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동상이몽(同床異夢)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동재장의 되십니까? ”
누군가가 나를 찾는 듯 하여 돌아보니 나이
어린 내관이다.
“ 내가 맞소만 무슨 연유로 붙들은 것이오? ”
“ 다름이 아니오라 군왕께서 어사주를 내리
시기 전 장원을 배출한 동재의 장의를 먼저
대면코자 하십니다. "
‘ 오예~!! ’
차마 내관 앞이라 깨방정은 내지 못하였으나
임금이 우승한 팀의 장을 보고 싶다는 것은
영광 중에 큰 영광이다. 속은 떨려왔지만
잘하면 몇몇을 내 손으로 추천할 수 있는
기회다 보니 마음을 얼른 다잡고 내관을
따라 상석으로 향했다.
“ 그대가 동재의 장의 김유정인가? ”
“ 네, 전하. ”
내관이 부르고 그 뒤를 따라 상석의 돌계단
앞까지는 분명 존재했는데 계단을 밟는
순간 정신줄이 손에서 떨어져 나간 듯 하여
잠시 발을 삐끗할 뻔한 것을 내관이 웃으며
손을 잡아주어 겨우 중심을 잡았다. 왕조
실록이나 야사에서 글로 배우고 초상화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역사의 인물을 직접
만난다고 하니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
지는 게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했다.
‘ 심장마비사(心臟痲痺死) ’
두근거리는 정도를 넘어서서 너무 세차게
뛰다보니 아주그냥 납땡이가 따로 없었다.
급기야 숨이 가빠와 잠시 주저앉으니
돌아보던 내관이 놀라 내 곁에 멈추었다.
“ 괜찮으십니까? ”
“ 존경해마지 않은 전하를 면전에 이리
가까이 뵙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해
정신이 다 혼미해져 잠시 숨을 고르던
것뿐이오. "
그러자 이내 웃음기를 한껏 머금으며
다시금 재촉하기에 이내 숨을 고른 후
뒤를 따랐다.
“ 그대가 김제학의 장남인 김유정이로군.
듣던 것과는 사뭇 달라 궁금증이 일어
일찍 보고자 하였다. "
중종은 경합이 막바지에 이르기에 옹주를
보며 장원을 할 이가 누구일 것 같으냐
물으려 고개를 돌리니 옹주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에 누구를 저리도 빤히
쳐다보나 싶어 살피니 가리키는 방향은
마지막 경합이 치러지는 단상이 아니었다.
‘ 옹주의 눈에 든 이가 아무래도
저 둘 중에 있지는 아닌 듯 한데. ‘
이에 호기심이 생긴 중종은 옹주의 눈이
가리키는 쪽으로 슬쩍 눈길을 돌려보니
동재 쪽 막사 앞에서 동재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이가 보였다.
‘ 오호라, 저 놈이구나. 우리 옹주의 마음을
애비 몰래 훔쳐 간 녀석이. '
그렇게 하여 살짝 상선에게 유정에 대한
정보를 간단히 알아 오라 시켜 전해 들으니
뜻밖에 답이 돌아왔다.
“ 그래? ”
“ 네 전하. ”
“ 상선이 잘못 안 것은 아니고? ”
“ 네? ”
“ 훗~ 그래도 제자라고 감싸 도는 모양새군.
그럼 내가 직접 판단하고 볼 일이지. 상선은
동재 장의를 이 곳으로 불러오도록 하게. "
“ 네? 아 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상선은 영문도 모른 체 묘한 표정을 짓는
임금을 보며 동재 장의가 무슨 연유로
부르시는 지 궁금증이 일었다. 경합이 거의
끝나고 난 뒤 어사주를 내릴 때 이긴 동재의
장이 대표로 나와 마주할 것임에 이리 먼저
만나겠다 설치시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
였다. 허나 군왕께서 하명하심에 일일이
토를 다는 것은 신하 된 도리가 아니기에
입을 다문 채 어린 내관에게 곧장 데려
올 것을 명했다. 그렇게 하여 임금 앞에
선 난 살짝 장난기가 섞인 듯한 묘한
표정으로 나를 판단하고자 하는 임금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 내가
평소 행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돌아 올 유정이 생각해서 적당히 논 거
밖엔 없는 데 뭐지? 뭐냐고 대체~!! '
빛의 속도로 머리를 굴려 봐도 중종이 뭘
말하는 지를 알지 못하여 결국 난 조심하며
솔직하게 물었다.
