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끊어내지 못하고 늘어뜨린 꼬리를 결국 밟히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서림
“ 어쩐 일로 이 시간에들 오셨습니까요? ”
“ 오늘은 정규 외출일이라 무리 없이 나왔는데
갈 곳이 딱히 없어서 말이지. 해는 아직
산도 넘지 않았는데 술을 먹기도 그렇고
주막에 있기도 그리하여 말이야. “
“ 서림이 오작교 노릇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
참으로 기똥차게 알아듣는다. 눈치도 백단에
완전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홍학유 책이
잠시 중단되어 어려울 법도 한 데 이에 난
눈치껏 장가에게 슬쩍 엽전꾸러미를 밀어주며
“ 좀 있다. 홍루에 낯익은 이가 들어올 걸세.
어떤 말도 묻지 말고 곧장 안으로 좀 들여
보내주게. “
“ 큭큭 네네~ 분부대로 합지요. ”
그리 당부한 뒤 나와 석환, 제천은 안 쪽
별실로 들어갔다. 서림 단골이자 특별한 이들을
위한 비밀 공간. 성균관 존경각에서 나온 학유
들에게 털리기 전까진 연애소설과 붉은 물결이
그득했는데 지금은 평범한 서책들과 장식들로
채워져 있다.
“ 하아~ 아쉽군. ”
역시 가만히 있지 않는 석환이었다. 제천은
무슨 말인가 싶어 석환을 쳐다보다 내게
고개를 돌리니
“ 제천 자네도 설마 같은 부류? ”
“ 무슨 말입니까 장의? ”
“ 큭큭큭, 제천도 사내인 데 당연한 것을
묻나? “
“ 쯧쯧, 그래도 너보단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라고 해두지. 여긴 저번에
문제 됐던 서책들을 보관하는 비밀서고이자
특별한 이들의 장소일세. “
“ 아아... 은밀한 곳이군요. 후후 ”
녀석도 사내라고 눈빛이 음흉해진다.
재수 없는 놈들.
‘ 나도 제법 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참~ ‘
서로 킬킬 거리는 모습에 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 뒤 장가가 준비해 준 차에
손을 댔다. 그렇게 한 식경정도 지났을까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시 수다를
접고 기침하니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모습이 안으로 들어섰다.
“ 어서 오게. 어찌 짬이 났던 것인가? ”
“ 유정도련님께서 부르시는 데 없던 시간도
내는 것이 도리 아닐 런지요 후후. 어머니께
하루 고단하여 조금 쉬고 싶다 하였지요.
초이는 아무래도 눈이 있어 두었습니다. “
“ 잘했네. 오늘은 초이가 있으면 좀
그러해서 ”
“ 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은 아이입니다.
괜한 일에 휘말리기에 조심스러우니 당부
드리옵니다. “
“ 아닐세. 별 건 아니고 일전에 내가
말했던 자에 대한 또 다른 말이
나와서 걱정이 돼서 말이야. “
그렇게 조심스레 월아가 일러주었던 말을
건네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듯 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직 잔심부름과 허드렛
일로 손님들에게 모습을 내지 않은 애기
기생에게 무슨 연유로 그리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물론 변태스러운 행각이 꼭
초이에게만 위험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그 자가 초이를 노리는 듯
하다 염려되어 연향에게 언질을 두었다.
“ 네. 당분간은 외출을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
“ 물론 그리 위험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미리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내 자네에게만 일러둠세. “
“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들 같이
미천한 이의 목숨도 귀히 여겨주시니 “
“ 사람 목숨에 귀천을 따질 수가 있나
태어남에 있어 신분을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인데 그러니 너무 스스로를 낮추지 말게. “
제천의 눈빛이 감동으로 물결친다. 이거 참
처음엔 싫어했다가 지금은 껌딱지가 된
유정바라기. 다행히 이런저런 관계들의
조율을 잘 해놓고 있으니 혹여 다시 돌아
올 유정이 마음 편해질 테지.
“ 그래도 혹시 몰라 내 하나 자네에게
물어볼까 하는데. “
“ 네 하문하시지요. ”
“ 초이가 홍루에 어떻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 알려줄 수 있는가? “
누구나 사연은 있다. 그 중에 내가
기녀들의 삶에 잠시 참견을 하는 것은
혹여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된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물론 내가 힘이 있다면
곤란할 수 있을 초이를 방면할 것이다.
허나 사정도 알지 못한 채 정의감에
불타올라 멋대로 결정지을 수는 없어
우선은 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 사사로운 일입니다. 도련님께서 굳이
아셔야 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
“ 아... 혹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것이라면 내 방면도 생각해 보았네.
이유를 불문하고 그 자의 시선이 불쾌해서
집으로 들인다면 내가 보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네. “
“ 염려놓으시지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것에 흠이 나는 것을 용납지 않는 분이라
초이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홍루의 주인을 직접 보지는 않았으나 연향의
태도에서 적잖은 권력이 쥐어진 이는 분명
한 듯하다. 굉장히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입단속도 철저한 것에
나는 토를 더 이상 달지 않기로 했다.
