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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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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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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7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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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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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7화 네 개의 기사단 (2)

DUMMY

기사단의 일에 열중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간 것일까.

프리지아로 돌아온 제이드는 부관인 길버트에게 자잘한 업무를 떠넘긴 채, 매일매일 개인실에만 틀어박혀 있다.


“후, 여기에만 매달리면 안 됐는데.”


그리고 이게 좋지 않은 태도라는 것은 제이드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너무 들떠서 놓치고 있었어.’


프리지아로 복귀했을 당시, 제이드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색이 전과 비교했을 때 연해져 있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푸른 연기.

이것을 가지고 실험해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바심을 느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찾을지 몰라.’


연기의 변화는 천운초를 복용해 생긴 효과, 일종의 즉효성 약물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약초의 효능은 웬만하면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며.

소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된 성분을 소모하면 없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더 빨리 왔어야 했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제이드도 어렸을 적부터 그러한 것들을 제공받았을 때에도, 영약들은 전부 공인 연금술사의 손에서 창조된 작품들이었다.

영구적으로 효력이 있는 영약은 야생에서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후, 비슷하게 제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제이드가 연금술사도 아니고 뭘 어찌하겠는가.

사실상 클로에와 컨티넌트 연구진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도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어떻게 그냥 두고 보겠냐고.”


역체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정신을 일깨우던 전능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능력을 빼앗기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 짓거리도 오늘로 끝났다.


“뭐, 이젠 보이지도 않네.”



말끔하게 본연의 색으로 돌아왔다.

기운은 회색으로 탁하게 보였지만, 제이드는 오히려 머리가 깨끗해진 느낌.

그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했던 가디언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제이드는 돌아가면 뭐하지?”

“음. 수련할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에녹의 물음에 제이드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뭔가 다음 일정에 대해 의논할 게 있는 것일까, 하고 말없이 에녹의 말을 기다렸지만.


“...”

“...”


거기에서 대화가 끝난다. 침묵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을 무렵.

피노의 잎사귀를 관찰하던 클로에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무슨 대화가 이리 숨이 막혀요.”


옆에서 잠자코 들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대화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입술을 삐죽거린다.

제이드는 클로에가 왜 인상을 찌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녹은 제이드가 처음이라 친분을 다지려고 하는 거에요.”

“아...”


에녹은 클로에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고, 제이드는 과묵했던 에녹이 어째서 입을 열었는지 이해했다.

생각해보니 그와 개인적으로 소개를 곁들인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녹은 원래 임무 중에는 사적인 대화는 안 해요.”


클로에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냐는 듯 에녹에게 투덜거렸는데.

확실히 그런 점 때문에 제이드가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있었다.


“별일 없으면 부하들하고 수련하고 지냅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괜찮은 애들입니다.”


클로에의 말뜻을 이해한 제이드는 에녹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기사단장인 제이드가 자잘한 파견까지 갈 일은 없을 테니 앞으로 웬만하면 자리를 지키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군.”

“흐, 흠.”

끼익.


클로에도 심심했는지 이들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처음 클로에를 봤을 때, 얘는 뭐지 싶었어요.”

“클로에는 박하 맛 사탕을 가장 좋아하지.”

“마를롱은 양아치인 줄 알았고요.”

“...여유로운 성격이지. 임무를 자주 미뤄서 내가 도우러 나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제이드가 자기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말한다면, 에녹은 객관적인 정보를 말해준다는 점.

개인적인 질문에는 숨기는 경향이 있었다.


“에녹은 평소에 뭘 하십니까.”

“그건 제국 기밀사항이라서...”


아니면 진짜로 못 말해주는 부분이었거나.

제이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옆에 있는 클로에가 입술을 내밀면서 심통이 나 있었다.


“대략적으로만 알려주세요. 동료잖아요.”

“...”


아마 클로에도 똑같은 물었다가 퇴짜를 당했었던 모양.

에녹은 상당히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이야깃거리는 많았지만, 그들은 말주변이 없었기에 소재가 금방 바닥이 나버렸다.


