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을 손에 넣다
주변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내가 연락을 취해 동쪽에서 연합이 위쪽에서는 자치령이 빠르게 악마종을 정리해 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쇼크웨이브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악마종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건물이나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마인이 악마종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나는 변신한 김에 수고스럽지만,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반월륜은 언노운에게 맡기고 별운검을 뽑아 들고 쇼크웨이브 주변으로 몰려드는 악마종을 도살했다.
베고 또 베고 주변에 발대들 틈 없이 시체가 쌓여 갔다. 이미 온몸은 피에 절었고 움직여 댈 때마다 빗속을 움직이는 것처럼 질퍽질퍽했다. 얼마나 베었는지 모를 정도로 한참을 뛰어다녔다.
대충 놈들이 다 쓰러져갔을 때 쇼크웨이브를 집어넣었다. 내 주변으로 진짜 어마어마한 시체의 산이 쌓여 있었다.
마인이 하나둘 내 앞으로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악마종으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 정상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푸른 바다 만큼 파랬다. 주변으로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많은 마인이 언제 나타났는지 내 주변으로 꾸역꾸역 몰려나왔다.
그들은 악마의 가면을 쓰고 머리에 뿔이 솟은 이상한 인간을 보고 있다. 한 손에 든 별운검이 햇빛을 반사 시키며 자신의 몸을 반짝였다.
끝났군.
"3023, 악마화 해제."
몸에서 뜨거운 바람이 빠지는 기분이 들면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솟은 뿔도 꼼지락거리는 기분과 함께 다시 가라앉는다. 진짜로 이 느낌은 정말 지랄 같다.
온몸이 완전히 가라앉는데 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별운검을 검집에 넣고 물컹거리는 시체의 산을 내려왔다.
"형님 이거."
김광호가 내 앞에 내민 것은 잘린 아크 데몬의 머리통이었다. 놈의 까뒤집어진 눈동자가 흉측해 보인다.
그래도 김동희 박사에게 줄 좋은 샘플이 될 수 있으니까 일단 받아 챙겼다.
김광호는 나이 사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나를 무슨 까다로운 두목 모시듯이 벌벌 떤다. 하긴 그 정도 무위를 보인데다 얼굴에 악마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두려움을 느낄 만도 하지.
"어제오늘 고생했다. 주변 정리하고 애들 숫자 파악해라. 고생들 많았다."
"알겠습니다."
김광호는 나에게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솔직히 이렇게 나오니 살짝 미안한 기분도 든다. 지들도 다 환경에 적응하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자치령과 연합의 팀도 잔당을 완전히 제거하고 철수한다는 소리가 이어링을 통해 들려왔다.
며칠 바쁘게 움직였다. 김동희 박사에게 영상과 샘플을 함께 넘겼다. 새로운 종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이지. 아크 데몬과 그 전투력에 관한 영상은 삼대 길드 수장에게 다 넘어갔다.
김동희 박사는 아크 데몬 보다 오히려 나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할 수 없이 또 피를 뽑아 주긴 했지만.
영상은 조용히 묻혔다. 극비로 분류되었고 각 길드 핵심 인물들만 참고하고 끝났다.
삼대 길드는 내 능력에 대해 아무래도 심각한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제껏 볼 수 없는 돌연변이 그 이상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우군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무서운 속도로 커가는 내 힘을 견제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수긍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인지 알 수 없다. 장인어른의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는 언제나 잘해 주지만 다른 두 길드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대한다.
한날은 주두의 십자가 김의천 추기경에게 불려갔다. 말이 초청이었지 초청이 아니고 실험 대상으로 불려간 거였다. 그들은 내게 성수를 마시게 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러쿵저러쿵 뭐라고 말은 돌려 하지만 그들은 내 힘이 악마의 힘이라고 어느 정도는 추측하는 모양이다.
다만 내 정신은 항상 멀쩡하고 그들이 몇 가지 준비한 테스트도 문제없이 깨끗이 통과했다.
