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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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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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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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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1.

중독된 척 속여서 가짜 렌틸을 사로잡았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에서 석연치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이들이 탐지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점.

암살자라서 먼저 이곳에 와있는 거라면, 레미라 마법사들에게 탐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레미라 마법사들에게 들켜서 교전까지 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 폐허 근처에 머물러야만 할 이유가 있던 게 아닐까?’

두 번째는, 일행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에 허점이 있었다는 점.

엔틸리움의 신전에서 고스트 소드를 훔쳐낸 직후, 렌틸은 자살을 기도했다. 그의 도둑질이 알려질까 걱정된 위즈는 코앞의 신전을 두고도 치료사 길드에 가야 했다. 그러나 렌틸의 상처가 너무도 위중하여 위즈는 다시 신전으로 돌아갈까 망설였다. 그때 만난 게 beadsman 루시엔이다. 그녀는 너무도 간단하게 렌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깨어난 뒤 렌틸은 자신을 치료해준 성직자의 이름을 알고 싶어 했고, 위즈는 기꺼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그걸 까먹었다면 말이 안 된다.

‘가짜니까 몰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행을 감시했다면 렌틸을 치료한 성직자의 이름 정도는 알려졌을 터. 그런데 가짜 렌틸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 저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정보가 도중에 끊겼다는 것이다.

렌틸이 자살을 시도한 건 바로 어제, 루시엔에게 치료받은 것 역시 어제다.

가짜 렌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염탐꾼들의 정보가 끊긴 것은 어제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자들은 암살자들과 따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들이 마법사라는 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위즈 일행이 중급 암살자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미라 마법사들 덕분이다. 마법사들이 수시로 탐지를 사용해대니, 암살자들은 은신을 포기하고 정공법으로 공격해왔다.

정공법을 선택한 시점에서, 암살자의 전투력은 마을의 경비병 수준으로 전락했다.

만약 암살자가 아닌 다른 직업과 함께 협공을 했다면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폐허에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어째서 이들은 암살자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는가?

애초부터 암살자들과 관련이 없었거나, 관련은 있지만 도중에 떨어져 나온 것이다.

‘아니지. 후자는 확실하지만, 전자는 아냐. 렌틸을 흉내 낸 걸 보면 암살자들이랑 연관은 있어. 그렇군! 폐허에서 기다리는 마법사들은, 원래 암살자들과 함께 움직이던 자들이었어. 그것이 바하르칼 내부의 파벌 싸움이 시작되면서, 암살자들과 완전히 분리된 거지. 그렇다면 더 이상 렌틸과 아이린을 노리지 않아야 정상이 아닌가?’

위즈가 보기엔 굳이 싸울 필요도 없는데, 무리하게 싸움을 걸어온 걸로밖에 안 보인다.

위즈는 그것이 아직 풀지 못한 첫 번째 의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이 폐허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

이것만 알 수 있다면,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자면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위즈는 기절한 가짜 렌틸을 깨웠다. 면상에 대고 무거운 쇳덩이를 후려갈긴 터프함은 버렸다. 심하게 굴면 그대로 죽어버릴까 걱정되었기에 위즈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이봐. 어이.”

위즈는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들겼다. 고개가 홱 돌아갈 정도로 강하진 않아도, 누군가를 깨우기에는 적당한 세기다. 가짜 렌틸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싫다고 완두콩스프는! 쇠고기스프 내놔!”

가짜 렌틸의 눈이 위즈와 마주쳤다. 위즈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편식하는 어린이도 아니고 이게 뭔가 하는 표정.

가짜 렌틸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눈을 감으며 드르렁 코를 골았다.

“어이.”

“드르렁. 푸우.”

“야!”

“음냐. 쩝쩝.”

“장난칠 정도로 여유 있다 이거지?”

위즈는 렌틸을 흉내 낸 가짜의 다리를 힘껏 주물렀다.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에 당하여 피를 철철 흘리는 다리다. 옷자락만 스쳐도 아플 것이다.

그런 다리를 두부를 으깨는 기세로 마구 주물러댔으니 나오는 반응은 하나뿐.

“으! 으아아악!”

가짜 렌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통째로 뜯겨져 나왔다. 위즈는 손에 들려진 회색 털 뭉치를 뒤집었다. 안쪽은 부드러운 직물로 마감되어 있었다. 가발이었다.