괜한 오지랖으로 서로가 불편할 필요는
없으니.
“ 그렇다면 다행이지. 내 누이 또래라
괜히 마음이 더 갔었나보이. 그럼 내게
정보가 또 들어오게 된다면 자네에게
연통을 보내도록 하지. “
“ 네 알겠습니다. 더 하문할 것이 없사
오면 소인은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지체하면 바깥에서 기다릴 이가
괜한 소리를 전달할 것 같아. “
“ 알겠네. ”
그렇게 연향에게 당부를 하여 돌려
보냈다.
‘ 우선 급한 불은 껐다지만 언제까지고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
“ 유정, 우선은 말을 해 두었으니 알아서
초이를 단속할 테고 별 일 아니길 기대해
보는 수밖에. 당장 그 자가 초이에게
해코지를 한 것이 아니니. 단정 짓기엔
이른 것 같아. “
“ 석환사제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짐작일 뿐 무엇 하나 드러난 것이 없으니
우선은 지켜보며 주변부터 살펴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
“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는 하나,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니 괜한
노파심만 늘어나서 그러지. 어찌되었든
무슨 일이 생기면 연향이 먼저 알린다
했으니 주변에만 경계를 두는 정도로 해
두지. 자~ 그럼 우리 다시 돌아가
볼까나? “
“ 어허~ 어떻게 나온 외출인 데 이리 돌아
가려고. “
내 그럴 줄 알았다. 대 놓고 석환이 속을
떠보려니 장단을 맞추는 게 그럼 그렇지란
말을 하게 만든다. 이에 제천이를 바라
보니 내심 기대하는 눈빛이다.
“ 어디 바깥의 해가 넘어갔는지 확인을
좀 해 볼까나~ “
“ 큭큭,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군. 어느
찻집이 좋겠는가? “
“ 으이구~ 제천도 있는데 적당히 좀 하지? ”
“ 네네 분부대로 합지요오~ ”
이왕 나온 거 한 잔을 걸치자는 석환이를
핑계 삼아 신성군이 사라지는 통에 홍루를
뒤로 하고 간 술잔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던 찻집으로 향했다.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한 대학로의 작은 주점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 두부김치에 빈대떡을 산처럼 쌓은
떡케이크에다가 막걸리 말통으로다가
주면 참으로 좋겠다. “
“ 무슨 말씀이신지? ”
“ 하하... 주문은 내가 하지. 어찌 아직
입에 한모금도 들이지 않고 주정을 할 수
있는 지 그 재주 한번 용하군. “
동아리모임 때 선배들과 갔던 곳이
생각나 그 때 즐겨 먹던 메뉴들을
나도 모르게 읊으니 석환이 말린다.
그런 나의 행동과 말에 제천은 제법
면역이 되었는지 무시하고 주변을 살피기
바쁘다. 아무래도 이런 곳은 낯설 테지.
“ 홍루나 비싼 주루만 가다가 이런 곳은
처음이지? “
“ 장의께서 이런 곳에 데리고 올 줄은
몰랐습니다. ”
“ 쯧쯧, 원래 기가 막힌 곳은 낡거나
간판조차 없는 곳이야. 절대 소문이 나면
안되거든. “
“ 그건 또 왜? ”
“ 정인을 함부로 뺏길 수는 없는 마음과
동일하지. 달달하기 그지없는 건 정인이나
술이나 매 한가지니까. “
“ 풀풀 나는 술 냄새에 벌써 취한 겐가?
가만히 있던 정인은 여기서 왜 꺼내나.
그리고 암만 술이 좋아도 그렇지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
“ 소아 얘기만 나오면 발끈이다. 누가 보면
네가 정인 인 줄 “
“ 워워~ 두 사람 그만 다투고 장의는 먼저
제 잔을 받으시지요오~ “
인공애교를 한층 섞어 술을 권하는 제천이다.
술이 많이 고프고 피곤한 언쟁에 질색인
눈치기에 못 이기는 척 받아드니
“ 캬~ 이 맛이지~ ”
“ 내 말에 답 안 했어~ ”
“ 내세에 다시 만나는 인연도 그
또한 소아낭자일지니. 그 앞에 증인은
제천과 석환이가 해 줄 것이다.
이 정도면 됐지? 내세까지 들먹였으면
야~ 다 말한 거다~ “
아주그냥 환생까지 들먹이려다 참았다.
누가 보면 변덕을 부려 돌아선 정인을 다시
잡으려 애쓰는 놈으로 보일 텐데 가끔가다
희한한데서 고집부리는 녀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나마 제천이가 중간에서 애 좀
먹으니 숨통이 트이는 지라 어쩌면 이 조합이
신이 만든 최상의 조건이지 싶다.
