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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릴라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와 맞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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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릴라
작품등록일 :
2018.12.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6.20 13:55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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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37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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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697

작성
19.06.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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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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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12쪽

제140화 두 번째 부인

DUMMY

바쁜 레이첼도 장례식에는 참석했다.


개인적으로는 큰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영주 신분을 고려하면 반드시 와야 하는 처지라 급하게 날짜를 맞춘 듯, 장례식 당일이 되서야 카라얀에 도착했다.

식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시간이 날 정도.


“쟈클, 내가 얼마나 바쁜 줄 알아?”

“그래, 주근깨가 늘었다.”

“레이나까지 데려가면 어쩌자는 거야?”

“응? 그 얘기는 이미 끝났잖아.”


“사에드 아저씨는 언제 와? 지금 같이 중요한 시기에 한가하게 고향에나 가다니. 보내는 너도 그렇고.”


·······.


자매에게 히오크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알 필요 없고, 오해도 받기 싫으니까. 사에드의 수술도 마찬가지. 마나의 파편이라도 언급했다간, 저것들이 야단법석을 떨 게 뻔하고.

차라리 가족을 만나러 사막에 다녀온다는 것으로 넘어갔다.


“레이첼, 어째 수상하다.”

“뭐가?”

“갑자기 레이나로 다그치더니, 다음은 사에드냐?”

“할 일도 많은데, 사람을 데려가니까 그렇지.”

“레이나 말고 익스퍼트 다섯을 채울 방법이 있으면 말해 봐.”

“흠! 그러니까 사에드 아저씨가 있었으면·······.”


“어설프게 까불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찌릿!


앙칼지게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 노려보든가 말든가, 그냥 무시했다. 레이첼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너 부자라며.”

“돈?”

“화이트 이모가 그러더라.”


“응?”


뭘 노리는지 단박에 알았다. 이놈의 여자들이 모여서 쓸데없이, 남의 주머니 털 궁리나 하고 있다니.


“레이첼 시(市)에 자금이 필요해.”

“상단주 씩이나 되는 분이 왜 이래?”

“가용 재원이 바닥났어. 주로 기간 시설에 투자했기 때문에 회수하려면 시간도 꽤 걸려.”


“늘어난 세금은 어쩌고?”

“들어가는 돈에 비하면 세입 증가는 아직 미미한 편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좋아지겠지.”

“장난쳐? 지금 당장 돈 들어갈 곳이 널리고 널렸어!”


잉? 이게 미쳤나.


“그래서? 나한테 돈 맡겨 놨어?”

“북부 광맥에서 고급 마나석을 캤다며.”

“마나석·······, 아줌마가 그래?”

“그 돌멩이 가지고 있으면 뭐해. 이자 줄 테니까 좀 빌려줘.”


아줌마에게도 히오크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것만 빼고 나머지는 죄다 레이첼에게 속닥거렸나. 보석을 따로 챙겨줬으면 됐지, 남의 마나석까지 왜 언급해서는.


“나보다 돈 많은 사람 있잖아.”

“스톰 경(卿)은 안 돼.”

“왜?”

“지금도 그가 마음먹고 자금 회수하면, 레이첼 시(市)가 거덜 날 판이야.”


“둘이 싸웠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젠데?”


“스톰 경(卿)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도시가 레이첼 시(市)인지, 스톰 시(市)인지 헷갈릴 정도야.”


스톰이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인가. 기껏 교육도시 계획도 짜주고 돈까지 투자했더니, 결국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근거 없는 의심뿐이라니.


·······.


“차라리 민간 투자를 받아.”

“그것도 안 돼.”

“왜?”

“스톰 경(卿)이 그 채권을 사들일 수도 있어.”


“왜 그렇게 스톰을 견제하는데?”

“적당한 선에서 멈추면 서로 편해. 지금이 그 선이야.”

“앞으로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질 텐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서 지금 투자가 중요해. 나중엔 더 부담될 테니까.”


휴우!


제동을 걸어야 할 때라는 느낌.


이런저런 배려를 발판으로 레이첼 시(市)를 키우고 있는데, 정작 영주 본인이 영지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덩치만 크다고, 돈이 많다고, 또는 인구수 증가에 비례해 영지가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건만.


“미안하지만 못 빌려주겠다.”


