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이곳에서의 하루는 거의 전투수준이고 일이 끝나면 모두 탈진할 정도여서 정크 보이 사십 명을 추가로 투입해 이제 백 명이 되었다.
처음 삼십 명으로 운영하려 한 것은 한참 오판이었다. 백 명이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루 빡세게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냥 이곳의 마인 전부가 우리 식당에 오는 거라고 보면 된다.
경쟁상대도 없고 유일한 음식점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리고 생각보다 엘리시움의 가치가 매우 뛰어나 이건 생각 이상의 수확이다. 고농도 엘리시움 전량은 이모탈 시티 엘리시움 발전소로 들어간다. 그에 대한 마진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몇 달 사이 불사의 회람 보유 자산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자치령은 자치령대로 얻은 것이 크다.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가 주는 파급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대공황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쇼크였다.
에덴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신의 요리가 나온다는 약간은 과장된 소문이 전 자치령을 휩쓸었다. 엘리시움만 있으면 원하는 음식은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덤.
거기에 다소 생소한 것 같지만 마약 이상의 강력한 주류의 등장은 또 한 번 마인의 이성을 뒤흔들어 놓을 만했다.
악마군의 토벌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우리의 등장은 그야말로 끝장을 달리는 쇼크의 연속이었다.
"죄송하지만 일 인당 두 병 이상은 팔지 않습니다."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엘리시움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병만 더 주시면 안 됩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과한 술은 금지하라는 석천 사령관의 훈령이 있지 않았습니까? 뭐든 적당한 것이 최고입니다. 살짝 기분을 내실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시기 바랍니다."
"에이 참, 너무들 하네. 우리가 술에 취해 주정 부릴 나이도 아니고···."
그는 투덜거리며 볼멘소리했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도 그렇고 석천 사령관도 그러했지만, 초기 주류를 풀 때는 엄격한 규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제동 없이 과한 술을 공급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마인 사회에서 문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석천 사령관이 걱정하는 것도 그 부분이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 인당 마실 수 있는 양을 두 병으로 조정했다.
그게 어디냐? 하루 빡센 일과를 마치고 진수성찬에 반주 한잔 곁들이는 건데 이것만 해도 황송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 아니던가?
발 디딜 틈도 없고 비는 테이블도 없다. 밖에서는 대기 줄이 끝도 없고 아우성은 날로 심해진다. 솔직히 이대로 가다가는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다.
나는 서울 시청에 들러 석천 사령관과 면담했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사항에 대해 그와 진중으로 합의를 끌어낼 생각이다.
"사령관님의 배려로 우리는 좋은 시선을 받으며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합니다. 마인 사회에 한줄기 축복이 내렸지 않습니까?"
"이제 곧 상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작은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 그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모탈 시티는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 경제 사회입니다. 우리도 이곳에서 이윤을 창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엘리시움만으로는 이윤을 내기가 조금 곤란합니다."
"음, 우리는 화폐란 개념이 없습니다. 물질경제가 다입니다. 무엇이라도 생각한 것이 있습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가문드를 매입하고 싶습니다."
"후, 그건 곤란하군요. 아가문드는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마인 고유의 무기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아가문드의 매입을 허락하신다면 최상급 ITB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치령에 서버를 증축하고 EEA가 통용되도록 선로망을 구성해 드리죠. 이 두 개만 해도 마인 사회는 엄청난 변혁을 맞이 할 겁니다. 네트워크망만 구축되면 마인의 전투 활동 반경이 비약적으로 커질 겁니다. 그리고 적의 침공에 대한 대비도 확실해 질 것입니다."
"음, 거참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고 계시는군요."
석천 사령관은 오른손을 턱에 괴고 한동안 고심에 빠졌다.
"마인 사회의 의식주 전반에 걸친 욕구 불만이 상당히 크더군요. 그건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쪽으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죠. 아가문드 매입을 허락하신다면 고기 요리 레시피를 공개해 드리죠. 저희 식당을 거치지 않고 개개인이 고기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를 공개하겠습니다."
"레시피를 공개해도 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재료는 지천에 널려 있으니 재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각료회의 때 결정을 내도록 해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희 과학력으로 이곳 자치령을 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이르지만, 인원 증축에 관한 일이 가장 큰 메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마인 인원 증원이라는 미끼를 흘리자 단번에 석천의 안색이 변했다. 함부로 입 밖에 내기 껄끄러운 부분을 내가 먼저 건드린 것이다.
그는 입이 타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가장 좋은 소식을 만들어 내도록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모든 것은 잘 던져졌다. 이제 그가 결정만 내리면 된다.
아가문드의 매입을 쉽지 않을 거라고 애초부터 각오를 다지고 왔었다. 자신의 몸에도 상처를 낼 수 있는 병기를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판매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민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쪽에서도 아가문드가 중요한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악마의 뼈와 피와 살이 들어간 이 무기는 카피너로 복사하면 빈 깡통이 되어 버린다. 오롯이 이곳 제철소에서 만들어진 진짜 아가문드만이 오롯이 상품 가치가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가면서 나는 본사와 1호점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슬슬 입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엉뚱한 것이 하나 들어왔다.
최우신 부사장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대화를 이어갔다.
"회장님 추측대로 연합과 반군이 접근해 왔습니다. 애들더러 일단 감시만 하라고 전해 준 상태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치령에 진출한 것을 알고 있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치령이 그 난리인데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요? 연합과 자치령은 네크로폴리탄에 머물고 있으니."
