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혁련광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길. 아 그전에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그 여식이 천문파 천수진인의 무남독녀라는 걸 말씀해 드려야겠네요."
"웃"
둘 다 휘청했다. 머리 위 뿔의 진동이 통제되지 않는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몰랐다.
"3023, 뿔이 갑자기 왜 이렇게 진동하며 떨리는 거지, 이거 머리통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아."
【같은 능력을 갖춘 혁련광을 만나 스스로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공명이고 뭐고 간에 이걸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혁련광도 모영을 잡아채고 있다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와 혁련광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변신하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뿔이 솟고 난 다음부터 이 지경이다.
지금 상태에서 이블스 폼을 풀지 못한다. 혁련광은 화가 날대로 화가 나 있어 정말 제대로 공격을 해 오면 이블스 폼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다. 요행히 스페이스 커터로 상처를 낼 수 있었지만, 그때뿐이다.
한번 경험한 천마는 분명히 스페이스 커터를 피해낼 것이다. 왜 한 번에 목을 베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왠지 난 저 천마 혁련광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기도 죽이니 마니 하면서도 정확한 공격은 가하지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내 능력을 가늠해 볼 심산으로 손을 쓴 거였다. 제대로 독한 마음을 가지고 덤빈다면 데빌 폼으로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이젠 대갈통이 다 흔들린다. 뿔이 거세게 반항하는 것 같다. 그동안 태을진군은 혼자 탈혼수의 머리를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고 천둥이는 혁련광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으나 덤비지 않고 있다.
【분석 완료. 공명 일체를 하면 가라앉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뇌까지 흔들려 둘 다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첫 방법이 무엇이지? 내가 이블스 폼을 풀면 어떻게 되나?"
【한 번 시작된 공명은 해결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어렵소. 이젠 정말 끝이란 말인가? 아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 미친 그럼 공명은 어떻게 해결하는데?"
【서로의 뿔을 맞대고 공명 진동 계수를 맞춰야 합니다】
"이런 개 미친 천마가 어지간히 그러려고 하겠다. 이건 미친 짓이야."
그래도 뿔의 진동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정말 이대로 잘못 하다가는 뇌가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두개골 속에서 죽처럼 뇌가 녹아내리면 힐링 팩터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나는 천마 앞으로 날아내렸다.
"저기 이보슈, 뿔이 심하게 진동하지 않습니까?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
"지금 우리 둘 다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 뿔의 진동을 멈추지 않으면 둘 다 죽습니다. 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요?"
나는 천마가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 그도 이 뿔의 진동을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모영을 잡고도 다른 행동은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뿔이 제대로 상대를 만나서 공명 현상을 일으킨 것 같소만. 이것을 해결하려면 서로 뿔을 맞대고 공명을 같게 만들어야 둘 다 내일 태양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그딴 짓으로 목숨을 연명하려 하겠느냐?"
"오늘 뒈져 버리면 명문정파를 멸하겠다고 하는 일이 허투루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살아야 뭐라도 다시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탈혼수가 어디 저 한 마리뿐입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레더 스컬이 모습을 보였다.
"3023, 레더 스컬은 또 왜 이러냐?"
【뿔의 공명에 이끌린 것 같습니다】
"천마나리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자꾸 벌어질 것 같습니다. 눈 딱 감고 해결합시다. 그저 뿔만 한 번 맞대면 끝인데 그걸 못합니까. 한 번만 하고 서로 할 일 다시 합시다. 그럼 되지 않겠습니까?"
"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후후, 조금 전처럼 사람 방심하게 만들어 팔다리를 잘라 내지 않았느냐?"
"아따 팔다리 좀 자른 것을 가지고 마음에 두고 있습니까? 지금 안 하면 둘 다 뒈집니다. 잘 알고 있으시기를···."
"흥, 너 같은 놈과 뿔을 맞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이 새끼가 사람이 부탁하면 정신 차리고 쳐 듣지 웬 객기를 그리 부려?"
"으윽"
먼저 휘청이는 쪽은 천마다. 놈은 모영이를 떨어뜨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휘청했다.
"3023, 나는 참을만 한데 저놈은 왜 저러지?"
【제가 임의로 우리 쪽 공명 진동 계수를 높였습니다. 상대는 참기 힘들 겁니다】
"크크크, 그거 잘했다. 이제 헤딩만 하면 되는 거지?"
