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14장. 승부를 거는 사람들(2)
허구의 역사밀리터리입니다. 동명이인 및 내용은 모두 평행세계입니다.
14. 승부를 거는 사람들(2)
-1-
뉴욕역 5층의 심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프트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리벤지 1917년’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정말 200만 명이 넘는 군대를 육성할 생각입니까?”
“엄청난 재정 비용이 들 것입니다.”
“국가 경제가 파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다들 우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셔먼 부통령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1917년까지 단시일에 전력을 증강하려고요? 그랬다가는 미국의 경제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습니다.”
태프트 대통령은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영국 왕실과 다우닝가에서 작심하고 미국을 식민지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다. 자네들은 자유를 잃는 것을 바라는가?”
“그것은······.”
“나도 바보가 아닐세. 다른 방도가 있으면······자네가 차기 대통령이 되어 전쟁부의 보고를 받으면 내 마음을 이해할 테지.”
“······.”
“좋은 소식도 전해주지. 대한제국의 한기범 고문의 도움으로 전비 마련에 파란불이 켜졌네. 석유정제와 원유시추 기술료 지급과 서부와 중부 일대에 광산 및 자원개발에 돈을 투자받기로 했네.”
비밀에 가까운 정보가 쏟아졌다.
얼핏 보면 장밋빛 미래처럼 보이는 대한제국과 한기범의 지원책.
더군다나 미국 주요산업에 투자를 통해 경제지원을 해준다는 제안을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연방정부에서 발행하는 채권투자도 약속을 받았어. 무턱대고 지옥문을 여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니 염려를 놓게. 그 대신 윌슨과 결탁한 은행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과 결탁한 민주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지 모릅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법안! 링컨 대통령께서 사(私) 은행이 아닌 재무부에서 달러를 발행하도록 한 이후부터 호시탐탐 화폐발행권을 노리는 돼지들이야. 자네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몇몇 금융재벌에 의해 정부가 가진 큰 힘이 사라질 것이다.”
그랬다.
통상 미국의 화폐는 네 종류로 구분되는데. 민간은행 등에서 발행한 금증서·은증서·그린백이었다.
원역사에서 윌슨 대통령이 금융권과 협의해 재무부의 발행권을 떼 만든 것이 연방준비제도 은행권, 전 세계에 유통되는 달러였다.
“화폐발행권을 재무부가 소유해야 미국이 부강해질 수 있어! 하물며 영국과 친분이 깊은 JP모건과 헨리 데이비슨 등에게 미국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쥐여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이유도 화폐발행권을 은행에게 돌려주지 않고 재무부 소유로 했기 때문이지. 녹색 달러(그린백)의 발행량 확대에 반대하는 자가 금융업자들이었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을 쉽게 보지 말게.”
“······.”
“계획대로 진행되면 유럽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이 될 거야. 그때까지만 인내하고 참게. 영광된 자리를 위해서라도.”
“심사숙고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기 있는 한승범 장군과 어울리게. 그가 발레리의 군대를 물리치는 순간,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뉴욕포스트(New York Post)의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작할 걸세. 자네의 당선을 위해서.”
-2-
한승범은 손을 뻗어 경례를 받았다.
서부와 동부방면 전선에서 에이스로 불리는 기갑 대대장들이 속속 도착했고, 엔진 성능에 문제가 없는 전차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백범 3형]
기존 백범의 차체를 키우고 주포를 50mm로 끌어올린 희대의 명작. 개발된 지 십수 년 동안 여러 차례 개량형이 나온 전차는 백범 3형을 마지막으로 더는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산 삼군부도 차세대 주력을 4호와 5호로 규정했다.
그렇다고 퇴출이 바로 시작되지 않겠지만, 2선급으로 밀려 보유 대수를 줄이고 해외에 수출하기로 예정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싸운 백범의 차체를 바라보는 한승범. 그의 눈에 애환이 서렸다.
“너와 인연이 오래되었구나. 개량형인 백범 3형을 끝으로 더는 생산하지 않는다니. 아쉽기 그지없지만.”
눈에 익은 전차의 단종을 아는 듯. 차체를 여러 번 어루만졌다.
“장군님, 허일도입니다.”
불쑥 나타나 상념을 깨뜨리는 음성.
한승범의 오랜 동료이자 17 전차 중대의 몇 안 되는 생존자가 나타났다.
“허 대령, 장갑판이 약하지 않을까?”
대뜸 전차의 방호력부터 운을 뗀다.
전면장갑 50mm는 유럽 열강의 전차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제원이었지만, 샤르 시리즈에 탑재된 75mm 전차포의 파괴력을 막을 수 없었다.
“모래주머니를 올려둘 생각인데 어떨까요?”
“예상 방호력은?”
“직격탄은 어렵더라도 파편 정도는 막아낼 것 같은데······.”
직사로 맞으면 답이 없다는 시늉을 하는 허일도.
백범의 전면장갑을 가볍게 찢어발기는 샤르 b1과 신형전차의 위력을 두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뮤아의 47mm 전차포에는 효력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75mm 전차포를 막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승범은 고민에 빠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라는 말처럼, 대안을 찾고자 할 때.
저 멀리 김민구 기술관의 모습이 보였다.
대한제국군에서 열 손가락에 꼽는다는 전차 수리의 달인, 다른 기술관과 달리 야전 위주로 돌아다닌 까닭에 응급변통에 능했다.
“모래포대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파편이나 기관총탄이라면 모르겠지만.”
“······.”
“차라리 궤도 조각을 전면에 결속시키거나 용접 처리하는 방법을 추천해 드립니다.”
현실적인 방책.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장교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동원된 전차 전부에 궤도 장갑을 마련하기에는 예비물자가 부족합니다.”
