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피
피에 적셔져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허나 그런 나에게 공포나 후회는 터럭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연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오직 실처럼 내려앉아 내 영혼에 짙게 묶인 연민이라는 감정 뿐.
‘하지만 그건 누구를 향한 것인가.’
거대하고 강대했던 육체를 잃고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 나 자신?
영웅, 거인, 장문인, 검성. 그 외의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 받고 존중 받고 누군가에겐 증오를 받았던 자신?
아니. 이 연민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모든 이들은 연민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만큼은 그럴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저것은.......?’
그렇게 자신을 찾아 헤매던 그의 눈에 눈부신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뜻하다.’
정체를 모르는 그 빛의 덩어리는 분명 이 거대한 흐름의 종착지였지만 그는 불안감보다는 존재 자체에 흘러들어오는 온기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스스스슥
마침내 그곳에 도달한 그의 존재는 거대한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자연스럽게 그 빛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것 같은 감각이 자신을 온통 감싸고 있었기에 거부감 따위는 없었다.
‘아아 미안하다.’
오직 남은 것은 아직까지도 떨치지 못한 연민과 누군가를 향한 사과.
자신이 끝까지 보듬어주지 못한 하얀 아이.
자신이 끝까지 알아주지 못한 검은 아이.
허나 그것이 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 더 슬퍼만 지는 마음을 안고 그는 더더욱 안쪽으로 끌려갔다.
더 더 더 안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빛에 동화되어가던 그 순간
뚝
마치 빛 한 점 없던 방 안에 있는 하나의 촛불마저 끈 마냥 사방이 어두워졌다.
- 작가의말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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