‘ 빌어먹을 신. ’
갑자기 떠올리니 순간 욱해졌다. 어차피
돌아갈 방도도 없는 마당에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오래 살라고 속으로 내가
아는 욕이란 욕은 다 퍼부은 뒤 한잔을
또 홀랑 비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단맛이 기똥차다. 그렇게 나와 석환
사이에서 등이 제대로 터진 제천이를
그제야 달래는 석환이는 전병을 돌돌
말아 잔소리를 시전 하는 제천이 입에
쏘옥 넣어준다. 내가 하는 거랑 남이
하는 걸 듣는 거랑은 천지차이일 테지.
그런 두 녀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로 다음
잔을 비우려고 기우는 데
“ 쯧쯧. 나라면 그런 사내는 사절일세. ”
“ 그래도 반쪽은 귀한 것을. 눈 딱 감고
살면 그만일 텐데. “
“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암만 위세
높은 호랑이라도 종이 짝 같은 권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게다가 홍루에
따로 기집까지 두고 있다는 소문까지
그런 인간에게 누가 딸을 주겠는가?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
가만히 듣고 있으니 신성군 이야기이다.
술병 나서 쓰러져 있던 것을 호위가 찾지
못하고 실종신고부터 해 일을 키운 탓에
혼사가 어그러졌다고는 하나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혼처지만 지엄하신
왕의 자식이라 찍소리도 못하다 이번 일로
옳거니 하며 발을 뺀 것에 대한 것을
이리 저리 혓바닥에서 나오는 모양새가
가히 듣기 거북했다.
“ 이런~~~ 자네야말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름이야~ “
갑자기 자기네들끼리 쑥덕이다 불쑥 내가
끼어 앉으니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허나
딱 옷차림이 촌구석 서생은 아닌 듯하여
말을 아꼈다.
“ 뉘신데 남의 이야기에 감나라 배나라
하쇼? “
“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야.
자네들이야 말로 속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이랬드라 저랬드라 거~ 남 일이라고 그리
막 떠들어서야 쓰나~ 암만 반쪽짜리래도
엄연히 군왕의 자식인 것을~ 딸꾹 “
“ 이리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긴.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도 아는 사실을 쯧쯧.
줄 잘 서슈~ 까딱하다간 같이 쓸려
나갈 테니. “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내게 훈수 아닌
훈수를 두던 인간들이 취한 나를 밀쳐내며
자리를 뜨니 욱해져선 시비를 붙으려 사내를
잡으려니 뒤에서 제천이 붙잡는다.
“ 장의, 제가 무어라 했습니까? 저런
어리석은 백성들도 아는 것을요. 지금에라도
발 빼는 게 상책입니다. “
“ 아이 씨~ 술 한 잔이 아쉬워서 그
인간한테 붙을란다. 저런 것들한테까지
무시 받는 인생이 불쌍해서 내가 술친구
해주고 말지 에이~ “
“ 석환~ 자네가 좀 말려보게. 장의가
술에 취해 이 이상 헛소리를 지껄였다간
괜히 험한 꼴 볼 테니. “
“ 장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알지도
모르면서 멋대로 뱉어내는 것들 저것들부터
확~ “
“ 하아.. 두 사람 다 왜 이러나.
안되겠네. 자자~ 나가자고. 이쯤하면
되었어. “
그나마 석환이 맨 정신이라 겨우 달랜
제천은 서둘러 셈을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밤공기에 머리가 가벼워지려나 싶어
석환과 제천을 붙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는
데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붙잡아 당겼다.
“ 무슨 짓이오~!! ”
놀란 제천이 소리치고 앞서가던 석환이 돌아와
유정을 다시 잡으려니 저쪽에선 혼자가 아닌 듯
여럿이 더 나와 제천과 석환의 앞을 가로
막았다. 난 갑작스레 당한 터라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취기로 인해 힘도 주지 못하고 버둥거리니
“ 귀한 댁 도련님께서 뭐가 그리 불만이
많으십니까? “
“ 놓고 이야기 하시오~~ 이거 놓으란 말이오~ ”
“ 뭐 원한다면야. ”
그렇게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풀며 냅다
바닥으로 던지는 데 이에 난 바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 야이~! 가고 있는 이에게 왠 시비냐~! ”
“ 세상물정 모르는 양반님들에게 제대로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까
무지렁이들이 일러주었는데도 어리석게 세치 혀를
잘못 놀리기에 한번쯤은 기회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
“ 석..석..환.. 보이나? ”
포위당한 제천이 석환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소근 거렸다.
“ 무엇을 말이야? ”
“ 저.. 장의와 이야기 하는 사내의
얼굴.. 얼굴에 흉터가 있어. “
순식간에 남은 취기가 몽땅 날라 가며
석환이 조심스레 유정에게 말을 거는 이를
살피니 제천의 말대로 왼쪽 눈썹 절반을
지나 뺨으로 내려 길게 내려오는 흉터가
보였다.
- 작가의말
깜빡하고 지나갔네요 ㅜㅜ
방학이 날짜도 요일도 개념을
싸그리 날려버려서 ㅜㅜ
내일부터 개학이니 정신줄
다시 붙잡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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