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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화살 님의 서재입니다.

대영천하, 조선만세.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빛의화살
작품등록일 :
2021.05.31 00:07
최근연재일 :
2023.08.02 11:3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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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34,268

작성
21.08.24 11:30
조회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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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8쪽

대기근(大饑饉) 10.

대영천하, 조선만세.




DUMMY

“ 내가 로마에 다녀오는 동안 잘 지냈는가? 안젤로? ”


구라파로 온 김에 말로만 듣고 동경해오던 교종(로마카톨릭 교황)께서 거하시는 로마를 다녀온 김대건 안드레아는 조선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브리튼에 체류하고 있는 김병한 안젤로를 만나러 왔다.


일생의 소원이던 로마 교종청 방문을 위해 다녀온 그의 얼굴에는 그래서인지 충실함과 자부심이 깊게 배어나왔다. 은연중 말하면서도 로마에 다녀온 것을 강조할 정도로 말이다.


그의 모습을 본 김병한은 내심 부러웠다. 브리튼교회의 사제가 되기 위한 수행을 다시 하고 있지만, 아직도 신앙의 길에서 방황하는 그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으로 뭉쳐진 김대건의 신념을 접하자 그런 감정이 솟아났다.


“ 안드레아, 꿈에 그리던 로마 방문을 이룬 소감은 어떤가? ”


“ 하하하, 로마교종(教宗, 교황을 일컬음)성하께서 집전하시는 성탄축일 미사에 참석했던 것은 정말 내 일생일대의 소중한 경험일세. ”


김대건 안드레아로서는 주님을 섬기는 사제의 길에 들어선 이후 그가 소원하던 교종성하(敎宗聖下)를 먼발치에서나마 뵙게 된 것에 뿌듯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교종성하의 모습을 직접 본 최초의 조선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입조사의 협상이 마무리 된 후 귀국한 이후에 로마에 가서 그레고리오 16세 께서 선종하시고, 비오 9세께서 취임하시는 역사적인 순간까지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교종청이 혼란한 덕분에 말단의 성직자이긴 해도 내심 불모지인 조선에서 온 최초의 조선인 사제인 자신이어서 혹시라도 성하를 직접 예방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개인적 소망은 이루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로마에 도착한 후에는 교종께서 노환으로 편찮으시다 그만 선종하시고, 신임 교종께서 취임하시며 여러 가지 바쁜 일이 연속되어서 동방에서 온 말단 성직자의 그런 사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교종께서 직접 집전하시는 연말연초의 굵직한 전례(典禮)들에만 참여하고는 로마를 떠나왔다.



“ 좋았겠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도 선종하지 않았다면 자네의 기쁨을 함께 했을 텐데 아쉽구만 ······. ”


사제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겠다는 꿈을 안고 머나 먼 마카오까지 함께 했던 그들의 친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최방제(崔方濟). 그와 함께 마카오의 신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가던 뱃길에서 그의 소망을 들은 바 있는 그들이었다. 열심히 사목활동에 임하며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라마(羅馬, 로마)의 교종을 꼭 뵙고, 조선의 교우들에게 직접 축복을 내려주실 것을 청하겠노라는 그의 소박했던 희망.


친우는 신학교에 입교해서 한해를 못 넘기고 병마에 그만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고, 그게 발단이 되어 김병한은 수년간의 방황 끝에 결국 신학교를 그만 두고, 친우의 유골을 품에 안고 조선으로 귀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해맑은 희망을 품던 어린 소년을 거두어 가신 천주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 말이다.


“ 주님께서 깊은 뜻이 있으셔서 그를 우리 곁에서 일찍 떠나게 하신 걸게야. 그러니 자네도 그만 툴툴 털어버리게나. ”


환하게 웃던 김대건 또한 김병한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기에 이내 굳은 표정으로 김병한을 위로했다.


순간 가라앉은 분위기에 김병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친우의 기쁨에 초를 쳐버리다니.


“ 어떻던가? 로마는? ”


사실 브리튼 교회에 입교했어도, 그 또한 한 때 카톨릭 사제를 꿈꾸었고, 신학을 공부하며 익힌 유럽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인 로마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김대건이 경험한 로마의 인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자네와 같은 길을 걷지 못하게 되어 아쉬울 뿐이지. 이제라도 다시 로마 교종청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신교의 자유도 얻었겠다. 전교의 자유까지 얻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않겠는가? ”


김대건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묵주의 알을 하나씩 돌리며 말을 계속 이었다.


