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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도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05
최근연재일 :
2018.01.29 15:1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974
추천수 :
62
글자수 :
90,574

작성
18.01.2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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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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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20쪽

영웅의 도시 7화

DUMMY

그가 이바노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자 트럭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경비병이 40명 정도밖에 남지 않겠군.”

이대각이 먼저 입을 열고는 유장석을 바라보았다.

“40명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엔 별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김상철이 입을 열었다.

“이바노프의 이야깁니다만, 이쪽 지역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군을 탈영한 무리들이 밀렵꾼으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뭔가?”

유장석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중위를 보내고 우리한테서 사례비를 받은 대위가 약속을 어기고 떠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위험한 지역인데도 병력을 줄이는 것을 보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상무님.”

한동안 김상철을 바라보던 유장석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허어, 이것 참.”

이대각이 어깨에 걸쳤던 모피 코트를 벗어던졌다.

“그렇다면 야단이네. 상무님, 기지 사령관한테 무전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예 중위부터 못 보내게 말입니다.”

“사령관이 우리말을 들을까? 병자를 돌려보낸다고 하는데 말이야.”

“개새끼들, 그렇다면 돈을 일 끝내고 준다고 하지요. 중위 몫까지.”

그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줄 스스로도 아는지라 말끝을 흐렸다.

유장석이 옆에 앉은 박동원을 바라보았다.

“하바롭스크의 김 부장에게 연락을 해. 사령관을 찾아가서 대위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개척단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달라고 말이야.”

“예, 상무님.”

“그리고 현재 인원이 60명밖에 남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책을 내리도록 만들어야 돼. 사령관은 5만 달러 나 먹었으니 그쯤은 해 줄 것이다.”

“예.”

박동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장석이 손을 들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인데 무슨 일이 있을 때 헬기를 보내주기로 되어 있어.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라고.”

무전기는 뒤쪽 차에 있었으므로 박동원이 밖으로 나가자 유장석이 김상철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눈길이었다.

“수고했다, 김상철.”

그는 부하직원이 마음에 들면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뱉는다. 더 마음에 들면 욕설을 한다.

“너 이 새끼, 내가 잘 본 거야. 나는 사람볼 줄을 안단 말이야.”



버걱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몸을 돌린 김상철은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가 접근해 오는 것을 보자 기분이 섬뜩해졌다. 모피로 온몸을 감싸 둥그렇게 되었지만 사람이다.

“누구요?”

“저예요.”

80여 명 가까운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서은영이었다. 그녀는 네 번째 박스 차에 설치된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해가 뜬 한낮에는 코트를 벗어도 될 정도로 날씨가 푸근했고 그때에는 바람도 없다. 그래서 용변을 볼 때에는 눈구덩이를 발로 파고 거기에다 일을 보았지만 밤에는 안 된다. 피부를 내놓는 즉시 동상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바롭스크에서 만든 발명품 중의 하나가 화장실용 트럭이었다. 그곳에서는 더운물 샤워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서 스리코프와 마르첸코는 단골손님이 되었는데 그들은 양식과 기름을 실은 트럭보다 화장실용 트럭을 더 아꼈다. 트럭의 대열을 정리할 때도 화장실 트럭은 맨 가운데였던 것이다.

“이곳을 기지로 정했다죠?”

가깝게 다가선 그녀가 물었으므로 김상철은 어둠 속임을 감안하여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침실은 두 번째 트럭으로 이윤제와 자원팀 세 명, 그리고 직원 한 명 등 여섯 명이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트럭으로 다가간 서은영이 몸을 돌렸다.

“아직 열시밖에 안 됐는데 올라오세요. 모두 자지 않고 있어요.”

더욱이 2주일이 넘게 고생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날 밤이다. 내일 아침 다시 출발할 일도 없는데다 유장석은 아침 11시까지 휴식시간을 주었으므로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그녀를 따라 김상철이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반겼다.

“어서 오시오, 김 형.”

