 했을 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이러했다.


<현재 위치한 필드에서는 ‘섀도 런’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위즈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스킬인 정령강화-바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이 신발에 깃드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처음 스킬을 배울 때 말고는, 정령강화를 쓰면서 이런 메시지가 뜬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위즈는 허둥지둥 정령강화를 수차례 시도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실패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 떠오르자 위즈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일이 꼬이는구나.”

앞서간 아이린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폐허의 지하는 이동속도 페널티가 붙는 지역이었다. 지상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하의 상황은 극과 극.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염돌격은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발로 쓰는 기술임에도 이동속도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위즈는 그렇게 생각해두기로 했다.

섀도 런은 봉인 되었고, 정령강화도 전투용으로밖에 쓰지 못한다.

같은 발 기술인 화염돌격은 쓸 수 있다.

적어도 전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겠다며 안도하던 위즈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 지금의 상황이 마치 전투를 강요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폐허의 지하는 전투까지 금지된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몬스터가 소환 될 수도 있다는 건가?’

위즈는 통로의 폭부터 확인해보았다. 성인남성 네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도 공간이 남는다. 이 정도면 전투가 벌어져도 움직임에 제약을 줄 정도는 아니다. 아니, 전투가 원활하게 벌어지고도 남을 환경이다.

거기에 굽이굽이 꺾이는 부분이 많은 통로와 곳곳에 설치된 함정까지.

위즈는 확신했다. 반드시 전투 이벤트가 발생할 것이라고.

즉시 인벤토리에서 학살자의 망령이 뽑혀 나왔다. 포션의 잔량도 확인했다.

체력회복과 마력회복 용도의 포션이 모두 5칸의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포션의 총 개수는 150개.

번들상태로 합쳐져 있음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상점표 포션이라면 이렇게 많은 개수가 번들로 묶일 수 없다.

위즈는 모자손에 포션을 채워 넣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커스텀 포션.”

이 포션들은 연금술사가 만든 물건으로, 세상에 사용하는 사람이 100명도 되지 않았다.

포션을 만든 연금술사의 이름은 ‘아반테스타’.

바하르칼 용병단에 적을 올린 NPC다.

즉, 아반테스타가 만든 커스텀 포션은, 바하르칼의 친위대와 스컬그레일만이 사용하는 물품이었다. 그런 물건이 위즈 손에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신성왕국 내에서 벌어지는 암살임무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계속된 전투로 인해 포션이 소모된 위즈 일행에게, 양질의 포션을 공급함으로써 앞으로도 전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한다. 그 포션을 공급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바하르칼 용병단의 단장이었으니, 암살자들에게도 스컬그레일의 뜻이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위즈는 두 칸의 인벤토리에 체력회복 포션을 넣고, 나머지 칸에는 마력 회복 포션과 스태미나 회복 포션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칸은 얼음 족쇄 스크롤을 넣었다.

‘전투 효율을 높이려면 이 구성이 차라리 나아.’

어떠한 적이 나타날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플레임 플라워나 윈드 커터 같은 주문을 넣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만약 통하지 않거나,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면 어쩔 것인가?

반면 얼음 족쇄는 이제까지 적의 발목을 잡거나, 하다못해 마법저항이 높을 경우에는 1~2초라도 적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위즈는 얼음 족쇄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생각은 들어맞았다.

아이린의 뒤를 쫓아 도착한 폐허의 지하에는, 무수히 많은 언데드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


갈고리처럼 휘어진 구울의 손톱이 위즈의 옆구리를 훑었다. 그걸 보면서도 위즈는 피하지 못했다. 그걸 피하면 머리와 가슴을 노리는 공격에 노출된다. 들어온 데미지 양과는 상관없이 머리와 가슴은 중요한 급소. 그대로 얻어맞으면 캐릭터가 사망할 수도 있다.

“흡!”

위즈는 몸을 떨었다. 마치 가시덩굴이 살을 후벼내는 것처럼, 간지러움과 따끔함이 뒤섞인 기묘한 감각이다.

‘아직 괜찮아. 버틸만해.’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세워서, 가슴과 머리를 노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그 반동으로 위즈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위즈는 옆구리에 손톱이 걸린 구울과 한데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위즈는 구울의 머리통을 짚고 일어서며 촌경을 사용했다. 일어나려던 구울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으며 내구도가 조금 깎여나갔다. 촌경으로 한번,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또 한 번.

