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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사이비 점술가는 잘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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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신니햄참
작품등록일 :
2022.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2.10.06 17:18
연재수 :
7 회
조회수 :
427
추천수 :
9
글자수 :
34,860

작성
22.09.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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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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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화 사기꾼.

DUMMY

난 사기꾼이다.


"흑, 선생님, 제발. 우리 아들, 동진이 좀 살려주세요. 네?"


지금 내 앞에서 아들의 목숨을 구걸하는 여자가 있을 정도로 좀 치는 사기꾼이다.


"어... 저는 살리는 기술은 없는데요?"


"그럼 우리 동진이 어떡해요, 선생님. 네? 선생님 말 안들어서 저희 동진이가 다쳤잖아요. 돈은 제가 마련해 볼게요. 제발요."


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시발. 잘못 걸렸다.


"그... 아드님이 다치셨다고?"


"네, 학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음주운전 한 차가 인도로 달려와 사고가 났어요."


"허, 크게 다쳤나 보네요. 이런 안타까운..."


아니 다쳤으면 으사선생한테 가라고 이 아줌마야. 으사선생 몰라?


"아뇨, 어떻게 그렇게 몰아가세요? 사이드 미러에 밀려나 넘어져서 발목에 깁스를 하긴 했는데, 크게 다친건 아니래요. 삼주면 다 낫는대요."


눈 앞의 여자는 크게 다쳤으면 좋겠냐며 눈을 부라린다. 여러모로 무서운 여자다.


아니 크게 다친 거도 아니면 왜 아들을 살려달래? 그냥 눈 앞에서 꺼져 줬으면 좋겠다. 물론 다쳤다고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럼 이미 잘 사시고 계신거 아닙니까? 아드님은."


"근데, 우리 동진이 공부 못하게 되면 어떡해요, 선생님. 선생님이 말한대로 공부 때문에 큰일 났잖아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해요?"


에... 그러니까.


이제 기억났다. 이 여자는 삼주 전쯤인가? 나한테 점을 보고 갔다. 타로점. 진상을 부렸던 것 같다. 한결같은 여자다.


그래, 난 타로로 사기치는 사기꾼이다. 누군가는 점술가 라고도 높여 불러주기도 할 때도 있다.


"그때 점괘 내용이 뭐였...죠?"


내가 본 점괘를 어떻게 다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상대는 기억하나 보다.


"부정적, 조심이라는 키워드가 나왔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꼭 공부만이 길이냐고, 다른 길도 요즘엔 많다며 시야를 넓혀 보라는 말씀 하셨을 때 ...흑."


아, 기억이 조금 더 날 것 같다. 이 여자는 아들과 함께 왔었다. 아들은 그냥 엄마따라 백화점에 따라온 약간은 지친 평범한 중학생?쯤으로 보였던거 같다.


뭐, 엄마는 쇼핑 다하고 백화점 맞은편에 작은 타로 점집 있으니 심심풀이로 들렸을 테다. 아들도 옆에 있으니 우리 아들 공부 운세좀 봐주세요~ 따위의 말을 꺼냈을 테다. 그리고 나온 점괘가 '부정적, 조심' 따위의 키워드 조합이었나.


멀쩡한 학부모가 아들 공부 운세에 부정적, 조심이라는 단어를 듣고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때 난 어떻게 대처했더라? 아마 다른 운세도 좀 봐 보자고 하면서 자연스레 넘어가려 했을테다.


"그 운세 말고 다른 운세는 어땠는데요?"


"그 점만 보고 무슨 말이냐며 제가 화가나서 그냥 나갔잖아요. 복채도 안드렸고.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도 싸가지 없게 행동해서 벌받나봐요. 죄송해요."


라며 여자는 흰 봉투를 꺼낸다. 으음, 얼말까? 짭짤한 부수입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있는 일이다. 내 점괘는 부정적인 단어도 잘 쏟아낸다. 그래서 그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도 많이 마련해 두는 편이다.


이 여자에게 말했던 대로 다른 영역을 찾아 시야를 넓혀 보는게 어떠냐, 구체적인 방법을 조금 달리해 보는 것이 어떠냐, 부정적인 단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 해석한다거나, 다른 내용의 점도 한번 보자거나.