위즈는 가짜 렌틸을 바라보았다. 변장할 때 사용한 가짜 얼굴에 가발까지 벗겨져, 더 이상 렌틸과는 닮은 구석이 없게 되었다. 위즈는 상대의 칙칙한 금발을 슬쩍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떨어대는 모습이 불쌍해 보인다.

‘이정도로 해둘까.’

위즈는 상처에서 손을 떼었다.

“막 깨어나서 정신이 없는 모양인데, 넌 나한테 잡혔어. 포로란 말이지.”

“웃기지 마라! 내 동료들이 돌아오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그렇게 잘난 동료들이면 어째서 지금까지 안 나타나는데?”

“곧 나타날 거다!”

“그건 힘들 거야. 동행인 레미라 마법사들에게 쫓겨 다니고 있거든. 듣자하니 탈출용 텔레포트도 준비해 놓았다면서?”

세세한 사정까지 불러주자 가짜 렌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동료들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되기 때문이다. 위즈는 가짜 렌틸의 마음이 흔들리는 때를 노려 협박을 시작했다.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주지.”

위즈는 피가 묻어 있는 손을 들어올렸다.

“조금 전 네 다리를 주물러준 손이 이거야.”

“그게 어째서 좋은 소식이냐!”

“다른 손에는 이걸 끼고 있거든.”

위즈는 모자손을 장착한 반대쪽 손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가짜 렌틸이 입을 다물었다.

모자손의 손가락 끝부분은 뾰족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상처를 후벼 파면 매우 아프게 생겼다. 원래 날붙이도 맨손으로 잡는 게 건틀릿이다. 이걸로 다친 부위를 만지면, 적당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나쁜 소식은, 순순히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이걸로 주물러버리겠다는 거야. 어때? 마음가짐이 확 달라지지?”

“뭐, 뭐가 궁, 궁금한 것이냐.”

드디어 가짜 렌틸이 협조적인 태도로 바뀌자 위즈는 얼굴을 활짝 폈다.

“어째서 폐허에 숨어있었지?”

“당연히 타깃을 암살하기 위해서다.”

“에헤이.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네.”

위즈는 모자손으로 가짜 렌틸의 종아리살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종아리 살이 뭉개지면서, 끈적이는 피가 흘러 내렸다.

“으윽! 알았다!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그만!”

위즈는 모자손에 실린 힘을 뺐다. 정확히는 힘만 뺐다. 손은 여전히 종아리에 닿은 상태다.

가짜 렌틸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폐허에 그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다.”

“그분?”

“단장님이시다.”

“단장? 바하르칼 용병단장?”

“그렇다.”

위즈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단장이라면 바하르칼의 정점이다.

명령권자가 직접 이곳에 온다는 얘기는 친위대도 함께 온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상대한 바하르칼 용병이나, 용병마법사와는 격이 다르다.

잇페인보다 상대하기 어려우면 어렵지 쉬울 리 없다.

‘아이린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하지만 위즈는 곧, 단장의 자리가 공석임을 기억해냈다.

레미라 정벌 실패로 터져 나온 바하르칼 내부의 불만, 그리고 이번에 신성왕국에서 생긴 약초파동과 중급마족의 소환되는 사건으로 외부의 비난도 거세졌다.

이대로 가면 바하르칼 용병단은 내우외환으로 무너질 위기였다.

그래서 바하르칼 용병단장 스컬그레일은 자진해서 물러났다.

“어이 이봐. 내가 알기로 바하르칼 용병단의 단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신임 단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걸로 아는데?”

“무슨 헛소리냐! 한번 단장은 영원한 단장이다!”

“스컬그레일 본인이 이곳에 온다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나?”

스컬그레일이 이곳으로 온다. 이 버려진 폐허로. 믿을 수 없었다.

위즈는 가짜 렌틸의 종아리를 꽉 움켜쥐었다.

“끄윽윽으으!”

“거짓말 하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라!”

“끄악! 진짜다! 이 개쌍년아!”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서 위즈는 종아리를 놓아주었다.

“어째서 단장이 직접 움직이는 거지?”

“그, 그거야 뻔한 일 아닌가! 우리들이 계속 실패하니까 그렇지.”

