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385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7.15 23:47
조회
693
추천
35
글자
19쪽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0.

암살자를 교란한 위즈와, 미끼를 자처한 레미라 마법사 일행이 합쳐졌다.

이젠 앞서간 A그룹과 합류하는 일만 남았다. 렌틸과 아이린으로 이루어진 A그룹은 모든 전투를 회피하고 생존을 위해 숨어 있다.

원래 계획은 이렇지 않았다. B그룹과 C그룹이 시간을 끌 동안 곧장 바닷가 마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레미라에서 오는 마스터의 보호를 받기위해서다. 하지만 만약 마스터가 오는 것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면,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 한 도망칠 곳이 없게 된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렌틸과 아이린, 그리고 곰곰만으로는 위험에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A그룹의 목적지를 변경한 것.

이들이 향한 곳은 숲속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폐허다.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은 폐허는, 당연히 유저들의 미니맵에는 그냥 숲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만큼 비밀스러운 장소라는 뜻이다. 어떤 중요한 퀘스트가 행해지는 장소일수도 있고, 아무런 기능도 없는 단순한 배경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추측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유저들은 물론 NPC들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장소라는 점이 중요하다.

위즈가 탈출계획을 세울 때, 이곳을 알려준 건 렌틸이었다. 그는 치료사 시절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때 수없이 많은 유적과 폐허를 발견했었다. 하지만 그는 치료사이지 모험가가 아니었기에, 자신의 발견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폐허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렌틸은 이 장소가 안전함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폐허나 유적에 묻힌 유물이나 기관장치 때문이다. 이런 건 모함가나 마법공학자가 봐야 하는데, 지금 아이린은 약에 취해 잠든 상태라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위즈는 렌틸과 아이린에게 이 폐허에 숨어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렌틸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는데다가, 훼손이 너무 심해서 모험가들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고.

폐허 속의 건물들은 반쯤 흙에 파묻힌 게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멀쩡한 건물의 내부는 어김없이 나무뿌리 같은 걸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이로군.”

폐허 속을 거닐며 위즈가 중얼거렸다.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섀도 런을 사용해 먼저 도착한 참이다.

부서진 석조 건물 안에는 값나가는 물건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털린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도착한 걸 알아차렸을 텐데, 렌틸은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위즈와 레미라 마법사 일행들이야, 살아남은 암살자들이 모두 바하르칼에 등을 돌렸음을 안다. 그래서 탐지하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하지만 렌틸은 이 사실을 모른다. 당연히 암살자를 경계해 수시로 탐지를 사용해야만 했다.

탐지를 사용하면 피아식별정도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마력을 보는 눈까지 사용한 위즈의 눈에는, 마력의 파문 비슷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위즈는 얼굴을 굳혔다. 렌틸과 아이린은 이 폐허에 이미 도착해있어야 했다. 시간상 도착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모습을 비추지 않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때 무너진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마른 나무를 잔뜩 안고 있는 마법사였다. 위즈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렌틸!”

늙은 마법사가 땔감을 내팽개치며 달려왔다.

“이제 왔는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기에, 저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그 곰 덕분에 편히 왔다네. 정말 대단하더군.”

렌틸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이린은요?”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네.”

“완벽한 치료제인 만큼 어쩔 수 없는 거로군요.”

“그렇지. 그보다 어째서 자네 혼자 오는가? 다른 사람들은?”

“걱정되어서 일단 먼저 온 거예요. 다들 여기로 오는 중이에요. 아참. 도중에 성직자 한분을 모셨어요. 이방인이지만 실력은 확실해요. 아이린이 깨어나면 돌봐달라고 부탁해놨어요.”

“성직자를?”

“네. 렌틸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글쎄 누굴까?”

“렌틸님을 치료해준 beadsman이요. 우연히 싸움에 휘말려서 함께 오고 있어요.”

“아……그분!”

렌틸이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며 위즈는 모자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튀어나갔다. 렌틸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 가짜야.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그따위 발연기로 누굴 속이려 해!”

“이보게! 난 정말 렌틸이 맞네!”

“그럼 댁을 구한 성직자의 이름은?”

“그, 그게……나이가 나이다 보니 까먹었네.”

“알려달라고 졸라서 외운 이름을 까먹으셨다? 뭐 나이 때문이라 하니 그렇다고 치지요.”

“믿어주게. 난 분명 아이린의 할애비일세!”

“그뿐만이 아니지요, 어째서 절 보고도 탐지를 쓰지 않았지요?”