“ 갑작스레 모든 것을 풀었을 때의 충격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질까 우려해서 잠시 막아 두었을 뿐. 그동안 자네가 방황하던 신앙에의 길이 모두 열렸는데 무어가 두려워 로마에 등 돌리는가? ”


“ ······ ”


그가 로마 카톨릭을 버리고, 브리튼 국교회에 입교할 결심을 했을 때 말없이 그의 결정을 존중했던 김대건이었지만, 그래도 바른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배교자들의 교회에 들어간 친우의 결정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김병한이 로마에 대한 동경과 미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표정을 짓자 다시 한 번 그에게 카톨릭으로의 복귀를 권해보는 것이다.

그런 권유에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 김병한을 보고는 김대건은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 뭐, 마카오에서부터 자네가 언제 내 말을 들었는가? 그만 하세. 이제는 서로 가는 길이 달라도 신앙의 길을 걷다보면 그 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


“ 흐음, 뭐 자네의 길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네만, 이곳 브리튼교회에서 내 나름대로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네. 내 믿음에 대한 의심조차도 이 곳 교회는 용인해주더군. 이건 뭐 내 변명이기도 하지만 말일세. 그나저나 조선으로 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이곳 런던에는 무슨 일로 다시 왔는가? ”


“ 아, 작년에 닥친 애란(아일랜드)의 기근 소식은 자네가 더 잘 알 테지? 그곳에는 로마 교종청을 충실히 따르는 주님의 어린양들이 많다고 들었네.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 그곳의 어린 양들의 목자가 되어 볼까 하고 이렇게 왔네. ”


김대건은 잠시 손에 쥐고 있는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는 김병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 했다.


“ 로마에서부터 이곳저곳에 손을 벌려 자금과 곡식을 작게나마 마련할 수 있었네. 그래서 며칠 후에는 애란으로 건너가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휼하려 하네만 ······. ”


“ 조선의 어린 양들은 어쩌려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갈 생각을 하시나? 하하 ”


“ 조선이야 토마스가 있지 않은가? 거기에 페레올(Ferreol, 高)주교님이나 다블뤼(Daveluy, 安)신부님께서도 계시니 조선의 신도들이야 당분간 걱정할 일도 없을 테고 말일세. 가까운 곳의 이웃을 먼저 돌보아야겠지? 안 그런가? ”


그렇게 말하고는 다소 뻔뻔한 표정을 짓는 김대건이었다. 하기야 요즘에는 누그러졌다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애란 사람들은 브리튼교회에 입교하지 않고 라마교종청을 따른다는 이유로 온갖 박해를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애란에서 거두어들인 교회세로 브리튼교회를 운영했다고 하니 그 핍박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으리라.


“ 생각 같아서는 나도 함께 하고 싶네만, 애란 사람들은 브리튼교회에 대한 악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하니 내가 따라 붙었다가는 오히려 자네 활동에 방해만 되겠지? ”


애란 사람들이 브리튼교회 사람들을 어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는 대강 들은 바가 있었기에 김대건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김병한이었다. 괜히 따라나섰다가 친우인 김대건 마저도 애란사람들에게 경원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 글쎄? 자네나 나나 그네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동방에서 온 사람들인데 자네가 전도활동만 안한다면 눈치 챌 사람이 있겠는가? 수단의 깃이 다른 거야 동역에서 온 사람이라 잘 못 입었겠지 하고 넘어갈 것일세. 하여간 자네가 뜻이 있다면 같이 갈 수 있도록 주선해 볼 터이니 같이 가도록 하세나. ”


김대건이 다시 한 번 권하자 김병한은 바로 거절하지는 못했다. 안되면 애란까지만 길동무를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 알겠네, 나도 우리 주교께 아일랜드로 구휼봉사를 가도 될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 ”




•••••••••••••••••••




김병기는 임시로 조선국 상주사신관으로 쓰이고 있는 조병준의 숙소에 도착했다. 조병준이 급하게 자신과 만나기를 청하였기에 바로 마차를 타고 온 것이다.


도착해서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를 주고받지도 않은 채 조병준이 그에게 말을 했다.


“ 사영, 지난번에 글래드스턴경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일 있잖은가? ”


“ 그렇지, 그동안 이 곳 부렬전에 남아 있는 우리 조선 사람들이 다 모이기가 쉽지 않아 아직까지 뜻을 모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


그들이 이곳에 공부하기 위해 남아있는 젊은 선비들의 좌장 격이기는 했지만, 둘이서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 후에 연말연시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따로 모일 기회를 만들기 힘들어서 곧 한 번 모두를 모아놓고 의논을 해야겠다고 하던 참이었다.