“ 전하께서 의중을 두시는 것에 대해 아직은
부족하고 어리석음에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 후후후, 짐이 전해 듣기로는 가부자(假夫子)라
불릴만큼 고지식하고 정도에 어긋남이 없는
사내라 하였는데 오늘 짐이 보기엔 전혀 그러
하지 않아서 말이지. "
‘ 아씨~ 젠장. 흥분해서 그만 너무 급발진을
했나보네. 이거 난감 한데. '
난 속으로 후회를 하였다. 서재장의처럼 얼굴에
두껍게 가면을 썼어야 했는데 허나 이제와 돌이
킬 수도 없는 노릇,
‘ 에라이 모르겠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
그렇게 난 밑도 끝도 없는 횡설수설 패를 던져
올인 했다.
“ 공자의 말씀을 들을 시에는 당연히 가슴에
아로새겨 조용히 곱씹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오늘의 대사례와 같이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몰아세움에 있어서
사내대장부로서의 사기를 불어넣는 것 또한
동재의 장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사명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모든
면을 전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듯 하여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
“ 그대도 진정한 사내라 이런 뜻이렸다? ”
“ 문(文)에 있어서는 지혜와 현명함을,
무(武)에 있어서는 용기와 기백을,
펼침으로서 전하의 올바른 신하로서의
길을 위해 정진함을 보여드리고
싶었사옵니다. "
“ 허허허, 모든 것이 짐을 위한 그대의
마음이라는 것이군. 동재장의가 아첨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이야. "
부드러운 말투와 달리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 꼬투리를 잡는 게 영 불안하다.
분명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조선시대
양반님들은 죄다 돌려서 말하기를 좋아하니
직설적인 나와는 영 맞지 않다. 살기 위해
꼬리를 좀 흔들었기로서니 어이가 없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말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침묵하니 그제서야 중종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말을 이었다.
“ 솔직히 짐은 기대를 하지 않았어. 동재에서
승전보를 울리리란 것을 말이지. "
‘ 네네, 유정이가 여태 어떻게 동재를
이끌었는지는 대충 압니다. 그래서요~ '
도치맘이 이런 기분일까 괜시리 동재인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상대는 임금이다. 우리가 못생겼다면
못생긴 것이니. 그렇게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며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그런데 초반부터 동재에서의 사기가
남달라지기에 사뭇 호기심이 일어 바라보니
그대가 보이더군. 왜 앞선 대사례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는지 제학의 아들이 성균관에
있는 것은 알았으나 동재의 장의란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야. 그 동안 왜 그리
조용하게 보냈을까 하고 궁금증이 일어
묻고자 함이지. "
‘ 아니, 이 양반이 아니 임금님아 고작
그거 물어볼려고 나를 부른 거야? 허~ 내참
기가... 아? 아까 서리가 한 말~!! '
말을 빙빙 돌리는 게 짜증이 나 답답해오던
차 서리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옹주가
동재에서 마음에 든 이를 발견했다는 그 말.
아무래도 옹주가 직접 왕한테 말을 했던 지
아니면 임금이 대충 눈치를 채고 그에 대해
알고자 괜시리 내 핑계를 둔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난 마음이 누그러트리며
대답했다.
“ 심신을 모두 다스릴 줄 아는 이야말로 큰 뜻을
품고자 하시는 전하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음인데
하나가 아닌 열 이상의 재간을 가진 이들이 소신의
부족함에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시작한 사소한 노력이었습니다. 거기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기회도 함께 얻어 비로소 좋은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
“ 좋은 스승이라 그렇지 아무리 노력하여도 길을
알고 행하는 것과 알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이야. 어찌되었든 잊혀질
뻔한 이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만큼 기특한 것은 없지.
