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이
"그래 무슨 일입니까? 박철현 부장?"
"아, 다름이 아니고 이번 주말에 바닷가에 있는 별장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주말은 휴가를 낸다고 이미 간부들에게 통보가 됐을 텐데요?"
"아, 그게 아니고 그 별장 말입니다. 정성철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방치되어 있어 머물기에 적당한 환경이 아니라 알려 드리려고 들렀습니다. 그곳은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만."
"그래요? 그럼 청소하는 분들을 보내 정리 좀 해야겠군요."
"귀찮으시면 제가 머무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정리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 별장은 제가 관리하는 곳이니까요."
"오, 그래요? 잘 됐군요.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하하. 제가 말끔히 정리해 놓겠습니다."
박철현은 고개를 까닥이며 물러났다.
'후후, 이번 일요일이 거사 일인데 별장으로 옮긴다고 하니 신이 난 표정이군. 하기야 보안이 철저한 본사 빌딩보다 사람이 아예 없는 별장이 훨씬 좋을 테니까.'
박철현은 내가 정말 주말에 별장에 머물 것인지 확인차 들른 것이다.
"정말 비서를 대동하지 않으시렵니까?"
유철환은 끝까지 자신이 별장에서까지 모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유철환 비서. 난 쉬고 싶어서 별장으로 떠나는 것이니 이번 주말은 자네도 쉬어. 대신 부사장이 나를 에스코트할 거야."
그 말에 유철환은 겨우 단념하고 물러났다.
최우신이 모는 차량에 탑승한 나는 창문을 내리지 않고 담배부터 물었다. 차 안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차서야 창문을 내린다.
그러면 담배 연기가 쭉 빨려 나가고 시계가 확 틘다.
"미행이 붙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뭐, 상관있나? 확인차 따라붙는 거니까 놔둬."
바닷가 파도 소리가 들린다. 짠 내가 코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차량은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하얀색 건물이 우뚝 선 곳에 다다랐다. 이곳이 정성철 회장의 별장이었던 곳이다.
사실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별장이든 뭐든 간에 사치는 딱 질색이다.
원래는 정성철 회장의 개인 자신이지만 지금은 불사의 회람으로 모두 편입되어 있다.
나는 들어가 청소 등 기타 잡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남아 있는 것은 최우신과 나 단둘뿐이었다.
나는 지도위에 띄워진 마인 두 명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최우신은 나를 바라보면서 와인 한잔을 따라 마셨다.
"회장님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벌이신 겁니까? 저희한테 이야기만 해 주셔도 간단히 해결될 일을 말입니다."
"소문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 작은 소문이라도 나서는 귀찮아. 나를 먹잇감 보듯 하는 사람이 많거든. 그들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싶어 해. 괜히 남의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야."
"삼대 길드에서 뭐라고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그들은 바보가 아니네. 네크로폴리탄의 존재를 발표한 순간부터 마인의 통제에 힘을 기울이려 하지. 신부들은 이미 마인의 존재를 알고 있어. 그들의 움직임을 막아 놓은 것이 바로 나네."
"마루한 연합은 평화적인 분위기로 가려고 노력해. 나는 그런 노력에는 손을 얹어줄 생각이지만 위협하고 해 하려 하는 놈들에게는 똑같이 해 줄 생각이야."
"슬슬 시간이 된 것 같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시간은 자정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별장 안의 불은 모두 꺼졌다. 외로운 가로등 불빛 아래 모습을 보인 두 명의 군인 복장의 사내는 장검에 가까운 단검과 검을 들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보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날벌레들이 날갯짓하며 소음을 일으켰다. 두 명의 마인은 천천히 별장의 입구에 당도해 보안 장치를 간단히 통과했다. 그들은 현관의 비밀번호를 정확히 눌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수많은 조명이 밝혀지고 별장은 대낮처럼 밝아 졌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헌터들이 고함을 치며 별장을 포위했다.
두 명의 마인은 별장 안으로 들어온 순간 눈이 부신 조명에 깜짝 놀랐다.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로 봐서 이곳이 포위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건물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정동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려 왔다.
"포기해,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반군은 그 소리를 듣고 인상을 구겼다. 상당한 헌터들이 주변을 포위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정도희가 말한 곳이 이곳이 틀림없지?"
