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June! - 2

Go! June!- 2
“형아! 이거 봤어?”
“뭔데?”
고준의 아침은 대부분 고하진과 시간을 보낸다.
어린 아이와의 시간은 금새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걸 알고 있는 고준은 가급적이면 사촌 동생과 많이 놀아주려고 하고 있었다.
고준이 축구를 시작한 이후부터 하진이의 주요 관심사는 축구가 되었다.
사실 고하진이 쓰고 있는 SNS에는 고준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이건 가족들 중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하진이가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두 축구 전문가라는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화이트, 블랙? 뭔 이름이 그러냐.”
“그러게요.”
어떻게 이렇게 정 반대인 성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싸울 수 있지.
그나저나 싸우는 이유가 고준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국가대표라···.’
한국 국가대표로는 몇 번 뛰었던 적이 있었다.
1회차라면 몰라도 2회차 때는 기량으로 고준을 따라올 선수는 없었으니까.
아쉽게도 대회 운은 없어서 A매치 20경기 정도로만 그치고 더 부르진 않았다.
감독들이 다 고준을 쓰기를 어려워해서.
쉽게 말해 계륵 같은 존재였지, 쓰기는 어려운데 성공만하면 대박을 칠 수 있는.
대신 망할 때는 대차게 망하는.
애초에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이나 아시안컵을 노리는 자리인데, 대회가 가까워지면 매번 부상을 당하는 선수 위주로 전술을 짤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피지컬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더 발전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완성된 공격수로서의 모습을 꽤 보여줬으니까.
그래봤자 아직 오래 보여준 것도 아니고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인데 이렇게 믿어준다니.
고준은 화이트라는 사람에게 속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자신이 대표팀에 뽑힐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아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들어가는 거지? 웨스트게이트 감독이 뽑을까?”
“글쎄···?”
고하진은 최근들어 부쩍 말이 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준을 부를 때는 형아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냥 형이라고 불렀더니 고준이 티나지 않게 실망하는 것을 고하진이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형아는 국가대표팀 가고 싶어?”
“음··· 기회만 된다면 가고 싶긴 한데. 아직은 이르지 않을까?”
“그래. 일단은 리즈에 집중하고 리그에서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설마 삼촌 그거 라임이에요?”
“들켰나?”
“...아빠 재미 없어.”
고하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만한 라임.
“왜? 아빠는 재미있는데.”
“둘이 형제인 이유가 있군요.”
아무튼, 고준은 현재로서는 국가대표팀에 큰 뜻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물론 된다면 좋겠지만,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사람이 나를 뽑을리가 없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뒤를 이어 부임한 웨스트게이트 감독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자신을 절대 뽑지 않을 것이다.
그 감독은 주로 확실한 자원들을 위주로 뽑을테니까.
A매치는 3월이니까 아직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검증된’ 이라는 말의 뜻은 최소한 2년 정도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를 말한다.
게다가 이번 유로에서 별 일이 없다면···.
‘대차게 망할텐데 아마도.’
잉글랜드는 멸망할 것이다.
우리지스가 돌아왔다.
“웰컴 백! 지스!”
“흐흐, 이게 누구야. 내 자리를 빼앗고서는 1월의 선수상을 탈 녀석 아니야?”
“아직 확정은 아니죠.”
우리지스스는 발목 부상을 모두 회복하고 돌아왔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원들은 모두 우리지스를 환영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큰 힘이 되어줄테니까.
“지스, 너무 무리하지 마. 이제 백업일텐데 말이야. 킬킬.”
마테즈의 거친 농담이 있었지만, 우리지스는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 정도의 백업 자원이면 아주 대단한 자원 아니야? 언제든지 헤더 골을 넣어줄 수 있는 자원이라고!”
우리지스는 스스로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리즈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고, 스스로 느끼기에 앞으로 뛰어봤자 고작 3년 정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점점 잦은 부상과 떨어지는 체력에 앞으로 리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고준이라는 무지막지한 놈이 나와서 자신의 빈자리를 느낄 새도 없게 만들어줬다.
