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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쿨드워프의 서재입니다.

스팀펑크 속 엑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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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쿨드워프
작품등록일 :
2021.05.13 02:19
최근연재일 :
2021.07.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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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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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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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글자
12쪽

하즈판 크라이악(2)

DUMMY

다음 날이 되어서도 크라이악 경은 이야기하길 멈추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유모는 유별난 자였다. 나와 동생을 길렀음에도 권력이나 부를 누리기보단,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호화롭고,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을 텐데. 유모는 그런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서 오로지 우리를 보살피는 데 모든 힘을 다했지.”


“오로지 자신의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는 눈. 어떤 굴욕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 약하지만 어떨 땐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힘. 그래서 유모라면 답을 찾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쏴아아아아···.


“하지만 유모조차도 답은 찾지 못했지.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이 내가 찾지 못한 답을 유모가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오만이라면 오만이다. 하지만 제국의 워 메이지에 다다를 정도의 천재가 하는 말은 오만이라고 느껴지기보단 사실을 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유모는 내게 조언을 주었다.”


[ 무언가를 하는데 항상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답니다. 도련님. 자신이 원하는 걸 찾으세요. 그게 곧 답이니까. ]


달그락. 쏴아아아아-


[ 못 찾으시겠다고요? 그러면 여기서 답을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


[ 답을? ]


[ 네. 이곳은 한적하고 평안한 마을이랍니다. 이곳에서 지내시다 보면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


“나는 유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유모와 함께 살기로 했지.”


의자에 등을 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모와 사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


“햇살을 즐기면서 의자에 앉아 낮잠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남는 시간은 오로지 휴식과 생각만이 할 게 없는···. 그런 시간은 처음이었어.”


“그렇게 몇 달을 살다 보니. 어느새 복수는 나중이고, 그저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아버지의 희생으로 어찌 되었든 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엘프들은 동생과 결혼을 해서 그 평화를 더욱 공고히 할 테고.


“나는 그들에게 필요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는 게 나쁘지 않다고 여겼어.”


“이렇게 해서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그다음으론 나조차 소름이 끼칠 정도로 주먹이 뿌드득 쥐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가 멍청했지. 기사들과 하인 중 아직 나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나와 다르게 그들은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대개 분개하고 있었어.”


“뿐만 아니라 동생과 엘프의 결혼은 그런 분노를 더욱 키웠지.”


“그래. 그들은 동생을 축출하고 영지를 떠난 날 다시 영주로 세울 생각이었던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엘프들은 어떻게 할까?”


...


유모의 소리.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소름 끼치는 소리다. 귓가를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가 아닌, 잔혹성으로 가득 찬 날카로운 소리.


크라이악은 본능적으로 유모에게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곳곳에 난 불은 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게 해주었다.


탁. 탁! 탁!


서둘러 계단을 타고 내려와 불길을 뚫고 바깥으로 나간다. 습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들, 불타는 방 안에서 있는 건 자살행위였다.


터벅. 터벅.


문을 열고 나간 크라이악. 그리고 목도한 광경은 다름 아닌 배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유모. 그리고 목이 댕그렁하고 잘리는 장면이었다.


“...”


복면을 쓰거나 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당당히 밤을 활보하는 엘프들. 불타는 마을.


그 순간 크라이악은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군. 변경백 가문을 지배하기 위한 마지막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왔나?”


“잘 알고 계시네요. 죄송해요. 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다들 말을 들어줄 생각을 하질 않아서···.”


그렇게 말하지만, 엘프의 눈은 전혀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날카로운 단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크라이악은 유모의 몸과 얼굴을 보며 말했다.


“유모는 왜 죽인 거지?”


“원래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잠든 줄 알았는데···. 잠든 척 집에 불을 지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함부로 들어갔다가 크라이악님께 전부 죽으면 오히려 독이니까···. 현명하게 행동하기로 했죠.”


불타는 집을 등지고서 동시에 크라이악을 공격해 암살하기로.


이제 성인이 된 청년 따위가 암살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고행을 치른 엘프 여럿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물론 천재이기에 불타는 집 속에서 요행이 가능했을 터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자신을 몇 번이나 증명해낸 사내였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나왔으니 그런 요행도 불가능했다.


“죄송해요. 죽일 생각은 없었답니다. 후후. 아 실수.”

“...”


그 말에 크라이악은 도리어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서 감정 없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게 너희들의 선택인가?”


“예. 죄송하지만···.”


“이해한다.”

!


엘프들이 눈을 크게 뜨면서 크라이악을 바라봤다.


“그게 너희들로선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전쟁이 시작되면 수많은 엘프가 죽임당하고 노예가 되며, 숲을 빼앗길 테니까.”


“그렇기에 인간 몇 명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 너희들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

“...”

“...”


이 기이한 상황에도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크라이악의 모습에 엘프들이 입을 다물었다.


크라이악은 누워 있는 유모의 몸을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나 또한 최선의 선택이었었다. 나는 엘프와의 전쟁을 멈추려는 아버지의 뜻을 존중했다. 하지만 존중을 하더라도 내 감정은 막을 수가 없었어.”


“자칫하면 모든 것을 망쳐버릴 것 같은 기분···. 이대로 가면 모두가 바라지 않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을 찾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결국 유모를 찾아갔지. 유모는 언제나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내게 답을 알려줄 것 같았거든.”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을 찾기 위한 여행. 나는 그것을 찾는 것이 내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다.”


크라이악은 유모의 잘려 나간 머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유모는 하루아침에 부모님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내가 가여웠을 테지. 그래서 이곳에서라도 평안을 만끽하길 바랐을 테다.”


