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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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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31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09.30 15:0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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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도우미들

DUMMY

병원에서 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버스정류장 지붕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동차는 휙휙 달려가고, 사람들은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서둘렀다.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자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갔다. 시월 중순을 지났으니 바람이 쌀쌀하기는 해도 이건···.


‘이건 그냥 바람이 아닌데?’

사사삭 나뭇잎 비비는 소리가 났다. 이귀들이 바람을 타고 다니는 소리였다.


“심지아! 여기 있었네. 얼마나 찾았다고!”

외각 네거리 버스정류장에 머무는 수니홀이었다.


“무슨 일 있어?”

“놀이터에 잡아놨어. 상상계에서 새로 넘어온 사념체.”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야!’

나는 곧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


놀이터 안쪽 구석에는 처음 보는 이귀들도 모여 있었다. 오래전에 상상계에서 넘어왔다는 사념체도 섞여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우리 세계의 도우미들은 보이지 않았다.

“새로 온 사람들은 어디 있어?”

“저쪽 구석.”


구석에는 두 사람이 어슬렁거렸다.

한 명은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해룡족의 덩치 큰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이십 대 후반의 주작족 여자였다.

그들은 이귀들을 살피고, 이귀는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지만, 다행히 그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여자가 소리 지르며 뛰어왔다.

“심지아님! 심지아님이죠? 얼마나 찾았다고요.”


남자가 뒤따라 느릿느릿 다가왔다.

“허, 네가 찾아다녔다고? 구경하느라 정신 빼놓고 있었으면서.”

“무슨!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요!”


여자는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난 금은비예요. 저 아저씨는 고충만이래요.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그래도 주술사를 만났으니 돌아갈 수 있겠어요.”


금은비는 나보다 일고여덟 살은 많아 보이는 데 내가 주술사라고 예의를 갖췄다. 여기까지 와서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게 마음 편하다면야.


“너무 하지 않아요? 난 기루다 대표님한테 쫓겨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요. 이제와서 이런 위험한 일에 내몰다니.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금은비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휴, 어이가 없어서. 게다가 어떻게 저런 곰 같은 아저씨랑 같이 보내냐고요.”

“내가 어때서? 바람의 사원에서는 날리던 몸이야.”

“어쨌든, 초반에 차원침입군에게 죽었잖아요? 그럼 아무 능력도 없다는 얘기죠.”

“그거야 소설 속 설정이고. 진짜 나는 감각 있는 조경사라고. 그러는 넌···.”


“내가 뭐요? 뭐? 내가 쫓겨난 건 기루다님이 얼마나 괴팍한지를 보여주는 설정이라고요.”

“허, 지금 보니 딱 넌데?”

두 사람의 입씨름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진정하시고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각자 어디서 나왔는지 단서를 모아보죠.”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진정시키려 애썼다.


금은비는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쉬지 않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충만도 옆에서 씩씩거렸다.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는데, 다른 사념체가 다가왔다. 오래전에 넘어왔다는 존재였다.

하나는 아주 오래 떠돌았는지 몸을 잃었고, 하나는 희미하게 형상과 색이 남아있었다.


몸이 없는 사념체가 둥글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내버려 둬. 너를 만나 긴장이 풀어져서 그래. 넌 뒷산에 사는 것과는 기운이 다르구나.”

“뒷산에도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어?”

“무시무시한 것이 있어. 얼마 전 갑자기 나타났는데, 넌 그런 종류가 아니라 다행이다.”


멀리 보이는 만풍산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도시를 굽어볼 정도는 되었다.


금은비의 푸념을 듣고 있으니 나도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의아했다.

단 한 장면, 단 한마디 대사에 이름이 등장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구하라가 등장하고 두 번째 장이었나, 수련생끼리 달둥지라고 부르는 달빛사원 수련원의 수업 시간이었다.

혼령회복술 첫 시간, 구하라에게 질문하는 역할이었다.


---


수련방은 새로 배울 혼령회복술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수련생들은 강사를 기다리며 소곤거렸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심지아가 중얼거렸다.

“혼이 떠나면 끝나는 거 아냐? 그걸 왜 회복시켜?”


구하라 역시 같은 고민을 했기에, 그녀를 돕고 싶었다.

“여기 남아있는 동안은 제대로 살게 하려는 거야. 처음에는 나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들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구하라는 자신이 맡을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다짐하듯 말끝에 힘을 주었다.


---


소설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은 그때뿐이다.

이후로는 ‘수련생들’에 섞여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대사도, 묘사도 없었다.


왜 구태여 이름을 넣었는지···.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식당 아주머니들도 의아해했다. 그냥 ‘한 수련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수련생에 섞여 열심히 따라다녔다. 내 역할은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일이 어렵지도 않았다. 구하라를 돕는 일이라도, 결국은 차오름을 위하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얼굴도 기억 못 하지만, 자주 들려주신 그 말은 또렷이 기억한다.

‘너는 너야. 네 삶에서는 네가 주인공이란다.’


이름이 있든 없든, 주인공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주술과 마법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고, 식당 일을 돕는 것도 즐거웠다.


주변인이라 해도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어쨌거나, 이건 내게 주어진 삶이니까.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는지 금은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벤치에 앉았다.

