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생각
탈혼수는 천마의 휘파람에 이끌려 북쪽 그러니까 산시성을 향했다.
태을진군은 그런 탈혼수의 방향을 다시 바꾸기 위해 번천인으로 탈혼수의 관심을 끌려 했다. 하지만 내가 탈혼수의 뒤통수에 올라타고 있으니 솔직히 방해되어 마음 놓고 번천인을 쏠 수 없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멸살급 데빌을 잡아 보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서로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세 사람은 각자 탈혼수에 매달렸다.
참다못해 별운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놈의 뒤통수를 겨냥했다. 움직임도 크지 않고 워낙 크다 보니 전체가 다 표적인 셈이다.
별운검에 마장기와 역장 에너지 둘 다를 넉넉히 올렸다. 베지 못하는 것이 없는 스페이스 커터 과연 멸살급 데빌의 몸체에 상처를 낼 수 있을까?
검은 우아하게 좌에서 우로 곡선을 그렸고 그 곡선에 따라 공간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잘렸다.
-쿠아아아
처음으로 탈혼수가 발광을 했다. 고개를 번쩍 지켜 들더니 그 거대한 입을 벌리고 포효를 내질렀다.
"역시 스페이스 커터 앞에서는 안 잘리는 게 없구나. 다만···."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스페이스 커터가 들어가는 상처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스페이스 커터로 잘라 낼 수 있는 상처의 크기는 최대치로 잡아도 2m 조금 안 된다. 그리고 자르기 전용이라 깊은 곳까지 상처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못 자르는 것이 없다. 뒤통수에 상처를 입은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저 번천인을 직격당하고도 흔들림이 없던 놈이 스페이스 커터에 이리 큰 반응을 보일 줄이야.
신나게 2타 3타 연이어 스페이스 커터를 날렸다. 마장기가 담겨 있어 원래보다 훨씬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천마가 휘파람을 불었지만, 녀석은 등 뒤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나를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내가 계속 스페이스 커터를 날리자 놈은 참다못해 몸을 굴렸다.
"왓!"
깔리지 않으려면 놈에서 내려와야 했다. 쉴드를 발판 삼아 힘차게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와중에서도 멈추지 않고 놈의 뽀안 뱃살에 스페이스 커터 한 방을 먹였다.
하얀 배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생겨났다. 아쉽게도 상처가 깊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저놈 도대체 보패가 몇 개냐? 이러고도 저놈이 곤륜선인의 공동제자가 아니라고 우길 겁니까?"
"내가 쓸데없이 네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무엇이냐? 저놈의 정체는 나도 궁금하다."
태을진군의 말에 혁련광은 떨어져 내리는 나를 바라봤다.
"저놈이 누구이든 간에 저놈부터 없애야겠군."
혁련광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몸을 까뒤집고 등을 땅에 짓이겨 대는 탈혼수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 녀석을 막을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공기의 떨림이 느껴졌다. 즉시 오른쪽으로 쉴드를 올렸다.
-쾅
쉴드가 전개되자마자 무서운 소음이 귀를 울렸다. 혁련광이 파천수라장을 날린 것이다.
"흥, 그놈의 보패를 어찌하지 않고서는 네놈을 잡을 수가 없겠구나."
"저놈을 한번 잡아 보려 하는데 자꾸 방해하면 땅을 기게 만들어 버리겠소."
내 말을 잠시 듣던 혁련광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정말 놀랄 일이다. 나 혁련광을 기게 하겠다고? 오냐 네 말이 정말이라면 오늘 이후부터 네 놈을 형님으로 받들며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으하하. 내 평생 살다 보니 오늘같이 우스운 이야기는 처음 듣는구나."
천마와 이야기 하는 사이 별운검에 역장 에너지를 올렸다. 마장기와 함께 올리면 녀석이 눈치챌 것이 분명하니 역장 에너지만 올렸더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도박이라면 도박이다. 과연 스페이스 커터가 천마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을까? 멸살급 데빌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다면 천마도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언노운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고 통계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지금 실험해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공격 자세를 잡는 척하며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냥저냥 평범한 자세.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단지 들어 올리는 엉성한 자세.
혁련광은 그저 내가 자세를 바로잡는 줄 알고 얼굴 만면에 웃음을 가득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웃는 것을 보고 그는 인상을 구기며 휘청했다. 두 다리가 무릎 위로 완전히 잘려나갔다.
