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습격
"죽음의 숲에서 벌어졌던 그 일이 말이야. 그 후로 세슬로이드가 씨가 말라 버렸어."
이현희는 황당하다는 투로 말을 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길게 담배를 뿜어내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제가 봤던 그것이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모르지, 그곳에 갔던 팀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야. 세슬로이드는 한 마리도 없다더군. 좀 더 위쪽으로 상경했는데 죽음의 숲이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하고 철수했다고 했어."
"죽음의 숲 그 위에는 무엇이 있죠?"
"우리도 몰라. 그냥 장막이라고 불러."
"장막?"
"그래 빛을 가리기 위해 처진 암막처럼 위쪽은 항상 어둠이 처져 있지 그곳은 완벽하게 침습을 당한 땅이라 원래 이곳의 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라고 해. 그곳은 별세상이야."
"그렇군요. 언제 한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아서라,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해."
"마인이라면 가본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물론, 가본 사람은 많지. 단지 돌아온 사람이 없어서···."
"그렇군요. 이렇게 조용할 때는 다들 무얼 하고 지내요?"
"조용한 날은 없어. 사방으로 경계를 나간다. 또 언제 어떤 놈들이 불쑥 내려올지 모르니까."
"그런데 한 번 내려오면 얼마나 내려오나요? 엄청난 수가 내려오면?"
"응, 가만있자. 기록에 의하면 만오천 정돈가?"
"웃, 만오천이면 전쟁이 나겠군요."
"네크로폴리탄의 마인은 다 합쳐 삼천 조금 넘을 거야. 그들이 모두 죽자사자 싸웠었지. 자이언트 월이 큰 도움이 돼. 아무래도 방어벽이기 때문에 레더스컬 정도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어. 그리고는 각개 격파로 사냥하지."
"혹시 그 존재에 대해 더 아는 바는 없고요? 석천 사령관에게도 보고했나요?"
"응, 그런데 석천 사령관도 고개를 흔들더군."
"제길, 그 일 때문에 며칠 심한 악몽을 꿨습니다."
"참, 오늘부터 광고 나가기로 한 것 아니니?"
"네, 열두 시부터 일제히 송출될 거예요."
"근데, 석천 사령관이 은근히 말을 흘리더라. 그것···."
"인력 보급 문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이현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기본 단계가 완성되었어요. 아가문드 덕분에 정크 보이 관리 권한을 불사의 회람이 가져 왔으니 다음 단계로 가려고요. 그 문제는 매우 신중한 요소니까 공을 들이지 않으면 바로 반감을 쌓게 돼요. 그럼 아주 곤란해 질 수가 있으니 기다려야 해요."
"알았어, 네가 노력해 주고 있다는 것만 봐도 충분해."
양의지 지배인과 김진태 부지배인을 포함한 일호점 관리인 헌터 모두가 집결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광고가 나가게 되고 문의가 많을 겁니다. EEA의 성능과 사용방법은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그에 대한 대처는 여러분이 가장 잘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불편한 부분이나 일호점 운영에 문제가 있으면 즉시 이야기하도록 하십시오."
자치령 곳곳에 설치된 전광판 광고를 통해 EEA의 광고가 송출됐다. ITB와 더불어 마인의 삶을 바꿔줄 최고의 아이템이다. 몇 달 동안 서버를 신축하고 기지국을 세워 이제 네크로폴리탄과 이모탈 시티는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EEA를 사용하면 정찰, 사냥에 필요한 팀워크 그 모든 것을 획기적으로 향상한다. 자치령의 지배층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솔직히 마인을 이렇게 강화하는 것을 이모탈 시티 삼대 길드에서는 상당히 못마땅한 뉘앙스를 풍겨낸다. 그들은 강화라고 하고 나는 마인 삶의 질을 높이고 그에 따른 이윤을 챙기는 일이라 둘러댔다.
며칠 뒤 창고에 수많은 아가문드가 들어왔다. 마인은 EEA를 구하기 위해 심지어 자신이 사용하는 병기도 맡길 지경이었다. 하루 만에 칠백자루가 들어왔으니 엄청난 호황이다.
일호점은 대 호황을 누렸고 그에 따른 막대한 부가 불사의 회람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삼대 길드에서 아가문드를 대량으로 매입했다. 특히 이터널 엘리시움은 아가문드의 위력을 직접 검증했으므로 눈에 불을 켜고 아가문드 구입에 열을 올렸다.
불행이도 아가문드는 카피너로도 카피가 되지 않은 무기라 오롯이 남대문 제철소에서 직접 담금질해 만들어야 내야 했다.
간혹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아가문드가 눈에 띄는데 검에 새겨진 문양으로 봐서는 자치령의 것이 아닌 연합의 것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웃기는 것이 연합의 마인이 들킬 각오를 하고 자치령에 숨어들어 우리 일호점의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들키더라도 죽지 않을 만큼만 두드려 맞고 쫓겨난다. 뭐 상처야 마인이 되면 금방 치유되니까.
그리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좋은 이야기도 있고 듣기 싫은 나쁜 이야기도 동시에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 일호점이 너무 독과점을 하고 있기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원하는 물품을 제때 사지 못하는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였다.
특히 음식점은 한계가 있다. 하루 수용인원이 한계가 있는 관계로 마인의 볼멘소리가 아주 높았다. 그들은 좀 더 많은 음식점이 생겨나기를 원하고 있다. 음식값으로 지급할 엘리시움 광석은 매우 풍부하니 음식 지급 값은 넘쳐 나는데 정작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지루한 기다림이 필요했다.
