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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67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8.25 21:30
조회
387
추천
3
글자
11쪽

206화

DUMMY

시간이 흘렀다.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한 달.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바빠 보이는 엘리나를 볼 뿐이었다.


전쟁의 전자사의 유족에게 위로금을 건네거나,

부상자들이 지급받아야 할 의료금의 정도를 정하거나,

살아남은 교회군 패잔병들의 처우를 결정하거나,


등등, 많은 일의 처리가 필요해 보였다.

설진은 이 한 달 동안 엘리나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간을 내어 집무실에 방문했을 때 쌓인 서류만 해도 산을 두 개나 이루고 있을 정도였으니.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그때를 생각하며, 설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전쟁이 재발하는 것보단, 서류를 처리하는 게 훨씬 낫지요.”

-“얼굴을 보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엘리나.”

-“이런, 벌써 들켜버렸나요. 사실 힘들어 죽을 것 같습니다.”


엘리나와의 관계는 전쟁 이후로 더욱 가까워졌다.

황녀로서의 엘리나가 아닌, 친구로서의 엘리나.

은연중에 말투도 바뀐 것이 설진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건 설진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환영하며 친근히 대했다.


애당초 엘리나는 게임에서 봤던, 설진이 좋아하는 등장인물 중 하나였었다.

가까워진 사이를 환영하면 환영했지 미워할 리가 없었다.


-“···술.”

-“뭐라고요?”

-“술 마시고 싶습니다···.”


나중에 가선 너무 친해진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엘리나가 사실은 애주가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정도니.


‘이것도 게임엔 없었던 정본데.’


게임에선 그녀가 타인에게 친절하다, 배려심이 깊다 정도를 문장으로 나열했을 뿐.

술을 좋아한다거나, 서류 처리 임무를 귀찮아한다거나 같은 사실은 없었다. 전부 탑에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뭐, 엘리나도 엘리나지만.’


늘어만 가는 엘리나의 업무량에 걱정의 시선을 보낸 것도 맞지만, 기실 설진에게는 엘리나의 서류 처리 건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저벅, 저벅.


이제 거의 완치된 몸을 몇 번 휘두르며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많고 많은 황실의 방 중 하나.


엘리나가 준비해 준 의무실 겸용 객방이었다.


덜컥-.


“몸은 좀 괜찮아요?”

“응. 이제 좀 괜찮은 거 같네.”


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시연이었다.

매트가 깔린 침대 위에서 퍼질러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이젠 아파서 누워 있는 게 아니라, 편해서 누워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진은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단어를 애써 억눌렀다.

시연은 환자였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일단 환자였다.


“뭐 사왔어.”

“그냥, 과일이랑 이것저것 가져왔어요. 전쟁이 끝난 지 한 달밖에 안돼서 그런지 싸게 팔더라고요. 이것도 엘리나가 내린 정책일걸요.”

“오. 뭔 과일인데.”

“애플하임이요.”


애플하임이 담긴 바구니를 주변 선반에 올리며 대답했다.


애플하임은 55층에서부터 시작되는 연나비의 과일이자 특산품이었다.

일반적인 사과보다 부드럽고, 더 많은 과즙이 함유된 인기 식품.


지난 한 달간 엘리나는 애플하임의 수입량을 늘렸다.

비단 애플하임만이 아니다. 과일이나 과자같이 시작해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쌀과 밀을 수입해 싼 가격에 풀어놓았다.

전쟁이 일어나 수도에서 식량 생산이 힘들어졌으니 외부에서 끌어와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 외에도 엘리나는 다양한 정책을 펼쳐 전쟁의 분란을 빠르게 가라앉혀 나갔다. 하나같이 돈이 필요한 일이었으나, 교회 세력의 자금을 사용해 처리했다.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게 일국의 황녀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능력 있는 군주란 이리도 대단한 존재였다. 반파된 건물의 보수와 처리 흔적이 남아 있는 것만 제하면 이제 수도에서 전쟁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었다.


“줘바.”

“···.”


아, 실언이었다.


“응? 줘바아.”

“가져가면 되잖아요.”


전쟁의 흔적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것도 생각보다 가까이.


“나 환자잖아아. 다쳤잖아아. 그러니까 해 줘어어.”


환자임을 주장하며 해줘를 외치고 있음과 동시에,

떼를 쓰며 몸을 뒹굴고 있는 시연을 보며 설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시연은, 아파서 누워 있는 게 아닌 편해서 누워 있는···.


“너 방금 아파서 누워 있는 게 아니라 편해서 누워 있다고 생각했지.”


귀신인가. 이거.

순간 시연의 존재에 의문과 신비를 느낀 설진은 바구니에서 애플하임을 집어들었다.


손에 쥔 애플하임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아닌데요.”

“쓰읍···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닐 건데요.”

“아닌 게 아닐 건데요가 아닌 것 같은ㄷ···.”


휘익-.


“으갹-! 깜짝아.”


집어든 애플하임을 던지자, 놀란 듯 몸을 떨더니 캐치.

역시 다 나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아뉘이. 까주라.”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잖아요.”

“칼이 없어. 그리고 환자인 내가 까다가 다치면 어떡해?”


이젠 어이없다는 듯 픽 웃음이 나왔다.

설진은 이마를 부여잡음과 동시에 마력을 방출했다.


마력 단검.

요한, 오엘과 사투를 벌였을 때 썼던 스킬이었다.


휘리리릭-!


단검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서 위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단검이 빙그그르 회전하더니만, 이내 안정적으로 시연의 손에 있는 애플하임에 꽂혔다.


“와, 와어우.”


