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사냥.
강희찬의 팀은 손발이 잘 맞았다. 그들은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금강산의 첫 줄기에 오른 나는 경치를 감상할 여유까지 누렸다. 비록 침습에 의한 반쪽짜리 풍경이지만 삭막했던 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근사한 풍경이었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신록이 군데군데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회색빛 도는 차원의 그늘은 식물이라고는 단 한 포기도 보이지 않은 삭막함 그 자체다.
계절 구분조차 되지 않은 악마의 땅은 사시사철 뜨거운 유황 냄새만 풍겨 낸다. 보통 인간이라면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 지독하리만치 가혹한 땅이다.
희찬은 이곳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한참을 둘러가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발을 디딘다.
눈에 좋은 풍경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자잘한 돌조각이 발바닥 신경을 건드리는 짜증 나는 행군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이들은 주변을 서성이는 세슬로이드를 차근차근 처리해 나갔다. 아가문드의 중요한 재료이니만큼 최대한 피가 빠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욕을 덜 먹는 지름길이다. 허리에 혈액 응고팩을 차고 있는데 잘린 부위에 재빨리 발라 혈액 누수를 차단한다.
훼손이 아주 심하고 피가 빠져 버린 세슬로이드는 걸쭉한 욕지거리로 품평을 대신하게 된다.
새로운 버전의 ITB는 몬스터의 사체를 보다 깨끗하게 수납할 수 있다. 그만큼 수용량이 대폭 증가한 탓이다.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의 디멘션 리서치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차원 침습을 막아내는 것에 있으니 원래 연구도 그렇게 시작됐다. ITB나 게이트도 디멘션 연구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모탈 시티 근처도 차원 침습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곳 금강산만큼은 아니었다. 북쪽이라 그런지 차원 침습이 아주 심하게 이루어져 있다. 거의 반은 저쪽 세계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사냥하면서 나가야 하니 조금 더딜 겁니다. 이쪽은 뭐 볼만한 게 하나도 없어서 심심하실 겁니다."
강희찬은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팀원이 사냥하는 것을 즐거운 눈빛으로 즐기고 있다. 오랜 전투 경험으로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팀 연계도 좋고, 그러니 노멀 마인이 두 명 이상 달라붙어야 겨우 잡아내는 세슬로이드를 상품 가치 훼손을 최소화하며 잡아낸다.
이들은 프로 사냥꾼이다. 내 눈에도 모든 것이 능숙하게 보였다. 다만 아쉬운 것이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 무예를 모르기 때문에 검의 움직임에 불필요한 동선이 많다는 것이다. 이현희 팀도 처음에는 그리했다가 다양한 무술을 주입받고 나서는 전투력이 월등히 높아졌다.
강희찬 팀은 정확히 몸에 밴 습관적인 결대로 검을 휘두른다. 머리를 베고 싶으면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면 된다는 가장 단순하고 깨끗한 방법을 시도한다.
희찬과 걸음에 보조를 맞췄다.
"북쪽까지는 얼마나 가봤습니까?"
"저희요?"
"네 가장 북쪽까지는 진출한 기록은 어느 정도입니까?"
"글쎄요. 살아 돌아온 사람 기준으로 보면 한 일주일 거리 정도 될까 싶은데요."
"그럼 희찬씨는 어느 정도까지 가 봤습니까?"
"가만있어 보자 그러니까. 금강산 너머까지 가 봤기는 합니다. 여기 말고 다른 지역으로는 북쪽으로 상당히 깊게 올라가 보기는 했어요. 혹시나 쓸만한 재료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북쪽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희도 네크로폴리탄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백 년을 보내왔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고 많은 대륙도 많으니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생존해 있지 않을까요?"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북쪽으로 간 사람도 많고 남쪽으로 간 사람도 많지요. 서창배 선배가 에덴을 찾아낸 것처럼 북쪽도 생존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아직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서창배라는 분이 연합의 사람이었습니까?"
"어이쿠. 그 사람을 자치령의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천만에요 서창배는 연합의 사람입니다."
"혹시 기묘한 존재를 봤다거나 그런 유로 떠도는 이야기는 없습니까?"
"어떤 이야기요?"
"가령 이상하게 나풀거리는 얇은 천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감싼 여인이라든지 아니면 유별나게 독특한 데빌이나 악마라든지."