“쿠울, 쿨.”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줄 클로에는 피노의 등에 업혀서 편안하게 수면하는 중.

저벅저벅.

어찌나 조용한지 길가를 걷는 발걸음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거지?”

“...?”


다시 한번 느닷없이 던지는 에녹의 물음.

할 말이 없다지만 처음 했었던 질문을 던지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제이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 에녹이 말을 정정했다.


“이것으로 자네는 고향에서 완전히 벗어났어. 오랜 소원이 아니었나?”

“...제 일생의 소원이었죠.”


모든 일을 정리하고 프리지아로 떠나는 길.

이제 웬만해서 쾰른에 올 일은 없다는 것을, 제이드는 고향을 완전히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앞으로 뭘 할 생각이지?”

“...”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니의 복수는 진작에 끝냈고, 아그네스는 2년 이내에 일어날 터.


‘당분간은 여유롭겠네. 수련에 집중할 수 있겠어.’


이후 제이드는 목적성이 흐려진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그는 지금도 충분히 강했다. 굳이 누구도 건드리질 못할 강한 기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


“제이드, 너는 끝에 도달한 것 같겠지만. 아직 한참 남아있어.”


제이드는 복수에 대한 다짐하고 의지를 불태우며 전력 질주했지만, 사실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과제를 해결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면 과제를 해결한 제이드는 어떤 상태일까.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에녹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실 제이드가 지쳐있을 것이라 여겼다.

반면 에녹의 말을 이해한 제이드는.


‘걱정하는 거야? 나를?’


가족도 아니고 친한 이도 아닌 사람한테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지만.

에녹의 진중한 눈빛에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 제이드는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멈춘다면 그것 때문은 아닐 거야.’


다음 상대가 나타나면 벌떡 일어나 싸우는 투쟁심.

제이드의 성격으로 보아 딱히 무기력증에 시달리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당장에 의욕은 줄어들 수는 있지.’


이미 해체된 팔라딘과 싸울 리는 없으테니 그들과 전투하는 상상은 끝났지만.

그 버릇이 어디로 사라질까. 금세 새로운 상대를 찾을 것이다.

유년시절부터 싸움에 절여진 제이드에겐 그것이 굳어진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죽일 놈들이야 많으니까.’


앞으로의 전투에서 새로운 흉터가 생길 것이고, 미래에서 쾰른에서의 싸움은 그의 몸에 새겨진 흉터 하나에 불과할 터.


‘기사의 삶에 있어서 전투는 필연이지’


하루하루 싸움이 일상이었던 제이드. 조금 쉬어갈 시기는 있을지 몰라도 기사의 투생(鬪生)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


본래 어업활동으로 유명한 플로이드 후작령.

정박해 있는 어선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각종 해산물 장사로 인산인해를 이루어야 할 시장이 휑했다.


“으아아아! 젠장...!”


수도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플로이드 저택으로 돌아온 찰리.

그는 붕대로 감싼 머리를 붙잡으며 행패를 부렸다.

그래 봤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리를 꽥꽥 지르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란 거야!”


영지로 돌아오자마자 후작이 던진 재떨이에 머리가 깨지며 기절했고, 그 이후 계속 방안에 갇힌 상태.

찰리는 당장에라도 문을 걷어차며 나가고 싶었지만.


“도련님 얌전히 계세요. 이러시면 후작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에 대기 중인 경비의 말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야 했다.


‘빌어먹을 어셔 가문 새x들.’


찰리는 속으로 모든 게 어셔 백작가 때문이라 탓했다.

여왕이 실종한 것이나 공작의 병력을 지원받지 못한 것도 전부 어셔 가문의 수작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남부 문제는 해결해 줬다지? 포르테 그 자식!!!’


찰리는 포르테가 비웃고 있는, 왜곡된 모습을 상상하며 이를 갈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우하다니...!’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면서, 그저 포르테의 사람차별에 짜증이 솟았다.

후작은 망나니 아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찰리도 눈치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시 플로이드 가문을 고립시키려는 계략이다!’