부하들의 잇따른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상관이 직접 나선다. 아주 없는 일도 아니고 사리에도 맞다. 그동안 위즈 일행이 얼마나 많은 암살 시도를 뿌리쳤던가.

여관에 숨어들어온 여자 암살자를 저지하고, 패밀리어인 참새를 구워먹어 큰 피해를 입혔다. 한밤중에는 기습하려고 얼쩡대는 하급암살자들을, 먼저 선수 쳐 지하수로에서 처리했다.

엔틸리움을 나서면서부터는 대놓고 라이칸스로프와 함께 움직이는 중급암살자들과 싸웠다.

라이칸스로프의 자폭과 익스플로전 튜브라는 폭탄 때문에, 땅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거친 싸움이었다. 이때 위즈는 혼돈의 짐승이라 불리는, 마왕의 힘을 받은 변종 라이칸스로프를 상대로 겨우 물리칠 수 있었다.

암살에 동원된 자들도 확실히 처리했다.

중급암살자들은 바하르칼의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라이칸스로프들은 전부 몰살당했다.

많은 준비를 하고도 실패했으니 윗사람이 나설 만도 하다.

하지만 직속상관 정도나 나오는 것이지, 우두머리가 나오는 경우는 없다.

비유를 하자면, 스켈레톤 무리들을 때려잡았는데 데스나이트가 아니라, 마왕이 직접 나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경우다.

“믿기지 않는군. 어째서 단장이 직접 나서지?”

“그건 나도 모른다. 어쨌건 더 이상 다치기 싫다면 날 풀어주는 게 좋을 거다. 타깃도 놔두고 가는 게 좋을 거다.”

“아, 어떡하지. 단장이면 무지 셀 텐데.”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이럴 줄 알았냐?”

위즈가 피식 웃었다.

“이방인들을 아주 우습게 알고 있네? 스컬그레일이 여길 온다고 했지? 당연히 오겠지. 사이비 교단 척결에 앞장서겠다며? 그동안 싸지른 문제를 해결하려고 면죄부를 얻겠다는 거 아냐? 그럼 일단 바하에 와서 교황들을 만나야겠네. 너희들은 스컬그레일의 일행과 합류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거잖아 맞지?”

위즈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가짜 렌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 그래도 바하르칼의 용병 마법사를 건드린 걸 알게 되시면 가만있지 않으실 거다.”

“가만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응? 지금 여러 나라에서 바하르칼 용병들 째려보고 있다고. 계속해서 문제만 일으키는 문제아라면서 말이야. 또 일이 터지면 그땐 단장이 물러나는 걸로도 수습 못할 걸? 게다가 여긴 신성왕국 바하라고. 여기서 싸웠다간 단장의 인생이 참 고단해지겠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위즈가 하는 말은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다. 가짜 렌틸은 대꾸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너희들은 계속 임무를 수행하려했다. 이유가 뭐지?”

“그것은…….”

막 대답하려던 가짜 렌틸이 눈을 부릅떴다. 위즈는 가짜 렌틸을 붙잡고 진각을 찍으며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로 보랏빛광선이 스쳐지나갔다.

위즈와 가짜 렌틸이 소리쳤다.

“저것은 디스트로이어 레이!”

“디스트로이어 레이?”

이 주문은 대상물을 녹이다시피 하는 위력으로 대상을 관통해버린다. 핏스톤이 이에 당해 고생했으며, 위즈도 레미라에서 한쪽 팔이 날아가는 경험을 했었다.

이 주문은 중급 마법으로 분류되지만, 깨달음이 없으면 쓰지 못한다.

‘달리 말해 깨달음이 있으면 불완전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는 뜻.’

갑자기 주문의 특징을 떠올린 이유는, 디스트로이어 레이를 사용한 사람과는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디스트로이어 레이가 날아온 방향에는 방패를 짊어진 덩치 큰 남자가 있었다.

이로써 암살자들을 백업해준 네크로맨서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빙글뱅글!’

하지만 빙글뱅글은 위즈를 알아보지 못했다. 카무플라주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에 그랬다.

“보아하니 적인 것 같은데 어째서 구해주는 거냐?”

빙글뱅글이 천천히 다가왔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가짜 렌틸을 가리고 섰다.

“호오? 그러고 보니 그 칼. 고스트 블레이드인가?”

빙글뱅글이 학살자의 망령에 관심을 보였다.