“심지아님은 비조족이니 춤과 노래를 잘하겠네요?”

“하하, 그럴 리가요. 비조족 대부분이 잘하지만, 예외가 있거든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않았어도 사원으로 만나러 갔을 거예요.”

“쫓겨난 거지.”

벤치 옆에 서서 고충만이 입맛을 다셨다.

금은비가 눈을 흘겼지만,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다.


“주술사 중에서 최고 실력자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최고는 역시 구하라지.”

고충만이 또 끼어들자 금은비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양반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건 소설이고요.”

금은비는 씩씩거리며 고충만에게 등을 돌리고 앉았다.


“어쨌든 심지아님이랑 같이 간다고 해서 안심했어요. 뛰어난 주술사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거 아녜요? 그렇죠?”

“그렇겠지.”

옆에서 고충만이 꾸벅거렸다.


“차오름한테 가끔 심지아 얘기 들었어. 누나라고 하기에 든든한 뒷배겠거니 했는데···. 보니까 동생 같네.”

“차오름을 아세요?”

차오름의 이름을 듣자 반가웠다.


“같은 지방 출신이거든. 난 거기서 목수로 일하면서 약초도 키웠어. 바람의 사원에서 조경사로 일하기 전에 말이야. 그 아이 아버지가 가끔 약초를 구하러 왔지.”

그의 눈빛이 아득해졌다.


“해치족은 귀한 종족이잖아? 그 집안도 대대로 용사였어. 그 애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전사는 전투에서 죽어야 명예롭다며 안타까워하셨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가 몰랐던 차오름의 사연을 하나 더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심지아님은 딱 한 번 이름이 나왔다며? 아이라고 하면 다 통하잖아?”

“에고, 아저씨, 우리를 살려줄 주술사님께 그 정도 말밖에 못 해요?”

금은비가 핀잔을 주자 고충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이 동글동글하니 잘 익은 찐빵 같네. 맛있지. 찐빵. 예쁘다는 얘기야. 눈이 조금만 더 크면 좋겠지만, 말린 대추 같은 눈도 괜찮아. 설탕조림 대추가 생각나네. 그것참 맛나는데.”

말하면서도 고충만은 입맛을 다셨다.


“먹을 거 얘기밖에 못 해요? 진짜!”

언제까지 말싸움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혹시 단서를 찾았나요? 우리가 나온 곳이 작가를 찾을 수 있는 단서예요.”

“아우, 단서는 무슨. 이런 모습으로 지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뭘 찾을 수가 있어야죠. 상자 안이 너무 지저분해서 뭐가 뭔지.”


“난 딱 보고 알겠던데? 그림을 통해 나왔거든.”

“그림? 어떤 그림인데요?”


“그걸 그림이라고 해야 하나? 약도야. 달빛사원과 그 주변 약도, 정말 대충 그렸더라고. 겨우 알아볼 정도로.”

“그래도 고충만님이 나왔다면 작가와 이어진 거예요. 당장 가볼까요?”


“오늘은 안 돼. 웬일인지 덩치가 안 나가더라고. 거긴 방이라고 달랑 책상 하나 침대 하나야. 앉을 자리도 없어. 우리가 뭘 찾으면 아무리 무던해도 눈치챌 거야.”

“그럼, 내일은 되겠죠?”


“응. 오늘만 집에 있겠다고 했으니까. 빨래도 해야 하고, 숨어있어야 한다나? 혼잣말을 늘어놓았어.”

“혹시 다른 그림도 있나요?”

“없어. 무슨 문제집만 잔뜩 있어.”


금은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내가 나온 곳은 그다음에 가죠.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으니까. 주술사가 봐야지, 내가 알겠어요?”

“허, 뭐는 알고?”

“아니, 이분이 보자보자하니까!”


금은비와 고충만이 말다툼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희망이 보이니 시끄러운 목소리도 즐거운 새소리처럼 들렸다.


‘우리 셋이 모두 다른 곳에서 나왔어.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작가를 찾을 수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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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결심 22.10.20 29 1 10쪽
37 마지막 연락 22.10.19 36 1 11쪽
36 그믐밤의 손님 22.10.19 21 1 10쪽
35 내가 거기 있다 22.10.19 34 1 10쪽
34 플랜 B 22.10.18 33 1 10쪽
33 리허설 22.10.18 29 1 10쪽
32 악몽 22.10.17 35 1 10쪽
31 주술의 부작용 22.10.17 31 1 10쪽
30 훼방꾼들 22.10.17 34 1 10쪽
29 서글픈 빈 손 22.10.16 47 1 8쪽
28 길 잃은 영혼 22.10.16 54 1 11쪽
27 소리 없는 울음 22.10.15 29 1 11쪽
26 애원 22.10.15 23 1 11쪽
25 의외의 변수 22.10.14 29 1 11쪽
24 유령 22.10.14 32 1 11쪽
23 그의 것은 그에게로 22.10.13 32 1 12쪽
22 황혼의 이중창 22.10.13 38 1 10쪽
21 빙의 22.10.12 28 1 9쪽
20 지새늬와 구하라 22.10.11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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