덕분에 궁금한 것도 풀리었고 거기에다 이런 기쁨까지
성미가 급한 짐의 마음에 혹여 불편한 것이 있었다면
괘념치 말아두게. “
“ 아니옵니다. 그저 한참을 부족한 소신을 이리도 귀히
여겨주심에 그저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
그렇게 중종은 옹주의 마음에 든 이에 대해 먼저
알아본 것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동재에 인재가
많음을 직접적으로는 하지 못했지만 최대한 들이댈 수
있는 만큼 들이대었으니 여한이 없다 생각하며 유정은
동재로 돌아왔다.
“ 어사주를 내리겠다는 어명이 계시네. 석환사제와
제천사제는 나와 함께 오르도록 하지. “
동재로 돌아와 궁인들이 화려한 의복과 미색으로 대사례의
흥을 마무리 짓는 동안 상호군과 각기 점수를 매겼던
심사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점수 합산과 장원을 한
이를 쓴 것이 내관을 통해 임금에게 올라가니 곧장
우리들을 부른다는 임금의 어명이 떨어졌다. 이에 성필과
이혁은 마치 제일마냥 싱글벙글 거리며 축하해주었다.
“ 장의, 그리고 우리 두 사제들 정말 잘해주었네.
아주그냥 십년 묵은 체증이 단박에 내려갔음이야.
아니 그런가 이혁상유? “
“ 그렇지 아무렴. 내 속 시원히 말을 하지 못하나
여태껏 업신여김에 없던 병까지 얻는 듯하여 내내
걱정하였지 뭔가. 이젠 다음부터 콧대 좀 올려도
되겠는걸. “
“ 아무렴~ 어서~ 어서 오르도록 하게. 전하께서
그대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겠어~ “
성필상유의 들뜬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니 긴장한
제천이만 빼고 상석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 내 오늘같이 흥미로운 경합을 접하게 될 것이라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그대들 덕에 실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구나. “
“ 황송하옵니다 전하. ”
“ 어찌 경들도 그리 생각지 않은가? ”
임금이 여러 대신들에게 의중을 물으니 서재 쪽
아비들은 언짢은 기색을 애써 감추며 축하의 말을
건넸고 동재 쪽 아비들은 기분이 업이 되어서는 술렁
거렸다. 이에 대사성이 대표하여 말을 하였다.
“ 성군이 있음에 모자르던 동재에 기운이 들어가니
실로 오랜만에 성균관 내 균형이 잡힌 듯 하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하의 어심이 전해진 결과가
아닐런지요. “
“ 이런~ 기쁘기 그지없는 것은 짐 보다 대사성이
더 넘치는가 보오. 생전 하지도 않던 아첨을 다
하고 말이오. “
“ 그러하였사옵니까? 허허 ”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유독 표정이 일관 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천의 아비인 좌찬성이다.
‘ 제천이에 대해 한번이라도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지밀상궁이라는 신분이 암만 내명부에 끝발을 날린다
하나 그래봤자 여인인 것을 아주 겁을 상실하였나
보군. 이 년이 패물만 집어삼키고 내빼는 거에 대해
어찌 내가 반응하는지 보거라. ‘
임금의 귀에 조금이나마 들어가길 바래 지밀상궁에게
패물까지 안겨줬겄만 일절 언급도 없거니와 오히려
장의에 대한 칭찬만이 난무하자 심기가 불편해진
좌찬성은 어사주를 내리고 임금의 입에서 칭찬이 샘솟는
동안 똥 씹은 표정을 애써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허나 이를 놓치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 쯧쯧쯧 지밀상궁이 내게 귀뜸하지 않았으면 괜한
소리가 오갈 뻔 했군. 어찌 저리 욕심이 넘치는지 원 ‘
상선은 여러 대신들을 눈여겨보다 유독 심기가 불편한
좌찬성을 발견하곤 혀를 찼다.
“ 조만간 일차(日次)에 그대들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
‘ 일차???? ’
순간 찬물을 끼얹는 임금의 말.
쪽지시험에 논술에 체력장까지 이제 좀 풀어 줄
때도 됐건만 곧장 암기시험 테스트라니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면 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유생들을 갈구는 한이 있더라도 돋보이는 이들이
선출되도록 하여 궁에 넣는 작전을 짜는 수밖에
허나 내 마음과 달리 일차를 예고하는 중종의 눈은
유정에게 꽂혀서 멈출 줄 몰랐으니 부마테스트라도
하실 요량인 듯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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