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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我無道
작품등록일 :
2017.07.06 20:45
최근연재일 :
2019.05.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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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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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믈 헤엄치는 새 2부.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 9

DUMMY

믈 헤엄치는 새 2부.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 9



최주혁



세뿔소는 트리케라톱스를 닮은 거진 25톤 트럭 정도 크기의 거대한 생물을 오크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방패 같은 골판과 앞으로 길게 튀어 나온 세개의 뿔이 위협적이지만 성질은 겉보기만큼 괴팍하지 않았다. 물론 겉보기만큼이고... 덩치가 덩치다 보니 녀석의 뒷걸음질에 밟혀 죽는 일도 있는 데다가 흥분해 폭주라도 하면 오크들도 대책이 없어 괴팍한 오크도 세뿔소의 성질만큼은 잘 건드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전장에서는 전차의 역할을, 이동 중에는 짐을 끄는 짐말 역할도 맡는 세뿔소는 보통 여덟명의 오크가 관리했지만 이들을 전사처럼 브로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서진 클랜에는 모두 네마리의 세뿔소가 있었는데 그 네 마리에 올라탄 북잡이 오크가 두드리는 북소리가 대열 중간을 연이어 가며 강을 접한 평원으로 울려 퍼졌다. 오크 전사들의 긴 행렬 선두와 후미 그리고 대열 중간에 한마리씩 위치한 세뿔소에서 울려퍼지는 북소리는 행군을 독려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긴 대열에 신호를 중계하고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북소리의 리듬과 강약에 따라 오크들은 대열이 지나치게 밀집하지도 분산되지도 않게 적절한 응집력을 유지하며 움직였다. 대열의 가장 후미에는 엘프의 지난 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어린 오크와 오크들이 뽀이라고 부르는 고블린 무리가 뒤따랐다.


“쏴아아아아”


파란 강을 가로지른 바람이 빨려 들 듯 숲으로 향하자, 마치 오크의 침입에 놀란 듯한 나무의 아우성이 길게 꼬리를 끌며 숲 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 속에 교묘하게 숨은 휘파람 소리가 그 증거다. 청음기로 분석한 음향 정보에서 휘파람 소리를 잡아내 내게 들려 준 시우의 목소리가 헤드폰으로 울렸다.


“너도 들었지?”

“어. 분명히 엘프의 정찰대겠지?”

“아마도.”

“따로 달구오크를 숲으로 진입시켜 수색할 거야?”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대열 두번째 세뿔소에 올라탄 나는 바로 앞에서 천천히 이동 중인 장갑차를 내려다 보았다. 차장용 해치에 몸을 내민 시우가 이쪽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긴 오크들이 정령인이라 부르는 엘프들과 숲 속에서 교전하는 것을 피하려고 강변을 따라 이동하기로 결정한 시우가 굳이 매복이 있을 지도 모를 숲으로 오크들을 밀어 넣는 결정을 하진 않겠지.


“어차피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는 건 바뀌지 않잖아?”

“놈들이 측면으로 선제 공격을 걸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거야?”

“개방된 공간에서 정면 격돌로 힘 겨루기를 하자면 그건 이쪽이 오히려 바라는 바야. 그 보단 유격전을 걸어 축차 소모를 강요하는 게 골치 아프지만... 그건 우리가 커버치면 되는 거고 여차하면 빨강 언니도 있으니까. 하지만 언니, 명령이 있기 전까진 그냥 지켜 보고만 있어줘. 언니는 히든 카드니까.”

“알았다.”


시우의 말에 숲 언저리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이동하고 있을 붉은 그녀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헤드폰을 울렸다. 시우는 나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짓더니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시우의 뒷모습을 잠시 눈에 담고는 다시 바이저의 망원조준창을 활성화 시켰다. 눈 앞이 현자총에 장착된 조준경이 잡아낸 풍경으로 가득 찼다.


