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근(大饑饉) 22.
대영천하, 조선만세.
임치백과 최서방이 김병기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한 것을 들은 김병기는 왼손으로 턱을 쥐고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입을 열어 말을 했다.
“ 그러니까 조정에서 보낸 곡식 중 일부를 종곡으로 삼아서 이곳 애란땅에서 벼농사를 지어보자는 말이잖은가? ”
“ 예, 도련님. 겨울이 지났으니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야 할 시기지만 저희가 확인해보니 이곳 사람들은 지난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서 종곡조차 모조리 먹어치워 버렸답니다. 그러다보니 농사를 짓지 못할 거라고 걱정을 하고 있는 처지랍니다. 그러니 ······. ”
최서방이 김병기의 말에 다시 부연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김병기는 이내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서 했다.
“ 아,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벼농사를 짓지 않고, 귀리나 밀을 주로 먹는 것이 아마도 이곳 풍토에는 그런 곡식들이 맞아서 아니겠는가? 그런데 벼농사가 잘 되겠나? ”
조선에서도 여름이 평년보다 서늘할 때 이삭이 덜 맺혀서 소출이 나쁠 때가 종종 있었다. 아무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농사를 직접 지어본 적이 없는 김병기라도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분명 부렬전은 조선보다는 무더운 날이 적고, 선선한 편이었다. 김병기는 필시 벼농사를 안 짓고, 밀을 먹는 것이 그런 기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서역사람들이 쌀을 먹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신부님과 함께 라마 교종청에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는 분명 쌀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밀보다는 적게 먹지만, 쌀도 농사지어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게 서역 땅에서 농사를 못 지어서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먹던 음식이 달라서 먹지 않는 탓이 더 큰 것 아니겠습니까? ”
임치백을 비롯한 서학교도들은 서역에 온 김에 바로 조선으로 가지 않고, 로마에 방문했었다. 그 때 분명 쌀로 만든 음식을 맛 본 기억이 있다.
그 때 경험으로 말한다면 서역사람들이 쌀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벼농사를 못 짓는 것도 아니었다.
“ 자네가 다녀온 라마도 부렬전이랑 풍토가 같던가? 그곳이 되려 조선이랑 풍토가 비슷해서 벼를 키우기 좋았던 것은 아니던가? ”
라마만 해도 배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던가, 육로로 몇 달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던 김병기는 임치백의 말에 반론을 했다.
동역에서도 조선과 강남, 안남의 풍토는 생경할 정도로 달랐다. 그들이 조선을 떠나 부렬전까지 오는 동안 두 눈으로 확인 한 것은 벼는 날씨가 따듯한 곳일수록 농사짓기 수월하고 소출도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안남 사람들은 일 년에 쌀을 세 번 거두어들인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반면에 조선에서도 북방에서는 벼농사를 짓기 힘들어서, 일부 부농들 외에는 밭농사를 위주로 농사짓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섣불리 풍토에 맞지 않는 작물로 농사를 지으려다가 사람이 먹을 수도 있는 아까운 곡식을 종곡으로 날릴 뿐인 결과가 생길 수도 있었다.
“ 저희가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라마로 간 것이라 농사를 지을 시기에 그곳의 날씨가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생각해보면 라마 근방의 날씨가 부렬전보다는 따뜻하기는 했지만, 조선만큼 무덥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라마의 풍토는 조선보다는 부렬전에 더 가깝다 느껴졌습니다. ”
김대건과 서학교도들이 여러 가지 일을 마무리 짓고, 파리 외방전도회를 방문한 후에 육로를 통해 라마 교종청에 참배하러 갔었다.
그들이 개인 자격으로 라마 교종청을 찾아 갔을 때는 작년 초가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사실 일 년 사시사철의 기후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교종청이 있는 라마에 체류하고 있었던 가을, 겨울의 날씨를 비추어 보면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조선에 비하면 온화한 것이 부렬전과 기후가 더욱 비슷했다.
