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철
박현과 김성우, 강희운, 이성규 이 네 사람을 다시 만났다. 김천 공황에서 봤었던 이현희가 이끄는 팀원들이다.
"자. 여기 최신 ITB입니다."
"오, 정말 감사합니다."
네 명은 ITB를 받아 들고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구형이죠. 에덴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나 지난 제품입니다. 이건 그에 비하면 약 열 배가량 많은 양을 적재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며칠 사냥한 것 다 때려 넣어도 넉넉할 양입니다."
"에덴의 기술이 부럽습니다. 이건 뭐 창고 한 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같네요."
나는 ITB에서 EEA를 다섯 개 꺼냈다.
"이건 지금 한 참 테스트 중인 EEA입니다. 귀에 귀걸이처럼 착용하시면 됩니다."
이현희도 EEA를 귀에 걸었다.
"처음 보이는 스타트 단추를 클릭하면 부팅할겁니다."
"여어, 들립니다. 위치 표시도 되는군요."
"이번에 나온 신제품입니다. 아직 이모탈 시티에서도 완전히 안 풀린 최신상품이죠. 위치 추적은 물론 고유 넘버가 있어 누가 누군지 자치령 서버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우측 등록창에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서버로 자동 전송이 됩니다. 그럼 EEA를 사용할 수 있는 정상적인 환경이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편하게 이어링이라고 부릅니다."
이현희와 팀원은 이어링 세팅에 열을 올렸다.
"됐다. 등록 성공이라는 메시지가 떴어."
"오케이. 그럼 된 겁니다. 밑에 친구 등록이라고 메뉴가 보이죠? 그것을 클릭하고 서로 등록하세요. 그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화 통화도 가능하고 내 팀원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죠."
"네 이어링 번호는 어떻게 돼?"
서로서로 이어링 번호를 불러 주었다.
"자, 세팅은 이것으로 다 된 겁니다. 서로 전화 걸어 보기 해 보실래요? 상대 이름을 클릭하면 나오는 정보 중에 두 번째 줄 호출을 클릭하면 상대에게 신호가 갑니다."
"호오, 이거 정말 편리하네. 이제부터 다들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여러모로 편리해."
"그렇죠. 이제 팀원 관리하기 훨씬 쉬워질 겁니다."
"자, 슬슬 출발해 볼까?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전에 빨리 움직이자고."
"그렇지 않아도 마인이 즐겨 입는 복장을 하고 왔습니다. 뒤섞여 있으면 누군지 잘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무슨 소리? 네 얼굴을 몰라보는 마인이 있을까? 불사의 회람 회장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
"그럼 이걸 쓰죠."
이블 페이스를 꺼내 얼굴에 착용했다.
"언제봐도 이상하게 잘 어울려."
이현희는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레드스컬은 대부분 토벌되었으니 일반 잡몹 정도만 돌아 다닐 거야. 그래도 북쪽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항상 경계 하는 걸 잊지 말자고."
"던전도 많다고 했는데 던전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네크로폴리탄 전역에 산재해 있어. 우리가 38기, 연합이 42기, 반군 지역에 8기 정도 있어."
"던전을 뛰는 마인도 있습니까?"
"물론이야. 아예 던전만 전담하는 마인이 있어. 살림꾼이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으로 생활하니까."
박현이 한마디 거든다.
"이젠 판도가 확 뒤집혔습니다. 불사의 회람 지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뭐 비교가 되어야지요. 이제 누가 던전 아이템을 쓰겠습니까?"
"이제 마인들이 엘리시움을 주우려고 일부러 던전을 가더라니까요? 며칠 전에는 제가 아는 사람도 엘리시움 구하러 오랜만에 던전 간다고 하더라고요."
김성우는 마인의 생활 전반에 변화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강희운은 방패를 등에 메고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어제는 숙소 근처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랑 저녁을 먹고 한잔했는데, 이야. 진짜 음식을 먹으면서 왜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왔는지 원통하더라고요."
"하지만 기다리기 너무 괴롭습니다. 마음 놓고 먹지를 못하겠어요. 기다리는 뒷사람 신경 쓰여서 말이죠."
"하하, 전 며칠 내로 이제 스스로 요리 해 먹을 수 있도록 고기 레시피 몇 개를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럼 이제 집에서도 고기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습니다."
"와, 그것 정말 획기적인 소식인데요? 비상식량으로 ITB에 넣어 두면 원정 나가서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그걸 위해서 레시피를 푸는 것이니까요."
