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천견
나는 마장기로 몸을 누르고 있었다. 기력으로 누르고 초월한 근육의 힘으로 버틴다. 이러면 하중이 몇 톤은 우습게 걸린다.
한데 효천견은 그런 나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녀석이 A 레벨이라 장난삼아 놀아 주려고 했던 건데 생각한 것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으왓!"
녀석의 주둥이를 양팔로 잡고 있던 나는 기겁을 했다. 주둥이 안에서 샛노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언노운이 즉시 인셉션 필드를 펼쳤다. 나는 녀석의 주둥이를 잡은 손을 놓는 동시에 녀석의 가슴을 걷어차고 그 반동으로 오른편으로 뛰어내렸다.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화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굴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녀석이 뿜어낸 거였다. 화염을 정통으로 맞은 동굴 벽의 바위가 용암처럼 흘러 내렸다.
낮게 으르렁거리며 나를 쏘아보는 눈빛이 허공에 떠 있는 도깨비불처럼 보였다.
"이놈 귀여워서 놀아 주려 했는데 그렇게 거칠게 나오면 곤란하지."
마장기를 발에 올리고 땅을 찼다. 몸이 공간을 빠르게 자르며 쏘아져 나갔다. 확실히 마장기를 사용하니 그 위력이 수배 아니 수십 배는 증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속도는 데빌의 속도를 확실히 능가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효천견의 오른쪽으로 붙은 나는 주먹에 마장기를 끌어 올려 후려쳤다.
-깽
녀석은 주먹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눈앞에서 적의 형체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줄 차례다. 나는 머리를 털고 일어나는 효천견의 뒷통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놈은 첫 번째 공격에 시야에서 나를 놓쳤다. 그 순간 이미 나는 녀석의 머리 위로 치솟아 올랐다가 수직 떨어져 내리며 양손에 마장기를 끌어 올렸다.
효천견은 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기척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쇄심장을 가득 담은 쌍장이 놈의 뒷덜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퍽
묵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효천견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효천견이 아무리 레벨 영역을 벗어난다 한들 재앙급 데빌의 힘을 버틸 수는 없다. 더욱이 여긴 A 레벨 던전이다. 극악의 확률로 리젠 되는 보스 몬스터이긴 하다만은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재앙급 데빌이 쇄심장을 사용해 공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 따위가 견딜만한 급이 아니었다.
녀석은 서서히 분해 되기 시작하더니 공간 속으로 빨려 지듯이 사라져 갔다.
"얼래? 이건 또 무슨 조화냐?"
보통 던전에서 사냥한 몬스터는 다음 리젠까지 시체를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효천견은 공기 속으로 분해대 듯 거대한 몸체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뭔가 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는데 그건 주먹만 한 강아지였다.
녀석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 발에 얼굴을 비비고 꼬리를 풍차처럼 뱅뱅 돌리고 있다.
"아이고야. 이게 뭐지?"
나는 녀석이 너무 귀여워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 올라갈 정도로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개였다. 얼마나 귀여운지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세상에 개는 없다. 아니지 있긴 있다. 데몬과 결합한 레서 데몬이 있긴 하지. 불행히도 녀석들은 이렇게 귀엽게 생기질 못했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귀여웠다. 나는 녀석을 보듬어 앉고 주변을 살폈다.
"효천견이 무얼 드랍했을까? 고정 드랍이라고 했는데?"
나는 주변을 살폈지만, 어떤 아이템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이 3023, 주변을 검색해봐. 왜 녀석이 아이템을 주지 않는 거지?"
【주변에 별다른 특이점은 없습니다. 지금 안고 있는 강아지가 고유 드랍 아이템으로 분석됩니다】
"에? 이 강아지가 고유 드랍 아이템이라고?"
나는 품 안에 있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아이고야. 이건 짐인데? 이 녀석을 어찌하나?"
【일종의 펫 같습니다】
나는 품 안에서 뽀짝뽀짝 되는 녀석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태어나서 그림책 이외에 실제로 강아지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 세계에 동물은 전멸해서 단 한 마리도 없다. 하물며 하늘을 나는 새조차 아니 세상이 멸망해도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바퀴벌레 한 마리조차 없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있는 강아지라니 말도 안 되게 귀엽잖아. 짐이 되든 뭐든 간에 일단 귀여우므로 모든 단점이 사라져 보일 정도였다.
