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으로
연합의 이호점은 자치령보다 더 빠른 적응을 보였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탓에 이호점 이용에 거칠 것이 없었다.
아가문드도 충분히 비축해 놓아 장비를 구매하는데도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최고등급의 ITB는 마인에게 가장 인기 있었고 EEA는 지휘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엘리시움 광석이 쏟아져 들어왔다. 네크로폴리탄에서는 이모탈 시티보다 엘리시움 광석의 소모가 적다. 막말로 길에 채는 것이 엘리시움 광석이다. 마인은 재산의 축적이 없어서 엘리시움은 대체로 모으지 않거나 창고에 쌓아 놓고 있었다.
정철웅 사령관은 이호점 오픈과 함께 엘리시움 창고를 무료로 개방해 버렸다. 이곳의 엘리시움은 최고등급의 고순도라 이모탈 시티에서 고가에 거래된다.
나는 그렇게 번 돈을 재사회화에 투자한다. 거제도 탈환은 사대 길드에 결정하에 주도면밀하게 시작됐다. A 레벨 헌터가 먼저 투입되어 가장 상위 몬스터인 레서 데몬을 솎아내면 하위 레벨들이 들어가 고정 던전을 장악하고 몬스터 토벌을 시작한다.
그와 별개로 나는 강희찬의 사탕발림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사흘 동안 일 처리 하느라고 진땀을 뺄 정도였다. 모든 것을 떠맡기고 단단히 준비한 후 연합으로 넘어갔다. 박정아는 단번에 수상함을 눈치채고 들들 볶았지만, 내 호기심을 꺾지 못했다.
나는 금강산이 어디쯤인지 알아봤다. 상당히 먼 거리라 이동이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강희찬과 합류했고 그는 혈랑대가 중간 기착지로 사용하는 건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몇 대의 차량이 있었는데 오랜 시절 인간이 사용했던 군용차를 개량했다. 당연히 연료는 엘리시움 광석으로 움직인다. 이모탈 시티를 들락거리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적용한 모양이었다.
"거리가 상당하니까 이놈을 이용해야 하는 편이죠."
"몬스터의 이목을 끌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쇼. 우리가 누굽니까 가는 길에 위협이 될만한 몬스터는 없습니다. 가장 강하다고 해 봐야 레더 스컬 몇 마리나 세슬로이드 몇 마리 정도뿐이지요. 미친 척하고 데빌이라도 만난다면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고요."
"데빌은 개체 수가 어느 정도이죠? 악마종과 비슷한 종입니까?"
"데빌은 악마종 하고는 차이가 있죠. 같은 놈은 아닙니다. 우리는 데빌종과 악마종 그리고 데몬종을 다 별개로 구분 짓고 있어요. 최하위가 데몬종인데 이들은 차원 침습전의 토착 생물이 몬스터화 한 것을 말합니다. 주로 레서 데몬을 말하는 것이고요. 필드에 널려 있어 약한종이라 생각하지만 데빌에 버금가는 데몬도 있습니다."
"데빌에 버금간다고요? 데몬이?"
"그럼요. 북쪽에는 별 희한한 몬스터가 가득합니다. 레서 데몬 상위를 그레이터 데몬이라고 부릅니다. 데빌에 버금가는 녀석들은 희귀한 편이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마인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아크 데몬도 있습니다."
"아크 데몬이라 그것참 요란한 놈이군요."
"데빌은 악마와 비슷하지만, 악마와는 다른 놈입니다. 악마는 정신 지배가 우선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데빌은 파괴만 일삼는 놈이죠. 우리는 고위 악마가 데빌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데빌은 자연 발생적인 몬스터가 아니거든요. 던전의 몬스터처럼 어떤 작용으로 인해 스폰 되는 몬스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그곳의 세상을 한번 탐험해 보고 싶습니다."
"후후, 금강산만 하더라도 오금이 저리는 동네입니다. 자치령 따위가 노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죠."
이번 모험에 함께 움직이는 혈랑대의 대원은 정찬우, 황현, 이명우, 김현철이다. 그들은 강희찬이 이끄는 혈랑대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한 대원이다.
우리 여섯을 태운 차량은 시동을 걸고 서서히 움직였다. 군용 소형 트럭을 개조한 녀석은 힘 하나는 발군이었다. 거친 도로를 따라 시원스럽게 달렸다.
"금강산은 상당히 먼 거리인데 용케도 그곳까지 가네요."
"양질의 재료를 찾기 위해서죠. 금강산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확실히 일반 필드의 녀석들과는 차이가 납니다. 악마종도 훨씬 다양하고. 우리는 이블 워리어를 주로 노리죠."
"이블 워리어는 또 뭡니까?"
"세슬로이드의 상위 악마종입니다. 상급 아가문드 주재료죠."
"자치령에 있을 때는 들어 보지 못한 녀석입니다."
"흥, 자치령 애새끼들은 그저 세슬로이드나 두드려 잡죠. 이블 워리어는 쉽게 눈에 안 띕니다. 금강산같이 완벽한 터전에 자리 잡는 녀석들이라."
