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 다가가는 자
웃음기로 널널하던 희찬의 안색이 갑자기 딱 멈춰졌다.
"회장님이 그 두 분을 어찌 아십니까?"
"오래됐어요. 제가 불사의 회람 회장이 되기도 전에 이모탈 시티에서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있거든요."
"음, 여기서 그 두 사람 이야기는 금지 시 되어 있습니다."
나는 희찬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 문정과 상이고람 두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지는군요."
"저기 제가 이야기했다고는 하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두 사람 다 돌아가셨어요. 마인도 넘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 선을 넘으면 육체는 악마가 되고 정신은 폭주하게 되죠. 간혹 그것에 도전하는 마인이 있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무엇에 대한 도전입니까?"
"힘이요. 간혹 데빌 같은 괴물이 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회장님같이 데빌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데빌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힘이 있다면 도전해 보지 않겠습니까?"
"도전에 대한 대가는 만만치 않겠군요."
"문정 형 때문에 마인 삼십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건 연합만의 수치고 자치령까지 합치면 오십이 넘습니다."
"저기 어떤 도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입에서 나왔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혹시 무스토라고 아십니까?"
"알죠. 아! 생각났다. 데몬 프린스!"
희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 마인도 한계를 깨기 위해 그동안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마인의 상위 단계. 데몬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데몬의 단계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이론상으로는요. 평범한 인간이 마인이 되는 걸 실패하면 레지던트 마인이 되듯이 마인이 데몬으로 개화하지 못하고 정신이 침습 당해 미쳐 버리면 데몬 프린스가 되어 버리죠."
"그럼 문정과 상이고람도?"
"삼 년 전 우리 힘으로 대적하기 힘든 데빌이 네크로폴리탄에 내려왔죠. 실제로 마인의 희생이 있었고 우리는 놈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우레스 라인으로 유도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문정 형이 데몬 프린스가 되어 놈과 싸웠죠. 마인도 합세하여 겨우 놈을 이겼지만, 문제는 미쳐버린 문정 형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상이고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후, 상이고람 아저씨는 더 했죠. 문정 형을 구하기 위해···."
나는 희찬을 통해 그날의 비극을 들을 수 있었다.
"후, 마인의 상위 존재에 관한 성공 사례는 있습니까?"
희찬은 눈을 찡그리더니 커피 한잔을 살짝 마셨다.
"있다고는 하는데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마인이 데몬이 되는 것은 여기서는 철저히 금기시하는 것이라."
"그럼 무스토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아담의 던전에서만 나옵니다."
"마인을 만든다는 그 던전이군요."
"네 그 던전에서 아주 희귀한 확률로 무스토가 나옵니다."
"그걸 먹으면 데몬 프린스가 되던데? 이모탈 시티에서 반군 한 명이 그걸 먹고 데몬 프린스로 변한 걸 보았거든요."
"그래요? 회장님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놈을 잡았겠군요. 능력은 경험해 보셨겠죠? 헌터 마인을 훌쩍 넘어서는 능력을 갖추고 있죠. 만약 정신 침습만 당하지 않는다면 데몬으로 진화하는 거죠."
"무스토는 통제되겠군요."
"개인이 소장하는 것은 물론, 채취하지 못하도록 자치령과 유일하게 합의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일반인이 그걸 먹으면 마인이 되던데요?"
희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이 무스토를 먹으면 마인이 되고 마인이 무스토를 먹으면 데몬이 됩니다. 데빌과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힘과 신체를 얻게 되는 거죠."
"무스토에게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
"어휴, 정말 구석에 박혀 있는 집이네."
나는 부지배인 김희철과 함께 송덕수 할머니라는 사람을 찾아왔다. 할머니라도 엄연한 마인이고 연합에서 최고령 마인이기도 하다.
연합에 가면 송덕수 할머니를 만나 보라는 말을 이제야 실천한다. 자치령의 석천 사령관은 내 힘에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가 연합의 송덕수 할머니를 만나 보라는 말을 할 정도면 말이다.
