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는 것은 도둑이지
"아무도 없습니까? 여보세요?"
나는 갈색의 빛바랜 오랜 문짝을 아가문드로 두드렸다.
탁하고 죽은 소리가 났다. 아가문드의 폼멜에 힘을 주고 좀 더 소리가 크게 나도록 문을 내리찍었다.
-삐이
"얼라리요?"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가 부대끼는 애처로운 소리와 함께 조개가 입을 벌리듯이 살짝 벌렸다.
이어링을 통해 밖으로 연락을 취해 봤지만, 차원이 다른 공간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참 얼토당토않지 않은가 금강산 산골짜기 동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여길 확인하지 않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지.
나는 극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문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온 건물 앉을 울려댔다. 전형적인 오두막 분위기다, 독서대 겸 식사용 탁자. 손님맞이용 의자 두 개 주변 벽에는 책장이 나열되어 있고 몬스터 머리로 만든 박제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1층을 둘러 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본 풍경은 나무로 만든 창문 하나와 사람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침대 옆에 작은 서랍장이 있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서랍장을 열어 보았다.
엘리시움 광석과 이상한 돌들 잡다한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별로 신기한 것이 없는 집이다.
1층으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다 책장 앞에 멈췄다. 책들의 종류를 살펴보던 나는 의아해했다. 이상하게 쓰인 문자는 난생처음 보는 것이다.
문자라고 보기보다는 차라리 문양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3023, 해독 할 수 있어?"
【이 문자는 고대 인류 이전의 문자입니다. 천사와 악마의 문자입니다】
"이게 문자야? 그건 또 뭐냐?"
【인간의 종교 중 하나인 가톨릭의 성서에서 등장하는 천사와 악마를 말합니다. 실상은 종교 이전에 존재하던 존재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념이 만들어 낸 영혼의 조합입니다】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군. 그들이 이 현세에 존재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우레스도 같은 존재로 봅니다. 아직 분석 중이지만 죽음의 숲에서 만난 그 여인도 같은 존재로 생각됩니다】
"그럼 정확히 악마야? 천사야? 천사라면 신부님이 아멘하는 그 존재가 아니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곳의 분석에 의하면 악마의 존재가 더 강합니다】
"이 책 해석할 수 있어?"
【시공을 돌아오느라 다양한 지식이 보호 차원에서 록이 걸려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이 부분에 관한 지식이 담긴 섹터를 우선으로 해제하겠습니다】
"일단 해석 할 수 있을 만큼만 부탁해."
【알겠습니다. 들고 계신 책은 인문학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 성향, 문화, 종교를 다루는 책입니다】
"잠깐, 여기가 악의 존재가 더 강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여기에 남겨진 자취와 성향을 분석하면 악마가 분명해 보입니다. 다량의 유황 성분이 공기 중에 남아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책을 읽는 악마라니?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마 갓 레벨이라고 칭하는 자는 아니겠지? 왜 이곳에 이런 장소를 만들어 놓았을까?"
나는 악마라는 말에 약간 겁이 났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어떤 놈이길래 책까지 끼고 사는지 궁금함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
【철학에 관련된 책입니다】
"이건?"
【인간의 감정에 관련된 책입니다】
"이건?"
【인간의 생과 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휴, 죄다 인간에 관련된 책인가 보네. 그럼 아닌 것을 한 번 찾아볼래?"
【오른쪽 마지막 책장은 다른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럼 쓸만한 것이 뭐 있나 한번 살펴봐 줘"
나는 책장을 살펴보다 표지 색이 초록색이라 눈에 확 띄는 책 한 권을 뽑아냈다.
【퍼밀리어 소환서에 관한 마법서】
"퍼밀리어?"
【구 언어로 심부름꾼을 이야기합니다】
"그래? 그거 재미있겠구먼,"
주변에 보이는 책 몇 권을 한 움큼 집어 ITB에 책을 넣었을 때 언노운이 경고음을 발하기 시작했다.
