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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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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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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8.28 21:3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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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09화

DUMMY

나흘 후, 설진은 엘리나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았다. 설진이 있는 곳도, 엘리나가 있는 곳도 황실. 따지고 보면 한 건물 안이니 원할 때 언제라도 찾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똑똑-.


여태껏 그래왔듯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의 노크 끝에, 들어오라는 엘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바쁜 겁니까? 엘리나.”

“누군가 했더니 설진 님이셨군요. 뭐··· 정세도 나름 안정되어 가고 있으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쉴 시간은 벌었지요.”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역시 황녀의 일은 상상을 뛰어넘는군요.”


설진의 말에 엘리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저도 이렇게나 바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아.”


의자에 앉은 등을 뒤로 굽히더니만, 이윽고 기지개를 피듯 두 팔을 위로 쭉 뻗었다. 배를 덮고 있던 옷이 슬며시 올라갔다.

조금이지만 보인 살결에 설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리나는 내심 재밌다는 듯 웃으며 천천히 팔을 내렸다.


“아쉽네요.”

“뭐가 말입니까.”

“짝이 없었으면, 더욱 대담해졌을 텐데.”


후훗.


그리 말하며 엘리나가 미소를 띄웠다.

장난기가 스민 듯 보이는 웃음이었다.


“하으으, 어째서 저는 당신 같은 남자를 이리도 늦게 알게 된 걸까요.”


또다시 팔을 위로 올리며 쭈욱-.

이번엔 조금 더 높이 올라갔다. 살짝 보인 것뿐만이 아니라, 배꼽까지 올라간 상의에 설진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평소의 근엄 있고, 위엄을 품은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


황녀로서의 엘리나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엘리나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 설진의 눈앞에 있는 건 직위라는 짐을 내려놓은 황녀. 그 탓에 평소보다 느긋해지고, 긴장이 풀어헤쳐진 모습을 나오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당신의 모습이란 거구나.’


아니, 어쩌면 이게 진짜 엘리나의 모습일지도.


전쟁도 당장의 위험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직위와 업무를 벗어던지고 싶은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설진은 너무나도 가까워진 관계에 좋아해야 할지, 조금은 멀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자그맣게 손을 저었다.


“호오오.”


그런 모습이 엘리나에겐 또 하나의 유희거리가 된 모양인지.


“설진 님. 혹시 이런 말 알고 계십니까?”

“이런 말이라 하심은?”


그녀는 조금 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다처제.”

“어···.”


설진은 엘리나의 말이 끝난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어서 머리가 굳었다.


일부다처제.

왜 모르겠는가.


지구. 그것도 대한민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나 스페이스 온라인이라는 게임 세계에서는 달랐다.

플레임 왕국도, 헤임 제국도, 연나비도. 모두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허용하고 있었다. 지금 엘리나가 말한 건 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어···.’


헤임 제국의 사람도 아닌 외부인에게, 일국의 황녀가.


“어떤지요?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지금 설진의 눈앞에서, 대놓고 구애 활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고백과도 비슷한 의미.


“아니 그게.”


설진은 애써 목소리를 내었다.


이런 장면을 아예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부 게임이나 소설 같은 곳에서나 경험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단순히 망상이나 공상 같은 걸로 넘겼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지금 설진의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현실이었고, 현실이 되어버린 세계 속이었다.


연애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지금의 설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르고 자극적인 상황.

무망중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몇 초. 설진은 흠흠, 들으라는 듯 헛기침을 몇 번 내뱉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노, 농담은 이제 그만하죠. 엘리나.”

“농담이라니요. 전 어디까지나 진지한데.”


다시 웃음.

살의도 적의도 전쟁의 두려움도 이겨낼 힘이 있는 설진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이성의 유혹에는 내성이 없었다.


애당초 엘리나는 ‘주인공’답게 굉장히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황금처럼 흘러내리는 웨이브 형식의 머릿결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본떠서 만든 듯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하며, 무엇보다 저 눈웃음까지.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고, 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진실된 웃음이었기에 설진이 느끼는 감정이 배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낸.’


정확히는 황실의 군사와 네 명의 외부인이 일궈낸 결말.

해피 엔딩. 그것을 목전에 두고 있자니 괜스레 그렇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설진은 이 상황을 타파하고자 애써 목소리를 울렸다.


“하하, 진심이라니요. 엘리나.”


엘리나의 말과 행동에는 진심이 담긴 것처럼 보였으나, 아마 진심처럼 보이는 장난일 것이다.

왜 그렇잖은가. 켜켜이 쌓인 업무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은 사람은 가끔 장난기가 돌고 하는 법이니까.


그것도 작은 업무가 아닌 무려 일국과 관련된 일이다.

쌓인 스트레스를 방출하기 위해 수위가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그렇게 생각한 설진은 웃으며 상황을 넘기고자 했다.


“이런, 들켜버렸나요. 그럼 농담은 이쯤 해둘까요.”


다행히 엘리나도 상황을 더 끌고 갈 생각은 없는 모양.


“아, 그렇지. 설진 님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만.”

“묻고 싶은 것, 말입니까?”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니 꼭 대답을 받고 싶군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 상황에 속으로 안심하며 화답했다.

그보다 질문이라니.