"악마군이 가끔 네크로폴리탄으로 밀고 내려온다면서요? 그때는 어떻습니까?"
"악마종들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던전처럼 필드에서도 스폰이 되는데 그 수가 쌓이게 되면 기어 내려오는 거죠. 그리고 토벌해서 수가 줄면 또 찰 때까지는 조용해지는 거고."
"제가 여기 올 때가 토벌 끝물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괜찮겠네요."
"네, 토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마 다음 회차는 내년 중반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악마군이 내려올 때 상위급도 내려오나요?"
"물론이죠. 레더 스컬의 상위 그러니까 지휘관급이 보일 때가 있죠. 세슬로이드도 마찬가지고 이블 워리어도 종종 보이고."
이현희도 그런 부분은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석천 이놈이 입막음을 시킨 것이 분명했다. 상급 아가문드의 존재를 내가 알면 그것도 내어놓으라 하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연합과의 눈치도 있고 연합이 건네주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건네주기는 싫었을 것이다.
석천 이놈은 생각보다 약은 데가 많은 놈이다. 뒤로 뭔가 감추어 놓고 보여주지 않은 것이 그것 말고도 또 있을 것이다.
가는 길은 강희찬 말대로 그렇게 위협은 없었다. 네크로폴리탄을 벗어난 지 한참 됐고 길도 다듬어지지 않는 길이었다. 그나마 혈랑대나 정찰대가 다녔던 길이라 차량 정도는 운행할 수 있었다.
스파이더 윕이나 스크리머가 차량의 소음을 듣고 따라오기는 했으나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레서 데몬도 모습을 보였으나 얼굴을 내미는 족족 황현이 들고 있는 무기에 격살 당했다.
황현이 들고 있는 아가문드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활이었다.
마인으로 변신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아가문드 자체의 공격력만으로 레서 데몬 정도는 우습게 격살시켰다.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만입니다. 그다음부터는 걸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확실히 울창한 수풀이 많아졌고 길도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건물이 나오는데 일단 그곳에서 하루 쉬도록 하죠. 날도 저물어 가니까."
몇 시간을 더 가자 오래된 건물이 밀집된 지역이 모습을 보였다. 혈랑대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이곳에 차량을 세워 두고 본격적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저녁은 내가 차렸다. 이미 한턱 내려고 불사의 회람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잔뜩 챙겨 왔다. 반주로 술이 빠지면 섭섭하니 술도 넉넉히 풀어 놓았다.
펜션 같은 건물 안에서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봉한 후 환상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그들은 이야기하는 것도 아까운 듯 정신없이 먹었다.
폭풍 같은 식사가 지나가고서야 겨우 이야기할 틈이 생겼다.
"어때요? 입맛에 좀 맞습니까?"
"맞다 뿐입니까? 저희가 어디서 이런 고급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입안이 얼얼할 지경입니다. 하하."
술병도 비었고 전원이 입에 담배 하나씩 물었다. 마인의 신체는 인간이 부담은 느끼는 모든 것에 수배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다. 술 몇 병 정도의 알코올로는 취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금강산 터줏대감이란 녀석은 어떤 녀석입니까?"
"세슬로이드의 변종인데 키가 사 미터가 넘고 대단한 권력을 가진 녀석입니다.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 우리 혈랑대 열 명이 놈을 포위하고 공격을 한 적이 있는데 녀석은 네 명을 때려눕히고 유유히 빠져나갔습죠. 우리가 금강산의 터줏대감으로 부르는 이유는 녀석은 항상 금강산의 한 자락에만 있고 다른 곳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번씩 개체 수가 넘칠 때마다 다른 놈들은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녀석은 절대 금강산을 떠나지 않죠."
"아하 그래서 터줏대감이라고 부르는군요. 생긴 것은 세슬로이드와 비슷합니까?"
"음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고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슬로이드와 같이 인간형 몬스터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긴 한데 세슬로이드가 악마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터줏대감 이 녀석은 뭐랄까? 조금 희한한 두상인데 혹시 도깨비 아십니까? 녀석은 도깨비를 많이 닮았죠."
"도깨비라면 옛날 책에서 나오는 신화 속 귀물 아닙니까? 지어낸 이야기 속의?"
"책을 집적 본 적이 있죠. 책 속의 도깨비와 많이 닮았습니다."
"여러분은 헌터 마인 급인데 열 명이 그놈 하나를 잡지 못했으니 데빌급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음, 데빌 중 가장 하위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도 데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몇 부대가 동원되어 연차 공격을 해야 하거든요.
"데빌은 그래도 잡아내긴 하는군요. 그런데 저번에는 죽을뻔하지 않았습니까?"
"후, 그건 명백히 제 실수입니다. 분명히 연합이든 자치령이든 지원군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서면 제 꼴이 나죠. 그것 때문에 정철웅 사령관에게 죽도록 혼나고 혈랑대 지휘 자격도 박탈 당할 뻔했습니다. 그 쌍년이 먼저 바람을 잡는 바람에. 미친년 그년이."