위즈는 일부러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번의 충격을 주는 쪽으로 공격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 편이 효율이 더 좋았다. 이번엔 일어서려는 구울의 머리를 진각으로 연거푸 짓밟았다. 촌경과 진각 모두 소모치가 없으니, 이렇게 아낌없이 사용 중이다.

자잘한 피해라 해도 몇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퍼붓자, 구울의 머리에서 돌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위즈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을 멈추고 구울이 몸을 일으키기를 기다렸다. 머리에 금이 간 구울의 뒤로 다른 구울 두 마리가 비척비척 다가왔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쥐지 않은 손을 쫙 펼치며 진각을 힘주어 밟았다.


<무신장이 발동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구울의 몸을 헤집었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체술. 진각과 촌경의 콤비네이션이 어우러진 타격이다.

그 힘은 일정한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그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구울의 몸속에서.

그리고 내부로부터의 힘에 떠밀린 구울의 몸은, 누가 뒤에서 잡아챈 것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 뒤에 서 있던 두 마리의 구울들이 여기에 휘말렸다.

세 마리의 구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이좋게 벽에 처박혔다.

구울의 머리위로 해골마크가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이펙트가 떠올랐다.

스턴 효과였다.

구울들은 손가락하나 까딱 못했다.

위즈는 재차 진각을 밟으며 촌경을 사용했다.

스턴의 시간은 고작 3초였지만, 거리는 불과 5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섀도 런을 쓰지 못한다 해도, 이정도 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좁힐 수 있다.

무신장이 발동되면서 막 사라지려던 스턴효과가 갱신되었다.

위즈는 땅이 꺼져라 진각을 밟으며 학살자의 망령까지 휘둘렀다.

연달아 먹이는 무신장 때문에 구울들의 스턴은 풀리지 않았고, 구울들의 내구력이 야금야금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무신장을 날려 스턴을 유지하면, 학살자의 망령을 눕혀서 넓적한 면으로 구울들의 머리를 타격했다. 구울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얻어맞기만 했다.

무한 스턴을 이용한 얍삽한 전투였다.

원래대로라면 위즈가 사용한 무신장으로는 스턴 효과를 일으킬 수 없었다.

무신장 스킬로 스턴이 발동되는 조건은, 얻어맞은 대상이 크게 밀쳐져 장애물에 처박히는 것.

헌데 위즈는 힘 스텟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무거운 대상은 밀쳐내기 어려웠다.

모든 게 잇페인에게 모든 스탯을 강탈당한 후유증 때문이다. 이건 레벨업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구울이 상대라면 다르다.

구울은 시체. 즉, 수분이 거의 날아간 껍데기를 일으켜 싸우게 하는 언데드의 일종이다. 당연히 몸뚱이가 가벼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위즈가 무신장을 날리기만 하면 나무토막처럼 날아갔다.

빡! 우직!


<1320의 경험치를 얻으셨습니다.>


위즈의 맹공을 못이긴 구울 하나가 바스러졌다. 앞서 위즈의 옆구리에 손톱을 박아 넣은 개체다. 가까이에서 동류가 소멸하자, 나머지 구울들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예전에 네크로멘시를 잠깐 보유한 경험이 있기에 위즈는 알고 있었다.

이 상태는 일종의 광폭화 상태. 평범한 구울도 이 순간만큼은 엘리트 구울만큼이나 몸놀림이 재빨라진다는 것을.

하지만 위즈는 그런 구울을 코앞에 두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무신장을 날리면 여전히 스턴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통로가 꺾이는 지점의 벽에 밀어붙여놓고 무신장으로 스턴을 걸어주기만 하면, 구울의 눈이 고추장 색깔로 변하든 손톱이 길어지든 상관없었다. 그저 길막이용으로 세워 두어 컨트롤조차 하지 않는 구울이니, 혼자서도 이렇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위즈에겐 이것만이 중요했다.

결국 남은 두 마리의 구울도 바스러져 바닥에 몸을 뉘었다. 루팅 해봐야 구울의 뼈다귀 같은 거나 나올게 뻔했으니 위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벌써 세 번째야. 이런 놈들에게 붙잡혀서 10분이나 허비했어.”

