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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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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44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10.01 15: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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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새로운 만남

DUMMY

놀이터에 어둠이 깔리자 실증계의 아이들은 모두 돌아갔다.

가끔 놀이터에 들렀다가는 어른도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그네나 벤치에 앉았다 갔다.


버스정류장의 이귀인 수니홀은 돌아가지 않고 놀이터를 맴돌았다.

놀이터의 이귀들과 어울려 미끄럼틀에서 그네로, 철봉에서 정글짐으로 헤매고 다녔다.


상상계에서 넘어온 다른 사념체는 내 곁에 머물며 그런 이귀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낯익은 사념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심지아야. 이 동네 사니까 또 만나겠다. 잘 부탁해.”

“알아. 여태까지 저 여자가 시끄럽게 떠들었잖아.”


“넌 누구야?”

“난 이름 없어.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어. 내가 있던 영역도 없어졌고.”

“그렇구나. 우리 세계에서는 사라지는 영역도 많지···.”


희미하지만 어렴풋이 형상을 가진 사념체가 자신을 가리켰다.

“난 가디록이야. 소설이 끝났는데도 날 찾는 사람이 없어서 못 돌아갔어. 길도 끊어졌고.”

“저쪽 세계에서 너를 찾는 사람이 없어? 아무도?”

함께 지내던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텐데, 아무도 부르지 않다니?


“킬러였으니까. 경호원으로 위장하고 있었지. 소설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에게 칼을 맞았어. 모든 소설이 다 그렇잖아? 주인공은 멋지게 등장해야 하니까.”

“그래도 친구가 있을 거 아냐?”


“하아, 킬러의 세계를 모르는구나. 철저히 비밀에 싸인 존재야.”

“그래서 널 찾지 않는구나.”


“흥. 세상을 구할 사람이 나뿐이라더니 소설이 이어지니 까맣게 잊더라고.”

“작가를 어떻게 찾았어?”

“내가 찾았겠어? 작가가 그냥 이어서 썼지. 그것도 책을 보고 알았다니까. 허! 어이가 없어서.”


가디록이 발끝으로 흙을 차냈다.

“다들 자기 역할로 돌아갔겠지. 심지아, 너도 위험해. 누군가 널 애타게 찾지 않으면 길이 막혀. 영원히 떠돌이가 될 거야.”


“난 좋은 친구 있어.”

“그 친구, 이름 있어? 이름도 있고, 뭔가 역할을 맡은 사람이어야 해.”


날 불러줄 사람이라.

차오름이 생각났다. 그가 나를 애타게 그리워해 준다면 좋겠는데. 아니지, 그는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야지.


적어도 이단주 원장이나 도달이 아저씨는 날 찾을 거야.

어쨌든, 난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아, 돌아가고 싶다. 상상계 아무 데나 좋으니 가서 내 몫을 하고 싶어.”

가디록이 한숨을 쉬었다.


“은서님 알아? 그분도 소설 쓴다면서? 은서님에게 부탁하면 어때?”

“아이고, 거기는 싫어. 너 그분이 어떤 소설 쓰는지 모르는구나.”

가디록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괴기소설이야. 귀신 나오는 오컬트와 미스터리라고. 그건 상상계에 태어나지도 않아. 실증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실제라고? 사람들도 다 알겠네?”

“그걸 모르니까 사람이지. 어쨌든 난 판타지 세계로 가고 싶어.”


저렇게까지 상상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다니.

‘전설의 근원’ 작가를 찾으면 가디록을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한 장면이라도. 그라면 아주 잠깐 나오는 역할도 열심히 할 것이다.


말없이 듣고 있던 둥근 사념체가 허공에서 통통 튀었다.

“나도 이름 갖고 싶다.”


그의 말을 들으니 이름을 갖고 싶어 하던 아이가 생각났다. 기숙사 방을 함께 쓰면서도 그냥 아이인 아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이름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앞에 있는 이 사념체에게는 이름을 줄 수 있잖아.


“내가 이름을 지어줄까?”

“좋아! 너 유능한 주술사라며? 수니홀이랑 다른 이귀도 네가 가진 마법력 때문에 들떠있어. 너라면 괜찮아.”


불투명한 덩어리만 남은 사념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음을 비우니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야문 어때? 야물다는 뜻이지. 여기에서의 네 삶을 알차게 보내면 좋겠다.”


“야문? 아주 좋아!”

야문이 기뻐하며 몸을 부풀렸다.


이름을 받자 그도 희미하게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처럼 보였다.


“몸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이것 봐!”

야문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하얀 두루마기와 비슷한 옷을 입은 선비였다.


놀이터를 떠돌던 수니홀이 빠르게 다가왔다.

“엇, 너도 모습이 있었네?”

수니홀이 야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름을 받았으니, 심지아의 기운을 더 받으면 얼굴도 돌아올 거고, 원래 모습을 기억해낼 거야. 나처럼.”

수니홀이 팔을 쭉 뻗어 춤사위를 펼쳤다.

살아있을 때 춤꾼이었는지 그의 춤사위는 나비 같기도 하고, 너울 같기도 했다.


“넌 역시 대단한 주술사구나!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게.”

야문이 소리쳤다.


“당연하지. 은인인데. 나도 은서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한다고.”

수니홀이 야문과 가디록의 손을 잡고 빙빙 놀이터를 맴돌았다.


고충만의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대단한 주술사였어? 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럼, 진짜 돌아갈 수 있는 거잖아?”