소주잔을 든 이윤제가 소리쳤는데 얼굴이 벌게져 있는 걸 보면 시작한 지 꽤 되는 모양이었다. 한성대학의 김진모 교수와 두 명의 조교로 구성된 자원팀도 술기운이 오른 얼굴이었고 차 안에는 안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자, 한잔.”

50대 중반의 김진모 교수가 술잔을 건네주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섬에 들어가 일 년간 탐사해본 경험이 있다고 했지만 열대의 밀림에서 겪은 경험이 혹한 속의 시베리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듣자하니 신입사원이라던데 입사 하자마자 고생이 많으시오.”

김진모가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김 형은 이 일을 지원한 거요? 아니면······.”

“지원했다고 보셔도 됩니다.”

소주를 한 모금 삼킨 김상철이 그를 바라보았다.

“갈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제외시켰으니까요.”

“생각보다 험한 곳이오. 그리고 상황도 좋지 않고.”

김상철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스리코프 대위 이야기를 해 줄 필요는 없다. 둘러 앉아 있던 조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원목만 베어가도 굉장한 이윤이 남을 텐데요, 아직 조사도 안 했지만 이 근처의 원목림만 해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수송로도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닦기만 하면 될 테니까 큰 공사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말입니다.”

김진모가 머리를 저었다.

“그것 가지고는 아래쪽의 북한 벌목사업소 규모밖에 안 돼. 강 회장이 그러려고 우릴 고용했겠나?”

트럭에 싣고 온 장비의 대부분이 김진모의 자원탐사용이다. 그러자 이 윤제가 입을 열었다.

“하긴 원목만 베어가면서 개발을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이곳의 여름은 7월과 8월의 두 달 동안으로 나머지 열 달은 겨울이니 농사는커녕 축산도 할 수가 없어.”

잔에 따른 소주를 한 모금 삼키고 난 김진모가 머리를 들었다.

“아직까지 이 시베리아 땅에 시추공을 박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뛰어. 마치 처녀의 몸에 처음 손을 대는 남자의 심정이랄까.”

그의 시선이 힐끗 서은영을 스치고 지나갔으므로 사람들은 웃음을 지었다.

“강 회장은 최근 영국에서 만든 최신형 시추장비를 군소리 않고 사보내 주었어. 10여 명의 인원으로 하루 만에 설치가 가능한데다가 암반층을 뚫고 지하 1킬로미터까지 내려가는데 일주일이면 돼.”

김진모가 붉어진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알겠소? 일주일이면 유전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단 말이오. 나는 한 달 반 동안 다섯 군데를 조사할 수가 있어.”

그의 열기에 끌린 듯 박스 안은 조용해졌다. 김진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만 쏟아지면 이 혹한의 시베리아는 더워질 거요. 공장과 굴뚝이 생기고, 거리가 생겨나고 도시가 탄생 될 거요.”

김상철이 머리를 돌리자 서은영의 시선과 마주쳤다. 차분한 표정의 그녀는 잠시 그의 시선을 받더니 곧 머리를 숙이고는 바닥에 놓인 안주 하나를 집었다.



웅대한 꿈



맑고 흰 태양이 비치는 날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으므로 시야가 더 멀리 트여진다. 앞쪽으로는 검은 침엽수 숲이 펼쳐진 삼림지대가 완만한 구릉을 이루며 한없이 이어져 있다. 슈바를 벗어젖힌 스웨터 차림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유장석에게 스리코프가 다가왔다. 그는 벨트를 꽉 조여 매고 권총집에 루가를 꽃은 정복차림이었다.

“미스터 유, 알려드릴 게 있소.”

유장석이 머리를 들자 주위에 있던 이대각과 서너 명의 한국인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벨트에 두 손을 짚고 선 스리코프가 유장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부하들 중에서 환자와 허약자를 추려 귀대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마르첸코 중위의 인솔로 내일 출발할 거요.”

“대위, 이것은 약속과 틀리는데.”