이곳으로 온 지 42일째. 처음 몇칠 우여곡절에 비한다면 나머지 날들은 비교적 평탄했다면 평탄했다. 처음에는 시우의 지시를 듣지 않는 오크들이 적지 않았지만 유혈이 낭자한 논쟁과 겁박을 내세운 설득, 무엇보다 이게 실전인지 훈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겨루기에서 시우가 지휘한 쪽이 연전연승을 하니 적어도 겉으로는 시우를 따르게는 되었다. 그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8명의 오크로 구성된 브로는 오크의 전통적인 최소 편제 단위였다. 들어 보니 성장기를 같이 보낸 또래들로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브로는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죽 이어지는 운명공동체와 같았다. 물론 싸움으로 죽어도 원천의 힘으로 되살아나는 덕에 결원이 생기는 경우는 드문 것 같지만, 그런 경우에도 따로 충원을 하지는 않는 듯 했다. 그렇게 전투를 거듭하고 결원이 늘어 마지막으로 한 둘이 남아 전투 단위로써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된 오크는 ‘깨진 조각’ 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깨진 조각은 역전의 노장인 경우가 많았다. 한편 성장기에 여러가지 이유로 또래 집단에 끼지 못하거나 브로 결성에서 빠진 오크는 ‘쪼가리’ 라고 불렀다. 대개 이런 ‘쪼가리’는 무당이나 장인이 되었지만, 시우는 이런 ‘깨진 조각’과 ‘쪼가리’ 들 중에서 눈에 띄는 오크들로 새로운 브로를 조직했고 이들을 자신의 ‘동무’로 삼았다.

이들 역시 다른 오크들 처럼 반신반의하며 치우신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시우를 따르지는 않았다. 체인소우와 마체테를 동반한 설득(?)으로 한번 이상 죽다 살아나고서야 시우에게 복종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브로를 ‘누더기 브로’라 비웃던 다른 브로의 오크들 역시 시우가 지휘한 누더기 브로에게 겨루기에서 비참하게 박살나고 나서야 누더기 브로와 같은 길을 걸었다.

브로 간 겨루기가 8개의 브로를 묶은 ‘크루’의 겨루기로 확대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5개의 크루를 모두 꺽고 나자 더 이상 오크들은 시우의 지휘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필승을 경험하고 나자 적극적으로 따른다고 할까? 크루전에 참가하지 않은 2개 크루 규모의 달구오크나 무당들은 그나마 똑똑한 편인지 시우의 지휘와 결과를 보고는 두 말 없이 따랐고. 그 후 출정을 결정하기 전까지 우리는 오크들과 함께 시우의 명령에 따라 진형 변환을 훈련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재윤이가 오크들에게 하얀나찰-무슨 생각인지 재윤은 자신의 외골격 장갑을 오크에게서 얻은 흰색 염료로 덧칠했다-이라 불리며 경외의 대상이 된 것은 덤. 물론 그렇게 불릴 때까지 재윤을 여자라고 우습게 보고 덤빈 오크 여럿이 죽어 나갔다. 원천에서 다시 살려내긴 했지만, 시우가 급소를 찔러 즉사시키는 방식이라면 재윤이는 최소가 두토막 이상으로 분리를 시키는 바람에 회복이 더 더뎠다...

‘무서운 뇬.’

그 중에 한꺼번에 순삭당한 1개 브로가 아예 충성을 맹세하고 재윤의 동무가 되었는데 지금 장갑차의 가장 근접해 이동하는 오크들이 바로 재윤의 동무였다. 그 녀석들 모두 몸통과 팔다리에 하나 이상의 절단된 흉터가 있는데 이걸 또 자랑스러워 한다...