“ 부렬전이 조선보다는 서늘한 날씨이기는 하지만, 벼가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기 애란(아일랜드)땅은 못과 호수가 많아서 물을 대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벼가 얼어 죽지만 않고, 물만 안정적으로 댈 수 있으면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
구휼을 위해 애란 땅에 들어온 조선인들은 서역역법으로 3월에 왔다. 이제 4월에 접어들었지만, 이직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날씨는 제법 추웠다. 하지만 부렬전과 붙어 있는 섬이니 기후풍토가 부렬전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이 애란 땅이 부렬전보다 날씨가 더 선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 벼농사를 짓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애초에 안했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는 김병기조차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그렇습니다. 거기다 조선에서 보낸 곡식들이 포대마다 그 산지가 어디인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함경도나 강원도에서 난 쌀은 한(寒)데서 자라는 종자들이니 충분히 이곳에서도 잘 자랄 겁니다. ”
조정에서 미곡을 보낼 때 포대마다 그 곡식을 보낸 지역을 명기(明記)하도록, 지시한 것은 조선 팔도 각지에서 부렬전 백성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김병기는 그건 표면적인 이유였을 것이고, 각지의 수령들이 미곡으로 장난쳤을 때 추적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어차피 부렬전 사람들이 진서(한자)를 읽지도 못할 것인데 포대에 지명을 적어본들 그것에 감동이나 받겠는가?
“ 맞습니다. 이곳 토양도 함경도 마냥 땅을 조금만 파면 딱딱한 돌이 드러나는 것이 땅도 비슷합니다. 거기다 흙 색깔도 거뭇한 것이 함경도와 비슷합니다. ”
함경도에서 태어났다는 최서방이 어릴 적에 강원도, 함경도에서 유랑민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말했다. 함경도나 강원도는 땅을 파다보면 딱딱한 돌이 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파내고 보면 그 속에는 검은 흙이 자주 보였고 말이다.
임치백과 농사를 지어보자는 말이 나온 후 파본 애란 땅의 흙도 그러했다. 조금 파다보면 딱딱한 돌같은 지반이 드러났고, 흙은 거뭇거뭇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김병기는 흙색이 토양이 비슷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흙색이 비슷한 것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흙색이 비슷하다는 걸로 벼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 자칫 종곡으로 소모하고는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면 아까운 양곡을 먹어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굶주릴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네. ”
비록 자신이 품계를 받은 정식 관원은 아니지만, 조정에서 보낸 양곡을 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멀리 조선에서 힘들게 실어온 식량을 헛되이 버릴 수 없는 일이다보니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김병기의 입장으로서는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으로 권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아서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암묵적으로는 모두들 자신을 책임자로 여기고 있었으나, 냉정하게 따지면 자신도 다른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입장이었다.
“ 저희가 곡식을 옮기다 보니 북쪽 지방에서 보낸 포대에는 쌀 대신 밀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밀은 이곳에서도 흔히 키워 먹는 곡식이니, 벼와 함께 밀을 심으면 둘 중 하나가 망해도 가을이면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콩은 어디서나 잘 자라는 곡물이니 콩 농사까지 겸해서 농사를 지으면 땅에 뿌린 만큼은 거둬들일 겁니다. ”
최서방은 김병기를 설득하고자, 벼만 심지 않고 다른 곡식을 섞어서 심을 것을 제안했다. 최서방의 말을 받아서 임치백 또한 말을 거들었다.
벼, 밀, 콩을 섞어서 농사를 지으면 한 작물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작물의 소출이면, 그것을 종곡으로 쓰지 않고 그냥 죽을 쑤어 나누어 먹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 콩 농사는 물이 부족하면 소출이 줄어드는 것이 안 좋은 점인데 이곳은 물은 풍부하니 그럴 위험도 적습니다. 지금 죽 한 사발을 퍼 준들 농사를 못 지어 다음 해에 먹을 것이 없다면 별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
“ 곡식 중에 밀이 있던가? 밀은 귀한 작물인데 어찌 그것을 보냈지? ”
“ 함경도나 평안도 같은 곳은 벼를 재배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명절에도 떡을 치지 않고 만두를 빚어 먹습니다. 그리고 원래 조선에서는 밀이 쌀보다 더 귀한 곡식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함경도나 평안도에서 조정의 명은 내려왔는데 함경도나 평안도에서는 쌀이 밀보다 더 귀하니 밀을 쌀인 척하고 보냈거나 도저히 미곡을 구할 수 없어서 밀이라도 대신 보낸 것 아니겠습니까? ”
추측은 그렇게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착각해서 밀을 보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추측한대로 쌀이 모자라서 양을 채우기 위해 밀을 모낸 것인지는 말이다.
“ 으음 ······. ”
“ 저희가 책임지고, 애란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 보겠습니다. 보내온 쌀로 죽을 끓여 먹이는 것도 올 한 해 정도나 가능하지 평생을 그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땅에 종곡을 뿌려 키운 후에 그 결실을 땅에서 다시 거둬들일 수 있어야 기근이 해소됩니다. 그러니 최서방과 저를 믿어 주시고 한번 맡겨주십시오. ”
김병기의 고민이 길어지자, 최서방과 임치백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외부에서 실어오는 양곡으로 사람들을 먹일 것인가? 결국에는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 후우~, 병학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병기는 그들을 데려온 김병학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사실 물어보나마나였다. 애초에 최서방과 임치백의 건의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해서 이들을 김병기 앞에 데려온 사람이 김병학이었으니까 말이다.