“같은 편이 분명한 걸 아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저는 댁이 암살자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암살자라면 마법을 쓰지 못하겠죠? 일단 탐지를 써보시지? 안 그러면 네놈의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위즈의 일갈을 들은 렌틸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력을 넓게 퍼뜨렸다. 원형의 고리형태를 이룬 마력이 파문을 일으키며 넓게 퍼져나갔다. 마법을 모르는 사람도 눈치 챌 정도로 출력을 한껏 높인 탐지였다.

“이제 되었나?”

렌틸이 묻자 위즈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암살자가 렌틸님의 흉내를 내는 줄로만 알고……”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플레임시드!”

이번엔 모자손에서 작은 불똥이 튀어나갔다. 렌틸은 배리어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자네 계속 왜 이러는 건가? 자네야 말로 암살자가 아닌가?”

“이 멍청아! 마력패턴이 다르잖아! 패턴이! 누굴 속이려고 그래?”

렌틸의 마력은 갈색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렌틸이라고 주장하는 자의 마력은 초록색이었다.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위즈는 섀도 런으로 몸을 들이밀며, 단검을 그림자 속으로 쑤셨다. 가짜 렌틸의 다리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너무 얕게 들어갔다. 가짜 렌틸이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력의 패턴을 읽었다고? 그럼 네 녀석도 마법사란 소리냐?”

얼굴은 노인이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중년의 것이었다. 위즈가 더 이상 속지 않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마법을 쓰는 게 마법사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일일이 가짜에게 대꾸해주면서도 위즈는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마력을 보는 눈은 이미 켜진 상태였기에, 가짜가 마력을 모으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위즈는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 집중력을 흩으려놓았다.

당연히 캐스팅은 번번이 캔슬 되었다. 그저 배리어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자 렌틸의 얼굴을 한 가짜가 씨근덕거렸다. 뜻대로 되지 않음에 짜증이 난 모양이다.

위즈는 쉼 없이 입을 놀렸다. 말로도 신경을 긁어놓을 의도였다.

“멍청한 놈이 뭐가 잘났다고 혼자 덤비긴 덤벼. 다른 놈들이랑 함께 밀고 들어올 것이지.”

“말 한번 잘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내 동료들이 올 것이다!”

“지랄.”

위즈는 인벤토리에 손을 밀어 넣은 채 마력을 밀어 넣었다.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온 학살자의 망령은 이미 검붉은 기류에 휘감겨 있었다. 그 기류를 압도하는 빛이 가드근처에서 번쩍였다.

가드에 박힌 구슬이었다. 이미 붉게 물든 구슬은 막 눈을 뜬 눈동자 같았다. 그것이 가짜 렌틸에게 향해졌다.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이 영혼은 강렬한 전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싸움에 목마른 영혼이 당신의 몸을 잠식합니다.>

<이 영혼은 당신의 몸을 빌려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영혼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50의 마력이 소모되고,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100의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근성과 집중력 스탯의 영향으로, 영혼을 다시 잠재울 수 있습니다.>


『피…피 냄새가 나를 부……른다.』

비록 얕은 상처이지만, 이미 바지에 피가 묻은 이상 학살자의 망령에게 타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학살자의 망령에게 휘둘려 가짜 렌틸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게 말을 걸었다.

“저 자식, 어린애나 죽이려고 하는 나쁜 놈이야.”

『죽여? 어…린애를?』

“그래. 어린애. 예전에 아쿠에리언 꼬맹이들 기억나?”

학살자의 망령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위즈가 떨어서가 아니라, 이 거도(巨刀)가 스스로 떤 것이다.

『나쁜……놈, 이…놈도……?』

“그래. 근데 죽이면 안 돼.”

『어…째서?』

“다른 놈들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 죽이는 건 쉽지만 지키는 건 어렵잖아?”

『지킨…다. 지킨다?』

학살자의 망령이 진동하길 멈췄다. 그리고 전보다 훨씬 또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다. 지키는 건 어렵지……협조하겠다.』

“협조에 감사한다.”

위즈는 내심 쾌재를 울렸다.

예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떠올리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학살자의 망령이 얌전해졌다. 적어도 휘둘리다가 스태미나고 마력이고 쥐어짜져 리타이어 할 일은 없다.

“고작 귀신칼로 내게 맞서려 하다니.”

위즈가 학살자의 망령을 들고 씨름할 동안, 가짜 렌틸은 주문을 완성시켰다. 주변에 어리는 차가운 기운을 보니 빙한계열 주문이다.

주문의 영향 때문인지 몸이 살짝 둔해지는 게 느껴진다.

위즈에겐 화염저항은 있지만 냉기 저항은 없다. 하지만 위즈는 애초에 이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꼭 움직여서 공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새카만 가시들이 빼곡히 주변을 뒤덮었다.

무수히 많은 가시에 찔린 가짜 렌틸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가 입술을 깨물며 튕겨 올랐다. 주저앉은 땅에는 더 많은 가시가 있었던 것이다.