김의천 추기경은 내게 힘에 대한 책임론을 강조하며 이모탈 시티를 위해 힘써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의천 추기경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목적은 악마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인간이 믿던 말도 안 되는 종교적 산물인 악마와 차원 침습으로부터 건너온 악마들을 동격시 한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종으로 분류하지만, 과거 인간이 신화나 종교상의 악마와 같은 취급은 하지는 않는다. 엄연히 종족의 하나로 구분한다. 악마종은 악마종이지 신화 속 악마는 아니니까.
아 물론 이들은 내가 마인임을 아직 모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악마의 피를 이은 거지만. 그리고 박정아도 최우신 팀도 모두 변신에는 이블 페이스를 착용하기 때문에 마인의 특징인 붉은 오라가 보이지 않는다.
정아야 마인이 싫다면서 그날 이후 한 번도 변신하지 않았으니까. 이모탈 시티 대부분 사람은 이제 마인이라는 존재와 상당히 가까워졌고 불사의 회람 지점을 통해 그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일 뿐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마인이 가진 힘일 뿐이다. 그 힘을 어떻게 휘두를까 하여 걱정하는 것이지 그들이 뭐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인이든 악마종이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온다면 똑같은 적일 뿐이니까.
"형님 오셨습니까?"
"잘 정리되었나?"
"덕분입니다."
반군에 들러 주변을 살폈다. 도시의 시체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시체 청소부들이 벌써 도로 위 피 한 방울까지 깔끔히 치운 모양이다.
김광호는 인상이 우락부락하고 성질 꽤나 부리게 생겼지만, 그날의 공포를 잊지 않은 것인지 나를 사신 보듯 했다. 지금도 이블 페이스를 얼굴에 쓰고 있다. 괜한 오해를 피하고자.
녀석들도 다 같은 마인이고 밉상 짓을 해대서 혼을 내주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많은 인원이 죽을 줄은 나도 예측 밖이었다. 아크 데몬이 딸려 올 줄 어떻게 알았는가.
언제 또 그런 놈이 오지 않을지. 이제 우리는 대비 해야 한다. 놈은 재앙급 데빌 이상으로 멸살급 데빌 등급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이곳에 나타난 데빌 중에 멸살급은 단 한 번 그때는 연합과 자치령이 갈리기 전이었고 수백 명의 마인이 죽어 나갔던 사건이었다고 이현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 그놈은 마인을 벌레 취급하듯이 짓밟았다. 그 정도 능력이면 대비한다고 대비가 되는 괴물이 아니다. 이건 심각한 레벨의 문젯거리였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잠시 멍하게 있자 김광호는 안절부절못한다.
"이봐,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네, 물론입니다. 자리 좀 옮기시겠습니까?"
녀석은 내가 가진 힘을 눈앞에서 봤고 그 무시무시함이 머릿속에 아직 공포로 남아 있었다.
마인를 종이 찢듯 찢어대는 아크 데몬에게 죽기 직전까지 갔었고 나 때문에 살아났으니 솔직히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고.
김광호는 새로 마련한 거처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모릅니다. 연합과 자치령에 관계된 인물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나 이모탈 시티 불사의 회람 회장일세."
"네?"
김광호는 입이 떡 벌어지며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상상이 안 가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의 단체인 이모탈 시티에서 그런 괴물이 살고 있을 줄이야.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날 정도였다.
"그동안 반군이 이모탈 시티에서 행패를 꽤 부렸다고 들었어."
"네, 그것은!"
"왜 이모탈 시티에 있는 GHB를 가지기 위해 그리 안달을 했나?"
김광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오늘 자신들의 죄를 묻기 위해 작정을 하고 온 거로 생각했다. 잘못해서 이분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답이 나온다. 연합과 자치령에 진출하고 지점도 막 열고 이모탈 시티의 인간이 미쳤나 했더니만 인제 보니 힘으로 연합과 자치령을 다 휘어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래 더 하지 않겠지?"
"네 이제 이모탈 시티에 가려 해도 갈 수가 없습니다."
하긴 셈텍스를 모두 잃었으니.
"그래 왜 그렇게 GHB에 눈독을 들인 거야?"
"마인 제조에 관한 겁니다. GHB에 중독된 된 상태로 아담의 던전에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마인이 되는 걸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역시, 짐작 대로군. 그 비밀은 너희들만 알고 있었던 거고?"