그리고 데빌과 싸웠을 때 머리에 돋는 뿔도 걱정이고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나는 이 힘의 정체가 악마의 피와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건 석천 사령관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는 것 같았다.
"이 집입니까? 어이구. 살기 좋은 건물 내버려 두고 왜 이런 다 쓰러져 가는 집에 기거하시는 겁니까?"
"전들 압니까? 좋은 곳으로 모시려 해도 한사코 여길 고집하시는데."
"이게 뭐죠? 옛날 지식이라?"
나는 이상한 등과 식물로 꾸며 놓은 집 대문을 보았다.
【차원 침습 이전 인간의 세상에서는 무당이라고 불렸습니다】
"무당. 그래 무당이라는 말을 책에서 본 적이 있긴 있어."
"저, 정말 여길 들어갈 생각입니까? 회장님 저는 밖에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에? 그럴 정도로 싫어하십니까? 그럼 먼저 돌아가세요. 길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니까."
"예, 회장님 그럼 조심하십시오."
"네, 조심요?"
김희철은 썩 좋지 않은 낯빛을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여보세요. 송덕수 할머니 계십니까?"
반응이 없다. 지금까지 이호점에도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본적이 거의 없다. 이모탈 시티에도 노인은 없다. 그들은 빛바랜 도시에서 죽음만 기다리는 폐기물일 일뿐이지 도시 내에서 웃고 떠드는 젊은 사람들이 아니다.
"송덕수 할머니 계십니까?"
나는 목소리 톤을 좀 더 높였다.
"뉘기야? 엇놈이 댓바람부터 고함질이야?"
날카롭게 신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뭣 때문에 이곳에 왔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나 보라는 말에 만나러 오긴 했지만
문이 왈칵 열린다. 그리고 머리가 허옇게 변한 심술 굳은 노인네의 얼굴이 눈앞에 모습을 보였다.
"뭔일이여? 누가 보내서 왔서리?"
나는 당황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석천요. 자치령의 석천 사령관이 할머니 한번 만나 보라고 해서."
"석천? 그놈은 뉘 집 자식이여?"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분위기를 보니 일이 쉽게 풀릴 거 같지 않아 보였다.
들어갈까 그냥 갈까 망설였다. 상대를 보니 진중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뭐하능겨? 왔으마 싸게 들어오지 않고."
들어오라 하니 들어는 간다. 기대는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려다 할 수 없이 낡은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찌든 냄새. 뭔가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쪽문 안 풍경은 살벌하다. 진짜 쥐나 벌레가 없는 세상이라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과 솔직히 슬라임이라도 나올법한 환경이었다.
여기 슬라임 나오지 않냐는 질문이 입 밖까지 나왔다가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기는 켜지도 않고 촛불만 사방에 널려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아직도 초가 있나 보다.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작은 상다리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 있고 송덕수 할머니는 상다리 앞에 앉아 한 손으로 반대편을 가르친다.
여름이라 답답한 느낌에 냄새까지 겹쳐서 진짜 죽을 맛이다. 내가 앞자리에 앉자 손을 척 내민다. 뭘 어쩌라는 거야?
"손, 손 줘 보라고."
나는 뭔가 싶어 오른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손을 앞뒤로 살피고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하이고 손금이라도 읽을 심산인가? 어이가 없다.
"석천이가 보냈다 그랬냐?"
"아, 예, 석천 사령관이 연합에 가거든 꼭 한번 찾아뵈라 했습니다."
"뭔 일로?"
"그니까. 제가 보통 사람이 아닌 특별한 힘을 쓰니까."
"특별한 힘을 써? 무슨 소리야?"
하. 정말 짜증이 확 밀려 왔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냐. 폐기물을 앞에 두고 시간이 아깝다.
이제는 내 손을 양손으로 꽉 움켜쥐더니 눈을 감고 횡설수설,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며 난리다. 난 왜 김희철이 부리나케 돌아갔는지 이해가 갔다.
"인제 그만하시죠. 일어서겠습니다."
"이놈의 시끼가. 젊은 놈이 엉덩이가 뫠 이리 가벼우까. 좀 진득하니 앉아 있지 못혀?"
