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오해가 풀리고 끈끈한 우정의 시작.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우리는 지금 수에 몰렸네. ”
“ 장의~!! ”
석환이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냥 대충
얼버무릴 줄 알았던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기에 하지만
나는 과거로 타임슬립 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유정이가 운이 따라주는 게
있는 듯 했고 그걸 확인 해보고자
주사위를 굴려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왠지 제천이가 단순히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볼까 걱정이 들어 전전
긍긍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여자 유정은 제법 감이 좋은
편이었으니.
“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것이고
숨길 이유도 없어. 오히려 제천사제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
“ 장의께서 떳떳 하신다면 제 선에서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건 석환상유도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
“ 그래, 석환 굳이 여기서 날을 세워봐야
좋을 것 하나 없어. 우선 내가 말을 내놓기
전에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
“ 네. ”
“ 홍루라는 것이 일반 주루하곤 달리
아무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곳이
아닌가. 유생의 출입으로도 관리로서도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혹여, 자리가 불편
하진 않았나? "
제천이가 기분 나빠 할까봐 조심스럽게
물어보긴 했지만 녀석이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금방 알아들을 것이다. 바로
청탁을 물어본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
장원도 물 건너갔고 일차에서도 그닥
눈에 들지 않아 조바심이 난 좌찬성이
물밑작업이라도 할 심사인가 해서였다.
현재 아무리 보는 눈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뒤에서 수작질 하는 건 여전하니
조선은 더더군다나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 저의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
걱정히는 것이라면 안하셔도 됩니다.
중요한 손인 것은 맞으나 뇌물이 오고
갔거나 의뢰를 넣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모자라 아버지께서 백방으로
움직이며 저 역시 눈도장을 찍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
‘ 욕심 많은 부모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을 기는구나. 내게 시비를 건 것도
낮은 자존감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것
일 테지. 약육강식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것이지.
으휴 '
한의원이 위치한 곳이 강남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랄하는 인간들이 군림하던 곳
이다보니 제천이 같은 애들을 수 없이 봐
왔다. 무슨 로봇도 아니고 하나같이 똑같이
행동하는 게 징그러울 만큼
“ 그렇다면 문제될 것은 없지. 우리가
홍루를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야. "
“ 혹여, 신성군을 논하는 것인지요? ”
“ 우리가 일전에 기생들을 도와준 적이
있어 술 한 잔을 얻어먹게 되었어. 근데 그날
하필 신성군을 만나게 된 게 화근이지. "
“ 오해는 말게 제천상유. 그날 우리 방으로
불쑥 들어온 이가 신성군이라는 건 장의와
난 몰랐어. 우리가 한동안 지방에 수학을
하러 오랜 시간을 두고 온 적이 있다 보니
왕손과 일가친척들을 뵐 일이 없었다네. "
“ 알고 있네.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말이지.
사실 일전에 장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자꾸만 생각이 나 알아본바 제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기에 장의를 믿는 것입니다. "
부정으로 관직을 받은 둘째형의 뒤라도
캔 것일까 참...
어떻게 재벌가 자식들은 하나같이 가족애가
부족 한 것인지.
“ 처음엔 신성군 이신 줄 모르고 그저
실종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에 서둘러 확인
차 어제 간 것이야. 그러나 그 분이라는 것만
들었을 뿐 사건이 어떻게 조사되고 있는 지를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나와 답답하던 차에
00상유가 이상한 말을 하여 혼란하던
참이었어. "
“ 압니다. 그래서 제가 이리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00상유 역시 어제
홍루에 있었습니다. "
역시...
보지 않은 것을 마치 본 것처럼 이야기
할 때는 허점이 분명 있다. 그러나 확신에
찬 듯하면서 떠보는 것이 영 찜찜했었는데
결국 예상이 맞았다.