"녀석을 키워야 할 것 같군. 정아에게 주면 기절할 듯이 좋아 할 텐데. 아쉬워."
녀석을 ITB에 넣으면 불쌍할 것 같아서 일단 주머니에 넣고 움직였다.
미궁을 나오는데 몬스터가 나오면 이놈이 주머니 안에서 낑낑댄다. 반월륜으로 몬스터를 쓸면서 갔는데 주머니 안에서 하도 보채길래 바닥에 내려놨다.
"녀석 이름을 하나 지어 줘야겠는데.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이놈 모체가 효천견이라고 했으니 녀석도 효천견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효천견이라는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았다. 효천견이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개라는 뜻이다.
"효천견이니 뭐니 복잡한 이름 말고 그냥 천둥이라고 불러야겠다. 하하. 앞으로 네 이름은 천둥이다. 천둥이."
내가 움직이자 천둥이가 빨빨거리며 따라서 오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절로 웃음이 났다.
주먹만 한 것이 몬스터를 만나면 으르렁거리는데 기도 안 찬다.
"천둥아 이리 와라! 이리 와."
내가 부르자 녀석은 빨빨거리며 달려오더니 내가 내민 손안으로 휙 뛰어들었다.
"엇?"
녀석이 내가 내민 손 안쪽 그러니까 소맷자락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 순간 감쪽같이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
"어,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소맷자락 안으로 공간 왜곡이 검출됩니다. 효천견이 소맷자락 안에 새로운 차원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소맷자락 안에 제집을 만들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잘됐네. ITB에 넣으려니 살아있는 생물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저 스스로 차원 공간을 만들어 들어가 버리네. 잘 됐어."
【한가지 검색된 데이터에 의하면 천수진인의 천수현음금과 동일한 파장이 효천견에서 발산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뭐랬더라? 보패라고 말하지 않았나? 설마? 그건 그냥 아이템이고 천둥이는 살아있는 생명체인데 생명체에서 천수현음금과 같은 파장이 나온다고?"
【파장 일치율이 98%에 이릅니다. 구성 인자는 달라도 능력은 거의 같습니다】
"에? 이 쪼그마한 게 무슨 능력이 있나? 아니지 차원 공간을 만드는 거로 봐서 능력이 더 있지 않을까? 이 녀석 사람 아주 궁금하게 만드네. 그럼 이 녀석이 살아있는 보패라고 된다는 거냐?"
나는 소매를 툴툴 털었다.
"이거 다시 불러내려면 어떻게 하지? 천둥아, 천둥아. 야 천둥아."
그때 소맷자락에서 천둥이가 쑥 튀어나왔다.
"옳지, 아이고 귀여운 녀석. 어라?"
조금 커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 내 주먹만 했는데 어찌 지금 보니 살짝 커진 것 같았다.
"이 녀석 지금 커졌지?"
【차원 공간에 들어가기 전보다 1.5배 정도 커졌습니다】
"이 녀석 내가 패 죽인 모체 정도로 커지는 걸까? 이놈이 보패라고? 에이 설마? 모체는 허약 그 자체인데? 그냥 애완견 정도겠지."
나는 천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귀여운 펫을 만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천둥아 들어가 소맷자락으로 들어가."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바로 소맷자락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쩌다 들어온 던전에서 완전 횡재 했네. 하하."
상처도 완전히 치유했고 마장기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던전을 나서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제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 천문파 녀석들이 나를 천마인지 무언 지로 착각하고 원수처럼 덤벼들 테니."
일단 천문파의 본거지인 산시성을 벗어 나는 좋을 것 같았다. 천문파 본거지를 그따위로 만들고 도망치듯 나왔으니 그 오해는 쉽게 풀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루트를 잡고 천천히 이동했다.
"천둥아 가서 물어."
요즘 지도 넓히는 재미와 천둥이 키우는 재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천둥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서 이제 덩치가 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며칠 전 처음으로 몬스터를 사냥한 이래 지속해서 몬스터 잡았다.
지금은 덩치가 큰 수호랑이 정도 된다. 이제 레서 데몬과 맞짱 뜰 정도였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녀석의 능력에 감탄사를 발했다.