이현희는 손으로 얼굴을 부치듯이 흔들었다.
"아서라. 애들아. 속으면 안 돼. 회장님 말은 그래도 실속 챙기느라 바쁘시단다. 자치령의 아가문드를 죄다 쓸어 가시는 바람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냐?"
"아니 누님은 꼭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공과 사는 엄연히 구분되어야지요."
"네, 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몇 구획을 통과해서 푸른 물결이 조용하게 흐르는 한강에 다다랐다.
"이제 이 도로를 타고 계속 북으로 이동할 거야. 지금부터는 몬스터 영향권에 들어가니 모두 집중하자.
"우리가 잡는 몬스터는 뭐라고 하죠? 세슬로이드라고 듣긴 들었는데?"
"인간형 악마다. 바디는 인간과 거의 흡사해. 평균 신장 이미터에 매우 발달한 근육이 가득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 대신 얼굴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악마야. 머리에 뿔이 나 있고 네가 쓴 가면이랑 비슷한 얼굴이라고 보면 돼."
"공격 성향은요?"
"푸, 성향? 놈은 눈에 띄면 무조건 살해하려고 덤벼들지. 기본적으로 인간을 먹이로 취급하니까."
"먹는다는 말입니까?"
"물론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다. 녀석들은 대부분 열 마리 남짓으로 몰려다니는데 그 열 마리가 성인 남자 한 명을 깡그리 먹어치우는데 십 분이 안 걸린다. 내장이고 뭐고 피 한 방울까지 다 처먹는 놈들이야."
"레더스컬처럼 정신 공동 감응체입니까?"
"아니, 놈들은 다행히 그런 능력은 없어. 우리가 세슬로이드를 사냥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
"레더스컬과 비교하면 전투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녀석들의 공격 방법이 워낙 달라서 딱히 누가 강하다고 하기보다는 레더스컬쪽이 좀 더 공격이 지저분해. 방어력은 비슷한 수준."
"그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는데요?"
"허이고. 벌써 자신감 레벨 상승합니다요. 세슬로이드만 있는 게 아니라 별별 미친 괴물들이 득실하니까 조심해야 해. 그곳이 달리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지 모르지? 내일이면 뼛속까지 느낄 수 있을 거야."
"이상하네요. 남쪽은 왜 악마형 몬스터가 없을까요? 심지어 데빌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에덴은 축복받은 곳이 아닙니까?"
"아마도 하우레스의 라인 때문이겠지. 그것이 거대한 방호벽이 되어 몬스터를 막아 주고 있는 댐 역할을 하는 거야."
"하우레스는 악마라면서요?"
"그래 하우레스는 악마야 아주 독특한 악마지. 레벨로 분류하자면 가장 꼭대기에 올라 있는 우리가 본적이 없는 최상급 악마라고 알고 있어. 레벨 분류는 갓 레벨이야."
"갓 레벨? 등급이 신이란 말입니까? 그런 등급이 존재나 합니까? 어떻게 알고 그런 레벨을 붙였죠?"
이현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하우레스 앞에서는 버러지 같은 존재지.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하우레스가 통치하는 지역에 발을 디딘 마인의 정신감응을 통해 들어온 정보야. 그는 즉시 그곳을 이탈했고 기억의 잔존물을 다른 마인에게 알려 주었지. 그 말을 듣지 않았던 마인은 단 한 명도 하우레스 라인에서 돌아오지 못했어. 서창배 팀을 제외하고는."
"아니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이 우리 중간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네요. 하우레스라는 악마가 다른 생각을 품고 움직인다면 우리는 바람 앞에 촛불이 아닙니까?"
"백 오십 년 전 이 땅이 침습 당할 때 그는 그곳에 터를 잡았어. 그리고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고. 말하기를 하우레스는 심각한 독신자 악마야. 누가 자신을 방해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해. 그건 달리 말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생명체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방해 받기 싫어하는 악마니까. 그것이 같은 동족이라도 말이지."
"갓 레벨, 갓 레벨, 우리는 겨우 S등급인데 갓 레벨은 어느 정도일까요?"
"기적을 스킬처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갓 레벨이라고 보지."
"이모탈 시티는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우레스의 존재는 백오십 년 동안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일전에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기억나?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이곳에 왔죠. 전 세상의 끝을 알고 싶습니다. 과연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가 다인지 아니면 세상 어느 곳에 또 다른 사람이 살아남아 있는지.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고 오대양과 육대주가 있습니다. 이곳은 넓고 넓은 대지의 한 귀퉁이에 불과할 뿐이죠."
