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우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느 정도 지저분해진 신성군을 보고 있던
우리들은 동시에
“ 충분합니다. 그대로 누워 계십시오~! ”
외쳤다. 참으로 화합이 잘 되는 우리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허나
석환이랑 제천이는 왠지 어색한 듯
쑥쓰러움에 머리만 긁어댄다.
“ 그럼 호위는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제게
도움을 요청 하셔야 하니 제천사제와
석환사제는 비천당 화원에 가서 기다렸다
문을 닫으려 서리가 오거들랑 나를 부르며
돌아가자 외치면 내가 자네들을 크게
부를 테니 서리를 대동하여 이 곳으로 오도록
하게. 그럼 서리는 직제학께 말씀을
전하려 하실 테고 거기에 맞춰 호위께선
관아로 곧장 가십시오. “
그렇게 손발을 맞춘 뒤 곧장 오던 길을
제천이와 석환이가 돌아가자 나는
신성군와 함께 바위에 아무렇게 걸터
앉았다.
“ 참 힘들게 사십니다. 마마 ”
“ 내가? ”
“ 품 안에 자식이 생긴다 하여 무조건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장손
이시지 않습니까. “
사실 박색이니 뭐니 다 변명일 뿐이다.
내가 진짜 남자였다면 곧이곧대로
들었을 테지만 신성군이 무슨 단순한
사내도 아니고 하물며 왕실의 자손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댈 리가
없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연애도 해
본 적 없고 결혼은 더더욱 꿈도 꿔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순 없지만 만약 나의
처지를 자식이 대물림 받게 된다고
상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여자로서 모성본능이 일어서 일지도.
가난했지만 우리 자식들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 아등바등 사는 다큐 속
부모들의 모습까지 겹쳐지면서 알면서도
괜시리 조선이라는 곳에 태어난 왕자의
삶이 고달파져 나도 모르게 욱하고
뱉어냈다.
“ 장손이기에 그러한다면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 ”
“ 머리로야 이해가 되지요. 허나 마음은
왠지 화가 일어서 저도 모르게 마마께
불손한 말을 입에 담고 말았습니다.
송구하옵니다. “
“ 아닐세, 어쩜 실제로 내뱉지도 못할 말
가슴에만 담아두었던 것을 자네가 대신
토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야. 허나 세상 일이
내 맘같이 흘러가준다면야 얼마나 좋겠나.
그저 해와 달이 매일매일 뜨고 지고가
당연한 것처럼 세상 사 그리 보내고 싶을
뿐일세. “
많아봐야 유정이보다 4~5살 많을 딱 내
또래가 어떻게 이리 쓸쓸하게도 말을 하는 지
괜시리 울적해지다 현대를 살고 있는 유정킴으로
철딱서니 없이 세월을 보낸 것에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괜시리 마음이 심란해져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벌써 능선에 걸쳐지는 게 곧 떨어질 것
같아 화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 장의~!!!! 어디 계십니까~!!!
돌아갈 시각입니다~!! ”
때마침 녀석 둘이서 번갈아 나를 부른다.
“ 호위는 여기서 신성군마마를 돌봐드리고
있으시오. 서리를 불러올 터이니. “
“ 기다리겠습니다. ”
그렇게 둘을 뒤로 한 나는 곧장 석환과
제천이가 기다리는 화원으로 내달렸다.
“ 이보시게들~ 나 좀 도와주게나~!! ”
“ 무슨 일이십니까 장의? ”
“ 뉘신지는 모르나 왠 사람이 쓰러져있네. ”
“ 네에~?! ”
참으로 어설프다 어설퍼.
연습이라도 할 걸 그랬나 오그라들어 좀체
펴지지 않는 손, 발을 겨우 찾았다.
『 저 둘은 평생가도 거짓말을 못하겠어. 』
“ 월아, 너도 이 일에 한 몫 했으니 아무
말 마라 ”
어떻게 보면 월아가 괜히 겁을 주는 통에
일이 여기까지 흘러간 것이니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나 몰라라 예상은 했지만
얄미워죽겠다.