“대략 50대 정도만 가능할 같은데요.”
장교들과 정비 사관의 답변.
방호력을 높일 방책이 있어도 전차 궤도가 없는 미국인지라 대안을 두고 웅성거렸다.
“잠깐! 궤도와 비슷한 효과를 낼 방도가 있잖아!”
한승범은 푸대가 산처럼 쌓인 역사 옆의 창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대장님, 전차에 시멘트를 바를 생각입니까?”
“맙소사! 그것은······.”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는 허일도와 장교들.
그에 반해 김민구 기술관이 탄성을 내질렀다.
“미국은 제철기업이 많아서 철판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시멘트와 철판을 두르면 어느 정도 방호력을 제공해줄 것 같습니다.”
원역사의 2차 세계대전 무렵에 미국의 셔먼 전차가 행했던 방법.
압도적인 화력과 방호력을 자랑하는 독일군 전차를 막을 심산으로 모래포대 대신에 콘크리트와 철판 조합으로 바꾸었다.
철판을 구하지 못할 시에는 벽돌과 콘크리트의 조합으로도 떡칠했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독일군이 자랑하는 판저의 75mm 전차포에 관통되어버렸다.
최소 1회의 직사 공격에 한해 셔먼 전차에 탑승한 전차병의 생명을 보호해주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창과 방패다. 방패를 맡은 부대가 살아남으려면 해야겠지.”
“와우! 나는 공격대잖아!”
허일도가 환호했다.
이에 반해 다른 장교들은 시멘트로 떡칠한 전차의 외형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전장터에서 부리는 멋은 죽음이다. 살아남아 본국에 귀환할 때 치장하면 된다.”
“본국에서 5호 전차만 보내줘도 그냥 발라버릴 수 있었는데······.”
누군가의 중얼거림.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한승범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현 상황에 만족해야겠지. 경진철도 전선에서 열악하게 싸운 것에 비하면 천국이다. 대충 400량의 전차를 긁어모았으니 발레리의 공세를 막을 수 있겠지.’
-3-
쏴아아아!
쏴아아아-!
태평양에 접어든 신세계 해운의 선단.
갑자기 시커멓게 변한 하늘에서 여름철 장대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잔잔했던 바다는 풍랑에 배가 심하게 요동을 쳤고, 선단의 선원들이 갑판에서 비상상태를 알리며 긴급 행동에 들어갔다.
“태풍이 온다!”
“상갑판에 있는 밧줄의 결속을 확인해!”
“선실마다 이중 창문을 닫으라고 하고······.”
갑판장의 외침.
그와 별도로 좁은 복도를 뛰어다니는 기관사들이 눈에 보였는데. 태풍이 부는 바다를 빠져 나와야 하는 까닭에 취침 중인 교대 인원이 전부 일어난 모양이었다.
“빨리 움직여! 게으름뱅이들아!”
배 전체가 고함과 태풍으로 소란스러워질 때.
이동국은 해종신과 홍해를 데리고 함교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가 향하는 해로에 태풍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기상예보와 맞지 않군요.”
“태풍을 피한다고 했는데,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통으로 맞으면 최신 선박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하던 중에 함교 밖을 보는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선장.
선단에 속한 다른 선박들이 날리는 전신이 폭주했는지, 통신담당 선원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다.
“대표님······.”
홍해가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다.
이동국이 손바닥을 뻗었기 때문이다.
“배는 선장에게 맡기면 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예상 해로에서 벗어나 항주하면 시일을 맞출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선장의 조심스러운 말에 이동국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배에 실린 전차를 시일 내에 가져다주지 않으면 한승범이 당할 우려가 크다는 사실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담아 뼈 소리가 나도록 벽을 때렸다.
콰앙!
다들 놀라 시선을 돌렸지만.
이동국은 개의치 않고 으르렁거렸다.
“대체 언제까지 대장님을 괴롭힐 것입니까? 운명의 신이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이렇게 그분을 괴롭히는 이유라도 알려주십시오!”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광인처럼 울부짖는 이동국.
해종신의 손짓으로 고개를 돌리는 선원들과 함정.
배의 선주이자 신세계 해운을 지배하는 총수의 비밀을 엿듣는 순간, 어떤 일을 겪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동국의 주변에 있는 호위의 냉엄한 눈빛.
상단 대표를 따라 수십 명의 본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선단에 합류했다.
하나같이 권총과 장총 등의 무기로 무장했고,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살기를 드러냈다.
선원 중에 일부는.
-우리 상단의 대표님은 봉황상단과 싸워 거대상단의 주인이 된 사람이잖아!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닐 거야!
조선 후기에 상업에 뛰어든 남궁 씨의 봉황상단은 정경유착으로 거대 기업을 이루었고, 민씨 왕후가 황후가 되는 시점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재계의 강호인 개성과 의주, 동래, 한성 등의 상인집단의 대표주자인 현송·오성·개성·한솔 상단과 더불어 5대 기업의 하나로 자리했다.
광무 황제의 치세에 언론과 해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봉황상단은 이름과 달리 추악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무법과 불법이 판을 치는 동남아시아 해로는 물론이고, 범죄조직과도 연이 깊은 봉황상단을 넘어섰다는 말은 강한 무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행여 대표의 비밀을 알게 될지 몰라 숨을 죽인 채로 전방만 주시했다.
한참 뒤에 홍해 등이 사라지고 난 뒤.
“후유!”
“우리 대표님의 눈을 봤어? 살기가 줄줄 흐르더라!”
“대체 무슨 일 때문에···.”
함교에서 술렁거리는 선원들.
그들을 향해 선장이 호통을 내질렀다.
“뭐들 하냐! 태평양에 빠져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표지는 인터넷임시발췌...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