"음, 아마도 소문이 났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직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아가문드 매입권에 대해 확답을 받지 않은 이상 먼저 움직이지는 않겠습니다."
"연합은 아마 선대 회장과의 계약을 들먹이려 할 것이고 반군은 GHB가 목적일 겁니다. 후, 반군은 적은 인원이기에 어떤 수를 쓰든 간에 인원 확충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잘 감시하세요. 여차하면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마시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두 지옥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마인 킬러라는 팀 컬러에 먹칠은 하지 않을 겁니다."
"반군은 그렇다 치고 연합 쪽은 시간을 끌어 주세요. 그들과의 계약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로부터 며칠 후 석천 사령관으로부터 아가문드 매입권에 대해 허락이 떨어졌다.
그에 맞춰 식당 위 3층에서 5층에 이르는 상점이 일제히 개점했다.
생필품은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ITB가 정식으로 판매 대상에 올랐다. 지금 마인이 쓰고 있는 것은 가장 구형 ITB로 그것도 수적으로 부족해 일선에서 뛰는 마인만 특별히 착용하는 정도였다.
달리 말할 필요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생필품은 엘리시움 광석으로 얼마든지 구매가 가능했지만 ITB와 같은 고가의 제품은 엘리시움 대신 아가문드로 대처했다.
며칠 사이 백 자루 이상이 모였다. 나는 지체없이 본사로 보냈다. 가장 먼저 최우신의 팀을 완벽히 무장시켰다.
나는 아가문드 무기를 헌터 사회에 풀어 놓을 생각이다. 이미 TV 광고도 제작해 놓은 상태였다. 기존의 무기로는 마인의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다. 그러나 아가문드는 헌터가 사용해도 마인을 벨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조금 유치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연일 아가문드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고 주문 예약이 상상 이상으로 폭주했다.
일 차분 백여 개가 몇 분 만에 완판 날 정도였다. 광고가 나가자 삼대 길드 수장들이 부리나케 전화가 왔다. 특히 이터널 엘리시움의 소드 마스터 김철은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더니 급기야 직접 불사의 회람 본사로 나를 찾아 왔다.
전사들의 집합체인 이터널 엘리시움에서 아가문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일 테지.
소드 마스터 김철은 이터널 엘리시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것이 뭔가? 말만 하면 무조건 다 들어주겠다. 아가문드만 내게 팔라고.
신부들은 가만히 있겠는가?
마인을 지옥 불 속의 악귀보다 더 싫어하는 이들이 마인을 때려잡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하는 데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김의천 추기경까지 몸소 나서 나를 찾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들과의 빅딜을 이른 시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가문드는 저쪽 사회에서도 철저히 통제되는 물건입니다. 구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아가문드를 살펴보았네! 이건 악마의 무기더구먼."
김철은 입맛을 다시며 나를 바라봤다.
"악마는 악마로 잡는 거죠. 아가문드는 누가 드느냐에 따라 악마의 검이 될 수 있고 성검이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을 지녔죠."
"우리 사제도 아가문드에 대해 검증을 마쳤습니다. 아가문드는 악마의 무기가 분명합니다. 무려 성수에 반응하더군요. 아멘."
"여러분이 아가문드를 원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대마인 병기로 무장을 하고 싶으신 거죠?"
소드 마스터 김철은 표정에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김의천 추기경도 부정하지 않았다.
"자네가 푼 백 개는 우리가 다시 모두 회수해버렸어. 킥킥."
김철의 말에 난 어이없는 실소를 날렸다.
"하, 그거 TV 광고까지 하며 풀은 건데요? 독과점 심한 것 아닙니까?"
"니미랄 우린 값을 두 배로 쳐주고 그걸 다시 매입했다고! 독과점은 자네가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모탈 시티를 무장시키려 한 거지 여러분 길드를 무장시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 것도 위아래 순서가 있지 않은가? 우리 사대 길드가 먼저 무장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네. 만약 마인이 침공하면 가장 먼저 나서 그들과 싸우는 것도 우리가 아닌가?"
"아, 다 좋습니다. 좋으니까. 저한테 하나만 양보하시죠. 그럼 군말 없이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아가문드를 공급하겠습니다."
"뭔가? 빨리 말해 보게."
"가능하다면 다 들어 줄 것이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정크 보이와 무각성자 통제 권한을 불사의 회람에게 일임해 주십시오."
"그건!"
"통제 권한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정크 보이는 이모탈 인구 정책 때문에 버리는 카드 아닙니까?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불사의 회람이 가지는 겁니다."
"음, 자네는 능구렁이야.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그걸 달라는 거지?"
김의천 추기경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장인어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야 사위가 하는 일에 초 칠 생각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그럼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는 허락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끙 몰아붙이는 데는 선수로구먼."
김철은 당장 이렇다 할 소리를 내지 못하고 슬쩍 김의천 추기경의 눈치를 살폈다.
"여러분이 아가문드로 무장한다면 마인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닐 텐데요? 전 두 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마인의 인구를 철저히 통제할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걱정할 만큼 마인의 수를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숨만 쉴 정도의 공기만 주입할 생각입니다. 그 생명줄은 이제 제가 잡고 있으니까요."
김철은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 불사의 회람이 인물 하나는 확실히 잡아 버렸군. 물갈이되더니 용이 한 마리 들어앉아 버렸네."
"우리는 그럼 전적으로 정동혁 회장만 믿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이 만들어 버리는군요. 아멘."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박민혁이 입을 열었다.
"사위, 자네가 벌이는 일은 이모탈 시티 전체의 운명을 쥐고 흔들 만큼 중요한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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