유장석이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본래 우리는 1개 부대 80여 명으로 당신네 사령관과 계약을 맺었던 거요. 그런데 도중에서 20여 명이 돌아가 지금 6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또 보낸단 말이요?”

“사령관의 허락을 받았소.”

“허락을 받다니?”

유장석과 이대각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바롭스크의 김 부장이 아직 사령관과 연락이 안 되었거나 사령관이 그의 말을 무시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마르첸코 중위는 21명의 환자를 인솔하고 내일 출발합니다.”

말을 마친 대위가 몸을 돌리자 유장석이 들고 있던 서류를 눈 위로 내팽개쳤다.

“이런 개 같은 자식들.”

“이거, 김상철의 이야기가 맞아 들어가는데.”

서류를 집어든 이대각이 묻은 눈을 털면서 말했다.

“이 장비 장치하는 데 최소한 열 명은 있어야 돼요, 이 부장.”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김진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섰다.

“러시아 병사들이 거들어줘야 한단 말이오.”

“그 정도 인원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40명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이대각의 표정도 어두워져 있었다. 뒤쪽 트럭 위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던 이윤제도 맑은 대기 속이라 그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야단났군.”

그가 옆에 서 있는 서은영을 바라보았다.

“도착 이튿날부터 말썽이 일어났어.”

“환자를 보낸다니 오히려 짐을 던 셈 아녜요?

“우리 탐사반에도 대여섯 명의 일꾼이 필요한데 또 경비는 어떻게 하고? 40명으로는 어림도 없어.”

“어떻게 되겠지요, 뭐.”

“하긴 그렇지, 우리도 계약기간만 채우고 떠나면 되니까. 우리 국토를 탐사하는 것도 아닌데 뭘.”

이윤제가 한 걸음 서은영에게 다가가 낮게 말했다.

“어차피 자원팀하고 따로 움직여야 할 테니 박스 차는 우리 둘 몫으로 한 대 배정받도록 해야겠어. 이미 모두 눈치챈 모양인데 체면 차릴 것 없어. 서울에서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고.”

“싫어요.”

서은영이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이 기회에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교수님과 저 사이를.”

“이 기회에 정리하겠단 말이지.”

이윤제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넌 영리한 애야. 그래서 항상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 시선을 끌었지. 그래서 조교가 됐고.”

“······.”

“돌아가면 전임 발령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을 포기할 결심을 했군. 그렇지?”

“중요한 건 현실이지요. 지금은 교수님도 절 어쩔 수가 없어요. 마음대로 자르고 보낼 수는 없어요.”

이제는 서은영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 탐사기는 학교에서 쓰던 30년이나 된 구닥다리 일제 모델이 아니라 컴퓨터로 작동되는 최신 미제 티아이 제품인 것 아시죠? 교수님은 아마 손도 대지 못하실 걸요? 왜냐하면 내가 오는 도중에 매뉴얼과 작동법 모두를 외운 뒤 내버렸거든요.”

“이······ 이 나쁜 년.”

이윤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널 당장······ 내가!”

“곡괭이를 들고 바위 조각을 깨서 화석을 찾으시려고요? 학교에서는 통했지만 여기에서는 안 될 거예요.”

“내 눈앞에서 없어져!”

“고려그룹에서 받은 금액의 반을 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유 상무한테 이야기해서 당신의 길기만 한 이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첨단기기를 사용해서 분석하는 훨씬 신뢰할만한 자료를 택할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할 테니까.”



저녁 무렵, 태양이 서쪽으로 사라지기 직전 반월형으로 늘어선 트럭들과 흰 눈 더미, 그리고 저녁 준비로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손을 내밀어 보았더니 손등도 진홍빛이었고 대기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동안 모든 것에 스며들었던 진홍빛이 사라지면서 곧 어둠이 닥쳐왔다.

“김, 무슨 일이요?”

