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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여신네 자식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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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들판
작품등록일 :
2021.04.23 23:39
최근연재일 :
2021.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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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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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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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산란 (1)

DUMMY

몸을 내려다보니 허리까지 한바퀴 둘러져 있는 형광색으로 빛나는 뱀의 모습이 보였다. 이녀석이 포아다. 허리 근처에서 대가리를 들고 이쪽을 돌아보는게 아무래도 징그럽지만 머릿속에 들어가 있던 정보를 기반으로 정체를 깨닫고 나니 귀 근처에서 골전도 헤드폰으로 작동하는 것이 놈의 꼬리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뇌 정보 다운로드 및 추가 정보 오버라이드 정상 작동 확인.]


"그리고 나는 뇌 전극과 청사진을 복제하여 제작된 인조 생물체고······ 내 '기억'에 따르면 달에서 날아오는 동안 속성 배양이 마무리 된 거······ 아. 알몸인게 정상이긴 하네."


[배양액은 모두 흡수 후 잔여 유기 합성물을 모두 의료 캡슐의 바이오매스 파츠로 수납 완료했습니다. 날아오는 동안에도 배양해야 했으므로, 의복을 입은 상태로 배양 마무리가 불가능했습니다.]


날려보내는 동안 배양한 이유는 '중력 적용'으로 정상적인 몸으로 배양하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기억해냈다.'


[맞습니다. 당신의 일차 목표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나요?]


"일차 목표. 이차 목표 달성을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리마공공하나(L001)에 비밀 공장을 세우고 골프공공둘(G002)의 동면을 유지시킬 것."


[맞습니다. 이차 목표를 말씀해 주세요.]


"이차 목표. 오스카삼공하나(O301) 장치를 리마팔공오(L805) 위치에 접속시키고 폐기할 것.”


[맞습니다. 삼차 목표를 말씀해 주세요.]


"삼차 목표. 이왕 태어난 거, 행복하게 살고, 엄마 말씀을 세상에 설파하······. 세상에, 내 뇌속에 무슨 헛소리를 넣은 거야, 엄마 말씀이라니, 이 빌어먹을 어머니!"


마지막의 말은 심각한 분노보다는 단순한 빡침에 의한 외침이었다. 어째서인지 진짜 의미의 모자 관계가 아님에도 알게 모르게 친애의 느낌에 짜증남이 반쯤 섞인 기분을 느낀다. 그 빌어먹을 달덩어리는 도대체 어느 방향인가! 일단 지금은 한 낮인 듯하니 행성 반대편일 수도 있겠지.


[주의. 신성 모독이자 패륜입니다. 일단 모든 목표가 확인되었습니다.]


"신성 모독 거 좋지. 아, 망할 어머니, 거대한 바위덩어리 치고는 좋은 취미구만. 알로 사람을 낳아 대기권으로 던지시는 어머니라니."


[하지만 현제 이 행성에서 가장 귀중한 물건인 분자 조립장치와 자율채광 로봇을 전별선물로 함께 보내주십니다. 이런 어머니의 모성애에 감사해 하시는게 맞지 않을까요? ]


하긴, '일단 일만 끝나면 어쨌거나 행복하게 살아도 좋단다 얘야'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착한 편이다. 일반적인 서브컬쳐 기준으로 볼 때 만들어지는 생물이라면 확 죽여버리거나 재활용이라도 하겠다고 몸을 삼키려 들지 않는 게 어디인가. 게다가 양육비로 생각하면 생체 PDA와 함께 분자 조립 장치를 챙겨 주는 건 꽤나 훌륭하다.


"야. 일단 내 기억에 없긴 한데, 내 '이름'은 뭐냐. 혹시 내 맘대로 지어도 되나?"


[주인님의 이름은 제이녹 센트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긴 명색이 '어머니'께서 이름도 안 짓지는 않았겠지. 성이 센트라니 어감이 좀 싸게 보이는게 문제지만 별 불만은 없다. 그리고 분명히 그의 기억 원본이 가지고 있는 이름과는 꽤 다른 편이지만 직접 발음해 보니 어째서인지 스스로의 입으로 발음하기에는 딱 맞는 편이었다.


"제이녹 센트라, 오케이. 근데 이건 왜 내 기억에 직접 쓰지 않은거지······ 그나저나 아무리 보는 사람도 없고 제법 따스하다고는 해도 알몸은 많이 그런데 당장 입을 만한 거 없나. 출산 시점에서 알에서 깨어날 때 알몸인 건 그렇다 쳐도 이제 옷 좀 주지."


[조금 기다려 주시지요. 에너지 충전이 완료되면······ 아, 된 것 같습니다.]


