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정동혁?
공방을 주고받기에는 주변 지형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경사가 가파르고 온갖 식물들이 꽉 덮인 곳에서 미려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아름드리나무가 터져 나가고 터줏대감은 거의 몸부림을 치는 수준이었다.
"접근하지 말고 지켜보기만 해."
언노운이 제어하는 반월륜은 터줏대감의 정신을 빼놓았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하루살이처럼 날아다니는 반월륜을 일일이 쳐낸다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 덕분에 희찬 일행은 일방적으로 몰리지 않을 수 있었다. 주변이 박살이 나고 부엽토와 땅거죽이 뒤집혔다. 녀석의 손바닥에서 솟아 나온 송곳 뼈는 걸리는 것은 뭐든 박살을 내놨다.
이블 워리어의 파워 보다 역시 한 단계 위다. 팔이 휘둘리는 소리와 그것에 걸리는 것을 뭉개는 힘은 이블 워리어를 압도한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덩치에서는 오는 민첩의 한계점. 근거리 공격 이외에 다른 공격이 없다는 단순함. 그것이 상대적으로 약한 마인과 충분히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다.
희찬 일행이 그렇게 몰리지 않은 것을 보면서 정확히 놈의 목을 노려야 했다. 광분하여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몬스터의 목을 잘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중력을 발휘해 아가문드에 역장 에너지를 가득 올렸다.
악마의 피가 발현된 이후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치가 지금까지 기록된 그 어떤 수치보다 높았다. 심지어 언노운이 맥스라고 말할 정도니. 아가문드에 올라붙은 역장 에너지가 용량을 넘어 서는지 아가문드 조차 심하게 진동을 해 댔다.
어쩔 수 없이 역장 에너지를 줄여야 할 정도였다. 에너지를 줄이자 그제야 떨리던 아가문드도 진동을 멈추었다. 아가문드가 내 힘을 온전히 견뎌내질 못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반월륜과 희찬 일행에 정신이 팔려 날뛰었다. 기회를 노리기 위해 집중했다. 스페이스 커터의 유일한 단점이 매우 급한 상황에서 편하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잘라내야 할 공간을 정확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힘하곤 상관없이 오롯이 집중력에만 의존하는 것이니.
-탓!
일갈과 함께 내지른 스페이스 커터는 내가 원하는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걸쳐 잘라냈다.
잘린 머리통은 어깨에 한 번 부딪히더니 바닥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다행히 경사가 심하고 거친 지형이라 머리통은 속절없이 굴렀다.
-휘이익
희찬이 길게 휘파람을 불자 가장 뒤에 있던 궁수 황현이 굴러가는 머리통을 따라 쫓아 내려갔다. 정찬우와 이명우, 김현철은 터줏대감의 몸통을 향해 달라붙었다. 머리가 떨어진 상황인데도 놈은 쓰러지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조심해"
희찬의 고함이 끝나기 전에 가장 빨리 달려들던 정찬우가 어깨에 송곳 같은 뼈에 찔러 비명을 내질렀다. 당연히 목이 떨어졌으니 죽었겠거니 방심했던 게 치명적이었다.
이명우가 몸을 날려 어깨가 뚫린 정찬우를 빼냈다. 그대로 뒀더라면 지면과 부딪혀 생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거다. 김현철이 방패로 터줏대감을 공격을 막으로 달려갔다.
"안돼! 부딪치지 마! 견디지 못해!"
희찬은 리더답게 상황 판단이 정확했다. 내가 보기에도 목이 떨어 졌을 뿐 몸의 파워는 그대로였다.
나는 머리통을 잡고 있는 황현을 향해 외쳤다.
"황현씨 그놈 눈을 가려요. 그놈 지금 보고 있는 거예요."
내 말에 황현이 즉시 주변의 큰 잎으로 터줏대감의 안면을 감쌌다. 그러자 몸통의 공격이 마구잡이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찬우는 괜찮아? 멀찍이 물러서 치료해."