그는 조금 전까지 말다툼하던 금은비의 손을 잡고 뛰어올랐다.

“소설이 이어질 거라고. 난 돌아갈 거야. 고충만! 다시 사는 거야. 아하하!”

“흥! 누가 아저씨를 반긴다고? 나라면 몰라도. 나야말로 제일 먼저 돌아갈 거야.”


금은비는 고충만의 손을 뿌리치고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우, 어지러워. 이러다 작가를 찾기도 전에 쓰러지겠네.”


이귀들과 사념체들이 한데 어울려 놀이터를 뛰어다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웅성거렸다.


“뭐? 내가 이중인···.”

이중인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격이라고?”


휴우, 작가 이름을 말한 것이 아니구나.

시끌벅적 몰려오는 네 사람을 지켜보았다.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인데, 나이는 삼사십 대로 보였다.


사람 없는 놀이터라도, 가로등 불빛은 환하게 비쳐들었다.

네 사람은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담장 옆 벤치에 앉았다.


“사중 선배, 맥주 한 잔에 취했어요? 사람의 양면성에 대해 말하는데 뜬금없기는.”

여자가 땅콩 봉지를 뜯더니 땅콩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긴 단발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다소곳이 덮어주었다. 저렇게 작은 얼굴인데 눈코입이 조화롭다니 신기했다.


“그래도 난 갈 거다!”

“아효, 벌써 차기작 고르는 거 알면서 이러신다.”

다른 남자가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근육질의 남자는 운동선수처럼 얼굴빛이 짙고 건장해 보였다.

여자가 그를 보며 하루도 선배라고 생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이름이 들리네?’

대화술은 식물과 동물에 사용하는 주술이라 사람의 마음은 못 읽지만, 서로를 뭐라고 부르는지 들렸다.

사람들은 말하기 전에 마음으로 상대를 정하니까. 우리 영역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황혼의 이중창은···.”

벤치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가로등 불빛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중창? 이중인과 관련 있는 사람인가?’

나는 호기심이 일어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극본 꽤 좋던데요. 대함이가 심혈을 기울였다더니 많이 좋아졌어. 그렇죠, 형?”

“그러면 뭐 하냐? 잘 풀려야지. 그 애도 참···. 열심히 하는데 뭐가 참 안 돼.”

근육질의 하루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는 안 그런가요? 언젠가는 열리겠죠. 대함이 시나리오 당선되면, 그 덕에 우리도 덩달아 뜨고. 하하하.”

“우리가 뜰지, 선명해가 뜰지는 모르지.”

“하하, 그런가요?”

두 남자의 대화에 여자가 눈을 흘겼다.


“아용 선배, 사람 없는 데서 무슨 얘기예요? 내가 뭐 어쨌다고?”

“그냥 그렇다고. 너무 기가 죽었잖아? 취직할 때마다 꼬이고, 집안도 그렇고.”

조아용은 캔에 남은 맥주를 탈탈 털어 마셨다.


“난, 그 새 동생이 문제라고 봐요. 어머니가 재혼한 거야 그렇다쳐도.”

선명해의 말에 하루도가 손가락을 들었다.

“아! 그 오디션 중독자?”


“성질은 또 어떻고요. 앞에서는 알랑거리면서 사람 없을 때 어찌나 욕을 해대는지. 남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나 봐요.”

“혹시 몰라. 미래의 시누이가 될지.”

“아우, 쫌! 루도 선배!”


선명해는 새침해져서 캔 뚜껑을 땄다.

“남 얘기는 하지 말죠. 사람 없는데 뒷담화하는 거 안 좋아요.”


“어허, 언제까지 감추려고?”

“어쩔 건데요? 선배가 다리 놔줄 거예요?”

“어쭈!”

하루도가 비닐봉지에서 캔맥주를 하나 더 꺼냈다.


놀이터에 들어올 때 소리 지르던 남자가 꾸벅꾸벅 졸다가 벌떡 일어났다. 뚱뚱하고 둥근 코를 가진 그는 넷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


“지금 몇 시야?”

“아직 아홉 시 안 되었어요.”

“그래? 난 먼저 간다. 우리 딸 올 시간이거든. 공연 없을 때라도 얼굴 봐야지.”


“중학생이라며요? 아빠가 없는 걸 더 좋아할 텐데?”

“무슨 소리! 우리 딸은 안 그래.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자자, 내일 보자고.”


“대함이도 불렀는데요?”

선명해가 그의 소매를 잡았지만 공사중은 휘적휘적 걸어 놀이터 담장 뒤로 돌아갔다.


“사중 선배도 참. 사춘기 여자애가 어떤지 저리도 모르다니.”

조아용이 선 채로 중얼거렸다.


“용아, 대함이한테 연락한 거 맞아?”

“그럼요. 올 때 됐어요.”


그때 놀이터로 누군가 들어섰다.

“봐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양반되기는 글렀어요.”

조아용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벤치로 다가오는 남자는 아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오빠와 비슷해 나도 모르게 쫓아갔던 그 사람.


‘원···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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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훼방꾼들 22.10.17 3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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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소리 없는 울음 22.10.15 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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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의외의 변수 22.10.14 29 1 11쪽
24 유령 22.10.14 32 1 11쪽
23 그의 것은 그에게로 22.10.13 32 1 12쪽
22 황혼의 이중창 22.10.13 39 1 10쪽
21 빙의 22.10.12 28 1 9쪽
20 지새늬와 구하라 22.10.11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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