"글쎄요. 연합에 전해오는 전설 같은 거야 많긴 하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현실에서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제 눈으로 본 것 이외에는 잘 안 믿는 스타일이거든요.
강희찬은 도시 전설 비슷한 이야기를 재미 삼아 꺼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거의 없었다. 팀원은 사냥을 계속하면서 전진했고 삭막한 회색 풍경은 곧 지루함을 내게 알려왔다.
언노운이 이 주변 일대의 모든 지도를 작성 완료했다는 뜻으로 이어링 화면에 전체 지도가 떴다. 전체 지도를 조망하다가 지도를 축소하여 전체 구도를 살폈다.
언노운은 침습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 놓았는데 침습되지 않는 곳의 한 점에 붉은 점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희찬이 팀원의 전투에 몰입한 틈을 타서 언노운에게 붉은 점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았다.
【GPS 탐색 결과 최대 반경 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몬스터를 표시했습니다. 상위 등급 몬스터 모두를 표시하시겠습니까?】
"그럼 최상위 등급 열 마리 정도만 표시해 볼래?"
당장 지도 위로 조금 옅은 색깔의 붉은 점등 열 개가 번쩍였다.
"희찬씨 조심해요. 뭔가 다가옵니다."
열 개의 점등 중 하나가 우리 바로 위쪽에서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이곳은 산속이다. 그러니 산등성이와 산꼭대기 계곡 등이 존재한다. 침습을 당해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지형의 구조는 그대로라는 거다. 험준하고 지형·지세의 변화가 심한 산속은 근처에 무엇이 와 있더라도 지형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위, 세시 방향, 산등성이입니다."
내가 말하는 방향으로 일행이 고개를 돌렸을 때 무언가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전형적인 세슬로이드의 악마 형태의 머리인데 일단 크기가 달랐다. 일반 세슬로이드에 비해 두 배는 됨직한 모습이다.
"이블 워리어다. 모두 집중해."
희찬이 말하던 이블 워리어라는 놈이다. 세슬로이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일단 덩치부터 두 배의 크기에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겼고 뿔이 나선 방향으로 회전하듯 구부러져 있어 완전히 악마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다.
이블 워리어는 우리를 발견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내려왔다. 그놈이 움직일 때마다 보기 흉한 양물이 덜렁덜렁했다. 이놈들도 암수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들이 이블 워리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해 봤다는 소리일 것이다. 희찬이 이블 워리어가 고급 아가문드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재료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놈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겠지 싶었다.
엄청난 덩치의 질주에 김현철이 방패를 세우고 정면으로 막아섰다. 경사진 언덕 위에서 구르듯이 달려오는 파괴력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쾅
방패는 활짝 펴진 채로 이블 워리어와 부딪혔고 김현철은 뒤로 튕겨 한참이나 날아갔다.
깜짝 놀란 강희찬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이블 워리어는 세슬로이드와 전투력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희찬이 한 단계 상위라고 하기에 세슬로이드 열 마리 정도가 한꺼번에 덤비는 정도겠거니 했더니 이건 한 단계 상위가 아니고 수십 단계는 위였다.
이블 워리어는 난폭한 폭군처럼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그 무게에 실린 힘은 대단했다. 바닥에 주먹질 한 번에 움푹 팰 정도였으니까. 그 주먹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아무리 마인이라도 뼈까지 작살이 날 기세였다.
"이놈은 뭔가 달라. 이블 워리어 보다 전투력이 훨씬 높아."
강희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어쩐지 전투력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높아 보였다. 희찬이 전투에 합류해 김현철의 빈자리를 채웠다. 나는 튕겨 나간 김현철이 걱정되어 뛰어가려 했으나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역시 마인은 마인이다. 그만한 충격에도 거뜬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곧 전투에 참여해 이블 워리어의 어그로를 잡기 위해 대쉬로 돌격해 들었다. 털끝 하나하나가 모두 설 정도로 살얼음판 전투가 계속됐다.
주먹이 땅을 두드릴 때마다 지진을 만난 것처럼 흔들거렸다. 먼지와 자갈이 우박처럼 튀어 올랐다.
마인의 전투는 자주 봐 왔지만 그들의 싸움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늘 보였다. 그것은 강자를 만났을 때 숨통을 끊어낼 한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방어와 민첩은 상당해서 상대의 공격을 큰 무리 없이 피해 내는 것 같은데 공격은 이블 워리어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는 것도 그 이유다. 서로 간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블 워리어는 마인을 잡아내지 못했고 마인은 이블 워리어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슬슬 나가봐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점등 중 하나가 이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지금 전투의 파장을 느낀 것 같았다. 11시 방향에서 사선으로 정확히 우리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거의 확실해 보였다.