【정확하게 양쪽 뿔이 닿아야 합니다】
"씨발, 이거 느낌이 좀 싸한데 꼭 놈 새끼끼리 키스하는 기분이야. 씨발, 더러워 죽겠네. 꼭 이래야만 하나?"
나는 힘차게 혁련광을 향해 폭사했다. 그 와중에 내 움직임을 파악한 혁련광은 고통을 참으며 모영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모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잽싸게 내 쪽으로 튕겨 날아왔다.
나는 모용을 낚아채서 천둥이에게 집어 던졌다.
"그녀를 데리고 물러나라."
지금 엄청나게 모여든 레더 스컬의 유일한 공격 대상이 있다면 모영뿐이다. 맛있는 식사감으로 늘 식욕에 젖어 있는 레더 스컬이 모영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씨발, 그냥 눈 딱 감고 뿔만 한 번 붙이면 그 고통이 멈춘다니까?"
"저, 정말이냐?"
"아니면! 먼저 죽는 쪽이 너야! 나는 네가 죽고 난 다음 뿔만 가져다 대면 되니까."
"크, 할 수 없군."
"왜, 죽기 겁나나? 호언장담하더니 너도 불알이 두 쪽인 모양이구나."
"젊은 놈이 입이 꽤 거칠구나. 이번 일만 해결되면 너는 죽음 목숨이다."
"주둥이 그만 놀리고 뿔이나 맞대자고 형씨."
나는 천마의 어깨를 잡고 뿔을 붙였다.
【공명 진동 계수 일치화 시작합니다】
꼭 대가리에 진동 안마기 붙여 놓은 듯이 머리가 흔들렸다.
【진동 계수 일치. 공명 성공】
갑자기 진동이 확 멈췄다. 그리고
"우웩. 이 새끼가."
순간 방심했다. 천마 혁련광은 노련한 무림인이다. 언제 어느 때든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무림인이란 걸 순간 간과했다.
"어라, 이 뜨끈하고 팔딱 뛰는 것이 무엇인가?"
"켁!"
혁련광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내 심장이다. 늑골 틈을 교묘하게 벌리고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쥔 것이다.
"머리가 개운하다. 어? 움직이지 마라. 네 놈의 심장은 내 손안에 있다."
나는 녀석의 양어깨를 잡고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했지 네 놈은 오늘 반드시 죽여 버릴 거라고 말이야."
"우, 비겁하게 목숨을 구해 줬더니 이런 식으로 갚기냐?"
"너도 살려고 했던 짓 아니었나? 뭐가 됐던 기회를 잡는 쪽이 이기는 거지."
"우엑!"
현력광이 심장을 움켜쥐자 숨이 턱 막혀 왔다.
"오늘 사실 너도 나를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지. 팔다리를 자르지 않고 목을 바로 쳐도 되지 않았나? 너는 나를 죽일 마음이 없었던 게지. 단지 놀고 싶었던 거였어. 그렇지?"
"제길 그때 죽이지 않은 게 후회되는걸."
"그럼 이렇게 하지. 반대로 네가 날 평생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겠다면 심장을 놓아 주겠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터뜨려 버릴 거야."
"협박도 참 이쁘게 하시네요."
"어떡할 것이냐?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느냐? 죽음을 선택 할 것이냐?"
으, 이 새끼 봐라. 이상한 협박을 하는데? 어울려 줘야 하나? 할 수 없지 내 심장을 쥐고 있으니 이건 선택이라고 할 수 없잖아. 강요뿐인 협박이다.
"형님, 하하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냐, 아우야. 그 마음 죽을 때까지 변치 말아라."
혁련광은 두말하지 않았다. 깨끗이 가슴속에 넣은 손을 빼냈다.
【자가 수복 시작합니다】
"아우야. 너는 이름이 어떻게 되냐?"
와, 씨발 이거 장단을 맞춰야 하나 없던 일로 해야 하나 순간 갈등이 오지게 들었다.
"정동혁입니다."
"이름이 특이하구나. 정아우! 헛! 으윽!"
"왁! 이게 뭐야? 으웩!"
머릿속의 뇌가 붕 떴다가 다시 떨어지는 젓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이상한 것이 흘러들어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기억의 소용돌이가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것 같았다.