학살자의 망령은 기본적으로 망령이 붙어 있는 무기. 고스트 웨폰.

네크로맨서인 빙글뱅글이 단번에 알아보고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즈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신전의 지하엔 수많은 무기들이 있었다. 렌틸은 그 속에서 고스트 소드 한 자루를 훔쳐냈다. 위즈가 들이닥쳤을 때, 렌틸은 고스트 소드를 어디론가 전송해버렸다. 과연 누구 손에 들어갔을까.

위즈는 어쩌면 그게 빙글뱅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스트 소드에 관심을 보이는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게 결코 우연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군. 그렇게 된 거였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어서 그놈 곁에서 비켜라. 그리고 그 칼도 순순히 내놓아야 되겠어.”

“싫다면?”

“둘 다 내손에 죽겠지.”

“지금 신성왕국에서 PK를 하겠다는 거냐?”

“안 될 건 뭐지? 난 그 칼이 필요하다. 정확히 찾는 물건인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당신 중급마법사?”

위즈의 물음에 빙글뱅글이 웃었다.

“큭큭. 디스트로이어 레이를 쓴다고 다 중급 마법사는 아니지. 왜, 아니면 해보게? 좋지! 어서 덤벼봐. 알록달록 초급아처 옷 입고 얼마나 잘 싸우나 보자.”

지금 위즈는 여성아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활은 인벤토리에 들어 있지만, 입은 옷은 분명 초급 아처복장. 누가 봐도 명중률에 한창 목숨 걸 초짜다. 방패까지 가진 빙글뱅글이 두려워할 리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랬어.’

위즈는 예전에 겪었던 빙글뱅글의 성격을 떠올렸다.

대련모드에서 그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사정을 봐주는 여유를 부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위즈가 입은 옷을 보고 비웃을 뿐, 먼저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 전혀 적수로 생각하지 않는 게 태도에서 느껴진다.

‘빙글뱅글은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즐기는 녀석이다. 과시욕이나 정복욕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아직 중급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뭣하면 뒤에 있는 녀석이랑 함께 덤비던가?”

위즈는 고개를 저었다.

‘난 강해졌다. 대련모드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내가 아니다.’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1초 남짓의 짧은 시간이지만, 물질세계와는 전혀 다른 공간 속에 유리되는 감작이 위즈의 몸을 감쌌다. 외부의 그 어떤 공격도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동안은, 위즈의 몸을 건드리지 못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위즈는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 생소한 감각이 전해진다. 무언가 부드러운 충격이 위즈가 숨어 있는 공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1초의 시간이 지나고 위즈의 몸이 그림자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력의 눈을 사용 중인 위즈의 눈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눈에 지금 막 넓게 퍼져나가는 마력의 고리들이 보였다. 파문과 같이 넓게 퍼져나가는 마력은, 빙글뱅글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섀도 런을 사용한 위즈의 모습이 사라지자 탐지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네크로맨서 역시 마법사의 한 갈래. 당연한 반응이다.

“특이한 스킬이군. 하지만 은신과 다를 게 없어.”

딱 잘라 한계를 입에 올리는 빙글뱅글.

위즈의 정확한 위치는 특정 짓지 못했지만, 위즈가 숨은 그림자의 방향 정도는 잡아냈던 것이다. 그 정도면 범위 공격 같은 걸로 대처할 수 있다. 그림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데미지만 들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섀도 런은 전승스킬이었다. 그만큼 유니크했으며, 또한 위력적이었다.

전승 스킬이기에 노멀 스킬에 비해 숨겨진 것이 많았고,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것이다.

“엇?”

빙글뱅글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조금 전 탐지를 사용했을 때는, 위즈가 전방 15미터에 있었다. 그런데 위즈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빙글뱅글의 바로 옆. 쓰러가는 돌기둥이었다.

이제 한두 시간 뒤면,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이미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저희들끼리 얽혀 있다. 섀도 런이란 스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배리어!”

위즈의 접근을 경계한 빙글뱅글이 자신의 몸부터 보호했다. 위즈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력을 보는 눈으로 살핀 결과, 빙글뱅글이 친 배리어는 발밑이 비어있었다. 위즈는 진각을 밟아 살짝 옆으로 몸을 틀었다. 위즈의 그림자와 빙글뱅글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순간, 빙글뱅글이 한쪽 발을 쥐고 펄쩍 뛰었다.

