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혼수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깊게 생각해 볼 짬이 너무 없었다. 사건은 거친 물살 흘러가듯 흘러 가버려 이것저것 재가면서 멈칫거릴 수 없었다.
어느 날 뚝딱 동률 악마의 피를 가진 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이 형님이 되어 있었다. 천마 혁련광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버려 뭐라고 토 한마디 달수도 없었다.
'이것 봐라?'
나는 혁련광으로부터 넘어온 능력 중에 참신한 것을 발견했다. 혁련광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물론 아우님도 할 수 있을 걸세."
혁련광이 옆에서 뭐라고 한다. 흐미, 생각이 공유되다 보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김없이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혁련광이 생각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지금 내 ITB에 담긴 술과 음식을 나와 함께 퍼질러게 마시고 싶어서 한다. 지금 딱 그 생각을 하고 있다.
"3023, 기억이 완전히 공유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기억이 공유되어도 잊어버리거나 부분적인 기억은 모두 잠재된 상태입니다】
"그렇군. 그것은 다행이군. 씨발 내 인생이 어떤 사람에게 모두 까발려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당히 더럽군."
"아우,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으, 형님이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집니다."
일단 천마 혁련광을 적으로 두는 것보다 친구 아니 형님으로 두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이 사람 완전한 악인이 아니다. 진짜 악인이었다면 내 심장을 터뜨려 버렸을 테지. 명문정파의 사람들이 천마, 천마라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싸잡아 욕할 정도의 절대 악인은 아니다.
내 눈에는 오히려 호인처럼 보인다. 물론 명문정파를 멸살시키려는 의도는 진짜다. 왜냐하면, 그의 과거에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들의 손에 정확히 말하면 적건문 문주와 천문파 문주의 협공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이고 마교를 처단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자신의 친우와 조력자들이 죽어 나갔다.
명문정파와 천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으로 묶인 사이였다. 인제 보니 이들은 모두 평범한 중국 시민들이었다. 곤륜선인이니 적마혈교니 마교니 명문정파니 모두 자신들이 무협 세계를 표방하여 가져다 붙인 이름뿐인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대충 이름만 붙여 놓고 무림 세계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련광은 그렇게 생각한다. 혁련광의 기억은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를 그대로 내게 옮겨 왔다. 물론 내 기억의 역사도 혁련광 쪽으로 넘어가 있을 테지. 내 정크 보이의 삶과 성공 하기 위해 박박 기었던 시간들. 그런데 그는 그 와중에 언노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분명히 언노운이 수를 쓴 것 같긴 한데. 이상하다. 기억이 공유되면 언노운의 존재를 모를 수 없을 텐데. 그리고 지금도 내 머릿속에 언노운의 생각이 가득한데 혁련광은 왜 모르는 것일까?
언노운은 가끔 나도 모르게 딴짓을 벌일 때가 있다. 지금도 요상한 조작을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혁련광은 언노운에 대해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기억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의 기억 속에 언노운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3023, 너는 솔직히 말해. 어떻게 기억과 생각이 공유되는데 혁련광이 너를 모를 수 있지?"
【보안상 기억 조작을 가했습니다. 그가 심장을 움켜쥐었을 때 다량의 나노봇을 그에게 주입했습니다. 그의 뉴런 신경세포 중 기억 소자를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심장을 움켜쥐려고 할 때 제가 먼저 혁련광의 심장을 멈추려 했습니다】
"너는 내 명령 없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잘만 하네."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정동혁의 생존을 돕는 것입니다】
"그 임무는 누가 준거냐?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 부분은 보안등급 최상급이므로 그에 대한 대답은 제한됩니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그는 모르는 거지?"
【그렇습니다. 저와의 대화, 기억 부분은 발생 즉시 삭제하고 있습니다】
"그럼 서로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도 멈춰 봐. 이거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악마의 피에 의한 공명 현상입니다】
"그럼 혁련광과 영원히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건가? 모든 기억과 생각을 공유하고서는? 나는 모르는 사람 대가리에서 나오는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거 정말 싫다고."
【멈출 방법은 없습니다. 단 오래된 기억 들은 제거 가능합니다】
"좋아, 그거라도 해줘. 똥 싸고 섹스 뛰고 하는 기억들도 공유해야 한다니 진짜 끔찍하다고 아니 그냥 저쪽으로 넘어간 내 기억을 깡그리 기억을 지워 줄 수 없어?"