어차피 점치는 건당이 아니라 시간당 돈을 받기 때문에 점괘가 안좋으면 대충 넘기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도 꽤 괜찮다. 아무튼 점치는 짬이 찰수록 그런 대처 능력은 늘어 갔다.


이 여자처럼 복채도 안주고 점괘가 기분 나빠 나갔다는 것? 정도는 애교다. 나는 다만 지랄만 하지 말라고 빌 뿐이다. 뭐 15분에 만원, 30분에 이만원 돈하는, 점술가 치곤 그렇게 비싸지 않고 그냥저냥한 가격에다가 화까지 낼 놈들은 잘 없긴 하다.


이런 사람 때문에 선불로 받진 않는다. 돈을 이미 지불해 놓고 악담을 듣는다? 그땐 만원 이만원 돈이라도 그 상황에 화가 나서 무슨 지랄을 할지 모르기 때문. 차라리 그냥 나가버리는게 서로에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지난번 복채인가요?"


"네, 선생님. 그리고 이번에도 우리 동진이 좋은 점좀 내달라고 좀 더 넣어 왔어요. 부탁드려요 선생님."


나는 다시 이마를 손으로 매만진다. 에휴


"휴, 돈을 더 주신다고 좋은 점이 나오고 하는게 아닌데..."


아 무심결에 사부, 아니 그 못된놈의 말버릇이 튀어 나온다. 닮아가는가 싶다가도 생각해보니 직접 점을 치다보면 이런 말을 자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걸 깨닫는다.


"일단 앉아 보세요."


책상 한쪽에는 어두운 색의 함이 있다. 주둥이만 책상끝에 걸쳐 있고 나머지는 아래의 보안 케이스에 연결되어 있다. 그쪽으로 손짓을 한번 슥-한다. 여자는 무슨 뜻이냐며 쳐다본다. 아, 복채 넣어 놓으라구요. 거참. 손짓으로 봉투를 함 입구에 가리키니 넣는다. 음, 받아버렸다. x됐군.


이렇게 선불로 먼저 지불한다거나 점이 다 끝나고 돈을 꺼내는 손님들이 있다. 난 괜히 돈을 직접 손으로 받는게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이런 조그만 장치를 마련해 뒀다. 손님이 알아서 복채를 함에다 넣을 수 있도록.


자주 오는 손님은 알아서 돈을 꺼내 넣어 주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잘 모르는데 선불로 지불 하겠다 하면 넣어 주시면 된다고 알려주면 그만이다.


"그럼 아드님의 지금의 운세를 한번 볼까요."


내가 생각해봐도 난 참 개새끼다. 남의 아들 운명을 내가 쥐고 있는 것처럼 상황이 조성되었다. 눈 앞의 여자는 침을 꼴깍 삼키며 두손을 공손히 모은다. 어? 기독교인인가? 아줌마 여기 사이비야. 돈 돌려줄테니 그냥 가.


라고 하기엔 상대의 눈빛이 간절하다. 에이, 뭐 기원을 하는 자세는 비슷할 수도 있지 싶어 일단은 카드를 섞는다. 84장의 카드. 내가 점술을 운용하기 위해 멋대로 짜낸 카드 구성이다. 84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한국인 국룰식 화투섞기 방식으로 카드를 섞는다. 뭐? 타로는 정방향 역방향 때문에 그렇게 섞으면 안되느니 어쩌느니 하지마라. 그것도 다 계산해서 치는 점이니까. 이내 카드를 보기좋게 눈 앞에서 쭈룩 펼친다. 정갈하다. 연습한 보람이 있다.


"천천히 두 장을 뽑아 주세요."


여자는 조심스레 카드를 만진다. 조심스레 이거 뽑을까 저거 뽑을 까 하며 이 카드 저 카드 만진다. 아니 그거 고민 해봤자 뭐가 달라질 것도 없는데 싶지만, 내담자(고객)이 점술을 즐기는 방식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이렇게 두가지요."


여자가 카드 두장을 골랐다. 일단 내가 그 카드 둘을 받아둔다. 제발 좋은 카드가 나왔길. 나도 바란다. 사기꾼이지만 나도 그저 내 사기의 피해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기, 윈윈이 아닐까?



0번~83번(총 카드 수는 84장이다)의 카드 번호중 54번, Hanged man, 행맨 역방향이 그녀가 고른 첫 카드다.