"공간 왜곡이 감지 됩니다. 차원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이블 폼으로 변했기에 망정이지 인간의 힘으로 뛰었다가는 이지러지는 차원과 함께 몸뚱어리가 완전히 박살이 날 뻔했다. 나는 몸을 던져 뭉개지는 공간을 뒤로하고 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 뒹굴었다.
희찬은 바닥을 구르는 나를 바라보며 황급히 달려왔다.
"뭡니까? 왜 저희는 들어가 지지 않는 거죠?"
"차원이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삐이이이
이상한 소음을 내고 동굴 입구가 쪼그라들더니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말 한 타임만 늦었어도 어찌 됐을지 생각하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휴우, 다 나갑시다."
나는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세상에 그런 차원이 있다는 말입니까?"
"누군지 모르지만, 인간이 기거하는 곳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마치 산골 속의 별장이라고나 할까?"
원하는 목적은 모두 이루었으니 우리는 가뿐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귀찮은 것들 때문에 이블스 폼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산을 타고 내려와 군용 트럭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하니 희찬 일행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날도 어두워졌겠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 출발하죠."
기념으로 술 파티가 벌어졌다. 금강산에서 고생했던 일들을 안줏거리 삼아 모두 정신없이 먹고 마셔댔다. 긴장이 풀어지니 느긋해지는 것인 인지상정이지. 내가 없었더라면 그냥 간단한 말린 채소를 씹다가 잠이나 들었을 것이다.
삼겹살과 소주가 희찬 일행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했다. 고기가 완전히 굽히기도 전에 젓가락질한다고 희찬에게 타박을 받는 김현철이다.
"참 희한한 세상이군요. 금강산에 그런 곳이 있을 줄이야. 회장님은 뼈 무더기 속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능력 중의 하나가 공간 왜곡을 찾아낼 수 있는 건데 뼈 무더기 속에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들어가 보니 그런 풍경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럼 그 별장에 주인이 있지 않을까요? 차원을 만들 수 있다면 솔직히 최고위급 악마나 가능한 일이긴 한데···."
"최고위급 악마를 본 적이 있습니까?"
"전혀요. 봤다면 저가 여기 없겠죠. 그들은 신적인 존재입니다. 마인 따위가 감히 비벼볼 상대가 아니죠. 손가락 한번 튕기면 저 정도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걸요."
"그렇게 대단합니까? 그런 놈들이 도시에 왜 내려오지 않지요?"
"아이고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근데 하우레스라던지 갓 레벨이라든지 그런 존재가 정말 존재하긴 할까요? 만약 존재한다면 차원 침습을 당하고 백 오십 년 동안 왜 인간을 그대로 놓아둔 거지요?"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들이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다 쓸어 버렸겠지요. 살려 두는 것을 보면 뭐 관심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애완동물처럼 사육하거나."
"사육이라니 끔찍하군요."
"우리는 차원 침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차원에서 쏟아져 나온 괴물들은 인간 따위는 그냥 찢어발기는 정도였고요. 그게 현실이었다면 인간은 멸종했겠지요. 그런데 침습한 세계에 노출된 인간 중에 각성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빠르게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지요. 인간의 영웅이 되었지만 그 후 나타난 악마종이라는 몬스터에게는 상대가 되질 못 했어요. 그때 다시 인간에게 마인이라는 존재가 나타났고 악마종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죠. 마치 누군가 계획한 것처럼.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낱같은 희망을 자꾸 가져다주니까. 우리 인간은 환경에 적응 강한 생물이라고 하지만 각성자도 그렇고 마인도 그렇고 웃기는 던전도 그렇고 모든 게 이상한 세상입니다."
이명우는 술 한 잔을 들이켜고 쓴웃음을 지었다.