"하하, 이현희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제가 그년 목숨을 한 번 구해준 적이 있는데 배은망덕한 년이 그 은혜도 모르고 설친단 말입니다."
"자치령과는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습니까?"
"뭐, 원하는 바가 달라서 그리됐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그 시절에는 철없는 애들이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깊었고 모두 잠이 들었다. 불침번은 돌아가면서 보기로 했다.
물론 다도 불침번을 서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다들 고개를 젓는 바람에 수긍하고 말았다.
새벽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는 산길을 타고 긴 여정에 올랐다. 강희찬의 말로는 걸어서 하루는 꼬박 가야 한다고 했다. 마인의 발걸음은 보통이 아니다. 산길 정도로 지칠 체격을 가진 것도 아니니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산길이라도 수십 킬로는 잠깐 사이에 지나 버린다.
언노운에게 주변 지역을 스캔하도록 지시했다. 혹시나 모를 위협으로부터 대비할 수 있도록.
이곳은 노골적으로 침습을 당해 이쪽과 저쪽 세계가 완전히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은 울창한 수풀이 있고 한쪽은 회색빛 암울한 세상인데 이끼 하나 없는 자갈밭이 널려 있기도 했다.
그곳에는 항상 특유의 코를 찌르는 향이 났는데 바로 유황 냄새다. 사람들은 지옥의 냄새라 말하기도 한다. 악마종의 몸에는 항상 이 냄새가 배 있어 그런지 몰라도 유황 냄새가 난다.
금강산 첫 줄기부터 이런 세상이니 한쪽은 레서 데몬이 한쪽은 레더 스컬이나 세슬로이드가 서성인다. 강희찬의 말에 의하면 악마종은 공격성이 매우 뛰어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하는 습성 때문에 금강산의 레서 데몬은 거의 멸종 위기라는 것이다.
심지어 레서 데몬과 세슬로이드 간에도 다툼이 벌어진다고 한다. 하여튼 움직이는 것은 모조리 공격하는 습성을 가진 놈들이다. 우리는 귀찮더라도 수풀이 우거진 쪽을 선택해서 움직였다. 몸을 숨기기 쉽고 악마종에 비해 레서 데몬의 개체 수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서 애들 사냥 시작 할 겁니다. 최대한 많이 잡아가야 욕을 덜 먹습니다. 대장장이들이 요즘 핏대가 올라서 성질을 더럽게 잘 부립니다."
"그건 아가문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서 잠도 못 자고 망치질한다고."
그 소리에 내가 머쓱해졌다. 아가문드 수요의 주범이 이호점이니까.
금강산 터줏대감이 출몰하는 곳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니까 사냥하면서 올라가려는 모양이다. 혈랑대의 전투력을 측정해 보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현희와 버금갈 정도이거나 살짝 더 높은 전투력이었다. 역시 연합의 최정예다운 실력이었다.
"이모탈 시티에 와 본 적은 있습니까?"
"아뇨, 괜히 폐에 헛바람만 잔뜩 들어간다고 절대 허락해주지 않아서요. 솔직히 몰래 한번 구경하러 가보고 싶었지만, 셈텍스는 모두 정철웅 사령관이 관리하기 때문에 쉽지 않죠."
정글과 같은 우거진 수풀 지역이 끝나고 회색빛이 감도는 황량한 벌판이 일행 앞에 나타났다.
"모두 무기 점검하고 앞으로 나간다. 여기서부터 사냥터입니다. 회장님은 그냥 구경이나 하셔도 될 겁니다. 애들이 알아서 잡을 테니까요."
강희찬의 말 그대로 그들의 전투력은 확실히 탁월했다. 이현희가 이끄는 팀보다 한 수 위임이 단번에 느껴질 정도였다.
연합은 자치령보다 훨씬 단합력이 있었고 군기라고 해야 할지 그런 기운이 남달랐다. 체계가 확실히 잡힌 것 같은 팀이다. 탱커, 근딜러, 원딜러 구분이 정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어필했다.
주변에 서성거리던 레더 스컬이 일행을 보자 무서운 속도로 몰려 왔는데 아가문드 방패를 든 김현철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한 축적된 노하우와 풍부한 지식이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김현철의 방패는 조금 특별했는데 좌우 위아래로 방패를 크게 펼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거대한 방패가 앞을 가로막으니 레더 스컬의 무리가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그 사이로 정찬우와 이명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칼질은 단순해도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연계 공격이 상당히 매끄러웠다. 황현은 뒤에서 활로 빠지는 몬스터의 미간과 심장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화살을 박아 넣었다.
강희찬은 검을 뽑지도 않고 아예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다.
확실히 혈랑대는 이현희 팀 보다 상위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레더 스컬의 속사포 같은 찌르기 공격을 오직 민첩만으로 피해내는 것을 보니 나조차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한 무리씩 한 무리씩 잡으려 천천히 전진했다. 이곳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 작가의말
제가 봐도 질질 끄는 경향이 있어 흐름이 뚝 끊어져 버리네요. 다음부터 후딱 후딱 밀어 붙여 버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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