“ 제천상유 혹시 그 자 혼자 였나 아니면
누군가 함께였나? "
“ 그것까진 모르네. 분명한 건 자네와 장의께서
나가는 것을 그 자가 보았다는 것이지. "
“ 허나 우리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게 나를 떠본 것이군. "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혹시나 싶어 누군가와 있진 않나 했지만 결국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약 00상유가 두
사람을 궁지에 몰 경우엔 제가 방패막이라도
되어드리려는 것이지요. "
“ 솔직히 나는 지금 그 말 못 믿겠네. ”
아니, 잘 나가다가 브레이크를 거는
석환이다. 처음부터 호의적이지 않았고
사사건건 시비에 내가 충고하고 다독여도
퉁명스러웠던 태도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허나 제천이가 둘째 형의 비리를
알고나서 그 동안 내가 자신에게 한 말을
곱씹었기에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인데
이를 알 리 없는 석환은 무슨 수작인가
싶을 수밖에.
“ 뭐, 자네가 믿지 않다는 것에 내가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장의께선 아실 것이야. "
“ 석환, 제천 두 사람은 내게 소중한
동재인이다. 끝까지 책임져야 할 동지인
것이지. 우리는 서로를 겨누기 전에 우리의
적이 누구임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야.
물론 악감정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이번
기회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 "
뭐 그렇게 썩 내켜하는 표정은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당부를 하며 석환이를 설득하니
못 이기는 척 제천이를 향했다.
“ 만약, 자네가 우리를 기만한 것이라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
“ 큭큭... 기대하겠네. ”
편견에 사로잡혀 뽀족한 턱만 보였던
제천이가 오늘따라 귀엽다. 유정이보다
2살이나 많은 데 동그란 어깨를 가진
자그맣고 마른 체구가 우릴 지켜주겠다니
우습기까지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
했으니 우선은 00 그 놈을 처리하는 데
제천이를 앞세우기로 하고
“ 제천사제 혹여 자네는 신성군을 가까이서
뵌 적이 있는가? "
“ 대과장에 들어 미리 보고 깨달으라며
아버지를 따라 금상 곁에 함께하시는 것은
먼발치서 몇 번 본 적은 있으나 말씀을
나눌 만큼의 거리를 둔 적은 없습니다.
허나 장의께서는 모르시는 부분에 대해선
알려드릴만한 것이 될지는 모르나
신성군께선 한성 내 코흘리개도 알 듯이
어미의 신분이 미천하여 서장자임에도
복성군에게 밀려있는 상태지요. "
복성군??? 뭬야~! 그 양반의 아들래미~!?
드라마의 폐해가 머릿속을 긁는다. 역사는
똑바로 보지 않고 유행어만 머리에 채워서는
그렇게 잠시 한숨을 머릿속으로 크게
몰아쉰 뒤
“ 복성군이시라면 전하와 경빈마마의 장자가
아니신가. "
“ 네. 장경왕후께서 왕자아기씨를 보지 못
하신다면 유력한 세자가 되실 분이지요. "
“ 제천사제 말을 조심하시게. 장자라
하여도 왕후께서 건재하신 상태에서 세자를
거론하는 건 옳지 않음이야. "
“ 보이지 않은 곳에는 임금도 욕하는 법이야.
자네는 아직 순진해서야 원. "
“ 하~ 나보다 속이 시커먼 이가 또 있을라고. ”
‘ 진짜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 석환이는
고딩이니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제천아
넌 성인이다. '
“ 나도 사람임을 좀 알아주게나. ”
앙다문 잇새로 으름장을 놓으니 그제야
조용하는 두 녀석이다. 그런데 내가 역사를
배울 땐 분명 경빈의 소생인 복성군이
첫짼데 어떻게 그 위에 또 있다는 것인지.
‘ 단명해도 기록은 보존되는 법인데,
아무래도 권력다툼에 희생된 왕자인가
보네. 하물며 엄마가 비자(婢子)나
무수리쯤이면 더더욱 그랬을지도. '
영조는 군왕의 자리에 올랐기에 어미의
야망이 크지 않았거나 뒷배를 모을 줄
모르는 순진한 인간이라면 더더욱
사라지는 것이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 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묻힐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듯한 제스처는 노력
했는데 안타까웠다란 이미지로 부성애를
포장할 정치적인 가면인가? '
내가 아는 중종으로선 글쎄 여기까지
그림이 그려졌다. 그렇다면 최대한 숙이고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조용히 넘어
갈 수도
“ 금상께서 노발대발 하시며 지금
금위군까지 풀려 한답니다. "
그러나 제천의 이 한마디에 나는 곧장
편두통이 몰려오는 듯 했다. 이 곳에서
살아남기 참 힘든데 제일 싫은 정치
놀음판에 말이 될 수도 있는 곤란한
상황이 짜증나기까지 진짜
“ 똥도 더럽게 큰 똥을 밟았어. 아~!!!
