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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太河)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부마의 첩을 때려죽인 여인

궁녀가 부마의 첩을 때려죽인 이야기

 

중종 대에 이은대라고 하는 상궁이 있었다. 보통 궁녀, 그중에서도 상궁이라고 하면 몸에 밴 예의범절과 단정한 용모에 심성이 반듯한 여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중종을 모시던 이은대 상궁은 부마가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부마의 첩을 때려죽이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켰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으니 조선 왕조 역사상 참으로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필자가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순옹주의 이모 은대(銀代)는 원래 정오품 상궁이었는데, 희대의 사건을 일으켜 궁에서 쫓겨난 여인이다. 이환이 그런 은대를 알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은대의 언니 숙원 이씨는 중종의 후궁이 되고 은대는 정오품 상궁까지 올랐으니 두 자매는 그야말로 중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엘리트 궁녀였다. 그런데 이 은대라는 여인은 조선 왕실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을 일으켜 당시 양반층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원래 부마는 공주를 예우하는 뜻에서 첩을 두지 않는 것이 왕실의 법도였다. 그러나 공주가 남편에게 웬만큼 강짜를 부리지 않는 한 이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정순옹주의 부마 송인은 젊은 시절 끓는 피를 참지 못해 여종과 간통하고 그녀를 임신시켰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은대가 분노한 나머지 전대미문의 해괴한 사건을 일으켰다.

 

부마가 옹주를 이렇게 업신여기다니, 이것은 생모가 없는 옹주를 우습게 알고 왕실을 능멸하는 것이다.”

 

화가 난 은대는 내수사의 종을 데리고 쳐들어가 송인의 첩을 때려죽였다. 그녀가 이렇게 이성을 잃고 분노한 것은 생모 없는 옹주를 부마가 업신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자 은대를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은대는 함부로 형장을 써서 송인의 첩을 때려죽였으니 참으로 흉악합니다. 이렇게 흉악한 사람은 크게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니 의금부에 영을 내려 끝까지 추고 하시옵소서.”

은대는 숙원의 동생이니 함부로 벌할 수 없다. 이 일은 더 이상 아뢰지 말라.”

 

사대부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지만, 중종은 이 사건을 그냥 덮었다. 은대가 이렇게 과격한 일을 벌인 것은 중종과 문정왕후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숙원 이씨가 죽었다고 옹주를 찬밥 취급하지 말라는, 그녀 나름의 충정이었다.

 

중종이 은대를 감싸자 삼사에서 은대를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하려면 부마도 국법을 어긴 벌을 받아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은대는 처벌을 면했다.

 

송인은 이 사건으로 세상일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아무리 위세가 높다고 해도 은대는 궁녀였다. 그런데 어찌 궁녀가 부마의 집에 쳐들어와 여종을 때려죽인단 말인가. 아끼던 여종이 죽은 것도 슬프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송인은 강가에 낚싯대를 펴놓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남들보다 더 자유로운 예술혼을 타고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한 속박을 받고 살아야 했으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 괴로움을 참기 어려웠다.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 본 듯이

내 인생 이러하니 남의 시비는 모르노라

다만 손 성하니 술잔 잡기만 하리라 / 송인(宋寅)

 

그러나 은대의 만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순옹주의 동생 효정옹주는 순원위(淳原尉) 조의정(趙義貞)에게 시집갔는데 조의정은 보란 듯이 첩을 끼고 살았다.

중종은 조의정의 행실이 방탕하다는 말을 듣고 여러 번 나무랐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씨 착한 효정옹주가 남편을 두둔하여 일이 무마되었다.

 

그런데 효정옹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옹주가 죽으니 대궐에서 내의원이 나가 옹주의 죽음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효정옹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 때 부마가 옹주를 버려둔 채 첩을 끼고돌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일로 조의정의 첩 풍가이(豐加伊)는 의금부에 끌려가 형장(刑杖)을 맞았다.

 

옹주(翁主) 자가(慈嘉),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흐흐흑!”

 

은대는 효정옹주의 영전에서 대성통곡했다. 그러나 아무리 땅을 치고 통곡해도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못한다.

 

언니 숙원 이씨가 죽은 뒤 그녀는 오로지 두 옹주만 바라보며 두 옹주를 딸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 창창한 조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말다니.

그녀는 부마 조의정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난들 부마를 어쩔 수는 없다.

 

결국, 그녀의 분노는 조의정의 첩 풍가이에게 돌아갔다. 은대도 이번 일이 얼마나 위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먼젓번에는 중종의 비호로 겨우 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또다시 같은 일을 저지르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쌍하게 세상을 떠난 효정옹주를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하인들을 데리고 조의정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풍가이는 의금부에서 형장을 받고 막 풀려난 상태였다. 은대는 방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풍가이(豐加伊)를 마당으로 끌어냈다.

 

네 이년, 네가 감히 옹주 자가를 능멸하다니. 네년이 네 죄를 잘 알렸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풍가이는 은대가 어떤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의금부 관리보다 더 무서운 저승사자, 옹주의 이모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은대와 마주치는 순간 죽음을 예감하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이미 눈이 뒤집힌 은대에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은대는 이번에도 풍가이를 사정없이 때려죽였다. 이로써 은대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부마의 첩을 때려죽인 여인이 되었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자, 조정 대신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중종은 이번에도 그녀를 감쌌지만 결국에는 빗발치는 여론을 이기지 못했다. 중종은 그녀를 대구부(大邱府)로 귀양 보냈다.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궁녀가 귀양 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은대는 대구에서 귀양살이하다가 나중에 문정왕후가 권력을 잡은 뒤 풀려났다.

 

은대의 이런 과격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조카들을 보호하려는 이모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대궐에서 자라고 대궐에서 한평생을 산 여인이 이렇게 과격한 사건을 일으킨 것은 조선 왕조 오백 년 역사에서 유일한 사건이었다.

 

은대가 일으킨 이 사단은 여인의 한과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녀는 장안의 난봉꾼들이 모두 미워하는 공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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