나는 석척 사령관과의 약속을 이때쯤 이행했다. 그것은 마인인 가정에서도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고 비상식량으로 고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자치령에서 가장 흔하고 사냥하기 쉬운 몬스터는 스크리머다. 일명 땅강아지라고 불리는 몬스터로 마인은 그냥 발에 채는 몬스터 취급을 하는 정도다.
우리는 이 스크리머 고기를 이용해 몇 가지 레시피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몬스터 고기는 인간이 먹지 못할 독소를 가지고 있다. 독소를 해독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상 고기를 섭취할 수 없다.
스크리머 고기를 해독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크리머의 피를 끓이고 식힌 다음 소금을 풀고 30분 정도 담가 놓으면 식용할 수 있게 된다.
애초에 아가문드를 받고 레시피를 공개하기로 했으니 지금이 딱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하여 도시 내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요리법을 공개했다.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집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일호점에서 내놓는 양질의 음식과는 비교할 순 없지만 고기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마인은 행복해했다.
한동안 스크리머 사냥 열풍이 불 정도였다. 이제 일호점은 완전히 자치령 사회에 녹아들고 있었다.
나는 불사의 회람 서버팀에 들렀다.
"지휘부에서 나오는 말은 단어 하나 흘리지 말고 모조리 감청하도록 해. 그날그날 감청한 자료 중에 특기할 만한 상황이 있으면 언제든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자치령에 EEA가 풀린 이상 불사의 회람에서 자치령을 감시할 수 있었다. 내가 자치령에 EEA를 푼 것도 다 이걸 위해서다. 언노운이 재설계한 EEA는 서버에 연결된 EEA는 모두 감청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석천 사령관 수뇌부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가는지를 완벽히 도청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모탈 시티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를 위한 대비는 늘 하고 있어야 한다.
일호점의 양의지 지배인과 정크 보이들은 일호점 운영 외에 또 다른 일을 겸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치령 마인의 일상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사람이 응당 그렇듯이 음식과 술이 있으면 호기롭게 입담을 피우기 마련이다.
그런 입담 속에는 마인 사회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나는 사소한 이야기라도 놓치지 말고 수집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내가 일호점을 자치령에 만들면서 생각한 것들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모탈 시티 사람이며 이모탈 시티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것도 사대 길드 중 한 곳의 수장임에는 그 책임과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비록 비굴하게 그들의 소리나 엿듣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효과는 크다.
나는 사무실에서 정아와 농담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이어링에서 호출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그래? 알았어."
"무슨 일이예요?"
"일호점, 아니 자치령에 어떤 문제가 생겼나 봐, 잠시 건너가 봐야겠어."
나는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버 감청실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석청 사령관이 자치령 전체에 비상을 걸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일호점으로 건너가자마자 양의지 지배인을 찾았다.
"무슨 일이야?"
"전체 비상이 걸렸습니다. 식사하던 마인도 모두 나갔습니다. 몬스터가 침공한 것 같습니다."
"자치령 전체에 비상이 걸릴 정도면 대단한 놈이 내려왔나? 모두 지점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말고 대기 하고 있어."
나는 지도상에서 이현희의 위치를 찾았다. 자치령의 가장 북쪽 입구에서 한 참 위쪽이었다.
여기는 차량도 없으니 오롯이 발로 뛰어야 한다.
자치령 전체에 비상이 걸릴 일이라면 두 가지다. 대규모 악마군대가 쳐내려왔거나 데빌이 내려왔거나다. 북쪽 문으로 왔을 때 많은 마인이 문을 완전히 닫아 놓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얼굴에 이블 페이스를 쓰고 있어서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자이언트 윌을 훌쩍 타고 넘었다. 그리고 이현희가 있는 곳을 향해 전력 질주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대지가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고 멀리서 폭음도 함께 들려왔다.
이것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몇 무리의 마인과 뒤엉켜 싸우는 붉은 물체를 보았다.
"3023, 어느 정도 되지?"
【데빌 레벨 지수 재앙급입니다】
재앙급이라면 그래도 가장 낮은 레벨이다.
"씨발련아 저리 꺼져."
"닥쳐 개새끼야. 방해만 되는 새끼가!"
갑작스러운 욕지거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란 마음에 한 참 전투를 벌이는 마인을 바라봤다. 이현희와 함께 연계를 펼치는 마인이 한 명 있었는데 이들은 데빌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이현희 홀로 이곳에 온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마인도 일반 마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 헌터 마인 이상의 거의 이현희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가진 마인이었다.
데빌의 출현에 자치령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은 마인이 출동한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데빌을 살폈다. 역시 저번처럼 온몸에 붉은 칠을 한 반질반질한 살가죽이었고 작살형 꼬리에 산양을 닮은 뿔, 마치 불이 쏟아질 것 같은 붉은 안광, 저번의 놈은 호리호리한 몸체였는데 이번 데빌은 상당한 근육질로 다부진 육체를 가진 놈이었다. 신장은 2m 정도 되어 보였다.
열댓 명의 마인이 데빌을 둘러싸고 있는데 가장 앞에서 전투에 가담 중인 사람은 이현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무척 세련되고 상남자다움이 가득 풍기는 시원스럽게 잘 생긴 마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연합은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연계란 공방을 손발을 맞추듯이 주고받아야 하는데 서로 공격 일변도로 연계가 전혀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서로 욕을 주고받으며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대기하고 있던 마인도 섣불리 싸움에 뛰어들지 못했다.
상대는 일반 몬스터가 아니고 데빌이다. 나는 저번에 데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저 지랄을 하도록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이현희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진중하고 사려 깊은 이현희가 전투에서 이토록 흥분한 적은 본적이 없었다.
데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대번에 궁지에 몰렸다. 나는 곧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이현희와 같이 있던 마인이 갑자기 이현희 뒤로 돌아가더니 데빌 쪽을 향해 이현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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