젠장~!! ”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장의 체통이고 뭐고
냅다 질러 버렸다. 정신이 온전히 박힌
인간이라면 이건 약과지. 이에 석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품위 넘치던
모습만 보았던 제천이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을 잃었다.
“ 제천사제, 아니 제천아 지금 내겐 실낱
같은 정보라도 금은보화보다 더 값이
나갈 것이야. 어떻게 신성군에 대해 더
아는 것은 없어? "
불편했던 체통도 벗은 마당에 편하게
가기로 했다. 물론 성균관으로 들어가면
그 무거운 옷을 다시 주워 입고 가면을
써야겠지만 어쨌든 여긴 우리 셋뿐이니.
“ 그.. 저기... 신성군께는 딱히 뒷배라고는
없습니다. 왕세자에 책봉이 되신 것도
아니어 군왕수업을 듣지도 못하였고 그저
일반 왕자들처럼 지냈던 터라 나이가
들어 궁에서 나온 뒵니다. "
“ 이거 참 정보가 턱 없이 부족하고도
부족하네. 뭐 어쩔 수 없지. 석환 우리는
최대한 납작 엎드려 숨을 고르도록 하고.
제천이는 뒤에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는 지 알아봐줘. 아버님께서 그래도
윗전에 계시니 떨어지는 소식이 있지
않겠어? "
“ 네, 그리하지요. ”
아직도 어벙벙한 제천이를 두고 석환은
“ 그럼 난 아버지께 여쭈어 최대한
신성군과 거리를 가까이 한 인물들을
한번 조사해보도록 하지. "
“ 아니, 눈치 빠르신 대사헌영감께서 곧장
나의 아버지께 이르실 지도. 그럼 일이
커지게 되어 제천이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거야. 우선은 일반인이 아니기에 사건은
오래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나서려고
할 테니. 두각이 좀 더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
본 뒤 움직이자. "
그렇게 셋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때 밖에서 누군가 기척을 내어 허락을
구하여 부르니 초이가 주안상을 들고 들어왔다.
“ 미리 귀뜸이라도 해주셨으면 빠르게
올렸을 텐데. 늦어서 송구스럽습니다.
어떻게 연향언니를 불러드릴까요? ”
“ 아니다. 오늘은 따로 이야기를 할 것이라
그리고 아직 홍루가 시끄럽다고 들었다.
괜히 연향이 곤란할 수 있으니 "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은 물러가도록
하지요. ”
겁이 많은 아이긴 하나 기방에서 먹고 사는
이라 눈치 하나는 제법 있다. 반가운 마음이
가득할 텐데 분위기를 읽고 곧장 자리를
비워주었다.
“ 장의께서 도움을 주었다는 이가 좀 전에
그 아이 입니까? "
“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어. 신분이라는 답답한
틀에 갇혀 고작 노리개의 삶을 사는 그네들이
괜시리 안타까워 좀 오지랖을 부렸지. "
“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장의께서 원체
이곳, 저곳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
석환의 말에 제천은 금새 눈치를 챘다.
물론 석환이 알고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에 제천은 자신도 모르게 생전 짓지도
않던 웃음이 살짝 비쳤다.
“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처음 장의를
뵈었을 땐 불편했습니다. 집에서 나왔으니
조금은 자유로울 줄 알았던 것이 마치
또 다른 집에 들어온 것 같아서 "
“ 하지만 겪어보니 내가 그렇게 싫지는
않다는 것이겠지? "
“ 저는 싫다고 한 적 없습니다. 장의 그냥
답답했을 뿐이었습니다. "
아무렴. 잘 나가는 두 형의 그림자에서
겨우 벗어 나나 했더니 더 큰 그림자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으니 불편할 만도.
그러나 나를 싫어한 것은 아니라는 말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석환이도
조금은 오해가 풀리는 듯 한 표정에
더더욱 나는 흐뭇해지며 나중에
성균관에 돌아가 월아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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