통로를 가로막는 구울들은 언제나 3마리가 함께 출현했다. 즉, 지금까지 위즈가 처치한 구울은 9마리.

위즈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은 무능력자였으니, 이만하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전투들이 꼭 치러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 불만이었다.

“핏 스톤. 아이린은 포탈에 도착했어?”

아이린은 지금 악령과 융합된 소형골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골렘은 마력을 품고 움직이는 존재. 이미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골렘의 마력이 남긴 흔적을 직접 보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거리가 벌어지자 힘들었다. 그래서 위즈는 수시로 핏 스톤에게 물어 아이린의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핏 스톤에게 아이린을 구해달라고 하진 않았다.

혹시라도 소형골렘이 눈치 채고 아이린을 해할까 염려되어서이다.

소형골렘은 그 코어부터가 악령과 융합된 존재.

통상적인 골렘과 똑같이 생각하고 대응할 수 없었다.

『그쪽도 움직임이 느리다. 다만 가끔가다 빨라지다가 느려지길 반복하는군.』

잠시 침묵하던 핏 스톤이 알려왔다.

“아, 그건 곰곰 때문일 거야. 녀석이 아이린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통로를 걷다보면 가끔씩 벽면이 크게 훼손된 흔적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전부 함정이 설치된 흔적이었다.

커다란 둔기로 뭉개버린 것 같은 흔적이 있는가 싶으면, 다른 쪽에서는 예리한 무기로 썰어버린 것 같은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바닥에는 언제나 곰곰의 발톱이 남긴 흠집이 있었다.

그러한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위즈는, 아이린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핏 스톤의 말대로 곰곰을 소환수로 삼은 건 잘한 일인 것 같네.”

『그 야생 곰은 스스로 노력해서 엘리트급이 되었다. 그 정도 자질이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었어?”

『지금 서 있는 곳의 바닥을 살펴보도록.』

위즈는 핏 스톤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이곳 역시 곰곰이 싸운 흔적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을 손으로 쓸어보니 날카로운 것에 찍히고 긁힌 자국들이 수두룩하다. 헌데 그 깊이가 너무도 얕다. 너무도 실낱같은 흔적들이라 이렇게 만져보기 전까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곰곰의 발톱이 남긴 흔적이다.

위즈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부서진 게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벽이고 바닥이고 멀쩡했다.

『함정은 바닥에 있었다.』

“바닥?”

위즈는 진각으로 바닥을 찍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함정이지?”

『이 밑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바닥을 이루는 돌조각 자체가 회전하며 여닫히는 구조이지.』

그리고 깊게 파놓은 바닥에, 날카로운 창 같은 걸 거꾸로 박아놓는 게 일반적.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그만큼 대처하기가 까다로운 함정이다.

하지만 곰곰은 무사히 이곳을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함정마저 무력화 시켰다. 이렇게 서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게 그 증거.

“그 덩치가 무슨 수로 여길 지나간 거지?”

『장치가 내부에서부터 박살나 있다.』

“내부에서부터? 설마 무신장 같은 스킬을 익히고 있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축의 위치가 미묘하게 비틀린 흔적이 있다.』

“비틀려? 자세히 이야기 해줘.”

『축을 고정하는 돌이 깨져 있다.』

“축이라……핏 스톤. 그 돌이란 거……어떤 재질이지?”

위즈가 이곳에서 몇 가지 스킬이 봉인된 것처럼, 핏스톤 역시 통로를 뚫고 길을 열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통로와 동화된 상태로 핏 스톤 혼자만 이동하는 건 가능했다. 그래서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한편, 간간히 아이린의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당연히 핏 스톤은 함정의 내부를 살펴달라는 위즈의 요구에 부응해주었다.

『화강암이다.』

“이 통로 전체가 화강암이야?”

『벽돌로 내부를 채우고, 외장은 화강암을 많이 사용했다.』

그 말을 듣고 위즈는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진각을 수시로 밟아가며 구울과 전투를 벌였고, 앞서 지나간 곰곰은 함정을 파괴하며 나아가고 있다. 정상적인 건축물이라면, 그 충격량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함정으로 도배된 통로는 잘 버텨내고 있다.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증거다.

‘그걸 눈치 채고서 곰곰은, 과감하게 함정을 파괴해댄 거야.’