그들이 창문 밖을 내다볼 때 가면을 쓴 한 인물이 그들의 뒤로 나타났다.
"반군들이 설친다고 정도희가 말해 주더군. 네놈들 따위가 감히 연합의 일에 끼어들어?"
가면은 그렇게 말하고 아가문드 월도를 꺼내 들었다.
아가문드를 본 반군은 낯빛이 흑색으로 변했다.
"네놈은? 연합이 어떻게 이곳에 왔지?"
"후후, 정도희가 이곳에서 기다리면 올 거라더니 정말 기어들어 왔군."
"정도희 그년이 감히 우릴 배신해?"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아가문드를 휘두르며 덤벼왔다. 하지만 월도를 든 사내는 능숙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마인이 두 명이나 덤비는 대도 흔들림 없이 그들을 상대했다.
오히려 반군의 마인을 압도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좁은 곳에서 전투가 일어나자 주변의 기물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월도가 번쩍이며 마인 한 명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검으로 월도를 쳐올렸다. 월도는 뒤로 물러났다. 마인 두 명은 눈치를 보더니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뚜르르르
밖에서 대기 하고 있던 헌터의 손에 들린 k2 돌격소총이 불을 뿜었다. 대 마인탄을 장착하고 있어 한 대라도 맞으면 살이 터지고 탄이 살 속에 깊숙이 박여 고통을 겪게 된다.
두 마인은 탄환의 비를 뚫으며 포위망을 뚫고 내달렸다. 헌터들이 고함을 치며 그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소총을 난사했다.
최우신은 월도를 집어넣고 가면을 벗으며 걸어 나왔다.
"모두 수고했다. 뒷정리들 하고 조용히 물러나라."
최우신은 안주머니에서 담대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길게 한 모금 가득 뿜어낸 뒤 그는 피식 미소 지었다.
"싸워보니 마인도 별거 아니구먼. 그나저나 회장님은 참 재미난 분이시네."
최우신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이어링을 매만졌다.
"네, 회장님 계획 대로입니다. 반군 두 녀석이 혼쭐이 나서 똥줄 나게 튀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모습을 보일 겁니다. 단단히 화가 났거든요."
나는 청우 빌딩 옥상에 앉아 있었다. 주변의 화사한 네온 간판도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최우신의 연락을 받고 불사의 회람에서 이곳 청우 빌딩까지 왔다. 옥상에 올라 아래를 살펴보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건물 앞에 거칠게 섰다.
나는 그 차 안에서 반군 마인이 내리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들은 막아서는 경비의 목을 반으로 꺾어 버리고 던져 버렸다.
그들은 거침없이 7층으로 올라가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감시카메라를 통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썩을 놈들 내가 인간을 그리 쉽게 믿는 게 못 된다고 했더니만!"
"무슨 소리요? 정동혁은 어찌 되었습니까?"
피투성이의 반군 마인을 본 박철현이 놀라 소리쳤다. 그들은 다짜고짜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는 이상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주접을 떨어?"
반군은 단검을 휘둘러 박철현의 목을 베어 버렸다.
"쿠엑"
"아악, 무슨 일이예요!"
정도희가 펄쩍 뛰며 비명을 질렀다.
목이 베인 박철현은 양손으로 목을 움켜잡고 헛바람은 내지르며 비틀댔다.
"네놈들이 감히 우리 뒤통수를 쳐? 연합에 우릴 밀고했지? 우릴 처리하라고 말이야."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아악, 멈춰요."
정도희는 쓰러지는 남편을 끌어 앉고 비명을 질렀다.
"네놈들이 가르쳐 준 곳엔 정동혁이 있는 게 아니라 연합의 마인과 헌터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나와 싸운 연합의 마인이 자랑스럽게 말하더군. 너희들이 계획을 꾸몄다고."
"오해예요. 오해. 뭔가 잘못이 있었던 거예요. 정동혁이 정동혁이가 그곳에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지금까지 감시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곳에 정동혁은 커녕 그림자도 없었어. 연놈들이 연합과 손잡고 우릴 기만했군."
"잠깐, 진정하라고요. 사람 말을···. 아악."