“ 그것이 아무래도 글래드스턴 경의 뜻대로 움직여야할 모양일세. ”


조병준이 김병기에게 말하자, 김병기는 부정적인 의사를 표했다.


“ 아무리 그래도 공부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뜻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


김병기의 말을 듣고는 바로 조병준이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 그것이 조선에서 주상전하와 신료들이 구휼미를 보내왔다네. 그리고 앞으로 수차에 걸쳐서 계속 보내온다고 하는군. ”


잠시 숨을 고른 조병준이 계속 말을 이어서 했다.


“ 내 이번에 부렬전 조정이 개편되면서 신임 예부상서로 취임한 파머스턴 경에게서 온 전갈을 받았는데 상국 조정으로 주상전하께서 보내온 구휼미가 접수되었다는군. ”


“ 상국조정으로 접수되었으면 우리가 나설 일이 없지 않은가? ”


조선에서 구휼미를 보내왔더라도 상국조정에서 접수했으면 이미 그들의 소관에서는 벗어난 일이다. 그것이 어찌 조선 선비들이 애란까지 가서 구휼활동을 해야 할 당연한 사유가 되겠는가? 이것이 김병기의 내심이었다.


“ 그것이 미곡과 미역, 콩을 보내왔는데, 부렬전 관리들이 쌀과 콩은 알겠는데 미역은 무엇이냐며 물어오지 않았겠나? ”


브리튼 외무성의 관리들은 머나먼 동아시아의 우방국에서 보내온 구호품을 확인하고는 마른 미역이 무엇에 쓰는 물품인지 확인이 되지 않자, 런던에 있는 조선 외교관에게 확인을 요청한 것이었다. 만약 런던에 조선인이 없었다면 그냥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끓는 기름에 담궜다가 먹는 생선이나 빵 사이에 넣어 먹는 생선 같은 것 외에는 해산물을 먹지 않는 풍속을 갖고 있었다.


“ 아, 하기야 이 곳 사람들은 그냥 나물도 잘 안 먹으니 해초인 미역은 무엇인지 모를 만도 하군 그래? ”


땅에서 나는 나물도 먹지 않는 이곳의 습속을 생각하면 물속에 있는 해초를 먹지 않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 거기다가 쌀도 이곳에서는 생경한 곡식이라 어찌 먹을지 모를 테니 말일세. ”


밀과는 달라서 쌀은 부풀지 않는데, 그것으로 빵 따위를 해먹겠다고 반죽을 쳐내 구우면 상당히 먹기 곤란한 물건이 나올 것이다. 구휼 목적으로 쌀을 먹는다면 죽을 쑤어 먹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생경한 식재료는 입에 대지 않는 습속까지 있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이 먹어보지 못하고 먹는 방법을 모르는 곡식이라는 이유로 아까운 쌀을 짐승에게 먹이기라도 한다면 주상전하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 현지에 있던 그들에게도 문책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 그래도 그것을 어찌 먹는지 방법만 가르쳐 주면 될 일 아닌가? ”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조선의 임금께서 직접 보내주신 식량일세. 그냥 상국 조정에서 이곳 유민들에게 구휼하라고 맡기면 중간에 탐관오리들이 착복을 할 수도 있고 말이야. 중요한 것은 곡식이 구해지는 대로 더 보낸다고 조정에서 연락이 왔다네. ”


조병준이 조선 선비들이 직접 구휼활동을 하러 가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럴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근이 들어서 곡물이 귀해지면 그것을 착복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탐관오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성현의 말씀을 진리라 여기는 사대부들의 나라에서도 그럴진대 이곳은 성현의 말씀을 아예 모르는 서역의 먼 나라였다.


기왕에 주상전하께서 구휼미를 이 먼 부렬전에 보내신 것은 부렬전 백성들을 구휼함으로써 부렬전과의 우호를 더욱 굳히기 위함일 것이다. 탐관오리들 때문에 양국 간의 선린에 지장이 가서는 안 될 것이다.