희찬은 술잔에 들어있는 소주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입에 틀어넣었다.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그렇다고 이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어. 이게 레알 현실이잖아. 이 환경을 바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과 마인이 뭉쳐서 모든 몬스터를 내몰고 이 행성을 탈환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금 마인은 멸종의 위기야. 더는 마인의 공급이 없으면 백 년도 버티기 힘들걸?"
"세상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조율이 되는 느낌이야. 그냥 누가 만든 게임처럼 죽지 않을 정도만 만들어 놓고 거기서 살아 남아봐 라는 것 같지 않아?"
"쓸데없는 생각들 그만하고 슬슬 정리나 하자."
다음날 연합으로 향하는 차량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얼굴 가득 느꼈다. 모두 신나 있었다. 금강산 방문 이래 가장 좋은 호황을 누렸다. 이블 워리어 우두머리격이 아홉에 터줏대감까지 잡았으니 솔직히 수십 년 방문 이래 가장 많은 수확을 올린 날이었다.
나는 궁금함이 가시지 않는 점이 있었지만, 답이 없으니 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연합에 당도하자 희찬 일행은 나에게 인사를 나누고 모두 제철소로 몰려갔다. 나는 이호점에 들러 분위기를 들러 본 후 일호점으로 넘어갔다.
양지배인을 통해 간단한 상황을 보고 받은 후 불사의 회람으로 건너왔다. 확실히 이모탈 시티는 불사의 회람과는 달리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흘 만에 얼굴을 보였으니 박정아의 핀잔을 십분 넘게 들어야 했다.
그리고 모레가 자신의 생일이라고 투덜대는 바람에 아차 싶었다. 경조사는 언노운에게 모조리 입력시켜 놓았는데 알림 설정을 간과했다. 이틀이 아니라 최소 일주일 전에는 울리도록 해놔야 잔소리를 덜 들을 것을.
네크로폴리탄에 일호점과 이호점을 개점한 이후로 이모탈 시티로 넘어오는 마인은 아예 없었다. 최우신 팀은 늘 창원을 들락거리긴 하지만 연합과 자치령의 마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반군의 마인이 몇 번 껄떡거리긴 했지만, 최우신 팀에게 걸쭉하니 두들겨 맞고 쫓겨난 이후로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주간 정신없이 보낸 나는 오늘은 한가히 37층 개인 연구실 공간에 앉아 몇 가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금강산에서 나도 모르게 퍼 담은 몇 가지 책에 대한 해독이었다. 언노운의 말을 빌리자면 고대시대 이 고대시대란 인간이 문명을 일으키기도 전 돌조각 가지고 사냥하던 시절을 일컫는다고 했다. 그 이전부터 존재한 문자라고 하니 고로 이 문자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존재가 만든 것이 확실했고 그 해독은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나마 가장 쉬운 해석본은 소환 마법이 쓰인 책이다. 마법이란 단어도 익숙지 않았고 전설 속의 산물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요즘 세상에 마법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퍼밀리어는 일종의 악마 심부름꾼을 이야기하는데 그 퍼밀리어를 소환하는 마법이 담긴 책이다. 나는 어린애 장난 같은 책에 어이가 없었지만, 호기심을 잃은 것은 나이었다.
언노운의 설명으로 소환이란 과학적으로 말해 다른 차원의 물건을 이쪽 차원로 끌어오는 것이라 했다. 내 기술 중 넝쿨이나 고블린 소환도 같은 이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하니 꼭 허울 좋은 거짓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책은 주문과 이상한 도형이 빼곡히 그려진 문양이 많았는데 소환을 하기 위해서는 재료와 마법진 그리고 주문이 필요했다. 소환진의 마법진은 악마의 피로 그려야 하고 약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그려내야 한다. 책에는 작은 참새만 한 퍼밀리어부터 상당한 레벨의 고위 악마를 불러내는 소환진까지 다양했다.
"악마의 피는 널려 있으니까? 재미 삼아 한번 해 볼까?"
내가 그 오두막 별장에서 가지고 나온 책은 모두 네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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