위즈가 남긴 단검의 날 부분이 발바닥을 뚫고 튀어나와 있다. 그것이 바닥을 구르는 유리병을 때렸다. 화염병이다.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그곳을 밟자마자, 내용물이 튀며 불길이 솟았다.

“이놈!”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빙글뱅글은 허둥거리지 않았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꺼내진 매직스틱이 휘둘러졌다.

화염병의 불길은 삽시간에 수그러들었다. 매직스틱으로부터 허연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빙글뱅글은 아직 주문을 외우지도, 수인을 맺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주변의 수분이 응결되며 얼음창의 형상을 이루었다.

‘빙글뱅글의 특기는 빙한계열 주문이로군.’

자주 사용해 숙련도가 높은 스킬은 발동속도와 위력면에서 여러 가지 이득을 가져다준다.

마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준비과정 없이 주문이 발동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놔둘 수는 없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최소한 막아내야 한다.

위즈는 피하는 건 무의미 하다고 여겼다. 빙한계열 주문은 주변 환경을 차갑게 만들어, 움직임이 둔해지게 만든다. 아예 폐허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이건 피할 수 없다. 위즈는 냉기저항력도 없다.

그렇다고 빙글뱅글의 주문을 막아낼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캐스팅 없이 저절로 생길 정도의 주문을 배리어만으로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위력을 깎던가, 주문이 완성되기 전에 캔슬시켜 버려야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판단은 내려졌다. 이제 실행만이 남았다.

위즈는 섀도 런을 밟아 얼음창 앞에 섰다.

빙글뱅글의 시선이 위즈를 향했다. 의아했던 것이다. 적이 날리는 주문 앞에 들이닥치는 짓거리는 자살행위로밖에 안 보였으니까.

위즈는 진각을 밟으며 프로즌 스피어의 날카로운 끝에 촌경을 때려 넣었다.

진각과 촌경을 함께 사용하자, 시너지 스킬인 무신장이 발동되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프로즌 스피어가 박살이 나며 파편이 뒤로 뿌려졌다. 그것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빙글뱅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물리 공격으로 주문을 없앴다고?!”

하지만 실은 프로즌 스피어를 없앤 게 아니라, 주문의 방향만을 바꾼 것에 불과했다.

프로즌 스피어는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를 내뿜는 얼음 창.

마법으로 구현된 것이면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즈는 단순하게 얼음 창을 무신장으로 때려서, 날아가는 방향을 바꿔놓을 생각을 했다. 그러자면 빙글뱅글이 주문을 날리기 전에 선수 치는 게 성공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섀도 런으로 거리를 좁힌 뒤, 곧장 무신장으로 프로즌 스피어를 후려갈긴 것이다.

그리고 대상을 부수기보다는 뒤로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무신장은, 프로즌 스피어를 빙글뱅글에게 날려버렸다. 위즈의 계산대로라면 프로즌 스피어는 빙글뱅글의 배리어를 부수진 못해도, 크게 변형 시킬 정도의 위력을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무신장의 힘을 버텨내기에 프로즌 스피어는 단단하지 못했다. 그 결과 프로즌 스피어는 작게 부서져 빙글뱅글을 덮쳤다. 당연히 배리어는 멀쩡했다.

불시에 가한 공격임에도 빙글뱅글이 입은 피해는 전무했다.

‘마법사는 이래서 골치 아프단 말이지.’

위즈는 입맛을 다시며 수인을 맺었다. 손아귀 가득 환한 빛이 쥐어졌다. 위즈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빙글뱅글의 얼굴에 대고 터뜨렸다.

“윽!”

갑자기 라이팅 주문을 코앞에 대고 쓸 줄은 몰랐기에 빙글뱅글은 크게 당황했다. 눈을 감은 위즈와 달리, 빙글뱅글은 눈을 뜨고 있었기에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위즈는 이틈을 노려 빙글뱅글의 배리어를 뚫을 생각을 했다.

그러자면 평타부터 평소의 위력을 웃도는 수준이어야 한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꽉 움켜쥐었다.

‘이거라면 가능해.’

학살자의 망령에 들어 있는 영혼은 무기에 깃들어 있을 뿐, 싸울 수 있는 육체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무기를 쥔 자의 육체를 잠식해 싸우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무기에 깃든 영혼은 생전에 쓰던 기술을 구사한다.