그의 신형은 무너졌고 양팔은 땅을 짚기 위해 뻗었다.
-사각
두 번째 스페이스 커터가 천마의 양팔을 잘랐다. 잘려진 양팔이 저만치 튕겨 나갔다.
"얼른 붙여야 할거요. 어서 기어가서 팔과 다리를 붙이시오."
그 모습을 보고 태을진군이 경악에 찬 신음을 흘렸다. 두 눈 뜨고 보고 있어도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천하에서 천마의 양다리와 팔을 단번에 베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스승인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저 청년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태을진군은 아직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마는 천마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순간 이성을 잃었던 천마는 갑자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얍!"
그가 호기롭게 기합을 내지르자 나가떨어져 있던 팔다리가 마장기로 이어지며 끌어당겨 졌다.
"약속은 지켜서야지"
나는 딸려 가는 팔 두 쪽을 두 발로 밟고 눌렀다.
"자, 어서 기어 와서 팔을 붙이시오. 만약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두 팔이 없는 병신으로 살지도 모릅니다."
나는 별운검을 세워 팔을 반으로 가르는 시늉을 했다.
어느새 양발을 붙인 혁련광은 이글이글하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꼼짝하지 않았다.
"어서, 기어봐요. 어서. 아니면. 아니 씨펄 저 영감탱이가!"
기회다 싶었는지 태을진군이 번천인으로 천마를 후려쳤다. 푸른 낙뢰가 하늘에서 수직으로 하강했고 그 순간 천마의 몸 위로 쉴드를 전개했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를 때린 푸른 번개는 다시 허공으로 되 튕겨 나갔다.
"어라? 이거 다른 대상에게도 쉴드를 펼쳐 줄 수가 있었네. 오늘 처음 알았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천마 위에 리엑티브 펄스 쉴드를 펼쳤는지 알 수 없었다. 태을진군이 공격했을 순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천마의 몸 위에 쉴드를 펼쳤다.
-팟
그 기회를 천마가 놓칠 리 없다. 이미 두 발에 마장기를 가득 모으고 있던 천마를 땅을 차고 그대로 날아왔다. 너무 가까운 거리고 푸른 번개의 화염을 막아 내느라 잠시 눈을 깜빡인 그 틈을 노렸다.
"익!"
천마의 박치기가 내 가슴에 적중했고 나는 뒤로 튕겨 나갔다. 가슴에 구멍이 두 개 뻥 뚫렸는데 바로 천마의 뿔에 의한 상처였다.
【즉시 자가 수복 절차 시행합니다】
고통은 좀 있었으나 큰 상처는 아니다. 천마의 뿔은 산양처럼 둥글게 말려 있었기에 깊은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천마는 팔을 붙이고 재빨리 네게서 멀어졌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공포감을 느꼈다.
【혁련광의 혈액 분석 들어갑니다】
혁련광이 나와 부딪힐 때 잘린 팔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나에게 튀었기 때문에 언노운은 어렵지 않게 천마의 피를 잔뜩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기지 않았다."
천마는 당당하게 그 소리를 먼저 내 질렸다.
"흥, 나도 당신 같은 동생은 취미가 없으니 비긴 거로 합시다."
태을진군은 부들부들했다. 천마를 격살시킬 최고의 기회를 내가 방해한 것이다.
태을진군도 하늘에서 내려섰다.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탈혼수는 아직도 배를 까뒤집고 등을 문질러 대면서 발광을 하고 있다.
"저놈을 왜 구해 주었나? 인제 보니 천마와 연이 있는 자가 아니더냐?"
"노인장 그러면 내가 왜 천마의 양발과 양팔을 잘랐겠소? 이게 쇼인 것처럼 보입니까?"
천마는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자신의 양손 발을 자른 비기에 매우 놀랐고 또 태을진군으로부터 지켜 주었으니.
"두 사람이 여기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시구려. 나는 저 데빌을 가지고 놀 테니."
하지만 태을진군과 천마는 데빌이라는 단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탈혼수라고 이름까지 붙여 놓은 것을 보면 한두 번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저 녀석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탈혼수 쪽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그때 태을진군과 천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언노운이 말했다.