캡슐의 내부에 충격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던 부분들이 천천히 '접히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일부 부분이 스스로의 관절부를 접어가면서 내부 기관들이 점차 인간의 외형을 닮은 것에 가깝게 변환되어 나간다. 그리고 견고하게 유지해야만 해서 이음새 없이 만들어져 있던 외벽들을 적당한 사이즈로 절단하기 위한 플라즈마 커터가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허, 그런 거였나. ‘달로부터 어떠한 물질도 본성에 보내면 안된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이시여라."


[소설의 도용이긴 하지만 실제로 물질을 유출하는 걸 아끼지 않으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견디겠나요. 여신님은 원래 운석 먼지도 아껴가면서 사시는 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반사되는 태양빛조차 유출을 막고 싶어하실 겁니다.]


알뜰하다 못해 짜디짠 어머니 같으니.


캡슐은 달의 입장에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장치인 만큼 추가 질량 없이 필요한 것만 알뜰하게 목표만을 달성하기 위해 딱 맞춰 제조되었다. 그리고 이 필요한 물질이라면 캡슐 자체의 내부 구조체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골조이지만 외골격에도 재활용 가능한 재료로 되어 있다. 물론 이 변환은 가역적 - 다시 우주로 날아가는 캡슐이 될 - 필요성이 전혀 없다. 그러니 접고 변형되는 형태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절단하고 갈아내어 필요한 물건들의 외벽으로 변경되는 것이다.


결국 제이녹을 쏘아 보낸 캡슐은 그 구성성분 하나의 낭비도 없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저 멀리서 낙하산이 엉키지 않게 발사되었던 캡슐의 꼭대기는 어느새 분해되어 천을 잘라내고 재단하여 섬유를 옷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고 있었다. 이게 그놈의 옷이 된다는 뜻이겠지.


"일단 한밤중이 되기 전에 옷 한벌은 보내 주시려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근데 집을 해체해서 옷을 만들면 난 어디서 자라고."


[그냥 둬 봐야 어차피 캡슐 호텔에 불과합니다. 그보다는 전별선물에 식량이 없다는 것 부터 여기 주무시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어느 정도 재단 된 속옷과, 일단 얼어죽지 않을 수준의 섬유로 만들어진 옷을 챙겨 입던 제이녹은 잠시 얼어 붙었다.


"······식량이 없어?!"


[예.]


"아니 애를 내보내는데 도시락도 안 싸주시나······ 의식주 중에 옷만 달랑 챙겨주는 거야?"


[달에서 유기물을 얻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여신님의 달은 산소, 철, 규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덩어리란 말이지요. 칼슘은 있습니다만.]


"이 뭐······ 내 몸은 유기물 아닌가?"


[그 어렵게 합성한 배양액 만드는 데에 다 들어갔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정히 먹고 싶다면 의료 캡슐에 들어간 바이오매스 파츠를 드셔도 필요한 단백질 보충은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입니다. 그러고 나면 최후의 보루인 의료 캡슐 기능도 유기물 부족으로 얼마 안돌아갈 겁니다.]


의료 캡슐? 그 말을 듣고 잠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제멋대로 접고 절단하고 자르고 꿰매던 1회용 조립기기의 행동이 완료되고 그 귀중한 전별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조립되어 겉 껍데기까지 보이게 된 외골격 강화복과 그토록 원하던 내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분자 조립장치와 분해용으로 사용되던 기기들이 합체/조립되어 만들어진 자동채광 로봇.


그 모든 것들을 드러내니 남는 거라고는 바퀴달린 수술대 같이 생긴, 그가 '누운' 채로 보내진 침대 위에 회전하는 원통 위에 투명한 필름막이 씌워지는 것이 보인다. 원래는 배양 캡슐이었겠지만 이제는 의료 캡슐로 전용된 거겠지······


외부 기억 장치가 되는 형광색 뱀 녀석을 몸에 둘러싸게 한 상태 그대로 '내의'를 다 입었다.


그런 후 완성되어 떡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외골격 강화복에 몸을 넣었다. 배후의 덮개를 덮고 강화복의 전원이 들어오며 눈 앞에 HUD가 표시된다.


사실 제이녹은 뭔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SF 영화식의 - 이를테면 아이언맨과 같은 - 수치들이 와장창 표기되는 것을 생각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여신님의 취향은 미니멀리즘이었다.


"아니 그럼 뭘 먹을 수 있는지 표기되던지, 분자 조립장치가 중요한 건 알지만 이것만 표기되다니······ 무슨 스탯 표기되는 꼴 까지 볼 건 아니지만 뭐 증강현실로 이것 저것에 정보 알아서 표기해 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여신님이 알고 계신 지상 기물 및 식생 정보는 주인님의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정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인님과 제가 알게 된 정보를 여신님에게 보내는 것도 임무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지요.]


내가 생체 탐사선(Probe)이라니! 아니 뭐 사실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좀 남겨줄 사전 정보 같은 것도 없나. 달의 여신 아닙니까. 달? 저 하늘에 떠 있는. 말 그대로 위성이신데 위성 탐사사진 기반으로 미니맵이라도 펼쳐주면······ 아 맵은 열리네. 해상도는 형편 없지만.