주먹만 하던 녀석이 며칠 사이 저렇게 커 버렸으니 모체와 상당히 닮아 있는 모습이다. 검은빛 짧은 털이 어찌나 윤기 흐르는지 시커먼 놈이 성큼성큼 움직이는데 이제 귀여움보다는 당당한 야수의 힘이 느껴졌다.
그동안 녀석이 가진 능력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녀석은 초고열의 화염을 뿜을 수 있고 달리는 속도 또한 발군이었다. 물론 내 속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갈수록 스피드가 빨라 지는 것이 조만간 나하고 보조를 맞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냥 실력도 발군이라 한 번 경험한 몬스터는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바로 깨우칠 정도였고 지금은 보스급 아니라면 레서 데몬까지는 충분히 사냥 가능했다.
지도를 보니 산시성 타이위엔시에서 시안시 쪽으로 거의 다 내려온 상태였다. 지도상 5시 방향의 호북성에는 무당파가 있고 7시 방향은 쓰촨성인데 이곳을 기점으로 저쪽 세계의 침습 정도가 가장 강한 중심 지역이다
지도를 더 밝혀 봐야겠지만 무당파보다는 악마종이 있는 쓰촨성이 더 끌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의 악마종은 어떤지 경험해 보는 것도 좋고 당분간 천문파의 추적에서 벗어나려면 쓰촨성이 훨씬 안성맞춤이었다.
쓰찬성을 통해 남쪽으로 이동해 마교와 접촉하는 것으로 일단 목표로 잡았다.
홀로 다니는 것보다 옆에 천둥이가 있으니 훨씬 덜 심심했다. 천둥이 키우는 재미도 있고 녀석이 사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완전히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내 명령은 철석같이 따랐다.
이곳까지는 오면서 천문파 사람과 한 번도 부딪치지 않았다. 언노운의 검색 범위에 마인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 있으면 시안시에 가까워져 간다. 이곳은 대부분 옛날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기에 언노운이 펼쳐준 과거 중국 지도와 거의 일치했다.
물론 침습 당한 부분은 새로 지도를 작성해야 하지만 과거의 도시들은 대부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곳이기에 침습을 당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확실했다.
우리 쪽에서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만큼 넓은 땅이라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시안시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약한 종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강한 놈들만 살아남았다.
중국은 우리처럼 던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요괴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라 던전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마장기를 사용함으로써 요괴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으므로 길가에 요괴가 넘쳐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마장기 수련을 위한 아주 적절한 도구로 이용할 정도다.
남쪽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의 능력이 대폭 증가 되었다. 이곳에는 고블린이나 코볼트 따위의 저급 몬스터는 아예 없다.
상급에 가까운 몬스터가 많았고 토착 생물과 결합한 레서 데몬류가 대부분이었다.
천둥이와 시안시에 들어왔는데 도시 내 몬스터 개체수가 상당히 적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개체 수가 적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누가 지속해서 토벌하던지 어떤 상위 종 하나가 이 지역을 휘어잡고 있던지.
나는 시안시를 둘러보다 적당한 건물로 들어갔다.
날도 저물었겠다 쉴 곳을 찾아 들어온 거다. 귀찮은 것을 피하려면 될 수 있는 한 고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 몬스터도 고층까지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천둥이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먹는 것도 아니다. 녀석은 오직 엘리시움 광석만 으깨 먹는다. 광석을 빠삭빠삭 부숴 먹는 것을 보면 저게 뱃속으로 들어가서 소화가 되는지 아니면 다른 작용을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녀석은 엘리시움 광석에 포함된 에테르를 흡수하기 위해 엘리시움을 먹는다고 언노운이 말하긴 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이렇게 천둥이가 있으니 덜 외롭고 덜 심심하다. 녀석은 쉴때는 언제나 내 소맷자락 속 자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불러내지 않는 한 잘 나오지 않는다.
아침이 되어 잠자리를 정리하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언노운이 이어링을 통해 신호음을 보내 왔다.
그건 마인이 포착되었다는 신호였다. 시안시에 무림인이 들어왔나 보다. 천문파일까? 아니면 다른 문파일까? 점등을 보는데 뭔가 살짝 이상하다.
앞서가고 있는 것이 세 명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두 번째 다섯 명이 그 세 명을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슬슬 사람이 그리웠는데 사람 구경이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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