“ 아니... 어찌.. ”
당황한 서리의 소매를 붙잡은 난 서둘러야
한다며 당겨 신성군이 쓰러져 있던 장소로
데리고 갔고 이를 확인한 그는 곧장 사람을
불러오겠다 말한 뒤 비천당 입구 쪽으로
내달렸다. 이를 본 난 호위에게 눈짓을 하여
관아로 가도록 하니
“ 관아로 가게 되면 아무래도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조용히 일을 마무리 하도록 부탁드리겠
습니다. “
이 같은 대답에 생각을 해 보니 관아에
바로 고하면 아무래도 임금의 귀에 들어가기
쉽긴 하나 경빈에게도 쉬운 일이니 우리를
염두 한 것 같았다.
“ 현아, 그리 되면 포상금은 그대로 날라
갈 터인데. ”
괜시리 미안한 표정인 신성군을 보며 아쉽지만
내가 하도 찔러대니 석환이 나섰다.
“ 뭐 정히 저희에게 빚을 지신 것 같다면
언제 귀한 술대접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
‘ 아~ 이 자식은 그 와중에 술 약속을
하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골치
아프네. 더 이상 신성군이랑 엮이지 않으려고
매듭짓는 데 고만해~라~아 ‘
“ 언제든지 가능하지. 우리는 홍루에서 인연을
맺은 홍루의 벗이 아니던가 큭큭. “
홍루가 갑자기 싫어진다. 연향이랑 초이한테
미안하지만 이 작자들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찻집나들이로 만족해야 할 듯. 제천이도 기가
차는 듯 석환이에게 눈짓을 연신 해대는 데
석환이는 죄다 무시다. 답이 없는 녀석이 둘.
내 인생도 여기 유정이의 인생도 참으로
겁나게 꼬이겠다. 그렇게 머리에 손을 짚고
있으려니 멀리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아버지께서 오시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
하니 석환이 걱정 말라는 제스처다.
“ 아니~ 누가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냐~ ”
이런...
하필 벌점을 주신 호랑이스승님을 모셔오다니.
“ 아니... 스승님이 어찌 ”
“ 퇴청하고도 남을 시각이지. 나와 00학유가
남아 있던 차 서리가 급하게 달려와서
전하기에 이리... 아니~!!! 마마~!!! “
이야기를 하다 신성군을 발견한 스승님은 곧장
우리 곁으로 올라 오셔선 신성군의 상태부터
살폈다.
“ 전하께서 그리도 애를 태우고 계시었는데
어찌 이 곳에 도대체 자네는 마마를 어찌
뫼시었기에 일을 이 지경이 되도록 한 것이야~!! “
호위에겐 미안하지만 호랑이스승님의 꾸지람을
좀 들어 달라 뒤에서 손짓, 발짓으로 전달
하니 눈치 빠른 그는 곧장 대답하였다.
“ 송구하옵니다. 제 불찰로 마마를 놓치는
바람에. ”
“ 아니 그럼 마마께서 자네를 따돌리는
통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나? 어허
그런 줄도 모르고 전하께서 여태 마마의
안위 걱정으로 잠조차 제대로 들지 못
하시거늘 우선은 00은 약방문을 열어
자리를 준비한 뒤 곧장 의원을 모셔오도록
하고 석환상유와 제천 상유는 관아에
기별을 넣도록 해라. “
“ 저기 스승님. ”
“ 한시가 급하다. 어서~!! ”
“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사
옵니다. 이런 모습을 만약 전하께서 아신
다면 얼마나 상심이 크실런지요. 우선은
사가로 가 용태를 살핀 뒤 전하여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장의 그 무슨 말이냐? ”
“ 실종되셨다는 분께서 비천당 뒤 대밭에서
발견 되었다면 성균관의 불찰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마마께서 호위까지 따돌려
가며 홀로 길을 나선 것에 분명 연유가
따로 있다 사려되오니 깨어나 여쭌 뒤
궐에 소식을 넣어도 늦지 않아 보입니다. “
그러고 보니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실종되었다는 이가 성균관에 올 거라곤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허나 별 거
아닌 걸로 트집을 잡을라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괜시리 일을 키워 복잡하게
만드느니 우선은 사가로 신성군을 모시는 게
옳을 것 같았다.