【혁련광은 악마의 피를 가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저놈은 나와 같은 피를 가졌군."
"무엇이? 악마의 자식이 세상이 둘이나?"
혁련광이 나를 돌아봤다. 그는 자신의 뿔에 묻은 내 피를 만지작거리더니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의미하듯 입술을 할짝댔다.
"네놈 본모습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구나. 어디서 그런 보패들 잔뜩 만들었지? 너는 누구냐?"
"보패는 함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마사 통틀어 여섯 개뿐이거늘."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보패라고 부르는 것은 보패가 아니고 과학의 산물입니다. 보패와 전혀 상관없으니 다시는 보패라고 말하지 마시오. 악마의 피를 가지고 멀쩡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
"너희 두 사람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놈들이야."
그때였다. 좌측에서 무언가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알 정도면 이 두 사람도 알고 있다는 소리다.
천둥이! 그리고 천둥이 위에는 흑모란 모영이 타고 있었다.
내 인상이 썩은 물을 마신 것처럼 구겨졌다. 지금 같이 첨예의 날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불청객이라니. 그냥 그곳에 가만히 있으랬더니 왜 이곳에 와서는···.
천마 혁련광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똥 씹은 내 표정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천둥이와 모영을 보고 입에 짙은 비소를 가득 떠 올렸다. 나는 저놈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한 번에 알 것 같았다.
"물러나! 오지맛!"
내가 고함을 쳤으나 천마는 더 빨랐다. 모영은 모르겠으나 천둥이는 천마의 파천수라장 한 방이면 끝장날 것이다. 놈을 따라잡아야 한다.
"이블스 폼으로 전환"
나는 마장기를 끌어 올리며 날았다. 태을진군은 내 이마에서 솟아나는 기다란 뿔을 보며 경악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네, 네 녀석은! 손혁기."
나는 그 소리를 더 들을 수 없었다. 천마의 뒤를 따라 총알과 같은 스피드로 날았다. 그러나 천마가 훨씬 더 빨리 움직였다. 천마도 나와 같은 이블스 폼인 상태였고 신체 능력도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빠르므로 이 속도에서는 스페이스 커터도 반월륜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스피드 대결. 내 신체는 한계점에 가까워져 갔고 이블스 폼이 수초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그 몇 초간의 차이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거리를 만들어 낸다.
'늦었다'
천마는 이미 천둥이에 근접해 버렸고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천마는 천둥이의 바로 앞에서 수직으로 몸을 띄웠다. 나는 천둥이 앞에서 멈췄다.
온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흥, 이제야 본 모습을 보였군. 형제."
"크, 나를 유도하려고 일부러 공격하는 척했군."
"네 놈은 그 피를 어디서···"
"네 놈은 그 피를 어디서···"
둘 다 동시에 그 말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천마의 피를 가진 놈이 또 있을 줄이야. 어쩐지 그 능력의 깊이를 알 수 없더라니. 너는 이 세상의 인물이 아니구나. 수많은 보패를 마음 놓고 다스리는 것을 보니 다른 세상에서 온 놈이렷다?"
나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뿔이 울리는 마치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천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뿔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천마의 뿔은 산양처럼 생겼지만 나는 이마에서 하늘로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형상이다.
천둥이도 그렇고 천둥이 위에 탄 모영도 이 분위기와 압도적인 패기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태을진군이 날아내렸다.
"너는 손혁기와 무슨 사이더냐?"
"손혁기? 나는 모르는 사람이오."
그때 탈혼수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북쪽을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태을진군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그는 내 모습을 아래위로 살펴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탈혼수 쪽으로 날았다.
난 입에 마장기를 모으고 힘차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대한 소리의 공명에 천둥이와 모영이 비명을 질렀고 모영은 검붉은 피를 왈칵 쏟아 냈다.
그리고 탈혼수는 내 휘파람 소리에 몸체를 바로 틀었다.
천마의 얼굴이 또 한 번 심하게 일그러졌다.
"천둥아, 이놈 거기 있으랬더니 어찌 이곳에 왔느냐? 어서 모용 누님을 데리고 피해."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마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번개같이 천둥이 위에 올라탄 모영이를 낚아챘다.
"이 계집이 네 계집인가 보군."
"흥, 무슨 실 없는 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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