나? 나는 오크 전사 보다 쪼가리에서 장인이나 무당이 된 오크와 많이 어울리는 바람에 따로 전사 브로를 동무를 두진 않았다. 솔직히 오크를 이용해 엘프와 싸우고 비글에게 복수한다는 시우의 생각에 완전히 공감하지도, 내키지도 않았기에 한걸음 뒤로 물러선 입장이었다... 랄까? 그 덕에 싸움 이외에 오크 사회를 지탱하는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기치 못했고 예상 보다 빠른 이번 출정에 결국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아니 참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 날은... 여느 때처럼 사냥을 겸한 훈련으로 우리는 오크 전사들과 함께 부락을 비웠었다. 그 때를 노리고 엘프들이 부락을 습격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눈치 빠른 고블린들은 재빨리 도망을 쳐 대부분 목숨을 건사했지만 부락을 지키던 오크들은 모두 전사했고 어린 오크들 역시 대부분 학살 당했다.

오크와 마찬가지로 원천의 효능을 잘 아는 엘프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죽은 오크들을 되살리지 못하도록 엘프들은 오크의 시신은 강에, 어린 오크의 시신은 원천에 던져두는 뒷처리까지 마친 후 바람처럼 퇴각했다.

그리고 엘프의 마법 방해를 뚫고 간신히 부락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이미 좀비가 되어 버린 어린 오크였다. 성체가 되지 못한 어린 오크는 모체인 인간이나 엘프의 영향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체와 달리 어린 오크가 죽은 후 원천에 담겨지면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언데드가 되었다.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천에 버려진 어린 오크들은 좀비가 되어 허겁지겁 부락으로 돌아온 오크들을 공격했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렇게 언데드가 된 좀비 오크들은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고 되살아난 육체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살아 있을 때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오크 전사 한명의 상대도 되지 않았던 어린 오크가 좀비가 되자 오크 전사를 일대일로는 가볍게 압도했다. 그것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엘프 포로를 구하려 했던 날, 엘프 구조팀이 죽인 아기 오크를 그 아비가 원천에 담그려고 하자 다른 오크들이 뜯어 말렸던 이유를.

그리고 그 날 처음 보았다. 분노, 깊은 슬픔을 담은 분노를. 좀비가 된 어린 오크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던 오크 전사들의 눈에 깃든 깊은 슬픔과 분노. 그 슬픔은 깊이를 알 수 없이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대척점에 놓인 분노는 금방이라도 폭발해 그 깊이만큼 꺼꾸로 치솟을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사지가 찢기고 머리가 박살난 좀비들을 불태우고 나서 시우가 출정을 선언했지만 밥 먹는 것 보다 싸움을 좋아하던 오크 전사 어느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 밤 늦게까지 출전을 준비했다. 그게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나 역시 그 동안 친해진 무당과 장인 오크 대다수를 잃었다. 오크 전사들과 달리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하던 별종인 그들은 피가 튀기고 뼈를 가르는 대화나 설득 없이도 나와 금방 친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지적 능력이 조금 떨어졌어도 이익과 유불리를 따지지 않은 순수한 유대를 그들에게서 느꼈었는데... 이젠 강물에 버려져 그들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함께 장난 치던 꼬마 오크들은 언데드가 되어 제 아비의 손에 산산조각 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랬기에 나도 두 말 없이 출정에 참가했다. 오크의 번식 방법은 찬성하지 않았지만 어린 오크까지 그렇게 학살한 엘프를 용납하고 참으라 할 수는 없었다.


씁쓸히 고개를 저으며 육중한 세뿔소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현자총을 고쳐 들었다. 좌우를 훑으며 바이저에 투영된 망원조준 화면에서 혹시 눈에 띄는 것은 없는지 살핀다. 아직까지는 평온한 풍경.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으리라. 우리는 이 땅에 평화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을 뿌리러 가고 있다. 전사의 발자욱이 찍히는 곳마다 울음과 비명과 신음이 흐르겠지. 피를 뿌리고 살을 찢고 뼈를 부수리라. 피가 강처럼 흐르고 찢어진 살이 벌판을 덮고 부셔진 뼈가 산이 될 지라도, 거기에 자신의 피와 살과 뼈를 더할 지라도 이들은 멈추지 않으리라.


“독배인 줄 알지만 받아야지.”