"그렇습니다. 연합과 자치령에 알려 줄 이유가 없는 거죠."
"여기 반군은 네가 다 꾸렸나?"
"그렇습니다. 저희는 연합과 자치령의 규율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난 사람들을 규합해서 만든 단체입니다."
"단체는 무슨 단체 조폭들이지. 연합이나 자치령의 마인을 습격해서 아가문드나 뺏고."
"아, 네. 하하. 저희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서."
"말 나온 김에 여기 폐쇄해 버릴까?"
김광호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희 갈 곳이 없습니다. 여길 폐쇄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너희는 문제만 일으키잖아. 인원도 별로 안되고. 그냥 해체해서 연합이나 자치령으로 흡수되면 되지. 그들도 마인을 받는다면 별반 거부하지 않을 것이고 말이야."
"우리 반군은 한 가족 같은 집단입니다. 그것만은."
"KH 반군이랬지? KH가 광호 네 머리글자냐?"
"네, 그렇습니다."
"웃기는 놈일세, 지가 만든 단체구먼. 한 가족은 무슨. 네가 산적 두목이냐?"
"그래도 모두 가족같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염치없는 짓은 조금 해서 그렇지."
"여기서 계속 지낸다고? 언제 그런 놈이 또 내려올지 모르는데?"
"싸워야죠. 저희도 힘을 키워야죠.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여기 유지 시켜 줄 테니. 전부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반군도 유지 시켜 주고 광호 네가 여기 두목 하는 것도 인정해 줄게. 대신."
김광호는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딴 거 없이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연합과 자치령 애들 괴롭히지 말고 특히 이모탈 시티에는 내려올 생각은 절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대신, 너희들 내 말에 절대복종해라."
"감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회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김광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진심이다. 그건 내 능력이 얼마나 사기적이고 악마적인지 김광호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수틀리면 자신들은 살아날 가망이 제로라는 걸 누구보다 피부로 잘 느끼고 있는 거다.
그날 아크 데몬이 피떡이 되도록 때려잡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거부할 생각은 0.1%도 안 들었을 거다.
"내가 강압적 힘으로 굴복시키는 거 아니다. 어디까지나 너희가 진심으로 선택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래, 그럼 일단 이곳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지 않겠나?"
"예? 어떤 분부라도?"
"여기 살겠다고 했으니 도시 정비 좀 해야지. 밑에 우리 애들 불러서 여기 발전소 업그레이드시키고 삼호점 열어 줄게. 그리고 아가문드 보급해서 전원 무장도 시키고 할 테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조직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을 테니 광호 자네가 지금까지 이끌던 대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죽 만들어 가면 돼. 알겠지?"
"알겠습니다. 회장님."
녀석은 내 앞에서 허리를 구십 도로 꺾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거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지만 KH 반군이 하루아침에 내 밑으로 복속되어 버렸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반군을 내 직속 부대로 만들어 놓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연합의 석천 사령관과 자치령의 정철웅 사령관 견제용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김광호는 내 힘을 보고 아예 나를 숭배하는 분위기니까 이런 분위기만 이어가면 배신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내 힘을 봤으니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 줄 확실히 느낄 테니까.
나는 미지근한 사람이 아니다. 입에서 뱉은 말은 즉시 실천하는 사람이다. 며칠 내로 과학자팀 꾸려서 반군으로 보냈다. 발전소 최신 기종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EEA 사용을 위해서 서버도 만들고 네트워크망도 구성했다.
녀석들은 완전히 내게 주눅이 들었는지 애들이 일하는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녀석이 죽어 버려서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나중에 봐서 인원 보충도 좀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광호가 다스리는 조폭 같은 이 분위기를 망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결속력 하나는 다른 단체보다 훨씬 완벽하고 명령 체계에 따른 빠른 인원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를 회장으로 깍듯이 모시는 한 나도 이들을 보살펴 줄 생각이다.
- 작가의말
아...
글을 쓰다가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어느새 이백화가 다 되어 가네요.
읽을 만한 글이 되려면 아직 많이 노력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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