그 위력은 땅을 무너뜨리고, 적을 단번에 침묵시킬 정도다.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100의 스태미나가 소모되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50의 마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그건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미 아쿠에리언 아이들을 구할 때, 방해하는 용병마법사 여럿을 상대로 증명되었다.

‘짧은 시간, 최대한 일점집중해서 공격을 퍼부어 배리어를 소모시킨다!’

그러면 빙글뱅글을 제압할 수 있다.

위즈는 먼저 정령강화-바람을 신발에 걸어 이동할 때 스태미나 소모치를 0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배리어의 한 점에 대고 학살자의 망령을 후려쳤다. 마력을 보는 눈으로 보았을 때, 이 지점이 배리어의 두께가 얇아보였다. 그건 빙글뱅글의 오른쪽. 매직스틱을 쥐고 있는 쪽이다.

‘배리어를 유지하면서 주문을 준비 중이라 그렇군.’

단숨에 빙글뱅글의 상황을 알아낸 위즈의 공격이 거세어졌다. 평타로 인해 흔들린 배리어가 찌부러지며 물결쳤다.

‘다음은 스킬이다.’

학살자의 망령에게 지배당했을 때처럼, 지면에 검을 내리꽂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적의를 삼키는 탐욕의 대지가 발동되었습니다.>

<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지면에 쩍쩍 금이 가더니 땅이 깨져버렸다. 솟아나온 곳이 있는가 하면, 푹 꺼져 들어간 부분도 있었다. 학살자의 망령에 지배당한 상태에서 쓴 것에 비하면, 흉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수준이다. 아쿠에리언 아이들을 구할 당시엔, 산 하나가 통째로 부서져 바다에 가라앉았었다.

하지만 위즈가 사용한 버전은 이것대로 좋았다.

빙글뱅글이 비틀대며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라이팅을 터뜨려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땅까지 요동치니 균형을 못 잡은 것이다.

그 바람에 매직 스틱주변에 응집된 마력이 흩어져버렸다. 무슨 주문인지 몰라도 주문이 캔슬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배리어 뿐이다.

위즈는 주저앉은 빙글뱅글을 노리고 학살자의 망령을 높이 치켜들었다.

위즈는 지금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당연히 키가 작다.

그리고 빙글뱅글은 전사들처럼 다부진 체격이다. 당연히 위즈보다 키가 크다.

하지만 빙글뱅글이 무릎을 꿇어준 덕분에 서로의 키 차이가 줄어들었다.

거도(巨刀) 형태를 띈 학살자의 망령으로 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

내리찍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단단한 바위도 쪼갤 기세로 학살자의 망령이 빙글뱅글을 내리찍었다.

비록 물리공격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단타였다. 빙글뱅글을 감싼 배리어가 단숨에 찢겨나가며, 빙글뱅글의 정수리가 드러났다.

그 순간 빙글뱅글이 다급히 시동어를 외쳤다.

캐스팅을 하는 기척도 없었으며, 수인조차 맺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력의 움직임도 없었다.

과정도 생략되었고,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어떤 주문도 튀어나오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주문은 발현되었고, 그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위즈의 공격을 막아냈다.

학살자의 망령은 지금 단단한 암석에 가로막혀 있다.

그것이 들썩이며 위즈를 멀리 뿌리쳤다. 위즈의 몸이 부서진 벽과 충돌했다. 마침 벽에는 그늘진 부분이 있었다.

위즈는 충격을 염려해 벽에 닿는 순간 섀도 런을 사용했다.

“대체 뭐였지?”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온 위즈는 빙글뱅글의 앞에 버티고 있는 암석무더기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돌무더기를 보고 떠오른 건 하나다.

“골렘?”

빙글뱅글이 다시 배리어를 치며 몸을 일으켰다.

시력이 회복되었는지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꼭 소환이 아니라도 골렘을 사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작가의말

일이 늦게 끝나서 부랴부랴 써서 올립니다.

내일 것을 올리면서, 부족한 부분은 더 보충하겠습니다.


오탈자 및 내용 추가.

[7,222 -> 11,483]



2014.11.08 수정

[11,483 => 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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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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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5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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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9 2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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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4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8 2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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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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