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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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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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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수 :
57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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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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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9화 네 개의 기사단 (4)

DUMMY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문을 살며시 닫은 길버트가 제이드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단장님,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제일 많이 간 곳으로 가자.”


회의 전부터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던 신입들을 찾으러 길을 나섰는데.

길버트는 예상했던 것보다 원만하게 흘러간 회의를 의아하게 여겼다.


‘왜 따지지 않으셨지?’


제이드라면 절차도 무시하고 떠나간 신입들의 질타하며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그답지 않게 아무런 말도 없이 건너뛰었다.


“길버트, 저것들이 나 따돌리는 것 같은데. 맞지?”

“그게... 그런 것 같습니다.”


망설이다가 내뱉은 솔직한 대답에 제이드가 헛웃음을 짓는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알아서 서열정리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나아지긴커녕 심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이곳 사람들을 너무 높게 평가했나. 유치하게 뭐하는 짓인지.’


동부 기사 대회 우승 정도는 우스운 걸까, 혹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일까.

단장들의 반응만 봐도 제이드는 자신의 평가가 상당히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근데. 말씀도 없이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목적지로 향한 주저없는 발걸음.

길버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고, 제이드는 가볍게 답했다.


“딱 보면 견적이 나오잖아.”


제이드의 눈에 아침에 들었던 신입들의 일도 단장들의 노림수로 보였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똑같이 하면 그만이야.’


저들이 무엇을 하든 당한 대로 갚아줄 다짐을 했다.

그 일환으로 먼저 각 소속의 단장들 몰래 접촉해 볼 생각이었다.


‘뭐라고 꼬드겼는지 한번 들어볼까?’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도착한 감찰대의 건물 앞에서.

오늘 경비를 맡은 듯한 기사가 제이드의 소속을 확인한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아무리 두문불출한다지만 파견대의 기사단장을 모르는 걸까.

길버트의 눈썹이 꿈틀거리다가 단장님들의 회의 시간임을 고려하여 한번 참으며, 제이드가 나서기 전에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파견대 길버트 부관이다. 이쪽은 제이드 단장님이시고.”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이드 단장님.”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기사가 뒤늦게 경례를 했고, 제이드도 주요인물들을 제외하면 잘 몰랐기에 너그럽게 넘어갔다.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경례를 마친 기사가 용건을 묻는다.

몰래 오긴 했다지만 어차피 보고될 사항이기에 길버트는 가볍게 신참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소속변경 절차 중인 기사들이 이곳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왔다.”

“그들이라면 휴게실에서 대기 중일 것 같습니다.”


건물을 지키는 있는 자 답게 휴게실의 위치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감사인사와 함께 정문을 통과하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휴게실로 향한다.


‘새로 보수작업이라도 했나.’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호위대 건물과 다르게 허름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깔린 카펫, 복도에 걸린 그림과 조명이 마치 새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앞선 안내를 따라 도달한 휴게실.

길버트가 힘있게 입구를 열어젖히자, 안에 있던 이들의 이목이 쏠린다.

이내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굳은 얼굴로 제이드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저기 잘 모여있네.”

“그렇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잡담하는 기사들 중 단연코 눈에 띄는 다섯 명의 신입들, 전원이 고스란히 앉아있었다.

대부분 놀라면서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기사도 존재했다.


“이야, 훈련 빼먹고 여기 숨어있었어?”


제이드가 방안에 모든 이들이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치자.

외면하고 있던 이들조차 관심을 가지면서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처음 보는 애들이라 뭔가 했는데 그런 거였어?”

“학생도 아니고 땡땡이라니, 으하하.”

“귀엽다, 귀여워.”


한순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한 신입들의 얼굴이 벌게진다.

훈련에서 빠진 것은 사실이었기에 어떻게 말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이거 민폐야. 일단 돌아가자.”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제이드의 태도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진다.


“떼끼, 이놈들 어서 돌아가.”

“지금이야 힘들겠지. 그래도 기사님 말씀 잘 들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다.”


주변 아저씨들이 한 두 마디 거들며 듣는 이로 하여금 피가 솟구칠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기사들은 간만에 찾아온 놀림거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쟤 주둥이 튀어나온 것 봐라!”

“얼굴 터지겠다.”


이런 조롱에도 신참들의 대표로 보이는 인물은 냉소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제이드의 얼굴을 알아본 몇몇 기사들도 어색하게 웃으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 사람이 여길 왜...?’

‘쟤네가 파견대 신입들이었나.’


사정을 대충 짐작한 기사들이 웃고 있는 동료들을 툭툭 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바다였던 공간이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되었다.


“아, 왜.”

“쉿. 무시해. 아니 눈깔도 있자.”


이따금 수군거림이 들리긴 했지만, 잠잠해진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신입 쪽에서 입을 열었다.


“뭐가 그리 급하셔서 이리 뛰어오셨습니까. 제이드 단장님.”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뺀질뺀질해 보이는 기사, 밀리언이 한껏 오만하게 턱을 치켜세웠다.

제이드는 일단 들어주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무표정하게 밀리언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아쉬우시겠지만, 늦었습니다. 저흰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고, 동의한다는 듯이 뒤에 서 있던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길버트는 그 당돌한 발언에 식겁하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당장 엎드려서 빌어도 모자를 판에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다니.

길버트는 앞으로의 사태를 상상하며 두 눈을 질끔 감았다.


“그래? 너희 소속 옮기려면 내 동의가 필요한데. 그건 어쩌려고.”


하지만 제이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해 안 가는 부분을 물었다.

진짜 미쳤다고 아무 대책 없이 뛰쳐나오진 않았을 터.