‘오히려 이제 내가 선발로 나서면 빈자리가 느껴지려나.’
리즈를 사랑하는 스트라이커에게는 적당한 시기에 세대교체해줄 선수가 나타난 것이 정말로 기뻤다.
“오늘도 즐거운 축구!”
아침 인사로 저렇게 말하는 미친 사람은 브로디 도일.
쉽게 생각하면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엄마, 오늘 아침 뭐에요?”
“식빵 구웠으니까 그거랑 먹어.”
“아, 또 식빵이야.”
엄마에게 아침 메뉴에 대해 불평하는 평범한(?) 30대 초반의 남자답게 그의 스마트폰은 아침부터 축구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리즈 유나이티드가 9연승··· 이건 봤고. 리즈 유나이티드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무도 데려오지 않은 이유··· 주전은 없어도 후보는 몇 명 데려오긴 했는데 멍청한 기자 놈. 리즈의 가장 큰 문제점, 고준에 대한 의존도···.”
그의 알고리즘은 사실상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벗어나는 기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노출되는 기사들 중 리즈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를 읽었다.
“현재 리즈의 득점 대부분은 고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고준의 컨디션이 만약 떨어진다면 그리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흐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준은 몇 경기동안 리즈의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선보였고, 그 옆에는 리치나 버넷이 있긴 했지만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고준이었다.
만약 고준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경기에서 결장한다던가 골 결정력이 나빠진다면 그건 리즈 선수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요즘처럼 시원하게 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꼭 한 번 씩 고꾸라지는게 리즈 아니던가.
‘뭔가 불안한데···.’
그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그 불안감은 더 증폭되었다.
“고준의 계약은 고작 2년짜리였다. 아직 리즈에 들어온지 반 년밖에 안 된 선수에게 장기 계약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리즈 프런트의 실수일 것···.’
빠득.
오랜 리즈 팬이었던 도일의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유망주 유출.
그 유망주들이 만약 리즈에 남아있었다면 애초에 리즈가 2부리그에서 허덕이는 시간을 훨씬 줄였을 수 있었다.
잘하면 아예 2부리그로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안 된다···.’
고준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잘하는 기세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봐야 알겠지만, 2년 계약이 끝나도 아직 고준은 19살이다.
20대도 안 된 어마어마하게 어린 선수가 이 폼을 꾸준하게 유지한다면 아마 역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이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리즈에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설마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리거나 명가 재건에 힘쓰는 맨유로 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도일은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먹었던 점심 같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신이 운영하는 리즈 팬 사이트인 ‘공작새들의 모이’에 접속했다.
-다음 경기가 번리 원정인가?
-맞아. 요새 들어서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팀들하고만 하는 기분인데.
-그건 우리가 7위라서 위에 있는 팀이 6개밖에 없어서 그렇지.
-오! 아주 놀라운 사실인데!
-우리 아래에는 에버튼, 토트넘, 그리고 뉴캐슬과 크리스탈 팰리스도 있지.
-아주 기분 좋은 말들이야. 기왕이면 맨유와 첼시까지 아래에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나중에 바랄 일이지. 첼시는 이겼고, 이제 맨유만 잡으면 되는 건가?
-무슨 소리? 앞으로 우리 상대는 다 삼총사가 부숴버릴텐데!
-리치 킹이 자기를 재규어라고 불러달라고 했는데, 아쉽지만 그는 리치 킹이 제일 잘 어울려.
-10연승을 할 수 있을까?
-10연승은 쉬운 일이지. 리즈 선수들이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번리 정도야 쉽게 이길 수 있어.
다행히 커뮤니티에서는 부정적인 글은 없었다.
고준에 대한 걱정보다는 다음 경기에서 10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할지 안 할지에 대한 내용, 그리고 언제나 있는 뻘글이 대부분이었다.