두 눈을 감은 채 내 손을 잡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나는 포기하고 어찌할까 두고 보기로 했다.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고 마치 무엇을 경험하는 이 모양 덜덜 떨기까지 한다.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석천 사령관은 무엇 때문에 이런 폐기물을 만나 보라 했을까?
갑자기 송덕수 할머니의 눈이 번쩍 떠지더니 나를 뚫어지라 쳐다본다.
"니, 니 참말이가? 진짜로 미, 미경이 아들이가? 참말인가 보다. 참말인가 보다!"
"뭔 소리입니까? 전 부모가 없는데?"
"그게 아일기다. 아일기다. 참말로 맞는데이 이거 우짜꼬 진짜 우짜꼬."
나는 손을 확 빼버렸다.
"일어서겠습니다. 뭔 이런 황당한···."
"그분이 아들이 맞는 갑다. 맞지에. 맞지에? 그 애 아들 맞지에?"
"도, 동생은 잘 있고?"
"동생이 또 뭡니까? 할머니 이상한 말만 하면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그 뭐꼬 머리 노란 사람. 얼굴이 하얗고 머리 노란 사람이 데리고 갔다 아이가."
"세상에 머리 노랗고 얼굴 하얀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만 가겠습니다."
"동생이 중요하데이. 동생이 말이야. 그 사람 진짜로 데리고 갔데이 우리 사람이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말이데이."
송덕수 할머니는 앞뒤 말도 맞지 않고 도대체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짜고짜 내 얼굴을 더듬더니 손까지 덜덜 떤다.
"우짜면 좋노, 우짜면 좋노, 진짜 그분의 아들인갑네. 이제 이 일을 우짜면 좋노."
"에이 정말 할머니 도대체 뭡니까?"
나는 송덕수 할머니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게 될끼다. 또 오게 될끼다. 궁금한 게 있제? 그게 안 풀맀제? 또 오게 될끼라."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와 깊이 호흡을 했다.
"어휴, 무슨 냄새가.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사냐. 저러니 폐기품이지. 석천은 뭐하러 저런 사람을 만나 보라고 그랬지? 허 참 시간만 날렸네."
이호점으로 돌아와 샤워까지 했다. 말끔히 씻고 나와 이호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김희철과 마주쳤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아 참 그 할머니 뭡니까? 도대체? 제정신 가진 사람 맞긴 맞습니까?"
김희철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회장님 소문 듣고 간 거 아닙니까?"
"소문요? 무슨 소문 말입니까?"
"그분 네크로폴리탄에서 엄청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유명해요? 뭐로요?"
"미래시요. 미래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번 만져본 사람의 내력까지 모조리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이고 그 폐기 아니 할머니가요?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던데요?"
"그렇죠, 막 미친 사람처럼 뭐라고 중얼중얼하지 않습니까?"
"네, 그러긴 하던데?"
"그게 미래시를 읽을 때 나오는 버릇입니다. 아마도 회장님의 미래나 과거를 들여다봤을 건데요. 다른 말은 없었나요?"
"글쎄요. 저하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조절해서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부지배인은 왜 그냥 돌아간 겁니까? 그때 안 좋은 얼굴 하고 도망가듯이 가시질 않았습니까?"
"우리 마인은 송덕수 할머니 두려워합니다."
"왜요?"
"송덕수 할머니는 상대 얼굴만 쳐다봐도 언제 죽을지 알아내고는 스스럼없이 죽는 날과 어떻게 죽는지까지 말해 버립니다. 그러니 아무도 그분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합니다."
"에이, 그거 진짭니까? 솔직히 할머니 그냥 미친 사람 같던데?"
"제가 회장님 앞에서 빈말하겠습니까? 어느 마인을 잡고 송덕수 할머니 이야기 물어보세요. 미래시가 무서워서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래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송덕수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뭐냐? 내가 누구지? 석천은 왜 나더러 송덕수 할머니를 만나 보라 했을까?
그때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김희철의 안색이 바로 굳어졌다.
"사이렌 소리가 세 번! 이건 악마종이 내려왔다는 소립니다! 준비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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