왜 이리 무모하고 무례한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벤자민 단장님께서 이번 회의에서 해결해 주신다고 했는데... 혹시 전달 못 받으셨습니까?”


밀리언이 의아해할지언정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 세 분이서 뭉치셨는데, 문제가 있을 리가 없지.’


수도의 귀족들과 가까운 호위대. 마탑 및 정보국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감찰대. 국민들에게 전적인 지지를 받는 치안대 등, 세 기사단은 각자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파견대는 끈이 떨어진 상태야.’


시작이야 제국의 눈치를 보고 설립되었지만, 지금은 존재 자체도 위태롭다.

제이드 본인의 위상 하나로 유지하면서, 평판은 내리 바닥을 갱신하는 중이다.


“아 맞아, 그랬지.”

“다행히 들으셨군요.”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제이드가 박수를 치며 기억했고 밀리언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짓는다.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이와 비슷한 주제가 나왔었는데, 어떻게 보면 제이드는 수락한 셈이었지만.


“야, 네가 벤자민 단장이야? 아니면 자신이 있어서 그래?”

“네?”


제이드가 웃는 낯으로 다정하게 물었고, 밀리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제이드는 벤자민과 밀리언이 모종의 거래가 오갔다는 것은 쉽게 이해했지만.

밀리언은 누구 앞에서 배짱을 부리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벤자민 단장이 왕이라도 돼?”


갑자기 돌변한 태도에 밀리언은 두 눈을 꿈벅거렸다.

단장들은 다 같이 압박하면 적당히 수긍하고 넘어갈 것이라며 안일하게 생각했고, 이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지금 뭐라고...”

“걔가 내 상관이냐고. 대답해봐.”


아놀드가 직접 명령해도 인상을 구기면서 한번 튕길 텐데, 하물며 최고기사도 아닌 동급의 단장이 말한다면 제이드가 ‘네’하고 잠자코 넘어갈 리 없었다.


“말만큼이나 네 실력이 좋다면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만약 그런 것도 아니라면.”


능력도 없이 객기를 부린 것이라면, 제이드는 밀리언 만큼은 절대로 감찰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줄게.”


한 걸음씩 걷더니 어느새 밀리언의 코앞까지 다가온 제이드.

밀리언은 기세에 밀려나듯 뒷걸음치지만, 제이드의 팔이 그의 멱살을 덥썩 붙잡았다.


“나와, 새꺄.”

“크윽, 저기 손부터...!”


밀리언이 반항도 못한 채 순식간에 휴게실 밖으로 끌려나가고,

긴장감에 숨 쉬는 것도 잊었는지 모든 기사들이 한꺼번에 참았던 숨을 뱉었다.


“오, 씨x. 죽는줄.”

“살 떨리네...”


닭살이 돋은 팔을 쓰다듬으며 놀란 심장을 진정시킨다.


“소문보다 더해.”

“파견대에 얼씬도 말아야겠다.”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제이드가 벤자민 단장을 욕하긴 했지만 밀리언이 맞을 짓을 했다는 분위기였다.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길버트가 재빨리 제이드를 쫓았고, 신입들도 길버트의 뒤를 따라나섰다.


‘단장님,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이미 길버트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제이드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


아침 훈련을 끝마친 후, 깔끔하게 정리된 가까운 연무장.

제이드는 도착하자마자 오른손에 쥔 밀리언을 앞으로 내던졌다.

밀리언은 거하게 한 바퀴를 구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시면 저도 참지 않습니다!”


소리치며 곧바로 일어서지만, 기세좋은 외침과 달리 검 손잡이에 손조차 올리지 못했다.

싸우면 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야만인이라도 되나. 무슨 힘이...’


겉으로 쎈 척하지만 밀리언은 앞으로의 상황이 심히 염려스러웠다.

제이드는 손가락 관절을 풀며 차갑게 말했다.


“검 뽑아.”


밀리언은 아직도 긴가민가하며 제이드의 눈치를 살핀다.

단장이라는 사람이 일개 기사랑 맞짱을 뜨려할 줄이야.


‘진짜, 뽑으라고?’


누가봐도 현격한 실력차이. 보통 이 정도로 간극이 크다면 주변에서 만류한다.

지도대련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봐도 분풀이나 다름없으니까 당연했다.

일종의 가혹행위나 다름없는 마땅히 비판받는 행위였다.


‘x됐다.’


체면 때문에 기껏해야 체력 단련으로 훈육이나 시킬 줄 알았는데, 밀리언은 너무 안일하게 여겼다고 후회했다.

제이드의 위업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생겨난다.


‘중급 마법사 토벌, 최연소 기사단장, 동부 기사대회 우승자. 쾰른의 악마.’


자신과 동갑이면서 출발선 자체가 다른 괴물.

제이드의 무심한 눈길에 저절로 눈을 내리깐다.

밀리언은 덜덜 떨면서 검의 손잡이를 쥐었지만, 도저히 뽑을 수 없었다.


‘괜찮겠지...? 죽이진 않을 거야.’


학살자였다는 쾰른의 과거는 지우고, 희망적으로 최근 그의 행적을 떠올린다.

마법사는 사살되었고, 파비앙과 길버트 경의 검이 부러졌다. 폐인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최소 검이 부러지는 상황이라는 건데.


‘내 검은 안 돼!’


밀리언은 새로 장만한 애검을 세게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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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2화 반발 (1) 22.11.04 105 0 11쪽
92 91화 전출 (2) 22.11.03 103 0 11쪽
91 90화 전출 (1) 22.11.02 115 0 11쪽
» 89화 네 개의 기사단 (4) 22.11.01 10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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