피를 흘려대는 엉덩이를 주무르며 가짜 렌틸이 위즈를 노려보았다. 그 손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더 이상 수인을 맺을 수 없어 보인다.

손이 멀쩡하더라도 주문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완성단계에서 캔슬된 주문으로부터 역류된 마력을 미처 차단하지 못해, 몸 안의 마력회로가 상했기 때문이다.

상당한 고통을 무시하며 마법을 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이 자식!”

가짜 렌틸이 위즈를 노려보았다. 위즈는 사나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보며 이죽거렸다.

“왜? 동료가 있다며? 불러보시지?”

“흥!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 했다.”

가짜 렌틸이 품속에서 호각을 꺼내 힘껏 불었다. 낮은 새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다. 정말 산새가 우는 소리와 똑 닮았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늘어뜨린 채 가짜렌틸을 바라보았다.

1초 2초……시간이 흘렀다. 가짜렌틸이 조바심을 내며 다시 호각을 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달려오는 이 하나 없다.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가짜 렌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둔해 빠지긴. 네 생각대로다. 네 동료들은 이미 레미라 마법사들이 상대중이시다. 그걸 이제야 눈치 채다니. 그 머리로 어떻게 마법을 배웠는지 모르겠군.”

인격모독 수준의 막말을 들었지만, 가짜 렌틸은 이에 동요되지 않았다. 위즈와 싸운 지 불과 몇 분 동안 당한 수모만 떠올려 봐도, 일부러 도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둥이로 싸우는 녀석치고 제대로 된 놈은 없지.”

가짜 렌틸은 다시 마력을 모았다. 이번엔 배리어의 출력마저 포기했다. 위즈는 배리어를 한번 긁어보고는 뒤로 물러섰다. 작정을 하고 공격하면 뚫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학살자의 망령을 든 이유는, 짧은 시간 폭발적인 연환공격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면, 가짜 렌틸은 진짜 죽는다. 그건 위즈가 바라는 일이 아니다. 위즈는 가짜 렌틸을 사로잡아, 이것저것 정보를 캐내고 싶었다.

가령 예를 들면, 가짜 렌틸이 암살자인지 마법사인지.

그리고 암살자말고도 아직 남은 추적자가 또 있는 것인지를.

마력의 역류현상으로 몸이 상했으면서도, 가짜 렌틸은 주문을 외웠다. 방해할 수도 있었지만 위즈는 그냥 내버려뒀다. 내상이 쌓이면 그것 역시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간다.

위즈의 의도를 눈치 챘는지 가짜 렌틸이 비열하게 웃었다.

“네놈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무슨…….”

위즈의 눈에 짙은 초록색의 마력이 보였다. 가짜 렌틸의 가슴어림에서부터 흐르는 시커먼 마력과 뒤섞여 이런 색깔이 된 것이다.

‘분명히 성질이 다른 마력인데 한사람의 몸에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뒤섞이기까지?’

위즈는 문득 액체폭탄을 떠올렸다. 보통은 두 개의 액체가 뒤섞이며 터지는 방식이었다.

현실세계에서야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이었고, 조금 전 혼돈의 짐승을 물리칠 때 사용했던, 익스플로전 튜브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설마? 자폭?’

위즈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건물의 잔해 속에 뛰어들자마자 위즈의 몸 곳곳이 따끔따끔해지면서,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1시간동안 독성을 억누릅니다. 서둘러 해독제를 드십시오.>


위즈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위즈는 몸을 부들거리며 학살자의 망령을 놓쳤다.

가짜 렌틸이 피를 철철 흘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바보 같은 녀석. 설마하니 내가 자폭할 줄 알았나보지?”

“날 속였구나!”

“마력패턴을 감지한다고 잘난 체 하는 놈들이 하는 생각이란 뻔하지. 서로 달라 보이는 마력이 뒤섞이면 무조건 자폭하는 줄 알고 지레 겁먹으니까.”

“끄으으…….해, 해독제 내놔!”

“해독제고 뭐고 없는 독이니까 그대로 고통스럽게 죽어라.”

말을 마친 가짜 렌틸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위즈의 입술이 달싹였다.

소리 없이 입술모양으로만 시전 된 스킬은 ‘섀도 런’.

위즈의 몸이 엎어진 채 그림자 속으로 푹 꺼졌다. 재빨리 손을 뻗어 학살자의 망령을 손에 쥔 것은 물론이다.

아직 가짜 렌틸은 무너진 건물이 드리우는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초 뒤 위즈의 몸이 가짜 렌틸의 뒤에서 소리 없이 솟아났다. 가짜 렌틸은 배리어조차 치지 않은 채 비척대며 걸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위즈 앞에서는 당당한 척 했지만 출혈양이 제법 컸기 때문이다. 위즈는 그런 가짜 렌틸의 머리를 노리고 학살자의 망령을 들어올렸다.