뒤집히는 바닥을 고정시키는 축을 망가뜨린 방법은 쉽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

핏 스톤이 말한 ‘뒤틀림’이란 단어 덕분이다.

위즈는 축이 있는 위치를 감지한 곰곰이, 그곳에 육중한 몸을 던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내 생각이 어때?”

위즈의 생각을 들은 핏 스톤 역시 긍정했다.

『스킬보다는 그 편이 더 쉬웠겠지.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발달해 있으니까.』

“그걸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사용하면서 생존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네…….”

『뭔가 잘못 알고 있군. 내가 대단하다고 한 건, 함정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 속에 감춰진 속셈이지.』

“속셈이라니?”

『아직도 모르겠나? 엘리트 몹은 ‘사고(思考)’할 줄 안다. 그렇다면 소환수는 어떨까?』

곰곰은 원래 초보자 사냥터의 곰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엘리트 몹이 되었고, 지금은 위즈의 소환수가 되었다. 비약적으로 능력이 상승한 것은 당연하다.

곰곰은 더 이상 곰이 아니었다.

종족명 ‘소환수’인 것이다.

위즈는 비로소 핏 스톤이 말하는 대단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일부러 함정을 부수고 있다는 말이야?”

『소환수인 녀석의 능력이라면, 함정을 파괴하는 것보다 빠르게 돌파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곰곰은 그저 제 몸 지키기 급급해서 함정을 파괴한 게 아니었다.

함정을 파괴하면서 시간을 끄는 한편, 뒤따라오는 위즈에게 이 통로의 견고함을 계속하여 어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지금까지 곰곰은 바닥에 묵직한 발톱자국을 남겨왔어.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는 작은 흠집만을 남겼어. 원래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일부러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느라 한 일이야. 그렇지?”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군.』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내게 힌트까지 주었단 말이지. 이래서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소환수인지 모르겠군. 그런데 그걸 이제야 알려주는 이유가 뭐야? 넌 땅과 동화되어 있었으니 전부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이정도도 못 알아차리는 돌 머리라면, 더 이상 그대 곁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날 시험한 거야?”

『원래 마스터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이야 언제든지 내키는 때에 할 수 있지.』

맞는 말이다. 원래 핏 스톤은 witch의 소환수.

그녀가 남긴 명령을 따라 위즈를 돕고 있는 것이지, 위즈의 사적인 일을 돌보려 따라다니는 게 아니다.

“그럼 시험은 통과했어?”

『일단은…….』

“그게 뭐야. 아무튼 곰곰 녀석이 함정까지 부숴가며 알려준 대로라면, 이 통로는 어지간한 충격에도 끄떡없겠지. 그렇다면 전투를 회피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어!”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집어넣고, 망치와 정을 꺼내들었다.

마력을 불어 넣은 정의 끝에, 날카로운 마력의 칼날이 어른거렸다.

엔틸리움에서 축제를 벌일 때 제이비어라는 석수에게 배운 ‘공상 선긋기’ 스킬이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미리 절단될 면을 한정시킬 수 있었다.

그것을 통로에 대고 그은 뒤, 마치로 내리치자 깨끗하게 잘린 돌조각이 발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이 골치 아픈 통로를 걸어 다니며, 일일이 구울을 상대하고 함정과 맞닥뜨릴 필요가 없다.

위즈가 망치와 정을 부지런히 놀릴 때마다 통로가 뚫렸다.

핏스톤이 구울과 함정의 위치까지 알려주었으니, 그걸 피해 파들어 가기만 하면 되었다.

“뭐든지 배워두면 쓸데가 있는 법이라더니.”

위즈는 던전공략광(狂) 레비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제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잘하면 앞질러가서 아이린을 기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위즈는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위즈가 벽을 몇 개 뚫었을 때쯤,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폐허의 지하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나도 알고 있어!”

포탈에 마력이 충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말

점점 주간지처럼 되어가는군요. 죄송합니다.

뭐랄까...점점 일상에 치어가는 느낌입니다.

봉급은 덜 받아도 좋으니 1시간만 더 일찍 퇴근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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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49화...5-(ED) +5 15.05.24 978 23 52쪽
151 14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9) +2 15.05.03 1,229 16 44쪽
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149 14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7) +3 15.04.05 895 14 29쪽
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3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5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5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4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1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1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4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4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7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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