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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stein의 서재입니다.

Cabalist : 제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Calstein
작품등록일 :
2019.09.16 19:15
최근연재일 :
2020.04.2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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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글자수 :
25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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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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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폐허... 그래, 여기는 그 산속에 있는 폐허인가."


알베르트가 나와서 마을을 한 번 살펴보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들은 적 있는 발레스트 공화국의 폐허. 원래는 교역소나 여관 등 중간 거점으로써의 역할을 하던 시설들이 많이 설치된 큰 마을이었다. 발레스트 공화국이 멸망하고, 히에라온 제국이 들어서고나서 영토가 확장되고 주요 도로가 변경되면서 쇠퇴하여 끝내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버려진 마을이 된 곳이다.


"도로는 우리가 나름대로 정비하여 재사용 중이죠. 하지만 이곳은 워낙에 사람들이 잘 안오고, 몇몇 행상인들만이 왔다갔다합니다."


아까 그 여자가 알베르트의 뒤로 따라나오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알려진 것이 없나. 이곳은 우리의 시찰 경로도 아니고, 군의 이동도 없는 곳이니."


라인하르트 가문의 가주로써 그래도 나름의 세월을 보냈는데, 주민이 있다는 것은 그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곳엔 그 흔한 산적도 뭐도 없죠. 우리 같은 도망자들이 편안히 살기엔 참 좋은 동네랍니다."

'....이곳이 그 폐허라면 원래 가고자 했던 라웬부르크와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보군.'


하긴, 당시의 그는 부상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길을 한 번이라도 잘못 들면 올 수 있는 곳인만큼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근처의 귀족 나으리는 아니신가 보네요. 모르는 얼굴인데....."


알베르트의 차림새는 많이 더러워지긴 했어도 귀족의 문양과 양식이 드러나는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여자는 의문을 품었다. 분명 주변 귀족들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알베르트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폐쇄된 마을이라 그리 많은 정보가 있진 않나보군."

"평범한 귀족 나으리는 아니신가 봐요?"


알베르트는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범한 편력기사라 생각하게. 전장에서 떠도는 편력기사인데, 퇴각하는 중 부상을 입었네."

"....편력기사요?"


평범한 농노나 제국 시민들에게도 편력기사들은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떠돌아다니는 편력기사들은 정식으로 귀족 취급은 못 받지만 농노나 평민들이 함부로 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본인들이 귀족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 다들 굉장히 오만한 면이 있었다.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못 들었나?"

"그러고보니 행상인들이 그런 말을 하긴 하더군요."


마치 지나가면서 들었다는 듯이 말하는 여자를 보며 알베르트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뭐.....됐다. 어쨌든 나의 군...아니, 우리 군대는 패배했고 지금은 이렇게 도주하는 신세이니."

"........"


여자는 말없이 천천히 알베르트를 훑어보았다. 분명 어제 갑옷을 벗기면서 본 문장은 매우 익숙한 것들 중 하나였는데, 그의 얼굴은 처음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사자의 문장.... 이 지방에 살면서 그걸 모르는 건 말도 안되지. 내가 아무리 도망친 농노라하더라도 마찬가지야.'


많이 더러워져 자칫 못 알아볼뻔 했지만 그렇게 특색있는 문장을 쓰는 곳은 이 제국에 있는 수많은 귀족 가문 중 딱 하나밖에 없었다.


'라인하르트.... 분명, 라인하르트의 문장이었어.... 처음보는 얼굴이긴 해도 그 문장을 못 알아보진 않아.'


알베르트가 선제후의 위에 올랐으나, 이 마을에 그녀가 머물기 시작한 것은 그것보다 오래된 일이었다. 애초 그녀의 부모가 이곳으로 도망오면서부터 살기 시작했던 것이니 햇수로는 이미 20년 가까이 된 상태. 즉, 눈앞의 인물이 팔켄슈타인 지방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선제후라는 것은 그녀는 몰랐다. 하지만, 그가 라인하르트라는 제국 굴지의 대귀족 가문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는거지? 라인하르트 가문의 사람이면,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텐데....'


편력기사라는 이유를 둘러대며 거짓말이라니, 매우 드문 경우였다. 편력기사는 분명 강력한 기사 전력으로써 평가받지만, 귀족에게나 농노에게나 일반적인 시민들에게나 모두 그 인식이 안좋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의 기사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되고, 라인하르트 가문의 일족이면 그걸 내세우면 될 터인데.....'


반란군인지 뭔지에게 쫓기는 건가? 하지만 라인하르트 가문의 사람이 이 팔켄슈타인에서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것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감히 누가 그들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 지방에선 그야말로 황제와도 같은 위치를 누리는 것이 선제후다.


"반란군의 영향이 아직 여기엔 미치지 않은건가..... 어서 라웬부르크로 돌아가봐야겠군."


그 말을 들은 여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타고 오신 말은 최대한 간호했지만 결국 죽었어요. 이 마을엔 그런 말 같은건 없구요."

"......."


걸어서 가기엔 라웬부르크까지는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내가 며칠간 쓰러져 있었지?"

"사흘 간은 쓰러져 계셨죠."


그 정도면 실종으로 알려져 반란군과 라웬부르크에서 온갖 곳을 다 뒤지고 있을 터였다. 반란군들이 아무리 승리했다고 하지만 카르테 평야를 크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나, 그렇다하여 라웬부르크까지 걸어가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걸어가면 시일이 오래걸려 그 전에 반드시 무슨 문제가 생길 터였다.


"말이 없다면 빠르게 갈 방법이 없군. 여기 사람들은 따로 이동수단이 없나보지?"


그 말에 여자가 살짝 차갑게 웃어보였다.