반월륜을 꺼냈지만 이블스 폼으로 변신하지 않았다. 평상시 전투력은 이모탈 시티 최고 등급인 SS 레벨이었다. 죽음의 숲에서 그 여인을 만나고부터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
언노운은 악마의 피가 발현되었다고 했지만, 평상시는 직접 느끼는 바는 없었다.
반월륜이 마인 사이를 뚫고 날았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반월륜은 이블 워리어의 목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팍
잘린 목덜미에서 피 분수가 튀었다. 워낙 단단한 피부라 반월륜이 완전하게 잘라내지 못했다. 삼 분의 일이 잘린 목에서 피가 끓어 오르더니 상처가 아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무지막지한 재생 능력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몬스터 보다 재생 능력이 막강했다. 이건 상처를 입은 즉시 재생해 버렸으니.
이러니 마인이 아무리 공격을 명중해봤자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런 괴물을 지금까지 금강산을 다니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들의 실력으로는 이건 도망가는 것이 정상이다.
붉은 점등 하나가 점점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빨리 이곳을 정리하지 않으면 귀찮아진다. 나는 이블 페이스를 얼굴에 썼다. 마인이 있는 곳에서 이블 페이스를 쓸 이유는 없지만, 이걸 쓰면 세상이 붉게 보이지 않고 평상시 색상과 같다는 장점이 있다.
이젠 이블스 플레어의 단추를 눌러 의도적으로 피를 자극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언노운에게 명령 한 번이면 이블스 폼으로 전환할 수 있다.
눈이 화하게 달아올랐다. 분명히 예전과는 달랐다. 온몸으로 끓어 오르는 피의 기운은 파워의 레벨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숨을 길게 들이키고 반월륜을 날렸다. 궤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희찬 일행의 눈에 보인 것은 떨어져 내리는 이블 워리어의 머리통뿐이었다.
희찬은 바닥에 구르는 이블 워리어의 대갈통을 집어 들더니 재빨리 뒤로 움직였다. 잘린 머리에서 피가 머리통으로 이어지려 했기 때문이다.
"뭐해! 응고제를 발라."
이명우는 재빨리 잘린 목에 걸쭉한 응고제를 들어부었다. 아가문드의 재료로 사용하려면 피 한 방울도 소중하다.
"이놈 뭔가 이상합니다. 평범한 이블 워리어가 아닙니다. 이건 더 상위 종 같습니다."
"이런 놈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나요?"
"저희가 금강산을 일 년에 스무 번 정도 오는데 이만한 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거의 터줏대감이랑 비슷한 파워입니다."
"그런 놈이 금강산에 아홉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는 더 강하고요. 아무래도 그 한 마리가 터줏대감인듯합니다만."
"이런 놈이 아홉이 더 있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제 능력입니다."
정찬우와 황현은 내가 어떤 기술로 이블스 워리어의 목을 베었는지 베고 난 다음 멈춰선 반월륜을 보고서야 무기가 무언지 확인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내 무위를 처음 경험했고 단 한 번에 놈의 목을 베었다는 것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찬우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나를 힐긋 보더니 말했다.
"에덴의 사람 중 회장님처럼 강한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좀 돌연변입니다. 비정상적으로 강해져 버렸는데 저도 아직 원인을 모릅니다."
"그렇군요. 연합의 마인이 다 뭉쳐도 회장님 하나 못 당해 내겠는데요?"
"자네들은 회장님이 데빌을 가지고 논 것을 아직 못 봐서 그래. 데빌은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았어. 정말 끔찍한 힘이야."
황현은 내 얼굴에 쓴 가면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높은 전투력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믿겠지? 회장님과 동행하는 것이 터줏대감을 잡을 유일한 방법이란 것을!"
"이상하군요. 이런 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지금 이쪽을 향해 또 한 마리가 옵니다."
나는 희찬을 보면 고개를 까닥했다. 일 년에 스무 번 정도 오는데 이런 놈들을 한 번도 우연히라도 만나지 않았다고? 운이 좋은 거냐? 아니면 이 녀석들이 갑자기 나타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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