트럭의 엔진 옆쪽에 서 있는 김상철에게 이바노프가 다가왔다. 그는 이제 슈바를 껴입고 방한모를 눌러 쓴 차림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김상철이 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이바노프, 넌 남게 되겠지?”

그러자 이바노프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남을 거예요.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마르첸코 중위는 불평하지 않더냐?”

“스리코프와 말다툼을 하는 걸 들었지만 할 수 없지. 지휘자는 스리코프니까.”

“너에게 부탁이 있어.”

김상철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은 맨 선두에 세워둔 차여서 사람들과는 꽤 떨어져 있다.

“달러를 줄 테니까 총을 구해줘. 돌아가는 병사한테서.”

“······.”

“소총과 권총을 실탄과 함께, 가능하겠지?”

“······.”

“몇 정이나 필요합니까?”

이제 이바노프의 목소리도 낮아져 있었다.

“한 정씩이면 돼. 내가 필요해서 그러니까.”

“얼마로 사실 작정입니까?”

“네가 가격을 말해라.”

“소총 100달러, 권총 70달러를 주시오. 실탄은 충분히 드릴 테니까.”

머리를 끄덕인 김상철이 주머니에서 10달러짜리 20장을 꺼냈다.

“2백 달러를 주겠다, 이바노프.”

“오늘밤에 당신 차의 의자 밑에 넣어두지요.”

돈을 주머니에 넣은 이바노프가 그를 바라보았다.

“또 필요한 것 있습니까? 수류탄이나 철모, 탄띠도 얼마든지.”

“다른 건 필요 없어. 그런데 이바노프.”

“예, 김.”

“소문내지 말도록 해.”

그러자 이바노프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내 걸 잃어버렸다고 하고는 돌아가는 친구한테서 얻을 거요. 그놈은 돌아가는 도중에 눈 속에서 잃었다고 할 것이고.”

총을 준 병사에게 약간의 돈이 지불되겠지만 김상철에게서 받은 달러의 대부분은 아마 그의 수중에 남게 될 것이었다. 이바노프가 기운차게 몸을 돌리자 김상철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쪽도 방어력이 있어야 한다. 그는 어제부터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강 회장이 개척단의 상황을 보고받은 것은 그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였으니 사흘 후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이남호로부터 보고를 받은 그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1월말의 오후였다. 포근한 햇살을 받은 김포가도는 전날 내린 눈이 녹아 질퍽하게 젖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경찰력이 필요하겠다. 자위수단으로 말이야.”

창에서 머리를 돌린 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 망할 놈의 러시아 군대는 믿을 수가 없어 우리 땅은 우리가 지켜야 돼.”

“임차계약을 맺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계약조건에도 명기되어 있으니까요.”

“기름이 나오지 않아도 추진시킬 테니까, 3월초에는 러시아 정부와 계약을 마칠 것이다.”

강 회장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논 색깔을 봐. 적어도 천년 이상 저 논에서 곡식을 생산했을 거야. 거름도 주고 비료도 주었지만 이제 누렇게 되어서 논 같지도 않아. 마치 폐경기가 지난 할멈처럼.”

“회장님, 그곳 시베리아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글쎄, 누가 뭐래?”

강 회장이 눈을 부릅떴다.

“누가 농사를 짓는다고 했나? 난 그 새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할 거다.”

“······.”

“공해를 만들지 않는 기업을 옮겨 가고, 한국에서 이민을 허가하지 않으면 러시아 땅에 있는 조선족들을 받아들이겠다. 아마 모두 모여들 거야. 50만 명쯤 될까?”

“회장님, 아직 정부에서······.”

“정부?

다시 강 회장이 눈을 부릅떴다.

“대한민국 국민인 내가 한반도보다 두 배나 큰 땅을 러시아로부터 얻어 개발하고 관리한다면 박수를 쳐줘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떤 놈이······.”

“임차보증금 15억 달러는 한국에서 가져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외국 은행에서 빌리기로 했다.”

“한국의 재산이나 고려그룹의 담보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것도 예상했어. 그래서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 몇 군데 은행총재를 만났다.”