【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악마의 피로 인한 기억은 뇌와 함께 핏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기억 전체 소거는 무리입니다. 일부 불편한 기억만 부분적으로 삭제하겠습니다】
"그거라도 어디야. 빨리해줘."
"혼자 무얼 중얼거리나? 자네 하려던 거나 해봐."
"방해하지 않으시렵니까?"
"물론."
진짜다. 방해할 생각이 없다. 혁련광은 동생 하나가 생겨서 무척 즐거워하고 있다. 그것도 같은 핏줄의 인간이 생긴 것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이 사람 나하고 터놓고 술 한잔하고픈 생각뿐이다.
"그럼 한번 해 보겠습니다."
혁련광은 뿔은 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뿔의 사용법을 나름대로 연구한 모양이다. 나는 뿔을 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혁련광은 아기 때부터 뿔을 달고 태어난 기재 중의 기재니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 모여든 수많은 레더 스컬에게 명령했다. 탈혼수를 공격하라고
그러자 내 뿔이 진동을 일으켰고 저 많은 수천 마리 이상의 레더 스컬 머리가 일시에 쫙하고 탈혼수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악마종의 완벽한 통제. 악마의 피를 가진 나와 혁련광의 특별한 능력이다. 혁련광은 오래전부터 이 능력을 터득한 모양이다. 그런 그는 지속해서 이 능력을 사용해 사대문파를 공격했고 그럴 때마다 곤륜선인이 나타나 오늘처럼 방해한 것이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악마종이 나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우연으로만 치부하고 항상 궁금해했었고 언노운은 단지 악마의 피 때문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도 단지 그러한 줄로만 알았지 혁련광처럼 나아가 악마종을 조종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건 여왕개미가 일개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레더 스컬은 내 명령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살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다.
"음, 아우님은 역시 기재군. 나는 이놈들을 통제하는 데 수년이 걸렸는데 아우님은 한 번에 해 버리다니."
천마가 놀란 것은 당연하다. 그는 이 기술을 알아차리고 레더 스컬이나 세슬로이드를 통제하는데만 4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내가 이렇게 단번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기억과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언노운이 제 조종을 해 주어서 단번에 성공한 것이다.
레더 스컬이 벌떼같이 탈혼수에게 달려들었다.
"음, 레더 스컬을 통제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진작 생각 못 했지. 그러면 네크로폴리탄에서 쇼크웨이브 따위를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상하군. 그런데 어떻게 보패를 손에 넣었지? 그 기억은 나지 않는군."
천마는 언노운에게 관한 기억을 소개 당했기 때문에 기억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온전히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기억이 다 공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가? 음 기억이 자꾸 지워지는 기분이 들어."
나는 잠시 뜨끔했지만 모른 척했다.
"정말 명문정파를 멸하실 생각입니까?"
"흥, 내 기억을 읽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늘 아래 그놈들과 같은 하늘을 보지 않을 것이며 같은 땅을 디디고 산다는 것은 나 스스로 허락하지 못해."
천둥이는 저만치 물러나 있다. 모영은 어느새 천둥이 등 위에 타고 있었다. 레더 스컬이 천둥이 쪽으로 모였다가 내가 명령하자 모두 탈혼수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우 자네의 생각은 읽었네. 나는 자네와 싸울 일은 없을 테지만 잘 선택하게 그놈들의 성정을 보지 않았던가? 아우님도 천마라고 오해를 받아 공격을 받지 않았는가? 왜 그놈들을 봐 주었던가? 아우님의 능력이라면 그놈들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릴 수 있을 텐데···."
"전 무의미한 살생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고 합니다. 마인은 번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실 텐데요. 이대로 자꾸 인간이 줄어들면 이 세계에서 인간은 멸족 될 겁니다."
"자네가 지키고 싶어서 하는 번식 가능한 인간이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우리 인류에게 축복 같은 일이야."
"형님 누차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 비밀입니다. 만약···."
"나를 죽이겠다고? 네 생각은 이미 알고 있다. 나라도 그리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와 의형제를 맺은 순간 너의 비밀이 나의 비밀이고 네가 지켜야 할 것이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 진국이다. 그가 하는 말은 진심이고 조금의 거짓도 없다. 언노운이 그의 몸속에 나노봇을 넣어 놓았고 번식용이라 세포가 분열되듯이 나노봇이 분열되고 있다. 그의 혈관 속을 따라 나노봇이 움직이고 있다. 그가 배신을 생각하는 순간 언노운은 내 명령을 수행할 것이다.
