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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명나라 황실 사기결혼 사건

영녕공주 주요영은 명나라 12대 황제 융경제의 딸이며 13대 황제 만력제의 친동생이다. 명 황실의 공주라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신분이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공주는 거의 없다. 정치와 관련되어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지 않는 한 공주의 이름을 기억하는 역사가도 없다.

 

그러나 영녕공주 주요영은 그녀의 불행하고 어처구니없는 운명 때문에 야사에 이름을 남기고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영녕공주는 15살 되던 해에 혼인을 했는데 그녀의 결혼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완전히 사기 결혼이었다.

 

선대 황제의 딸이고, 당금 황제의 친동생이며, 그녀의 생모인 효정황태후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천하에 둘도 없이 귀한 그녀가 사기 결혼을 당했으니 세상에 둘도 없이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명 황실의 혼인 풍습을 알아야 한다. 명나라에서는 부마가 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꺼려하여 부마를 들일 때 명문가의 자제들을 피하고 평민의 가문에서 부마를 골랐다.

 

공주의 혼인을 하가(下嫁)라고 하는데 낮은 집안으로 시집보낸다는 뜻이다. 평민 중에서 부마를 고르다 보니 자연히 돈 많은 부잣집에서 부마가 뽑히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조정 일에는 참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공주의 배필이 되면 황실 가족의 위엄이 따르게 되니 서로 부마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공주가 혼인할 때가 되면 돈 많은 집안의 자제들이 부마가 되려고 권력자들에게 줄을 댔다. 그런데 문제는 황실에서 평민들의 정보가 어두운 것이 화근이었다. 조정에 출사하는 명문가의 집안이라면 황실에서 웬만한 정보를 다 꿰뚫고 있었지만, 평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경의 부호 양 씨 집안의 자제가, 그 당시 환관 중에 실세였던 대태감 풍보에게 많은 뇌물을 먹이고 부마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마로 뽑힌 양방서가 큰 병에 걸린 중환자였던 것이다. 양 씨 집안에서는 양방서의 병세가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혼인을 추진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양방서의 병세는 점차 심해져서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도중에 피를 토했다. 신랑이 식을 올리는 도중에 피를 토할 정도면 누가 봐도 위중한 상태였다. 하지만 신부가 양 씨 집안의 문턱을 넘어 결혼식을 올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가엾고 불쌍한 공주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천하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의 공주가 혼례식을 치렀지만, 그녀의 신랑은 병들어 죽어가는 병자였다. 결국 영녕공주는 시집가서 첫날 밤도 못 치르고 두 달 만에 과부가 되었다.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평생 처녀의 몸이었다.

 

참혹한 운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27살의 젊은 나이로 한 많은 생을 하직했다. 이것이 역사에 남겨진 영녕공주 주요영의 기막힌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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