-고준이 팀에 대한 애정이 있을까?
도일은 이들에게 민감한 떡밥을 하나 던졌고.
-없다면 있도록 만들어야지.
-적어도 리즈에서 오래 있고 싶어하는 놈으로 보이던데.
-리즈를 사랑하지 않는 선수는 필요 없어!
-꽤 애정을 드러낸 인터뷰도 몇 번 했으니까. 좋아하는 편인 것 같은데?
-그는 맨유를 벗어나 리즈에서 재능을 꽃피웠지. 리즈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어.
-내 친구 중 하나가 리즈에서 일하는데, 리즈에서 아주 만족하는 것 같아보였어.
-내 생각에 고준을 묶어놓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게 있어.
-뭔데?
-그런게 있어?
-세상에는 돈이 최고라고.
-다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봐. 가장 중요한 건 팬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거야. 요즘 리즈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에게 응원가가 없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있긴 하지 않나?
-그 애매한 음의 우울한 노래? 구단에서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아무도 안 부르는 그 노래?
-그래. 차라리 우리가 노래를 만들자고.
-그 말만 나오고 결과는 안 나왔던 짓을 하자고?
-그래. 다음 번리전에서는 원정이라서 힘들겠지만, 그 다음 경기에서는 제대로 고준의 응원가를 들려주자고.
-설마··· 맨유전에서?
-그래. 맨유전에서. 이걸 다른 SNS로도 퍼트리면 리즈 팬인 작곡가가 어디선가 또 올리겠지.
-그거 좋은 생각인데?
-당장 친구들 SNS에 이걸 찍어 올려! 전세계의 누군가는 만들겠지.
도일은 이렇게 떡밥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무리로 가져온 식빵을 입에 넣었다.
이런 응원가가 의외로 선수들의 마음을 빼앗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이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뻤다.
“브로디! 거기서 먹으면 가루 떨어진다고 먹지 말랬지!”
“아, 진짜 엄마!”
아직 본인 방 청소는 잘하지 못했지만.
리즈의 단장이자 나름 축구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인 멀라이스 밀러는 그의 위치답지 않게 저자세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경기를 통해서 재계약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라. 번리전을 말하는 건가?”
“...예.”
“흠, 번리전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기왕이면 맨유 전에서 잘하는 걸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미국의 거물 투자자이자 리즈의 구단주인 벅 월셔.
워렌 버핏 이후 최고의 투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가 유일하게 거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전혀 회수 따윈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 FC 였다.
그걸 관리하고 있는 단장인 밀러는 자연히 고개를 숙일 수 밖에.
“번리 놈들의 터프 무어는 너무 더러워. 그 라커룸은 사진으로만 봐도 답답해죽겠다고.”
사실 몇 년 전의 엘런드 로드도 마찬가지였지만, 월셔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며 리모델링을 거쳤고, 현재는 4만 5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하고 깔끔한 구장으로 변했다.
“고준은 그 상황 속에서도 잘 할 겁니다. 현장의 말을 빌려보면, 우리지스가 고준의 멘토를 자처하며 멘탈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이 알려준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것 참 다행이군. 근데, 기술적으로는 알려준 게 없나?”
“그, 지스가 말하길. 유스 때 헤더랑 포스트 플레이 알려준 거 말고는 딱히 없다고···.”
그 말에 월셔는 방 안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고, 손에 들린 위스키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내가 산 팀에서 나온 천재를 다른 팀에 넘겨줄 순 없지 않나?”
“당연하죠.”
“그래. 돈은 얼마가 되었든, 고준이 리즈에서 행복하게 선수생활을 오래 했으면 좋겠군. 기왕이면 지금 같은 폼을 유지한채로 말이야.”
밀러는 그 마피아 같은 에이전트를 금새 다시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속이 꽉 막힌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월셔 앞에서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이 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상이나 몸 상태에 대한 것은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총 동원해서 관리할 겁니다. 그리고··· 계약도요.”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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