"그래, 진정한 세상은 나도 보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몇 킬로도 벗어나지 못해 쩔쩔매지 벗어나기는커녕 삶의 터전조차 지켜내기 힘들어."
한강은 푸르고 힘차게 흐른다. 저놈은 백오십 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강줄기를 따라 계속 북상했다. 큰 도로를 타고 이동하는데 스파이더 윕이나 흔한 레서데몬은 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레드스컬을 토벌하느라 덩달아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겠지.
창원만 하더라도 코볼트와 고블린 무리가 상당히 많다. 침습을 당할 때 야생동물이나 애완동물은 모두 데몬화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레서데몬이다.
초기에는 레서데몬이 도시마다 판을 쳤다. 대부분 개나 고양이의 변종이고 다음으로 많은 것이 비둘기가 데몬으로 변한 종 그런 토착 변종과 침습을 하면서 건너온 외래종과 오래된 싸움으로 도태된 종은 멸종당했다.
개나 고양이가 변한 레서데몬은 이제 거의 씨가 말랐고 비둘기가 변한 종은 완전히 멸종되었다고 들었다. 이 모든 정보는 이곳에 있으면서 마인에게 들은 것들이다. 그들은 술 한잔에 케케묵은 이야기까지 모두 들춰낸다.
데몬류의 몬스터는 마인이 충분히 토벌 가능한 단계다. 간혹 위험군에 속한 데몬도 있다. 데몬 프린스가 그 예다. 데몬등급의 위는 바로 데빌등급이다.
데빌은 무리 짓지 않고 오직 홀로 로밍한다. 동선은 획일화되지 않고 불규칙적이다. 그래서 가끔 북쪽에서 데빌이 네크로폴리탄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데빌은 악마와는 구분되는데 그것은 피가 다르다. 인간형이기보다 짐승과 인간의 반반 섞인 모습이 많다.
네크로폴리탄은 데빌의 유형에 따라 총 세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파멸급, 멸살급, 재앙급 순이다. 저번에 내가 만났던 데빌이 최하위 재앙급이다. 자치령에서 파멸급은 경험이 없고 멸살급은 한 번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때 자차령 연합 합쳐 백여 명이 희생된 최악의 사건으로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그런 무시무시한 동네가 바로 북쪽 미지의 세계다. 북쪽 깊숙이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극히 희박하다.
남쪽은 하우레스 라인 북쪽은 지옥의 땅. 그 중간에 있는 동네가 네크로폴리탄이다.
세상은 너무 꽉 막혀 있다. 우리는 지옥의 한 구석에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인간이 다시 이 행성을 지배하려면 놈들을 하나씩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꼭대기에 갓 레벨이 앉아 있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을 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주변 아지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은 우리가 정찰 나올 때마다 사용하는 곳이라 먼지가 다른 곳보다 덜할 거야. 적당히 자리 잡고 식사부터 하자."
식사하자고 하니 다들 나를 보며 기대하는 눈치다. ITB에서 아예 냉장고 하나를 꺼냈고 곧 조리된 음식이 차려졌다.
"술이 빠지면 섭섭하겠죠? 특별히 가져온 술입니다. 백오십 년 전에 발렌타인 삼십 년산이라고 판매하던 술입니다. 지금 개봉하니 이백 년 가까이 된 술입니다."
"역시 회장님 품격에 걸맞은 술입니다."
"사냥 나와서 단출하게 먹는 술이 일품이란 걸 느꼈습니다."
한잔 두잔 잔이 돌고 일행은 푸근한 저녁을 즐기며 수다를 떨었다.
밤이 기울고 저마다 침낭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푹 자둬. 내일은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간다. 잘못하면 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누님도 잘 자요."
다음날 이현희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부스스 눈을 떴다.
아직 바깥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어래? 벌써 출발하시게요? 날이 밝지도 않은 것 같은데?"
"지금 강을 건너야 하거든. 날이 밝으면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어두울 때 건너 두려고. 빨리 준비해."
우리는 새벽 도하를 했다. 도하를 하는데 필요한 배와 장비는 단단히 숨겨져 있었다. 소리 때문에 엔진이 아닌 팔심으로 노를 저어야 했다. 이제 죽음이 유혹하는 곳으로 들어간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