현실은 찰리의 견해와는 반대로 버니 플로이드 후작은 빈센트 에카르트 공작과 협상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로.

식량 지원과 함께 인어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해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잘 풀리는 않는 상황이었다.


“날 더 신용하셔야 할 텐데.”


이러한 사실도 모르는 찰리는 오해를 멈추지 않았고,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냈다.

그건 바로 남부 베르티오 백작이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나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겠어?’


빠르게 판단을 마친 찰리가 바깥에 있는 경비를 부른다.


“밖에 아무도 없나!”

“네, 도련님 필요하신 게 있습니까?”


찰리는 글 작성에 필요한 필기구들을 가져오라 명령한다.

귀족답게 정갈한 필기체로 편지를 쓰며, 자신의 충직한 기사를 불렀다.


“애시어, 이걸 에카르트 공작가에 전해.”

“알겠습니다.”


찰리의 어렸을 적부터 호위해온 충성심 높은 기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찰리의 요청을 수락했다.


*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어셔 백작가.

정원에 한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즐거운 티타임을 누리고 있는 와중에 도착한 플로이드 가문의 편지.


“병x인가?”


내용을 읽은 포르테가 찰리의 행각을 짐작하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안나는 황급히 엘린의 귀를 손으로 막으며 포르테를 노려보았다.


“당신...!”

“크흠.”


포르테는 헛기침을 하면서 안나의 눈을 피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옆에 있는 기사단장이 포르테에게 질문하며 빠져나오게 도와주지만, 안나는 눈길을 여전히 따가웠다.

포르테는 그녀를 애써 무시하며 단장의 말에 대답했다.


“부탁이라는 데 들어줘야지. 소용은 없겠지만.”


종이를 탁탁 두드리며 탐탁지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제이드가 남부의 요구에 선뜻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해관계가 맞아서였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판단이 이리 구려서야 어떻게 영주가 되겠다고.”


포르테가 알기에는 안 그래도 제이드가 혼자서 파견 근무를 나선 것에 논란이 되고 있었으니, 정황상 거부할 게 틀림없을 터.


‘쯧, 제이드만 귀찮아지겠어.’


혀를 차며 동생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라며 생각했다.

자신은 찰리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상관없지만, 이 문서로 제이드의 입지는 흔들릴 여지가 있어 보였다.


‘보나 마나 출신부터 걸고넘어지고, 충성심 의심으로 이어지겠지.’


프리지아의 분위기도 모른 채, 긁어 부스럼을 만든 찰리는 아마 후폭풍을 맞을 터.


“아니다.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네?”


그 중얼거림을 듣고 기사단장의 반문 했지만, 포르테는 정체 모를 웃음으로 화답하며 편지를 대충 품에 넣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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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8화 천사 사냥 (2) 22.11.28 96 0 11쪽
108 107화 천사 사냥 (1) 22.11.25 101 0 11쪽
107 106화 천상의 존재 (2) 22.11.24 97 0 11쪽
106 105화 천상의 존재 (1) 22.11.23 100 0 12쪽
105 104화 불새 토벌 (2) 22.11.22 9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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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1화 가출 (1) 22.11.17 10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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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99화 활동 재개 (2) 22.11.15 104 0 11쪽
99 98화 활동 재개 (1) 22.11.14 13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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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5화 낭중지추 (2) 22.11.09 103 0 11쪽
95 94화 낭중지추 (1) 22.11.08 102 0 11쪽
94 93화 반발 (2) 22.11.07 106 0 11쪽
93 92화 반발 (1) 22.11.04 105 0 11쪽
92 91화 전출 (2) 22.11.03 103 0 11쪽
91 90화 전출 (1) 22.11.02 115 0 11쪽
90 89화 네 개의 기사단 (4) 22.11.01 106 0 11쪽
89 88화 네 개의 기사단 (3) 22.10.31 111 0 12쪽
» 87화 네 개의 기사단 (2) 22.10.28 117 0 12쪽
87 86화 네 개의 기사단 (1) 22.10.27 1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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