“ 하기야 그렇기도 하겠네.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익힌 사대부들의 나라인 조선도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고을의 수령들이 탐학하게도 백성들을 가렴주구(苛斂誅求)하여 도탄에 빠뜨리기 일쑤이니, 아예 성현의 말씀을 배우지도 않은 이곳에서 그 구휼미가 제대로 굶주린 백성에 갈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겠군. ”


“ 내 말이 그 말일세. 그러니 비록 수만리 타향에 나온 몸이지만, 전하의 충실한 신하로서 어찌 이 일을 귀찮다 하겠는가? 당연히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지 않겠나? ”


“ 알겠네. 그럼 부렬전 곳곳에 흩어져서 수학하고 있는 선비들을 이곳 윤경(런던)으로 모이도록 연통을 보내도록 하겠네. ”


“ 미안하지만, 그 일은 전적으로 사영께 부탁하겠네. 난 부렬전 예부에 가서 전하께서 보내신 구휼미들을 우리가 직접 애란에 가서 운용할 수 있도록 청하고 추후에 또 보내온다고 하니 그 구휼미를 바로 애란에서 받을 수 있도록 조치도 취해야할 것이니 말일세. 그러니 부탁함세. ”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병기에게 부탁하는 조병준이었다. 아직 상주사신이 파견이 되지 않고, 다른 관원의 충원 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모두 정식 관원인 그가 모두 처리하다보니 잡다한 일들은 친우들이 품앗이 하고 있었다.


“ 알겠네. 경범(조병준의 호). 그 일은 내가 맡아서 동무들에게 연락을 하지. 그러면 자네는 어서 맡은 일부터 정리를 하게나. ”


당분간 조선 선비들은 공부를 중단하고, 구휼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구제해야할 백성들이 조선백성이 아니라도 인간으로 성현의 말씀을 좇는 선비들이라면 인의로 덕행을 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주상전하께서 보내신 곡식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 으음, 브리짓. 아무래도 난 더블린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봐야겠어. ”


사내는 지친 표정으로 그의 연인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더 이상 그들이 사는 이 곳 덩갠스타운(Dunganstown)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였다.


“ 패트릭 그냥 구빈원(poor house)에 입소하면 한 겨울동안 견딜 수 있는 식량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왜 굳이 고향을 떠나려 해? 나와 함께 당분간 고향에서 버티고 내년에 밭을 일구면 되잖아? 그리고 우리 둘이 결혼해서 같이 살면 어떤 고난도 해쳐 나갈 수 있어. ”


“ 구빈원? 그 꼴을 못 봤어? 그 곳에 입소하면 어차피 남녀 분리되어서 따로 지내야 된다고. 어차피 우리 서로 못 보는 것은 마찬가지란 말이야. 알겠어? ”


그도 구빈원 입소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빈원에 입소한 사람들의 모습을 몇 번 보고,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절대로 구빈원에는 의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그래도 서로 만나지 못해도 같은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단 말야. 바보야. ”


“ 구빈원에 들어간 사람들의 눈빛을 못 봤어? 그 곳에 들어가면 삶의 희망이라고는 모두 잃고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꿀꿀이죽 같은 음식을 받아먹는 것에 만족하며 살게 되는 거야. 한번 그 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다시 밭을 일구러 나오는 것 봤어? 그들이 다시 나와서 밭을 일궜다면 올해도 식량부족이 예상되지는 않을 거야. 난 브리짓, 너와 희망찬 미래를 일구고 싶은 거지. 아무런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인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


옥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있는 농토에 감자를 심어서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구빈원에서 시키는 단순한 허드렛일을 하고 음식을 얻는 게 더 편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올해는 괜찮을 거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구빈원을 나와서 소작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자신의 텃밭을 일구느니 그냥 구빈원에 눌러 앉는 것을 택했다. 사실 일부 소작을 위해 구빈원을 택하지 않은 사람만으로도 지주들의 농장을 일굴 노동력은 충분했다.


애초에 아일랜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구빈원에 남은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힘들게 노동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 그래도, 패트릭······. ”


브리짓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내 패트릭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고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키스를 했다.


그것은 단순히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전하는 키스였다.


키스가 끝난 후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댄 채로 패트릭은 속삭였다.


“ 일 년, 아니 이 년만 기다려줘.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올게. 이 척박한 아일랜드를 떠나서 대서양 너머 미국으로 갈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아서 다시 올게. 그리고 그 때에 우리 결혼하자. 알았지? ”



결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강한 의지의 아일랜드 사내,


패트릭 케네디(Patrick Kennedy)는 자신의 연인 브리짓 머피(Bridget Murphy)에게 자신의 의지를 담아 음절 하나, 하나를 끊어서 말하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영국조선) Union Jack 휘날리며, 孔子曰.


작가의말

* 교황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든 말이고, 청나라에서는 처음부터 교종이라고 했답니다. 황제를 뜻하는 황자를 함부로 쓰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카톨릭이 청나라를 통해 전해진 것을 생각해 로마카톨릭의 수장을 교황이 아니라 교종이라고 했습니다.