독이 바짝 오른 마인은 검을 들어 정도희 가슴을 꼬치 꿰듯 꿰뚫어 버렸다.
청우 빌딩의 앞으로 수도경비대와 헌터들이 밀어닥쳤다. 물론 그들에게 정보를 흘린 것은 최우신이다. 청우 빌딩에 마인이 출현했다는 정보를 삼대 길드에게 보냈다.
적절한 시기에 그들이 들이닥쳤다.
반군의 마인은 정도희 부부를 요절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헌터들이 세운 방어막이야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백호가 그런 그들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 놓았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박정아는 타도 마인을 위해 칼같이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백호를 계속 업그레이드했는지 두 명의 마인과 상대해도 꿀리지 않는 위용을 보였다.
사실 최우신에게도 밀리던 반군이다. 하물며 최우신 보다 상급인 박정아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박정아는 마인이 되었지만, 가면을 쓰고 있어 사람들은 그녀가 마인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이미 주변에는 마인을 상대할 만한 헌터들이 모여들었고 박정아는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확실히 반군을 몰아붙였다.
그들은 정성철 회장의 암살 이후로 마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또 오늘 불사의 회람 중역을 살해한 상태라 그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나도 재빨리 그 자리에 끼어들어 반월륜을 날렸다.
"저들은 불사의 회람 정성철 회장의 딸을 죽였습니다. 나는 불사의 회람 회장으로서 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마인으로 변신하지 않았지만, 마인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의 기본 능력치는 사람들이 SS 레벨이라고 믿고 있는 만큼의 능력을 보여줬다.
청우 빌딩 앞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과격한 전투의 진동이 대지를 흔들었다. 백호는 무기체계를 가동하지 않았음에도 마인을 완전히 압도했다. 박정아는 아가문드 채찍으로 마인의 한쪽 팔을 뜯어냈고 그 틈에 백호가 앞발로 마인을 후려쳐서 쓰러뜨린 다음 목을 물고 분질러 버렸다.
그쯤에 내 반월륜이 공간을 가르고 마인의 검을 묶어 두는 순간 스페이스 커터로 놈의 목을 떨어뜨렸다.
상황은 10분도 안 돼 정리되었다. 나는 쓰러진 마인들의 손에서 아가문드를 회수했다.
헌터들은 포위를 풀지 않고 건물 수색에 들어갔다.
"실력이 또 늘었네. 백호는 갈수록 강해지는구나."
"이야. 우리 회장님 얼굴 보기 힘드네요."
박정아는 마인을 해제하고 가면을 벗었다. 그녀는 살짝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나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오늘 이후 자주 보게 될 것 같기도 해."
"그럼 내일 당장 만나."
"이걸 보라고. 내일은 바쁠 거야. 우리 간부가 마인에게 살해당했어. 그녀는 정성철 회장의 딸과 사위라고."
"마인은 왜 그들을 죽인 거야?"
"음, 내가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안타까워, 그들은 나 몰래 마인과 거래하려고 했어. 마루한 연합과 KH 반군에 양다리를 걸치다가 반군 마인들에게 의해 살해당했어. 자세한 내용은 내일 오전 중으로 발표 될 거야."
"정성철 일가는 정말 끔찍한 최후를 보냈군."
다음날 오전 정도희와 박성철 부부의 마인 살해 사건이 머리기사로 모닝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나는 불사의 회람 회장으로서 유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왜 마인이 두 사람을 살해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다. 단지 그들 부부가 마인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고 그들과 마인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게 되어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삼대 길드장에게는 내 직통 라인으로 정도희 부부가 마인과 내통한 모든 사실이 남김없이 통보되었다.
삼대 길드장에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은 더 조사하여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내가 의도적으로 정도희 부부를 제거한 것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결국, 정도희 부부는 연합과 반군을 사이에 두고 양다리를 걸치다가 반군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도희 부부가 살해되고 남은 세력은 최우신이 아주 깔끔하게 해산시켜 버렸다. 이제 불사의 회람에서 나를 두고 뒷말하는 세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썩은 이가 완전히 빠져 버린 것이다.
나는 한 달 후인 내년 1월 1일 정식으로 회장에 오른다는 공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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