그 충격은 한참을 맴돌다 겨우 멈췄다.
그리고 머릿속에 뭔가 적립이 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보는 것처럼 장면 장면이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이는 기분이었다.
"3023,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기억의 공유입니다. 뿔이 공명이 이루어지면서 서로의 기억이 공유되는 현상입니다】
"멈출 수 없나?"
【악마의 피로 인한 현상으로 멈출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이 머릿속을 흔들었다.
'정아우도 같은 고통을 받는 건가?'
'어라? 이게 뭡니까?'
'누군가 정아우인가'
'혁련광 천마 당신인가?'
'이놈 형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혁형님이라고 불러야지'
'내 머릿속에서 나가시오.'
'누가 할 소리 너는 어떻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느냐?'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닌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다.
"3023, 우리 둘이 머리가 뒤섞였나 이거 왜 이래?"
'누구한테 하는 질문이냐?'
【공명 현상으로 두 사람은 텔레파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3023, 네 목소리를 천마가 들을 수 있나?"
【혁련광은 제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인가 정아우.'
'텔레파시란 겁니다. 형님하고 저하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해도 상대방은 다 안다는 거지요. 이제 둘 다 거짓말은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텔레파시란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굳이 입을 놔두고 머릿속으로 주절할 필요가 있는가?'
'골치 아프게 됐네요. 이제 서로의 비밀을 모두 공유하게 된 겁니다'
'그렇군, 세상에 이럴 수가 아직 인간의 도시가 있다니!'
'제길 큰일이군. 젠장맞을 들켜 버렸어. 이 사실이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다.'
'어이 동생 다 들린다고.'
'젠장 맞을!'
'이 형님은 생각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야. 이제부터 혁형님이라고 깍듯이 모시지 않으면 동네방네 네 비밀을 까발리고 다닐지도 모르지.'
'아, 이 미친 새끼가.'
'너 나를 새끼라고 불렀지? 지금 태을진군에게 다 이야기해 버린다?'
'아따 형님 왜 이러실까. 다 아시는 분이. 그러는 형님은 사부를 존경하고 있잖소?'
'뭐, 뭣을 존경한단 말이냐? 내가 저 늙은이를 어림없는 소리다.'
'형님 기억을 좀 뒤져 보니 아이구야. 그래서 저 태을진군을 존경하는구려. 목숨도 구해 주었고.'
'됐다. 그만하자. 이제 서로의 비밀은 다 알고 있으니 둘 다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말도록 하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이놈 어린 시절 고생이 만만치 않았구나.'
'형님도 매 마찬가지네요. 그냥 바닥을 슬슬 기어 다녔군요.'
'거기 ITB에 든 술 한 병 꺼내 봐라.'
'와 벌써 ITB도 아셨소?'
나는 ITB에서 최고급 양주 한 병을 꺼냈다.
"술만 말고 술잔도 꺼내야지."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양주 한 병을 까서 술잔에 가득 따랐다. 나는 혁련광이 무얼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기억이 죄다 넘어왔기 때문이다.
태을진군은 탈혼수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고 주변을 가득 메운 것은 레더 스컬뿐인데 이 사람 성격도 참 특이하다.
"특이하긴 뭘 특이해?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이 있다. 자 잔을 들어 올려."
나는 하늘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천마 현련광이 이렇게 외쳤다.
"나 천마 혁련광과 아우 정동혁은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나 그 뜻이 하늘에 닿아 오늘 이후 의형제로서의 정을 맺으려 하니 산천초목이 이를 지켜 보고 하늘의 상제께서 듣고 계시니 형제의 깊은 정은 죽는 날까지 지속할 것이다."
천마 혁련광은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 잔을 마시지 않으면 너무 슬퍼할 것 같고 또 서로 모든 비밀을 안 상태에서 천마를 적으로 돌리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나도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근데 오늘 분위기가 그런지 술이 참 달다.
- 작가의말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어떤분이 추천을 해 주셨네요.
아이고 포기 먹고 그냥 휘갈기는 글에 추천을 해 주시다니 ㅠㅠ..
배운다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이왕 이까지 온 것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꾸벅.
근데 정말 추천할 만한 글은 되나요?
나름 걱정 걱정..ㅠㅠ..
그리고 후원해 주신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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