물론 날이 아닌, 넓적한 옆면이 드러나도록 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가짜 렌틸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풀스윙으로 휘두른 학살자의 망령이, 가짜 렌틸의 면상에 틀어박혔다. 콧대가 주저앉으며 코피가 흘렀다. 가짜 렌틸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널브러졌다.


<적을 한방에 기절시켰습니다.>


“원래 이럴 계획으로 꺼낸 건 아니지만, 뭐 결국 생포했으니 됐나…….”

위즈는 가짜 렌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물렁물렁한 고무 같은 면상이 뜯겨져 나왔다. 그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평범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수염까지 깨끗하게 민 중년 남자의 귀에는 숫자 09라는 문신이 있었다.

“이자가 9번째라면, 적어도 이 앞에 8명은 있다는 뜻이로군.”

폐허까지 따라온 암살자가 가짜 렌틸 하나 뿐이 아닐 것이다.

실제 레미라 마법사들과 빌헬름텔은, 제각각 암살자인지 마법사인지 헷갈리는 자들을 상대중이다. 때마침 빌헬름텔에게서 연락이 왔다.


- 위즈님, 폐허 근처에 있던 자들은 무력화 시켰습니다.

- 도망친 놈들이 있나요?

- 이놈들 엄밀히 따지면 마법사입니다. 여기저기 인스턴트 텔레포트를 숨겨놓고는, 불리해지니 도망쳐버렸습니다.

- 저는 하나 잡았어요. 면상을 후려갈겨서 끝장 내버렸죠.

- 대단합니다. 혼자서 상대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 저도 손해 봤어요. 판단을 잘못해서 중독됐거든요.

-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 괜찮아요. 한 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이 근처에 곰곰이 숨어 있는가도 찾아봐주세요. 분명 미니맵에는 곰곰이 있다고 나오는데, 이 녀석이 도통 나타나지를 않네요.

- 전에 말씀하신 의태…라는 겁니까?

- 그렇죠. 그리고 의태중이라는 건, 위협을 감지했다는 뜻이니까요.

- 일단 암살자들부터 정리하고 찾아보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위즈는 바닥에 널브러진 가짜 렌틸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너무 허술하게 덤빈다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다.

암살자들이야 마법사와 극상성이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마법사이면서 이렇게 어설픈 연기까지 해가며 덤벼야 했을까.

가짜 렌틸도 일행들이 상대하는 마법사들도. 모두 행동에 통일성이 없었다. 그저 낯선 이들이 들이치자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온 것처럼.

“마치……당황한 사람들처럼…….”

무심코 내뱉은 말이 이상하게도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 위즈는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당황한 사람들처럼?”

위즈 일행은 원래 이곳에 올 계획이 없었다. 모든 건 갑작스레 정해진 것.

아무리 암살자들이 3년이나 아이린을 노려왔고, 투입된 숫자가 많다고 해도……이렇게 외진 곳에 위치한 폐허까지 지키고 있었을까? 더군다나 일행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이목을 흐리고, 곰곰의 의태까지 사용해 흔적을 지웠는데?

비로소 위즈는 이들이 다른 임무를 위해 이곳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이린의 암살과는 전혀 관계없는 외부인.

‘하지만 이자는 렌틸의 얼굴로 변장하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다. 뭔가 숨겨진 노림수가 있는 것 같지만, 당장은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위즈는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자는 무모하리만치 위즈와 접근했다. 이럴 경우엔 가짜인 게 들통 날 수도 있으니, 말을 적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목을 끌고 있다는 기분이다. 여기에 사냥감이 있어요~라고 멈춰 서서 짖어대는 사냥개.

그렇다면 마지막에 숨통을 끓는 사냥꾼 역할이 필요하다.

“이들을 움직이는 자가 가까이에 있겠군.”


작가의말

일이 늦게 끝나서 부랴부랴 써서 올립니다.

내일 것을 올리면서, 부족한 부분은 더 보충하겠습니다.


오탈자 수정 및 추가완료

[7,769자  ->  8,463자 ]



2014.11.08 수정

[8,463 => 8,467]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또 다른 셸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수정한 것. +2 14.11.08 448 0 -
공지 게임 내 각종 정보 [미 구현] 13.10.02 2,314 0 -
152 149화...5-(ED) +5 15.05.24 978 23 52쪽
151 14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9) +2 15.05.03 1,230 16 44쪽
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149 14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7) +3 15.04.05 895 14 29쪽
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3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6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5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4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5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1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1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50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4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8 22 25쪽
»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4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4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8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4 34 3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