사람을 좌우로 그리고 위아래로 얼마나 잘 엮는지,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관리, 감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하는지, 유사시에 그 사람들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왜?”


쓸데없는 신경전이나 하고 있으니.


냉정하게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에 따끔한 충고도 곁들이기로.


“친구지간에 돈거래 하는 거 아니라더라.”

“쟈클, 지금 장난쳐?”

“그럼, 너도 그만한 걸 내놔!”


“·······.”


“니가 잘츠와 화이트까지 욕심내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된 거잖아. 그 책임을 왜 같이 져야 하는데.”

“그거야 너를 위해서·······.”

“레이첼, 자꾸 까불래?”


끙!


“영주님! 영주님! 하면서 다들 떠받드니까, 정치가 그렇게 쉬워 보여?”


·······.


“장사꾼 하나가 시(市) 전체를 좌지우지할 때까지 왜 그냥 내버려 뒀어? 영주인 니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주요 인사들은 스톰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겠네.”


“·······.”


“차라리 믿고 계속 같이 가든가. 의심은 하면서 그에게 돈은 받아 쓰고,

이제 불안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손을 벌려?”


“·······.”


“번지르르한 외형이나 세력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을 봐야지. 사람을 모으려고 이 짓을 하고 있는데, 정작 사람은 보지 않고 올라가는 건물이나 쳐다보면 어쩌자고!"


휴우!


"사람이 전부야.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


입을 꾹 다문 레이첼.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영지로 내려가 버렸다.


***


북부로 출정(出征)하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한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당연히 에밀리부터. 국왕의 장례 기간 중에 고위 귀족이 결혼하기도 그렇고, 더욱 어려운 사정은 집안 내부에 있었다.


“할아버지, 조금 기다리세요.”

“언제까지?”

“고아도 아닌데, 아버지가 오셔야 결혼을 하죠.”

“그놈은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라 현재 위치는 모릅니다.”


“무작정 계속 기다릴 수도 없잖아.”


할아버지의 성화가 아니라도, 에밀리를 이대로 두기도 이상했다. 딱히 할 일도 없이, 신부수업이라고 세월만 보내게 하고 있느니,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듯한데.


“여행비용이 떨어지면 이안에게 연락할 거예요.”


제기랄! 거짓말이다.


정략결혼이 할아버지 계략인 줄 알고, 아버지에게 미스릴 덩어리를 보냈다. 아주 멀리 여행 가는데 경비로 쓰시라고... 진짜로 멀리 가버린 아버지.

저지른 짓을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행선지라도 정확하게 알아 둘 걸. 미스릴로 도박을 하지 않는 한, 한동안은 이안에게 연락하지 않을 텐데.


“에밀리를 볼 때마다 내가 더 부담스럽다.

차라리 네놈 머무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어떠냐?”


“알았어요.”


·······.


나르치스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따로 살림을 차리기도 어정쩡한 관계. 서로 어색함도 없애고, 에밀리에게 일거리도 만들어 줄 겸, 수하들과 카일 그리고 에스텔라까지 집으로 불러들였다.


“에밀리 양(孃), 수하들입니다. 얼굴을 익히라고 같이 왔습니다.”


“네.”


“카일입니다. 상단을 운영 중입니다.”

“에스텔라예요. 정보 라인을 맡고 있습니다.”


“반가워요. 에밀리 나르치스예요.”


집안일을 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두 사람. 어색한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할 일을 말해줬다.


“에밀리 양(孃)에게 적당한 호위를 붙였으면 하는데.”

“도련님, 제가 알아볼게요.”


에스텔라에게 맡겼다. 그리고 공간 주머니에 있던 마나석을 꺼내자. 카일의 눈이 크게 부릅떠지며.


“헙! 도련님... 이게 무슨?”


·······.


호수에서 얼음 구(球)가 깨지는 찰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절박한 순간에... 마나석이 생각났다. 노(老) 가주의 말처럼 뇌 구조가 남들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는 때라 그랬는지... 어쨌든 챙겨왔다.


그중 절반, 아마 톤(Ton) 단위는 넘으리라.


“에밀리 양(孃), 이게 뭔지 아십니까?”

“마나석 같은데, 이렇게 많은 양이라니·······.”