어깨를 뚫렸지만 마인에게 그 정도 피해는 솔직히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머리통이 직격으로 잘리거나 심장이 터지지 않는 한 마인도 무한 재생한다. 그것은 온몸을 감싼 붉은 기류에는 무한한 치유력이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찬우의 어깨에 난 구멍으로 붉은 기운이 들락거리자마자 새살이 돋고 뼈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통은 고스란히 느낀다. 고통도 느끼지 않으면 솔직히 반칙이지.
나는 찬우의 어깨에 난 상처가 치유되는 속도를 보면서 헌터 마인급은 노멀에 비해 힘도 강하지만 치유 속도도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몸뚱이는 혼자 미친 듯이 주변을 박살 냈다. 신기하게도 잘린 목에서 피가 솟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녀석은 머리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 했다.
"황현씨 머리통을 가지고 물러나요. 아니면 ITB에 넣어 버리던가!"
내 말에 황현은 ITB에 재빨리 머리통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거대한 몸체는 힘을 잃고 모로 쓰러져 버렸다.
"하, 역시 머리통이 사라지니 몸통이 힘을 잃어버리는군요."
희찬의 말에 내가 답했다.
"머리통이 다른 차원으로 가 버리니까 어떤 전기적 신호가 끊겨 버린 거예요. ITB에 넣길 잘한 것 같습니다. 몸통은 다른 ITB에 넣도록 해요."
"아니 그럴 필요 없이 토막을 치죠."
이명우과 김현철이 달려들어 터줏대감의 몸통을 팔다리 모두 토막을 쳐 버렸다. 혈액 응고제를 잘린 면에 바른 뒤 비닐에 싸서는 각자 ITB에 쓸어 담았다.
희찬은 찬우의 어깨 상처를 살피더니 엄지를 추어올렸다.
"상처에는 다행히 독이 없는 것 같아. 우리 터줏대감을 잡은 거 맞지? 이거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명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시체를 꺼내 놓기 전에 대장장이들 절대 믿지 않으려 할걸요. 하하."
시퍼런 풀냄새가 이토록 싱그러운지 처음 느꼈다. 삭막한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자연의 신선함이라고 할까.
나는 마지막으로 지도를 살펴보다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이 3023, 터줏대감을 잡았는데 이 붉은 점등은 뭐지?"
【알 수 없는 공간 왜곡이 감지 되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봤다.
"동굴 안인가?"
희찬 일행은 한 곳에 모여 한껏 들뜬 기분으로 하이파이를 해 댔다. 터줏대감을 잡았으니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공간 왜곡이라? 언노운이 그렇게 말하면 그 안에 뭔가가 있다는 소리다.
"저기 동굴 안에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 가보고 와도 될까요?"
"그래요? 안에 다른 몬스터는 없습니까?"
"네, 터줏대감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리 깊지도 않고요."
희찬 일행과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부분은 터줏대감이 분탕질해 놓아 엉망이었다.
붉은 점등이 있는 곳으로 전진했다. 결국, 동굴 안의 막다른 곳으로 다다랐는데 심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확실히 터줏대감의 보금자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 수북이 쌓인 뼈를 보니 여기서 다른 몬스터를 섭취했군요."
희찬 일행은 동굴 주변을 살폈다.
"팀장 여기 좀 와 보세요."
이명우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희찬을 불렀다.
"우와 이게 뭐지? 아가문드잖아?"
뼛속에 삐죽이 모습을 보인 것은 아가문드 검이다. 희찬은 뼈 무더기에서 검을 뽑아내 살펴보았다.
"오래된 검이다. 아마도 초창기 아가문드일거야."
"검이 여기 있는걸 보니 마인 중 누가 희생된 거군요."
"차원 침습이 되면서부터 여기 있었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거야."
"저기 다들 비켜 보시겠습니까?"
내 말에 희찬 일행은 뼈 무더기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더 뒤로 제 뒤로 물러나 보세요."
희찬 일행은 어리둥절해서 하며 내 뒤쪽으로 완전히 빠졌다.
분명하다. 붉은 점등은 저 뼈 무더기 안이다.