정체도 목적도 어느 정도 정보를 풀었는데 더 궁금한 것이 있나?


그렇게 생각한 설진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윽-.


“시연 님과 저.”


엘리나의 손이 점차 이동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조금 굽어 있는 것이 꼭 무언가를 드러내려는 듯했다.


“그 두 사람 중에서.”


아까 봤던 배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배꼽, 윗배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남성과는 다르게 툭 튀어나와 있는 여성의···.


“누가 더 크-.”

“···스타아아압!”


엘리나의 질문이 끝을 맺으려는 찰나 돌연 그런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시연이었다.


조금은 다급한 듯한 움직임과 얼굴을 한 그녀는 엘리나의 집무실에 섬광처럼 등장하더니, 이윽고 상황을 종결시키듯 크게 소리쳤다.


“더는 못 들어주겠어! 요즘 채린이한테도 자리 뺏기는 건 아닌가 싶은데, 여기서 더 늘어나면 진짜 곤란해진다고!”

“누, 누나?”


흡사 강림이라도 한 것처럼 등장한 시연은 설진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이후 목을 푸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휘익-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흠흠. 그리고 황녀님도 그쯤 하시죠. 연애 경험 하나 없는 쑥맥이라, 그런 거에 정말로 위험하니까요.”

“···설진 님이 연애 경험이 없다고요?”


이건 몰랐다는 듯 엘리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동시에 시연의 말을 되뇌는가 싶더니, 이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어. 그래서 그런 반응을···.”


어쩐지 설진의 반응이 이상하다 싶었다.

정말 그런 것까지는 아니나, 갓 성인에 들어선 소년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왜 그리 부끄러워하고,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는가 했더니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제야 깨달은 엘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시연 님,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시연 님의 세계에선 한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 기본일지 몰라도, 헤임 제국에서는···.”

“아그그그그극.”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하다가 누가 죽을 것 같아서 멈췄다.


“아하하. 어쩐지 여기 올 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더라니.”


저벅, 저벅.


시연의 뒤에선 채린이 어색한 표정을 한 채 집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유독 귓가에 울렸다. 엘리나는, 이번엔 자신이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채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채린 님도 오셨군요. 몸은 조금 괜찮으신지요.”

“제공받은 의료 지원 덕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일구어 준 결말에 비하면 미약할 뿐이지요.”


엘리나와 채린의 대화가 이뤄짐과 동시에,


“설진아, 저기 저 엘리나··· 아니. 황녀님이 너한테 뭔 짓 한 건 아니지?”

“아니,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는 게···.”


옆에서는 설진과 시연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엘리나와 채린의 대화가 끝나고, 혼란의 빠진 설진의 머릿속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놀란 시연의 마음이 점차 진정되어갈 즈음.


짝짝.


엘리나의 박수 소리가 울렸다.


“자, 그럼 본론 같았던 서론은 이제 그만하고···.”


한 달하고도 나흘.

전쟁이 끝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만남과 헤어짐이 영원할 수 없듯이.

헤임 제국 에피소드도 그랬다. 전쟁이 끝난 후 설진이 겪어 왔던 일은 모두 해피 엔딩에 가까우나, 언제까지 그런 행복만을 누릴 순 없는 노릇.


아직 설진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연나비에서도, 그리고 플라임이 있는 플레임 왕국에서도.

새로운 에피소드도 묵은 채 풀리지 않은 미련도 언젠간 풀어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설진의 목적이었으므로.


“여러분은 이제 어떡하실 생각인가요?”


엘리나의 물음이 귓가를 울렸다.

기실 그녀도 알고는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다.

이별은 점차 다가오고 있으며, 오늘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별은 아쉬우나 그렇다고 그들을 붙잡아둘 순 없는 노릇.

그걸 알고 있기에 엘리나는 물음을 건넸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의지를 실은 물음을 건넸다.


“저는···.”


설진은 엘리나의 말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이야기로 나아가야지요.”


50층의 엔딩.

하나의 에피소드를 끝맺고, 다음 에피소드로 나아가야 할 때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50층으로 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요.]


[예]


* * *


“저는 이제 괜찮아요.”

“찬우 님···.”

“물론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꽤 빨리 나았거든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찬우는 병실에 몸을 뉘인 여자- 리아엘라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감사 인사도 하고 싶고, 리아엘라 씨가 쓰러진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말하고 싶고···.”

“···.”

“마음 같아서는 사나흘 동안 회포를 풀고 싶지만···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아서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엔 어려울 것 같네요.”


나흘이 지난 시점에서, 리아엘라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몸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며 식활동까지 가능해졌다.


그런 리아엘라를 앞에 두고서 찬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짧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의 시간이 매듭을 짓듯 이어졌다.


“찬우 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라니. 꼭 한번 듣고 싶네요.”

“하하. 지금은 어렵겠지만, 나중엔 반드시···.”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고 말고요.”


리아엘라의 말에 찬우는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연나비를 지나, 다시 플레임 왕국의 에피소드에 도전해 해피 엔딩을 만든다면.


그리하여 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끝낸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리아엘라와 이야기를 나누겠노라고.


그런 찬우의 말에 리아엘라은 고맙다는 듯, 수줍다는 듯 말했다.


“저는 언제라도 찬우 님을 기다릴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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