“ 그럼 00은 신성군마마의 사가로 급히
달려가도록 하거라. “
그렇게 스승님은 서리를 신성군집으로 보낸 뒤
호위에게 신성군을 업게 한 후 약방으로
향했다. 약방문을 열어 이부자리를 깐
나는 신성군마마를 안아 조심스레 뉘였다.
“ 허허, 이 무슨. ”
그제서야 스승님께선 누워 있는 신성군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어 했다. 도성
내에선 술독에 빠져 기생을 끼고 놀다
기둥서방에게 당했다는 둥, 노름을 하다
빚을 져 도망쳤다는 둥 별 해괴한
소문들이 나도는 판에 호위까지 물린 채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온 것인지 우선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 호위에게
먼저 물었다.
“ 자네는 마마께 들은 것이 없는가? ”
“ 그날 밤 홍루에서 나서시며 신세한탄을
하신 것 뿐입니다. 늘 있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제 불찰입니다. “
곁에서 나와 석환이 그리고 제천이는
어쩌다가 벌 받는 꼴이 된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괜히 나서기도 그러하여
때를 기다렸다.
“ 으음... ”
적당히 때를 맞추었다 생각이 들었는지
신성군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 마마~~ 정신이 드시옵니까? ”
“ 여기는 어디인가? ”
“ 성균관이옵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
“ 아...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었나. ”
아까까지의 4차원, 5차원은 어디가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으로 당황스럽게 만드니
이건 뭐 코미디를 보다 사극을 갈아타는 기분?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다.
‘ 어색하다 신성군. 내 손발은 언제 펴질려나. ’
제천이와 석환이의 로봇연기보다는 좀 나은 듯
하지만 그래도 안 본 눈과 안 들은 귀를 사고
싶은 나였다.
“ 마마, 무례가 되지 않다면 이 곳으로 오신
연유를 여쭈어도 될 런지요. “
“ 무례랄 것이 무엇이겠나. 딱 이맘때면 성균관
비천당에 물망초와 찔레꽃이 차례로 피어나지를
않나. 전하와 성균관에 들었을 때 이 곳을 구경
한 것이 기억이 나 취기에 이 곳까지 온 것인데
이런 흉한 꼴을 보였네. “
“ 아니.. 그러시다면 저희들에게 알리시지
그러셨습니까. ”
“ 조용히 보다가 가고 싶어서 그리하였네. 작은
쪽문이 있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런데
술이 좀 과하였나보이. “
술 병 나서 쓰러진 거라고 하지만 스승님은
절대 그냥 가시면 안 된다 몇 번이고 반복
하였다. 술을 마신 후 며칠이 지난 것에
의문을 가지신 것이다. 허나 한사코 아무
일도 없었노라 하는 신성군이다. 그러다
서리가 사가에서 집사를 데리고 왔노라
알리니
“ 들어오게~ ”
신성군도 고집불통 호랑이스승님을 못 이기겠는지
곧장 집사를 불렀고 스승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걸 겨우 뜯어 말린 뒤 사가로 향하셨다.
“ 그럼 스승님 저희들은 동재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 애썼다. 많이 늦었으니 우선은 돌아가도록
하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내 방으로 오거라. “
암만 신성군이 신신당부를 하였다고는 하나
도성 내에 흉흉한 소문을 듣지 않았으면 모를까
쉬이 넘어갈 일은 아니기에 대답을 한 뒤 동재로
석환과 제천을 데리고 돌아갔다.
“ 장의, 내일 스승님께는 무어라 말씀드리실
것입니까? ”
“ 자네도 참 무슨 걱정인가 우린 그냥 쓰러져
있던 신성군마마를 찾은 것을 그대로 다시 말씀
드리면 될 것을. “
“ 그렇다면야 다시 부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
“ 제천사제, 내일 우리는 석환사제가 말한 대로
눈으로 본 것만을 이야기 하면 되네. “
“ 그치만 장의. ”
“ 제천아, 너는 아까 신성군이 말한 찔레꼿과
물망초의 꽃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
“ 제가 식물에는 관심이 없어 모릅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
" 석환이 너는 아니? "
" 나도 잘은 모르지. 그런데 그건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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