공간 왜곡이라고 했나? 그럼 저 안에 뭔가 있다는 뜻이겠지. 뼈 무더기를 치우는 방법에 약간의 고민을 했다. 좁지 않은 곳이지만 동굴 안이라 폭발력이 있는 힘을 사용했다가는 자칫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고심 중에 넝쿨 휘감기 기술을 이용해 뼈 무기 안에서 넝쿨을 소환했다.
"흐미!"
실수다. 내가 지금 이블 폼인 상태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넝쿨을 소환한 것이다. 세상에나 뼈 무더기가 박살이 나며 성인 어른 몇 명이 팔을 벌리고 둘러야 할 정도의 넝쿨이 튀어나왔다.
넝쿨은 무서운 속도로 동굴을 메우고 자라났다.
희찬 일행이 기겁하며 동굴 벽으로 바짝 붙었을 때 나는 넝쿨 소환을 취소했다.
"뭐, 뭡니까? 이건?"
"아, 미안해요. 제 기술인데 파워를 생각하지 않고 소환해 버려서···. 어라?"
뼈 무더기가 치워진 곳에 다시 작은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크기다.
"들어가 보시게요?"
어느새 몰려온 희찬 일행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 위험할지 모르니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희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혹시 이거 던전 입구가 아닐까요?"
"들어가 보면 알겠지요. 그럼 먼저 갑니다."
아가문드를 손에 움켜쥐고 작은 동굴 안으로 빨려들 듯이 들어갔다.
"어?"
누구의 말대로 이곳은 던전의 입구인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왔더니 별개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난 이곳이 던전이 아님을 알았다. 눈 안 가득 들어오는 푸른 평원. 작은 언덕 몇 개, 푸른 하늘 뭉게구름. 이곳은 봄인지 가을인지 모를 아주 따뜻한 정감이 있으면서도 바람이 시원한 곳이었다.
가슴이 확 풀리고 온몸이 나른해지며 마치 고향의 품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모든 것이 영혼의 연주곡처럼 율동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천천히 풀밭 위를 걸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 놓은 듯 잔디는 곱게 깎여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들어온 입구는 아치형으로 시커먼 공간이 있었다. 푸른 세계에 점 하나 찍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언노운에게 지도 작성을 명령했다.
【지역 스캔 중입니다. 완료. 이어링 화면에 띄우겠습니다】
"주변에 몬스터라도 있으면 표시해줘."
이어링의 화면은 더디게 펼쳐졌다. 그런데 희찬 일행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가 그들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 알아보려 하다 막 점등된 불빛을 보고 멈춰섰다.
"이건 뭐지?"
【이곳은 정확하게 정방향으로 3305㎡입니다. 그 한가운데 인공적인 건물이 한 채 존재합니다. 이곳은 다른 차원입니다. 역장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자만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나는 왜 희찬 일행이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차원을 넘나드는 힘이 없으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힘이 내겐 있는가? 아무래도 언노운의 힘이겠지.
"그냥 가기 뭣하니까. 인공 건물이 뭔지는 구경해 보자. 그리 넓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언노운이 띄워준 지도는 정확히 정사각형이었다. 그리고 가장 한가운데 점등이 하나 밝혀져 있고 몬스터는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얼마쯤 걸어가니 이곳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오두막인지 전체가 나무로 지어진 멋진 2층짜리 건물 하나가 보였다.
"헐, 집이라면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야? 무슨 금강산 한가운데 그것도 동굴 속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가만 집이 있다면 집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나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을 한 바퀴 빙 둘러 보았다. 재질이 완전히 나무인 것을 제외하면 특이점이 별반 보이지 않는 그냥 평범하지만 멋지게 지어진 오두막 정도?
문 앞에 서서 정말 웃기게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안에 누구 있습니까!"
- 작가의말
이제부터 조금 진도를 빨리 내겠습니다. 제 소설이 피드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정말 재미 없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꼼꼼한 설정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설명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를 제가 초보이니까. 자꾸 독자를 이해 시키려고 설명 부분을 과하게 넣어 분량만 재미없게 늘어지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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