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Rabbi's library

내 일상


[내 일상] 바람과의 작별인사.

 제법 쌀쌀한 바람이 내 귓볼을 스친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 귓가에 들려오는 매서운 바람의 소리에 귀기울여본다. 바람이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어떠니?’ 바람의 작은 소리에 나의 작은 떨림이 큰 파동이 되어 나를 깨뜨린다. 조각조각이 너무나 날카로워 내 마음을 찌르지만, 나는 그 아픔에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러다가 조용히 눈을 뜨고 주변을 살핀다. 어린 고양이가 길가에서 먹을 것을 찾는다.

 

 나는 24시 편의점에 가 재빨리 과자를 사, 고양이에게 과자를 주고 그 과자를 먹었다. 무언가 같이 먹는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 것인지, 고양이가 나에게 말한다. ‘냐옹. 냐옹.’, ‘지금은 어때?’ 나는 고양이에게 남은 과자를 쏟아주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고양이와 친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른다.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대답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고양아 내가 너를 믿을 수 있을 때 대답해 줄게.

 

 물처럼 흘러버린 세월에 뒤를 돌아보며 그 흘러간 세월들을 잡으려 하지만, 내 손에 느껴지는 물과 같은 추억 뿐 더 이상 잡을 수 없다. 그 촉감만이 과거의 나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한다. 그 때는 그랬지, 그때는 세월과 이별한다는 것을 모르고 헛되이 보냈지. 이렇게 아쉬워하면서 보낼 거면 조금 더 잘 해줄걸. 돌아오는 계절처럼 세월 또한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언제나 그곳에 머물러 있을 줄 안 세월이었지만, 야속하게 떠나버린 그대처럼. 나는 한동안 나의 지나간 세월에 한숨을 쉬며, 그 배신감을 가라앉힌다. 어쩌면 거짓말을 해가며 속여서라도 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처절하고, 추했는지도 모른다. 거짓 미소를 취하고, 가식적인 말과 행동으로 그대를 속였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대가 떠난 빈 자리 뿐이다.

 

 난 이제 그대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대의 약속을 믿고 이렇게 버텨 왔건만, 지친 나에게 남겨진 것은 한숨과 후회, 그리고 다가오는 어두운 밤밖에 없다. 단 한번만 이라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어둡고 두려운 밤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것 같다.

 

 필요없고, 쓸모없는, 그리고 소용없는 고장난 알람시계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넘어져서 일어날 줄 모른다. 알람시계가 울려 무서운 밤을 물리쳐 주길 바랐지만, 나의 바람은 헛된 것임을 증명하듯 고장난 알람시계는 조용하다. 아니, 오히려 핸드폰을 집착적으로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에서 더욱 더 무서운 공포가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온 몸을 웅크리고 이 무서운 밤을 눈물로 지새운다. 반복된 실패와 좌절 끝에 나는 이 무서운 밤을 이기게 해달라고 조용히 기도한다. 하지만 바위 같은 신은 담담히 계속 그의 자리를 유지한 채 대답이 없다. 나는 그 묵직한 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나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를 의심하고 그를 부정한다.

 

 맑은 햇빛이 창문을 통해 나를 비춘다. 무서운 밤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나를 밝혀준다. 나는 밤이 지나갔음을 보고 창문을 연다. 젖은 바람 냄새가 나에게 위로한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바람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지나간 밤을 위해 추모한다. 나의 신에게 사죄를 올리고 그대를 생각한다. 그대가 없는 밤이 이렇게 무서웠다.

 

 열린 창문으로 태양이 나를 내리쬔다. 나는 손을 들어 그 태양을 잡아본다. 나의 이 작은 손으로 흘러간 세월을 잡을 수는 없지만, 떠나버린 그대를 붙잡을 수는 없지만, 태양을 잡을 수 있다. 나는 딱 한줌에 태양을 잡고 눈물을 훔친다. 고장난줄 알았던 알람시계가 울린다. 때로는 나의 검게 그을린 눈물로 나를 채워가지만, 쓰러져서 일어날 방법을 모르지만 끝나지 않은 이 삶에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그리고 태양에 손이 닿은 것처럼, 뭔가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시작된 시간에 어제 흘러간 무서운 꿈을 잊은 채 멍하니 서서 눈물을 흘린다. 이번만 울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놓치지 않는 다짐을 한다.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잖아.

 

 떠나간 그대는 아름다운 상처다. 나에게 그대는 참으로 고운 아픔이다. 나의 모든 것을 차지한 그대이지만, 그대는 원래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대 곁에 닿기 위해 멀고 먼 길을 헤매었지만,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그대를 향한 길이었지만, 그대는 다른 길을 택했다. 나 또한 다른 길을 택하면 된다. 그러면 진정 다른 그대를 만나게 되겠지. 예전의 그대는 내가 헤매던 미로 중 잘못된 출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있을 그대를 위해 다시 길을 헤맨다.

 

 다시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텅 빈 내 마음을 추스른다. 고장난 알람시계가 돌아가듯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지만, 나는 이렇게 달라졌다. 바람이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어떠니?’ 나는 지난 시간을 되뇌어보며 흘러간 추억을 다르게 말해본다. ‘괜찮아. 고마워.’

 

 그러자 하늘이 운다. 나의 성찰(省察)에 하늘이 젖어 눈물을 흘린다. 나 또한 내 눈가에서 찬 빗방울을 떨어뜨리며 달라진 나를 바라본다.

 

 어제 밤 나와 간식을 나눈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와 묻는다. ‘냐옹. 냐옹.’ ‘지금은 어때?’ 내 머리 위로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나는 고양이에게 말한다. ‘고마워. 잘 가.’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또 나의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며 두 눈을 살짝 감는다. 그리고 작별인사 없이 시원하게 뒤돌아 자신의 갈 길을 간다.

 

 고양이를 보내자 잔잔한 파동이 나의 귓가에 퍼져 울린다. 고양이와의 이별 후, 바래진 기억 속에 나는 더욱더 힘차게 걷는다. 그리고 미소지어본다. 나의 고요한 미소에 바람이 불어 내 마음을 간질인다.

 나는 다시 두 눈을 감고 다시 바람과 고양이, 어둡고 무서웠던 밤에게 인사를 한다.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 내 일상 | 바람과의 작별인사. 14-02-26
3 내 일상 | '내일'에게 하는 말. *2 14-02-12
2 내 일상 | Pray *2 14-02-11
1 내 일상 | 망상 여행. *1 14-02-06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