“그러다 너희들의 침입을 알고서, 자신이 살 수 있음에도 나를 위해서 목숨을 희생했다. 유모로썬 날 위해 최선의 선택을 내린 거야.”


“...”“...”“...”


크라이악이 침묵을 유지하자 모두가 침묵을 유지했다. 이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모두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끔 하고 있었다.


크라이악은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제일 나은 선택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크라이악은 눈을 감았다.


“나는 이제 안다. 최선의 선택이 항상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란 걸.”


아주 강하게.


“최선의 선택이 때론 최악의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아.”


그리고서 무덤덤하게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제서야 깨달았기에. 나도, 유모도, 너희도. 이렇게 최악을 맞이하는 거겠지.”


엘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무슨···.”


“지금, 너희 엘프들은.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서 자신의 손바닥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꽈악 쥐어 터트렸다. 몸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활화산 같은 마음이 자신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초능력이었다.


“너희들의 최선이. 도리어 최악을 탄생시켰음을.”


“전부 공격해!!”


그 이후 크라이악은 엘프들의 왕국을 소국으로 축소시키고, 작은 세계수를 불태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왕국이 공격당하는 와중 엘프들은 제국을 향해 많은 항의를 보냈지만 정작, 크라이악 이야기가 나오면 어떠한 불만도 표출하지 못했다.


크라이악은 다름 아닌 자신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재앙이었기에.


“...”


달그락.


나는 접시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혹시 커피가 모자라시나요?”


“되었다. 여기 와서 앉아 보아라.”


나는 그 말에 손님이 없단 걸 살피고서 크라이악 경에게 갔다.


의자에 앉자 크라이악 경이 물어온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어떻더냐.”


흠칫.


“예? 무슨 이야기요?”


“속일 생각 하지 말아라. 평소와는 다르게 설거지 속도도 느리고, 음색도 낮았으니까.”


“...네.”


크라이악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더냐? 내 이야기는?”


“...”


나는 그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크라이악 경은 눈을 감고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내가 왜 여길 계속해서 오는지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


“창문에서 내리쬐는 햇빛. 작지만 평온하고 안락한 공간. 그리고···.”


“조용한 설거지 소리.”


“그 소리를 눈감고 듣다 보면···. 내가 마치 유모의 집에 있는 것 같았다.”


“...”


그런 이유였을 줄이야.


크라이악이 천천히 눈을 감는다. 눈을 감은 크라이악은 나를 향해 말을 꺼냈다.


“그래서 이곳에 자주 오게 되더군···.“


약 1여 분간 눈을 감고 있던 크라이악은 내게 말했다.


“조만간 너도 선택을 해야 할 거다.”


“...?”


“이곳은 이제 더는 평화롭지 않을 거다. 나 때문이든, 광신도 때문이던. 즉 너도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최선의 선택’을.


“...”


“만일 그때가 일어난다면. 나를 찾거라. 이 내가 단 한 번. 너를 도와줄 테니.”


“!”


“내 이야기를 들어준 보답이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 침묵을 지키기 시작한 크라이악 경을 두고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나왔다.


터벅. 터벅.

끼익···.


!


손님이다. 이런. 종이 울렸는데 설마 듣지 못한 건가?


“손님. 죄송합니다. 잠시 일이 있어서···.”


“아니. 아닐세.”


조용하고 현명해 보이는 노인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노인을 흘긋 살펴보았는데 정장이 꽉 낀 체격을 보아 아무래도 은퇴한 기사인 것 같았다.


“나는 다름 아닌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왔다네. 혹시 이곳에 하즈판 크라이악이라는 분이 계시지 않던가?”


“...”


“이런. 실례가 많았군.”


나는 노인이 건네는 휘장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죄송하지만, 모르겠습니다. 경. 제가 영 눈이 밝질 못해서요.”


“아닐세. 제국의 휘장이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 한 가지 말해주자면···. 나는 그분을 모셨던 기사 중 한 분일세.”


“음···.”


“부탁일세. 내 조용히 그분을 뵙고 싶으니. 잠깐만 허락해줄 수 있겠는가?”


애초에 기사면 귀족이다.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귀족은 귀족.


내가 감히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헌데 이렇게 묻는 건 아마 크라이악 경 때문이겠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맞은 타이밍에 크라이악 경의 옛 지인이 왔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였다.


나는 그것과는 별개로 무언가를 찾아 버튼을 똑 하고 눌렀다.


“예. 열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뭘요. 하지만 들어가서.”


“걱정하지 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똑.


좋아. 녹음됐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터벅. 터벅.


노기사와 함께 식당 안 쪽으로 들어간다.


“...”


식당 안 쪽에서 크라이악 경은 미소를 지은채 잠에 빠져 있었다.


아주 편하게.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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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즈판 크라이악(2) +19 21.07.12 2,208 109 12쪽
44 하즈판 크라이악(1) +19 21.07.09 2,385 132 12쪽
43 맥멀린과 공중도시(4) +18 21.07.08 2,278 108 12쪽
42 맥멀린과 공중도시(3) +15 21.06.20 2,610 118 12쪽
41 맥멀린과 공중도시(2) +8 21.06.19 2,573 118 12쪽
40 맥멀린과 공중도시(1) +8 21.06.18 2,728 116 14쪽
39 트로이라와 아카데미(3) +19 21.06.17 2,686 116 14쪽
38 트로이라와 아카데미(2) +8 21.06.16 2,758 1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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