문득 출정을 결정한 시우가 했던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이대로 출정하면 틀림없이 엘프가 쳐 둔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거라는 나의 우려에 시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여태껏 조용하던 엘프가 아무런 준비 없이 싸움을 걸어온 것은 아니겠지. 분명히 어딘가에서 엘프들이 우릴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 스물스물 아랫배가 아파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순차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닌 이상, 사건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다.


“슈우웁... 팍! 팍! 팍!”


공기를 꿰뚫는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두꺼운 가죽을 금속이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연이어졌다. 그런데 방향이 숲쪽이 아닌 반대쪽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어떻게 강쪽에서...?’


“꾸우우우우...”


의문이 답을 찾기도 전에 세뿔소가 몸을 좌우로 흔드는 바람에 손잡이 대용으로 땋아 내 몸에 묶어두었던 세뿔소의 털을 움켜쥐고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 와중에 내 앞자리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오크는 세뿔소를 진정시키려고 고함을 지르면서 고삐를 당기고 있었고, 뒤를 보니 세뿔소의 잔등에 앉아 북을 치던 북잡이 오크가 어깨와 옆구리에 화살을 박은 채 허리를 숙여 북을 안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삐잡이 오크나 북잡이 오크도 전사가 되지 못한 쪼가리 중 하나다. 세뿔소 한마리에는 4명의 오크가 타는데 세뿔소를 몰고 북을 치는 것으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어 그나마 쪼가리들 중에서는 준전사 대접을 받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와 친해진 오크들 중 하나였고.

그러나 북잡이 오크의 상태를 살필 여유가 없이 나는 시선을 다시 강쪽으로 향했다. 시선을 뒤로 돌릴 때 강쪽에서 무엇인가 사람 형체 같은 것을 얼핏 보았기 때문이다.


현자총을 그 쪽으로 겨누고 바이저 시야를 조준경 모드로 바꾸자 확대된 상이 바이저로 비쳤다.

‘인어...?’

물에서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반신을 이쪽으로 드러낸, 흡사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여성형 인어들이 천천히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물에 젖은 긴 머리칼을 젖가슴까지 늘어뜨렸고 물기를 머금은 구리빛 피부는 햇살에 윤기를 내며 빛났다. 하지만 그녀들의 아름다운 자태 보다 손에 들려 있는 짧은 활과 이쪽을 향한 화살촉을 보는 순간 머리가 쮸뼛 섰다. 왼쪽 기계팔에 얼기설기 묶어 두었던 방패로 몸을 가리며 소리친다.


“적습! 적습! 방향 아홉시! 거리 둘백! 적 궁수 백여명 사격 중! 이상.”

“괜찮아? 주혁아, 안다쳤어?”

“난 괜찮아! 고수 오크가 당했어.”

“슈웁, 슙... 팍! 팍! 팍! 탕! 탕!”


어라? 이번에는 소리가 다르다. 게다가 그 다른 소리는 방패에서 나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 이 거리에서 화살을 맞추는 엘프의 궁술을 직접 보니 첫번째 사격에서 내가 당하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단 생각에 오히려 운이 좋았다 싶었다.


고삐잡이 오크 둘이 달라 붙어 흥분한 세뿔소를 멈춰 세우고 진정 시키자 이번에는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힐끔 뒤를 보니 화살에 맞은 북잡이 오크을 다른 북잡이 오크가 교대하는 것이 보였다. 교대를 한 오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떡이더니 다시 북을 치기 시작했다. 제법 친해져 내 맘대로 하얀이빨이라고 이름 붙인 녀석이었다. 화살이 쏟아지는데도 몸을 숨기지 않고 북을 치는 하얀이빨을 보자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좀 전까지 단조롭게 네번 치던 리듬이 아니라 가운데 두번이 빠른 북소리가 울렸다. 적이 공격하니 멈춰 방어하라는 신호였다.


“쿵, 쿠쿵 쿵. 쿵, 쿠쿵, 쿵.”

“투퉁! 투퉁!”


그리고 그 북소리에 응답하듯 장갑차 무인포탑에서 현자총성이 단발로 짧게 연이어 울렸다.