54번 카드, 행맨 역방향의 카드 의미는


/포기, 참을성없는, 고생, 누명, 억울함/ 따위다. 시발. x됐다. 아들 죽는다고 통곡하는거 아녀? 머리가 아파왔다.


아직 한 카드 남았다. 나머지 카드를 까본다.


13번카드. Death. 죽음. 죽음의 정방향 카드가 나왔다. 어? 니가 여기서 왜 나와?


13번 카드, 죽음의 정방향 카드 의미는


/죽음,파괴,절망,분해,질병,사고/


잠깐.


처음 나온 54번카드, 나중에 나온 13번 카드 모두 부정적인 의미가 큰 카드들이다. 그래서 저 여자 아들, 동진이 큰일나는거 아니냐고? 여기서 더 사기를 치면 그만이다.


포기, 고생, 누명, 억울함 / 죽음, 파괴, 절망, 분해, 질병, 사고.


그럼


'고생의 죽음.' '억울함의 파괴.'


두 단어가 있을 때, 조사와 문장 구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말의 의미는 달라지는 법.


'고생하다 죽었다.' 와, '고생의 죽음.' 은 그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말그대로 고생하다 삶이 끝났다는 거고, 후자는 고생이 끝나 이제 꽃길이 열린다는 의미 구성이 가능하다. 그래, 이게 사기지.


다행이다. 좋은 의미로 해석해 줄 수가 있어서.


일단은 난 스스로 기본적인 해석을 끝나기 전까지 카드를 내담자(고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나 혼자 보면서 아가리 털 내용을 구상하는 것도 맞고, 이러면 상대방은 자신의 운명을 남만 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 쪼이기 때문이다. 뭐 서로 좋은거지.


"여기 선택하신 카드는요."


일단 54번 카드. 행맨 역방향을 내민다. 난 카드 앞면에다 대략적인 카드의 키워드를 여럿 네임 펜으로다가 써뒀다. 신비감이 사라진다고? 천만의 말씀. 이 개짓거리야 말로 사기를 예술의 경지로, 사기의 피해자가 스스로 사기의 주문을 걸게 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이 스스로 거는 주문은 나중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여자의 눈앞엔 거꾸로 메달린 남자가 그려진 타로 카드가 놓여 있고, 그 카드의 빈칸에는 /포기, 참을성없는, 고생, 누명, 억울함/따위의 단어가 적혀있다.


여자는 손으로 눈을 가린다. 큰일났다는 듯이.


"두번째 카드 까지 보시죠."


나는 두번째 카드, 13번 Death, 죽음을 여자 앞에 내민다. 해골 기사가 당당히 있는 그림. 여자는 다친 자신의 아들, 눈 앞의 불길해 보이는 그림들의 카드 조합에 절망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축하합니다, 아드님은 괜찮으실겁니다."


"예?"


"여기 카드 보이시죠?"


"네"


"카드 하나만 가지곤 의미가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카드들을 자세히 본다. 포기, 고생, 억울함, 죽음, 파괴, 절망, 사고. 엉망인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카드들의 의미를 연결해 본다면?"


나는 손으로 짚어 왼쪽 카드의 '고생'과 오른쪽 카드의 '죽음'을 가리켰다.


"고생의 죽음, 고생이 끝나고 꽃길이 열린다는 것이지요."


여자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것만 있겠습니까? 여기."


나는 다시 다른 키워드들을 가리킨다.


"억울함의 파괴. 억울한 일들이 끝나고 좋은 일들이 올 것이란 뜻이지요."


여자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당당해 진다. 고갱님의 기분이 좋아지니 나도 다행이다 싶다.


"지금까지 고생 했고, 억울함이 있었겠으나, 그런 일들이 종말을 맞고, 좋은 일들이 열릴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진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아줌마야.


"예.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아드님 잘 회복되길 도와 주시죠."


그렇게 내 사기는 오늘도 무사히 순항중.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로 봐드립니다 혼자만 질문을 생각하시고 '저요'라고 쓰셔도 되고 연애/학업/커리어/직업/ 등등 카테고리를 알려주시거나,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셔도 됩니다. 나쁜 점괘는 한귀로 흘리십쇼 재미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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