* 본문에 언급된 아일랜드의 소작제도는 특이합니다. 아일랜드는 이당시에도 더블린과 벨파스트 인근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화폐경제가 정착되지 않고, 현물교환경제였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소작농이 수확물의 일정비율로 지주에게 납부하거나 소작료를 내는 대신 지주의 농토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후 임금을 받는 대신 움막수준의 주택과 식구들을 먹여살릴 농사(주로 감자제배)를 지을 작은 텃밭을 제공받았습니다. 솔직히 이게 소작제도라고 할지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소작제에 비해서 생경하더군요. 반대로 생각하면 주택과 토지를 임차한 후에 그 지대를 금전으로 지불하는 대신 지주의 농장에 출근해서 몸으로 때운 겁니다. 

   이런 소작제도는 작은 여러조각의 토지로 구성된 토지를 지주가 소유하는 아일랜드 특유의 토지제도(즉 대지주가 넓은 구역의 토지를 소유하는 형태가 아닌)와 결합되어서 지주에게는 일종의 의무처럼 작용합니다. 그래도 아마 자원이 없고 농토가 적지만 인구도 작은 아일랜드에서는 감자가 전래되기 전(인구폭발이 발생하기 전)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감자라는 작물이 전래된 후에 식량증산이 이뤄지면서 아일랜드 인구가 800만까지 증가한 후에 문제가 발생하죠. 19세기 중반의 아일랜드 대기근이 유명하지만 그 이전에도 십수년 단위로 기근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지주는 자신의 농토에 필요한 노동력 이상의 농업노동자를 의무처럼 모두 고용(소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수준의 농업으로는 아일랜드는 800만의 인구를 부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초반부터 아일랜드인들을 해외로 식민, 이주시키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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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49 kr*****
    작성일
    21.08.24 14:30
    No. 1

    영국인의 손에 그대로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한 식재료…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68 la*****
    작성일
    21.08.24 18:05
    No. 2

    원래 역사에서 브리짓 머피 캐네디 여사는 결국 미국으로 가서 패트릭 캐네디와 결혼하지만 몇 년후 남편이 사망함
    그래도 다행히 넷째가 사업에 성공해서 말년은 편히 살았지만
    그런데 조부모는 저렇게 사랑하고 살았는데, 손주놈 중 하나가 바람둥이......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8 웰치스12
    작성일
    21.08.25 13:54
    No. 3

    키쓰라고 하니까 무슨 90년대 소설같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9 빛의화살
    작성일
    21.08.25 14:17
    No. 4

    쓸 때 뽀뽀와 키쓰 밖에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요... ㅎ 지금이라도 고쳐야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무뇌드라군
    작성일
    21.09.07 12:13
    No. 5

    잉글랜드인의 요리실력은 믿으면 안되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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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크림반도의 조선인 25. +15 22.01.08 879 51 15쪽
193 크림반도의 조선인 24. +6 22.01.06 893 5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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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크림반도의 조선인 22. +10 22.01.04 848 47 13쪽
190 크림반도의 조선인 21. +7 21.12.30 915 43 14쪽
189 크림반도의 조선인 20. +4 21.12.29 837 51 15쪽
188 크림반도의 조선인 19. +2 21.12.28 854 50 13쪽
187 크림반도의 조선인 18. +4 21.12.26 891 53 13쪽
186 크림반도의 조선인 17. +2 21.12.25 872 48 16쪽
185 크림반도의 조선인 16. +7 21.12.23 903 55 13쪽
184 크림반도의 조선인 15. +3 21.12.22 927 58 14쪽
183 크림반도의 조선인 14. +10 21.12.21 983 62 17쪽
182 크림반도의 조선인 13. +6 21.12.19 1,020 52 14쪽
181 크림반도의 조선인 12. +9 21.12.18 1,048 50 15쪽
180 크림반도의 조선인 11. +6 21.12.16 981 53 13쪽
179 크림반도의 조선인 10. +4 21.12.15 957 50 17쪽
178 크림반도의 조선인 9. +17 21.12.14 1,077 51 15쪽
177 크림반도의 조선인 8. +11 21.12.12 1,022 61 14쪽
176 크림반도의 조선인 7. +10 21.12.11 985 56 15쪽
175 크림반도의 조선인 6. +11 21.12.09 998 49 15쪽
174 크림반도의 조선인 5. +6 21.12.08 995 53 16쪽
173 크림반도의 조선인 4. +6 21.12.07 1,015 5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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