가히 묘기라 해도 손색이 없는 광경.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 시연은 무망중 칼을 뽑아들었다. 설진이 만들어낸 마력 단검을 시연이 잡았음에도 단검은 없어지지 않았다.


단검에 마력을 계속 흘려 넣으며 형태를 유지시킨 설진은 몸을 돌렸다.

냉랑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설진은 자신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도 왔었다. 그저께도 왔었고.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아프다 해도 이젠 무감각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래도.’


바구니에서 애플하임 몇 개를 집으며 채린이 있는 쪽으로 결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누나는···.’


한 달 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 시연은 설진을 구해주었다.

리플렉션. 반사 스킬을 활용함으로써 오엘의 절명화를 받아쳤다.


-“하아. 하아. 설진아!”

-“하아. 괘, 괜찮아!?”


마브드와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오엘과의 전투에 끼어든 것이다.

끼어든 것만으로도 모자라 설진에게 향한 공격을 반사시킨 주역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내디딘 발을 계속 옮겼다.

하여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누나였다.


“저기이. 칼 준 건 고마운데··· 껍질은?”

“그건 셀프로 하는 걸로다가요.”


저벅.


‘우리 관계가 겨우 이 정도였어어어···?’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약간의 무시를 섞으며 채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채린아.”

“오빠. 오늘도 왔네요.”


채린은 웃음꽃을 그리며 설진을 환영해 주었다.

설진 또한 웃으며 환대했다. 그러면서 스윽- 왼팔을 곁눈질했다.


“봐도 돼요. 이제. 확실하게 붙었으니까.”

“그, 그럼 다행이고.”


설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채린은 왼팔을 가린 이불을 내렸다.

그러자 채린의 왼팔이 보였다. 한달 전 잘려나가 보이지 않았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었다.


“아픈 덴 없어? 부작용 같은 건?”

“없어요. 가끔 현대의학보다 이세계 마법이 더 대단한 것 같다니까요.”


잘 드러나지도 않은 근육을 보여주고자 채린은 팔에 힘을 가했다.

길쭉한 팔. 그리고, 다시 생긴 팔.

채린은 부작용도, 아픈 곳도 없다곤 했지만 설진으로선 쉬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팔을 바로 붙일 수 있다니···.’


지구에선 기계 팔 같은 것을 사용해 대체한다고 하던데.

여기선 팔을 바로 붙인다니. 신기해 보이면서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설진도 팔이 잘리고 붙은 경험이 아예 없진 않았다.

오히려 한 번뿐인 채린보다 많았다.


다만 설진은 잘린 팔을 고유 능력 흡혈으로 복구시킬 수 있을 뿐이고,

채린은 다른 사제의 도움을 받아 붙였을 뿐이다.

단지 그 차이건만,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팔이 한 번 잘려나갔다는 부분에서 걱정을 해야 할지.

팔을 다시 붙일 수 있다는 부분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빠 고유 능력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흡혈 말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흐리고 있던 찰나, 채린이 입을 열었다.

설진의 고유 능력인 흡혈에 관해서.


“오빠는 흡혈로 잘린 곳 복구시킬 때 아팠어요?”

“아니. 전혀.”


요한과 싸울 때 설진은 미친 듯이 흡혈을 사용했었다.

그럴 때, 살갗이 다시 자라날 때 고통은 일절 없었다.


“너는 있었어?”

“있긴 한 모양이던데··· 사제분이 통각차단(痛覺遮斷) 마법을 사용해 줬어요.”

“···.”

“어찌 되었든 다행 아니에요? 팔도 돌아왔고, 전쟁도 승리로 끝났는데.”


그런 거겠지.

채린의 말에 답하며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아직 통각차단 마법이 사용되고 있는 건 아니지?”

“수술이 끝나자마자 중단됐어요. 그래도 별로 아프진 않던데요.”


사각- 사각-.


하나 더 만들어낸 마력 단검을 잡으며 애플하임을 깎기 시작했다.

별로 아프진 않다는 말에 답하며 차근차근 껍질을 벗겨나갔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야아-! 채린이는 왜 까줘!”

“그래도 아픈 곳 있으면 말해.”

“이, 이게 그 말로만 듣던 ntr···.”


멀리서 애플하임을 깎고 있던 시연의 말이었다.

설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설진과 시연 사이에 낀 채린은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양 누워 있었다.


“자, 먹으면서 쉬고 있어.”

“고마워요 오빠.”


설진은 그리 말하며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연, 채린을 지나 찬우의 앞에 섰다.


“찬우야.”

“형은 맨날 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니지만요.”


찬우는 둘과는 달리 앉아 있었다.

심장에 가시가 틀어박히긴 했지만 그는 사제요, 사제는 기본적으로 자가 치유를 통해 재생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연과 채린보다 신체 회복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아, 제가 깎을게요.”

“그래도···.”

“자취할 때 많이 해봐서 익숙해요. 괜찮아요.”


애플하임과 마력 단검을 넘겨받은 찬우의 말이었다.

설진은 하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남은 애플하임을 집어들었다.


사각- 사각-.


옆에서 껍질을 까고 있는 찬우와는 달리, 설진은 깎지 않았다.

아삭. 껍질째 애플하임을 먹으며 짧게 잡담을 나눴다.


애플하임의 껍질엔 옅은 독소가 들어가 있었다.

건강한 사람에겐 상관없고, 다친 사람도 먹어도 되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싶어 껍질을 까 주려고 했던 것이다.


‘완전히 다 나은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찬우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던 찰나,


“형.”


찬우가 질문을 해 왔다.

평소와 같은 잡담이 아닌,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질문을.


“리아엘라 씨는··· 괜찮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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