"저놈은 제가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걸 쓸 참이냐? 그런데 그 기술을 어떻게 배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기억이 부분부분 넘어와서 그럴 겁니다.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 기술로 저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냐?"
"해 봐야 알겠습니다. 그걸 쓰려면 저 노인네부터 떼어내야 합니다."
"알겠다. 태을진군은 내가 상대하고 있으마."
"고생해서 탈혼수를 끌고 왔는데 제가 막아 버리면 서운하지 않습니까?"
"기회가 어디 오늘뿐이더냐? 아우님이 탈혼수를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천문파나 적건문이 어찌 되든 상관 할 바가 없었다. 단지 멸살급 데빌을 막아 보고 싶을 뿐이다. 이 생각을 혁련광도 같이 느낀 것이다. 생각과 기억의 공유란 썩 달갑지 않지만 일단 눈앞에 귀찮은 존재는 해결하고 난 다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명령을 받은 레더 스컬은 무섭도록 탈혼수에 달라붙었지만 말 그대로 놈의 털끝 하나 손대지 못했다. 털끝이 바늘과 같은 송곳이고 무섭게 움직이고 있는 터라 닿기만 해도 레더 스컬은 부서져 나갔다.
탈혼수가 지나간 곳에 레더 스컬의 조각난 몸이 수북이 쌓일 정도다. 태을진군은 번천인을 날리다가 갑자기 날아든 혁련광과 어울렸다. 혁련광은 거세게 태을진군을 몰아붙여 탈혼수로부터 떨어뜨렸다.
"3023, 지금 가진 에테르의 반을 사용해서 디멘션 아크 입자포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지?"
【가능한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디멘션 아크 입자포의 사용은 권고하지 않습니다】
"그것 말고 저 녀석을 멈출 방법이 있나?"
【시간을 들이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데빌의 발부터 공략을 시작하면 멈출 수 있습니다】
"저 녀석 발이 몇 개야? 칼날 같은 털 때문에 스페이스 커터도 제대로 안 먹히는데 어떻게 발을 잘라 낼 수 있나?"
【만약 여기서 보유 에테르의 반을 사용하면 폭심 지점을 기준으로 반경 10km는 재가 되어 사라집니다】
"그 정도야? 반은 너무 심하군. 그럼 저 녀석 날릴 정도만 사용하자."
【알겠습니다. 데빌의 머리를 노리는 편이 가장 효율이 높습니다】
"좋아. 그럼 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자."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아크 입자포는 아무 때나 쉽게 쏘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원 에너지를 고압축할 때 생성되는 아크 에네지를 직진성을 가진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것에는 준비 동작으로 차원 에너지를 압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치열한 난투시에는 사용하기 힘든 기술이다. 나는 북쪽으로 무식하게 올라가고 있는 탈혼수의 거대한 머리통을 노려 보고 있었다. 거리는 200m 정도. 탈혼수의 양옆으로 수많은 레더 스컬이 아귀처럼 달라붙고 있다.
내 얼굴 앞 약 1m 지점에 작은 구슬이 생겨났다. 그것은 차원 에너지가 고압축으로 뭉쳐질 때 발생하는 아크 에너지다. 전구와 같이 밝은 빛을 뿌리는 작은 구슬은 점점 덩치를 불려 간다.
이렇게 에너지를 집약시키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난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란 것이다.
빛 덩이는 점점 커졌다. 저번에 네크로폴리탄에서 재앙급 데빌을 잡을 때는 야구공보다 조금 더 컸던가 그랬었지. 지금은 벌써 농구공 크기로 커졌다.
"사부. 아우가 좀처럼 보기 힘든 기술을 사용하려 하니 잠시 싸움을 멈추고 구경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부가 쩔쩔매는 탈혼수를 아우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봅시다."
혁련광은 불타오르는 화룡도를 내리고 공중을 향해 소리쳤다.
태을진군이 고개를 들어 탈혼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거대한 빛줄기 하나가 일직 선상으로 날아가더니 탈혼수의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갔다.
탈혼수의 머리통이 수박 터지듯이 부풀어 오르며 터져 올랐다. 그리고 거대한 탈혼수의 몸체는 서서히 옆으로 기울더니 큰 소리를 내며 쓰러져 버렸다.
"뭐냐? 이거 쉽네. 한 방으로 깔끔하게 끝나네. 괜한 걱정을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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