“ 나쁘지 않은 생각 아닙니까? 이 사람들 말마따나 우리가 평생 여서 사람들을 먹일 것이 아니면 농사는 지어야 하는 것이고, 어차피 이곳 사람들이 먹던 곡식들은 종자조차 없어서 농사를 못 짓는다면 마침 파종할 시기에 딱 맞춰서 도착한 조선 종자를 거두어 먹이면, 조선과 부렬전 사이의 선린 우호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양곡 중 일부를 종곡으로 돌렸을 때의 이점을 이야기 한 후 김병학은 잠시 숨을 골랐다.
“ 이 사람들만으로 걱정이 되신다면 병묵이더러 일을 도와서 진행하라하시지요. 병묵이가 크게 이렇다할 재주는 없어도, 성정이 무난하고 성실하니 일을 맡아서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
크게 튀는 일도 없고, 재주가 좋지도 않지만 성실하고 사람 좋은 김병묵이라면 무난하게 이들이 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아무래도 부렬전 말에 익숙하지 않은 최서방이나, 나이가 제법 있어서 젊은이들만큼 적응을 못한 임치백을 잘 도와서 일을 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 내가 조정의 관원도 아니고, 내가 허락을 하고 말 권한은 없지만, 다들 그렇게 말을 하니 한 번 해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내가 여기 촌장이나 관리에게 농사지을 땅을 빌려보도록 하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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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클룬 외곽에 건설한 가건물에는 그동안 천막과 대충 설치한 모닥불에 걸어놨던 솥 대신 제법 쓸 만한 주방시설이 갖춰졌다.
이 모든 것은 주방용품 발명가이기도 한 소이어의 작품이었다.
그는 주방효율을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방설비에 관련한 특허 또한 여러 건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발명한 매직 스토브는 실제로 제작되어 판매까지 되고 있었다.
덕분에 더 적은 연료를 사용하고도 더 많은 음식을 조리할 수 있도록 임시 화덕도 설치되었다. 지금도 소이어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자신의 구상으로 더 완벽한 화덕을 만들기 위해 화덕 구조를 스케치하면서 더 나은 구조를 연구 중이기도 했다.
그런 가설주방에는 구호음식을 조리하기 위해서 조선인들과 소이어가 브리튼에서부터 데려온 주방 스태프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지금 민클룬 구호소에서 쓸 수 있는 식재료는 대부분 조선에서 보내온 곡식과 식재료 들이었다. 나머지 일부는 조선인들이 아일랜드 현지에서 채취한 여러 가지 식물들과 통통하게 살진 애벌레나 번데기 따위였다.
소이어는 조선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식재료들에 흥미가 생겨서 그것들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 이 식재료는 어떻게 먹는 겁니까? ”
자신의 손에 들린 말린 미역을 살펴보며 옆에 있는 조선인에게 소이어가 물었다.
“ 일단 물에 불려야지요. 그 후에 살짝 끓는 물에 데쳐서 양념으로 무쳐먹든가, 아니면 국을 끓여 먹어도 됩니다. 지금은 양곡이 모자라서 죽을 끓여 먹이고 있으니 나물들과 같이 넣어서 죽을 끓이는 것이 낫겠군요. ”
“ 그러니까 이게 저 바다에 자라는 잡초란 것이죠? 이런 것도 먹습니까? 조선인들은? ”
이 ‘미역’이라는 건조 식재료에서 나는 냄새는 ‘맛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쾌쾌한 냄새였다. 소이어의 관념으로는 역시 이런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혓바닥이 의심스러웠다. 흠, 조선인들도 브리튼 사람들과 같은 혀를 갖고 있는 것인가? 하긴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는 것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걸 먹지 않는 서역사람들이 더 신기하더군요. 하하하하 ”
“ 음 ······. ”
소이어는 일단 조선인들이 어떻게 조리하는 지를 보고, 이것을 어떻게 먹을 만한 레시피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굶주리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이 ‘미역’이라는 조선 식재료가 도움이 될 것이다. 입안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맞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 그럼 저희는 이 미역을 물에 불려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준비를 하겠습니다. 숙수께서는 죽을 쑤어주시지요. ”
아무래도 조금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이어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도마를 꺼내어 칼을 갈았다.
영국조선) Union Jack 휘날리며, 孔子曰.
- 작가의말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모두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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