[일단 저해상도 위성 정보 까지는 있습니다만······ 신화식으로 말하자면 신들의 대합의에 따라 달의 여신은 지상을 상세히 주시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 뭔지 알겠다.


"문제의 G002께서 방해한 거로구만."


[그렇습니다. 그나마 라디오파 수신은 허용되어 언어 교육이라도 제공되는 것이 다행이지요.]


듣고보니 그렇다. 현재 사용중인 언어는 그의 원본이 가지고 있던 기억에서 원래 사용되던 언어가 아니라 전혀 생소한 언어다. 특히나 윗니를 올리면서 혀차는 듯한 소리 같은 경우는 숙련되지 않으면 말하기조차 힘들지만 그 스스로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시험삼아 기존의 이름을 발음해 보려고 하는데 엄청나게 어색한 발음으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언어의 특징이라는 면에서는 지구상의 언어를 기준으로 한다면 주어 목적어 술어(SOV)의 순서를 가진, 비교적 마이너한 어순에 조사 의존도가 높은 방식이 되고 있어 발음 자체만 제외하면 한국어의 특징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의 원본이 되는 기억의 기반이 21세기 초반 지구, 대한민국 국적의 인물이 된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사람 하나를 통째로 찍어낸 다음 그 뇌에 기억 하나를 넣고 그 위에 언어 오버라이드(override)는 아마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21세기 초 수준 겉핥기식 과학 사전지식에 따르면 사고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바가 매우 큰 편이라 모국어가 변경된다는 것이 사고 자체를 변경하게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걸 체감상의 부작용을 거의 느끼지 않도록 적용시키는 것 만으로도 그의 어머니에 대해 소문자 g의 ‘신'이라는 칭호가 부족한 건 아니다.


"그런 여신님에게 대해서조차 금지가 걸리게 하는 존재란 말이지······ 근데 라디오파? 내 머릿속에 대충 들어가 있는 문명 수준에 따르면 아직 라디오 방송이 일어나고 있는 수준이 아닐텐데?"


[예. 대부분의 기술수준은 고전 말기 시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라는 말 조차 좀 부족하고 일부의 원시적인 대제국을 제외하면 중소 호족들이 스스로 왕이라 자칭하며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 와중에 라디오파를 보낸건 조력자라고 할만한 특별한 인물입니다만, 안타깝게도 그와의 통신이 대략 이년 전 쯤에 끊겼습니다. 그리고 그 조력자의 이름이 안타르 센트입니다.]


"끊겼다면 나보고 그 사람을 찾으라······ 아아. '센트'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건 일부러 그 인물과의 관계를 강조해 소식을 찾는데 이상이 없도록 한거구만."


[대상자와의 언약을 통해 미리 '아들'로 설정되었습니다. 대상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며 명확한 귀족이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유력자 족보이니 문화권에 진입하면 좀 유리할 것으로 예상 됩니다.]


"음? 그런데 나에게 지정된 목표들 중에 '가는 김에 아빠도 좀 찾아 보렴 얘야' 하는 건 또 없는데?"


[정황상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일단 우연치 않게 발견되면 좋겠지만 기약 없이 실종된 아타르 센트를 찾느니 스스로의 행복이나 찾으라는 부모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전지식도 부족하고, 주어진 것 역시 별로 없는데 임무만 있는 상태로 애 하나를 야만의 땅에 던져 둔 부모마음 말이지. 쓴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좋게 보자면 그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도 크며 전별선물인 분자 조립기가 굉장한 물건이라 별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말이라도 통하는 게 진짜 어디인가.


"일단 식사 거리는 챙겨 놓고 움직여야 겠지만······. 뭐 없으려나."


[그렇지 않아도 뭔가 움직이는 생물이 감지되었습니다. 9시 방향 입니다.]


제대로 된 SF 스럽게 외부 카메라에서 움직임을 감지해 주는 건 아니었지만 단말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포아놈 - 목소리상으로는 여성형이지만 뱀을 가지고 년이라 부르긴 참 머시기 했다 - 이 그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하는지 제이녹의 시야 바깥을 알아 설명해 준다.


"오? 머리를 꽤 아래쪽에 둔 거 아니었냐? 뭐로 감지하는 건데?"


[이 강화복에 제 전용 HMD(Head Mounted Display)가 있습니다······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뱀꼬리 골전도 이어폰이 나름 큰 소리를 내며 제이녹에게 목소리를 전달했다. 그리고 제이녹 역시 말한 장소를 바라보자 지하에서 살짝씩 고개를 내밀었다가 모래더미 아래로 파고 들어 위에 지나간 흔적을 남기는 뭔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꽤 고속으로 모래를 파고 움직이는 생물입니다. 육상 진동을 느끼고 움직이고 아마 말 정도의 대형 지상 생물을 삼킬 사이즈의 환형······]


"샌드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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