탁!


에밀리는 진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두드리다 쓸어도 보고, 나중엔 큼지막한 덩어리 하나를 들어 올리려 애쓰며 낑낑댔다.

일반인인 에밀리로서는 만만치 않은 무게일 터.


휴우!


“진짜 마나석이군요.”

“네.”

“설마 제게 주시려는 건가요. 흐흣!”


“네. 그렇습니다.”


에밀리는 농담을 했고, 나는 진심을 말했다.


“에밀리 양(孃). 카일은 돈을 벌어 옵니다.”


“예?”


“반대로 에스텔라는 가져다 쓰죠. 중간에서 돈 관리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제안안지, 에밀리는 우물쭈물 망설였다.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카일이 벌어온 돈을 모아뒀다가, 에스텔라가 원할 때 내주면 됩니다.”

“그걸 굳이 제가 할 이유라도?”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자리거든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사이.

가문의 돈 문제나 정보 계통의 일은 알아도 모른 척하는 시기인데, 오히려 한복판에 끼워 넣었다. 그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비밀을 공유해도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작지만 비중 있는 일을 맡겼다.


“민감한 정보일 텐데, 제가 알아도 되나요?”


알아도 되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비밀도 있지만, 숨기려 한다고 언제까지 감출 수 있겠는가. 한집에 있으면 어차피 알게 될 일.

미리 알맞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내용은 보고 하지 않을 겁니다. 돈의 흐름을 보고 스스로 파악해 보세요. 카일과 에스텔라가 무엇을 하는지. 그걸 바탕으로 제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됩니다.”


“흠, 시험인가요? 전 자작님의 수하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


귀족 부인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평민 중에, 어쩌다 예쁜 여자가 귀족의 눈에 띄어 결혼할 수는 있어도, 그 여자가 가문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구박받거나 무시당해서가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선택은 에밀리 양의 몫입니다.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배움이 짧아서, 배운 것이 없어서다.


귀족의 딸은 어릴 때부터 집안 서열을 보며 자란다.

첫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 세 번째 부인 같은 공식 서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리더. 누가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누구의 뜻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며 돌아가는지.


“제가 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되죠?”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서열이 높은 집안도 있지만, 어차피 마찬가지. 부인이 여럿이라도 진짜 부인은 한사람뿐이다. 나머진 모두 그녀의 지시에 따르는 심부름꾼이랄까. 아니면 남편의 애정만을 바라는 해바라기일 뿐.


“예쁘게 치장하고 저를 기다리는 두 번째 부인이 될 겁니다.”


첫 번째 부인에게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배움이 부족하면 많은 수의 아랫사람을 부릴 수가 없고,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자연스럽게 다음 부인에게 기회는 넘어가게 마련. 그때부터 첫 번째 부인은 그저 예쁜 꽃으로 남는다.


“두 번째라는 의미가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르군요.”


아무 권한도 없고, 어려워하지도 않는 첫 번째 꽃. 인생의 봄은 짧다. 꽃은 금세 시들고, 나이 든 여자가 젊은 여자와 성적 매력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꽃의 자리도 내놔야 할 판.


“두 번째부터는 부인이 아니라 첩(妾)입니다. 전 부인이 필요하고요.”


더는 여성의 의미를 잃고, 성공한 어머니를 목표로 인생의 방향을 튼다. 애들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들의 출세에 목숨을 걸게 되고, 자녀만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된다.


“흠... 첩이 싫으면 밥값이라도 하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의 표정이 굳어지며, 미소가 머물던 눈가에 또렷한 윤곽선이 새로 생겼다.


“제가 어디까지 하면 되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무게는 본인만이 압니다.”

“능력만큼 차지하라는 뜻이군요!”


“함께 영광과 오욕을 뒤집어쓸 부인이 아니라면,

한때 꽃을 팔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 때를 추억하는 첩(妾)으로 남으면 됩니다.”


·······.


“두 번째 부인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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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0화 두 번째 부인 +14 19.06.14 2,208 61 12쪽
3 제139화 아이작 뉴튼 +6 19.06.13 2,176 63 13쪽
2 제138화 호우(好雨) +14 19.06.12 2,473 58 12쪽
1 제137화 노(老) 가주의 당부 +22 19.06.09 2,961 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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