방패 옆으로 현자총을 내밀어 어느새 표적 둘다섯으로 마킹된 지역을 겨누니 상반신이 사라진 하반신 하나가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물에 풀어진 잉크처럼 번져나는 피가 아니었다면 마네킹처럼 비현실적인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갔다. 다리가 있는 걸 보니 인어는 아니라는 맹한 생각이나 하면서.


“쿠거원. 표적 둘다섯과 교전. 현자원 대기!”

“투퉁, 투퉁.”


시우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무인포탑의 현자총성이 단발로 이어졌다. 팔이 떨어져 나간 엘프가 멍하니 이쪽을 바라 보는 것이 바로 눈 앞인 듯 보였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경악과 불신 때문이었을까? 불쑥 물 속에서 가녀린 손들이 올라와 그런 그녀를 물 속으로 끌어 당겼다. 망연자실한 앨프는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녀의 긴 금발이 잠시 물 속을 일렁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붉은 피가 퍼지면서 대신하더니 그 마저도 이내 흐르는 강물에 흩어졌다. 어느새 강물 위에 떠 있던 그 많던 엘프들이 자취를 감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강물만 햇살에 반짝이며 유유히 흘러갔다.


“쿠거원, 표적 둘다섯 제압 완료. 현자원, 오크 고수에게 다시 전진하라고 통보. 이상.”

“현자원, 오크 고수에게 전진하라고 통보. 이상.”


시우의 지시에 따라 하얀이빨에게 손을 앞으로 가르키며 전진하라고 신호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합을 맞춰두었던 바디랭귀지에 하얀이빨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북 치는 리듬을 바꿨다. 단조롭게 같은 박자로 네번씩 북소리가 울리자 세뿔소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프의 공격에 잠시 멈췄던 긴 대열이 다시 구불구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프의 멍한 그 눈빛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처음 여기 와 오크들을 죽일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좀 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라서 그런걸까? 하지만 지난 40여일을 오크와 지낸 나로서는 이제 오크 보다 엘프의 목숨이 더 무겁다고 말하긴 힘들어졌다. 어쩌면 오크들 안에도 인간성, 휴머니티를 발견하고 우리와 공통점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저런 것들로 갈피를 잡지 못한 내 감상은 그리 이어지지 못했다.


“둥, 두둥, 둥.”


뒷쪽에서 북소리가 달라졌다. 돌아 보니 후미에 있는 세뿔소를 향해 강에서 엘프들이 활을 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쏘는 양상이 달랐다. 좀 전처럼 물에 떠서 쏘는 게 아니라 돌고래 같은 생물을 타고 물 속에서 점프하듯 튀어나와 활을 쏘고 다시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기예를 부렸다. 짧은 순간 활을 겨눠 쏘는 거라 명중률은 떨어질 법도 했지만 그러기엔 표적인 세뿔소가 너무 컸다. 세뿔소의 두터운 가죽을 생각하면 큰 데미지는 주는 것 같지 않았지만 저 녀석이 폭주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내 차례군.’


“적습! 적습! 방향 7시. 거리 둘백! 수 미상 적. 사격 중. 현자원 교전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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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믈 헤엄치는 새2부.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 10 18.12.09 20 3 23쪽
» 믈 헤엄치는 새 2부.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 9 18.11.30 33 1 18쪽
107 믈 헤엄치는 새 2부.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 8 18.11.11 32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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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12 18.07.29 25 3 16쪽
85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11 18.07.28 23 2 13쪽
84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10 18.07.27 26 2 16쪽
83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9 18.07.26 27 3 14쪽
82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8 18.07.25 22 2 11쪽
81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7 18.07.24 21 2 15쪽
80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6 18.07.23 25 2 9쪽
79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5 18.07.22 18 2 10쪽
78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4 18.07.21 25 2 14쪽
77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3 18.07.20 29 3 9쪽
76 믈 아래 나는 새 3부. 작원관 2 18.07.19 2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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