"도망자들의 마을에서 너무 많은걸 바라시네요. 우리는 살아가던 터전을 버리고 숨어든 이들이예요. 이곳에 숨어 어디 갈 생각을 할 것 같나요?"

"........그렇군. 미안하다."


알베르트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본디 농노란 도망쳤다 잡히면 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평민, 즉 일반 시민들도 이와 거의 다를 것이 없는 처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도망칠만큼 그들의 삶은 척박하고 나빴던 것이다. 그렇게 도망친 이들은 기존에 있는 도망자 마을에 들어가거나 자신들끼리 마을을 이루어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자급자족. 원래는 행상인조차도 접근하지 않도록 한다. 이것조차 아니면 그들은 도적이 되어 다른 이들을 약탈하는 삶을 살아간다.


"말은 잘 묻어주었어요. 물론....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지쳐 죽은 짐승고기라도 먹으려 드는 것이 이러한 마을이었다.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꽤 많은 면에서 풍족하다 볼 수 없었기에, 이렇게라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많았다.


"......그런가."


알베르트는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애초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은 선제후인 자신의 잘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제후들은 직접적으로 모든 영지를 다스리진 못하고, 간섭할 권한도 없지만 그래도 지방을 대표하는 최고의 귀족으로써 각 영지의 실태를 살필 필요는 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적절한 영지를 발견하면, 선제후로써 그것에 대해 지적할 수는 있었다. 개선이 전혀 되지 않으면 전쟁을 통해 강제로 그 권한을 빼앗을 권리 또한 가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마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 잘 다스려오진 않았다는 것이겠지.'


라인하르트 가문은 엘프들과의 분쟁 때문에 많은 세월을 외부에 신경쓰며 보낸다. 팔켄슈타인 지방 내부에 대한 내정은 가신들이나 각 귀족(제후)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겨 행하도록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선제후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다른 지방보다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이 이런 폐허 속에 숨어사는 것은 알베르트 자신과 라인하르트 가문의 잘못이기도 했다.


'화를 안내다니......'


편력기사라면 말 하나를 굉장히 애지중지하는 편이다. 떠돌이 기사가 많은 재산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말이란 굉장히 중요한 밥벌이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사가 말이 없이 어찌 기사겠는가.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알베르트는 화를 내기는 커녕 뭔가 깊게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이미 죽었기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건지......


'역시..... 이 사람은 편력기사는 아니야.'


물론 모든 편력기사가 안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랬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농노의 목숨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주들이야 자신의 영지의 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만큼 나름대로 챙기지만, 편력기사들은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그저 어떻게든 전공을 세워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기를 원할 뿐이다. 실력있는 편력기사라면 그 오만함은 절정에 달해 더욱 횡포가 심해진다. 거의 강도나 다름 없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편력기사라 보기엔 그 행동이 너무.....'


단정했다. 마치 더 높은, 고위의 귀족처럼. 그들은 때론 고압적으로 행동하며 때론 오만하게 보이나 사람을 지배하는 그 분위기가 있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게끔 한다. 그리고 귀족의 품위란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하여 그 누구보다 자신이 다스리는 이들에 대해 신경쓰고 그 어떤 위험 앞에도 스스로 나선다. 그 어떤 핏물에 뒹굴어도 그 정신의 고귀함만큼은 빛난다. 제대로 씻지 못해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알베르트였으나 그래도 그는 그 어느 귀족보다 고귀해보였다.


"기사 나으리께서 말을 잃고도 아무런 감상이 없으십니까."

"......!"


알베르트는 그녀의 말에 아차했다. 라웬부르크에선 말이 부족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자신이 타고 왔던 말은 애정을 붙인 애마가 아닌 일반적인 군마 중 하나였기에 제대로 반응을 안한 것이 이렇게 지적받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미 죽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저희같은 천한 것들이 그 고기를 먹어도요?"

"죽은 말의 고기를 먹은 것이 무슨 죄인가."

"후우...."


여자는 한숨을 내쉰 다음 말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도록 하세요, 라인하르트의 귀족님."


그 말을 듣는 순간, 알베르트는 처음부터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라인하르트 백작의 행방을 찾았나?"

"예."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검은 복면인의 뒤로 상인 한 명이 벌벌 떨고 있었다. 일전에 세실 자작이 술집에서 마주친 상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의 시체를 보고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확실한 건가?"


보고를 받던 차가운 얼굴의 남자가 상인을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인은 떠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렇소. 내가 들은 것은 이 정도요."

"그럼 확실한 건 아니지 않나?"


그저 소문일 뿐일텐데, 라며 남자는 검을 꺼내 상인을 향해 겨누었다.


"우...우리끼린 항상 이렇게 정보를 공유하오. 어차피 당신들도 이 이상 확실한 정보를 구하긴 힘들것 아니오!"


소문이라하나 상인들끼리만 공유하는 것에 가까웠다. 도망자 마을에 관한 것도 있다보니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소문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 상인의 악받친 외침에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우리도 그걸 믿을 수 밖에는 없어."


그리고 남자는 무심한 표정 그대로 검으로 상인의 목을 그었다. 원한을 품고 그 생명을 잃어가는 상인을 보며, 남자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니 우리와 접촉한 그대들을 이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군."


잠시 상인의 시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부하들에게 천천히 명령했다.


"이제 쫓도록 하지. 라인하르트 백작은 반드시 생포한다. 그 도망자 마을은 그냥 쓸어버려도 좋다."

"예!"


작가의말

요 며칠간 연재주기가 일정하지 않았죠. 죄송합니다...ㅜㅜㅜ


계속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이래 꼬여버렸네요.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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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시 시작된 토벌, 알베르트의 귀환 +4 20.01.23 157 6 11쪽
27 백작부인(2) 20.01.21 124 6 12쪽
26 백작부인 20.01.19 12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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