“······.”

“임차계약서만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주겠다는 거 다. 3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이자는 연리 10%야.”

강 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 실장, 내 나이가 몇이냐?”

“예, 회장님 저······.”

“딱 하나 내 나이가 문제가 됐지, 73세니 3년 후면 76이라, 한국사람의 남자 평균수명이 72세라는 거야. 그래서 중공업의 강 회장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기로 하고 끝냈다”

“아아, 예.”

“이 정권은 내가 시베리아 임차지의 주인이 되는 것에 배가 아픈 것이다. 국력의 신장이나 미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놈들이니까.”

다시 얼굴을 굳힌 강 회장이 이남호를 바라보았다.

“북한이 우리 경제인단 방북을 거절했다면서?”

“예, 겉으로는 경제인단 규모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시베리아지역 임차관계 때문입니다.”

강 회장이 턱을 들고 웃음을 띠었다.

“경제인단 규모가 많아서 거절했다고? 얼굴 가죽이 질긴 자들이군. 한국 정부가 반강제로 해서 겨우 모은 경제인단인데.”

“경제인단 대부분은 그렇게 되자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합니다.”

“정권의 대북정책에 기업인들이 더 이상 놀아나면 안 돼.”

강 회장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북한은 아직 한국 기업이 들어가 생산 활동을 벌일 준비가 안 돼 있어. 세계에서 기업 활동하기가 가장 위험하고 조건이 좋지 않은 곳이다. 동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가 희생하면서까지 들어갈 이유는 없다.”

강 회장은 4, 5년 전, 북한에 들어가 금강산을 개발하기로 김일성과 약속한 바 있었다. 그것은 물론 정부의 지원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남호가 헛기침을 했다.

“북한은 한국이 위아래에서 압박을 할 작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회장님.”

“바로 그것이다. 그것인데도 현 정권은 제놈들의 공적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방해를 하는 것이다.”

강 회장이 손바닥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시베리아 임차지에 공장과 도시가 들어서고 수백만의 주민이 몰려들어 자치국이 형성되면 자연히 군대가 생긴다. 물론 러시아와 상호 협력관계가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북한은 자연히 위아래의 한국을 상대해야 돼. 그때에는 더 이상 남침 위협이 없게 된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강 회장이 이남호를 바라보았다.

“그, 대영의 비서실 놈. 모스크바에서 추방당했겠지?”

“아닙니다, 회장님. 그자들은 곧 풀려났습니다.”

“풀려나다니?”

“대영에서도 인맥을 동원해서.”

“흥, 그래서?”

“그자들은 지금 하바롭스크에 있습니다, 회장님.”

“끝까지 쫓아와서 훼방을 놓겠다는 말이지, 그놈들까지.”

“방해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정보나 캐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강 회장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면서 입을 다물었으므로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차는 이제 성산대교를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 시간에 청와대 비서실장 안민수는 청와대 본관의 비서실장실에서 국정원장 권준규와 마주앉아 있었다.

비서실장 안민수는 매사를 드러나지 않게 처신하는 인물로 겸손하다는 평도 많았지만 야당으로부터는 복지부동의 원조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 안민수의 얼굴이 오늘은 유달리 찌푸려져 있었다.

“원장님, 도대체 강 회장이 어쩌려고 자려는지 모르겠어요. 각하께서 여간 걱정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부에서 그렇게 충고를 했는데도 그 양반, 기어코 시베리아 땅을 임차할 모양입니다.”

“원래 그런 사람 아닙니까? 정부로부터 사사건건 방해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더해가는 모양입니다”

권준규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강 회장이 고집불통의 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정부의 경제 정책이 정권의 홍보나 유지수단으로만 운영되어 왔다고 공식석상에서 떠들기도 했던 것이다. 안민수가 입맛을 다셨다.

“이제 정부쪽이나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러시아 정부에서 촉각을 세우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러 관계가 악화될 소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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