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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릴라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와 맞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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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릴라
작품등록일 :
2018.12.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6.20 13:55
연재수 :
7 회
조회수 :
949,412
추천수 :
19,957
글자수 :
34,697

작성
19.06.13 12:16
조회
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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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3쪽

제139화 아이작 뉴튼

DUMMY

“하프! 죽여라!”


하프에게 손날을 이용해 목을 긋는 시늉을 보여줬다. 바라보는 목표는 붉은 머리 아이작.


“윈드 블레이드(Wind blade)!”


하프가 오러를 뽑아 발을 옮기는 사이, 공간이 열리며 바람의 칼날이 스르륵. 마법의 칼을 끄집어냈다.


“무슨?”

“교수님 제 뒤로!”


지켜보던 붉은 머리 아이작과 익스퍼트도 반응할 수밖에. 오러를 뽑아 올리는 아너(Honour)와 동시에 허공에 듬직한 불덩어리가 나타나 아이작 교수 앞을 가로막았다.


-챙!


하프의 칼이 망설임 없이 아너(Honour)의 오러를 제치며 아이작에게 짓쳐드는 순간.


“이프리트!”


아이작 입에서 나온 외마디에 불덩어리가 하프를 덮쳤다. 팔을 벌려 껴안듯, 이프리트라 불린 정령이 최대한 입을 벌려 하프-오크를 삼키려 하자,


“캬륵!”


예상의 깨고, 불 속으로 돌진하는 하프-오크,


-퍽!


그대로 불덩이와 맞부딪쳤다. 화마(火魔) 정도는 우습다는 듯이, 불길 속을 헤치며 아이작을 향해 진격. 교수와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혔다. 칼질 몇 번이면 아이작의 목이 떨어질 판. 그 순간 엉뚱하게도


“아이씨클(Icicle)!”


-챙! 채쟁! 채재쟁! 투두둑·······


고드름이 연속으로 날아와 하프-오크의 칼을 막았다.


“자작, 그만해!”

“캬륵!”

“아줌마, 뭡니까?”

“됐으니까, 그만하라고!”


상대 익스퍼트와 칼을 나누던 아줌마가 중간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은 것. 윈드 블레이드(Wind blade)로 익스퍼트와 칼을 섞으며 아줌마의 행동을 질책했다.


-창! 챙!


“하다가 멈추면 적만 늘어납니다.”

“자작,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하프나 뒤로 빼.”

“뒤끝을 남기라뇨, 칼을 꺼냈으면 적부터 없애고 봐야죠.”

“자꾸 이럴래?”


정신을 차렸는지 아이작이라는 붉은 머리가 끼어들었다.


“우린 조문 사절단입니다.”


그 한마디에 와장창! 제국 출신의 조문 사절단이란 뜻이니, 황제를 대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여기서 더 건드리면 일이 너무 커진다.


흠!


“쯧, 미리 말을 하시지.”

“·······.”

“하프, 그만하고 뒤로 물러나!”

“캬륵!”


“우연히 만났는데, 칼을 빼기에·······.”

“·······.”

“무슨 원한 관계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휴, 오해가 풀려 다행입니다.”


붉은 머리 아이작은 작은 숨을 내쉬며 안정을 취했다.


“사과라도 다시 할까요?”

“아니요. 됐습니다.”

“뭐,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의 성함이?”

“쟈클 레이먼드 자작입니다.”

“흠·······, 반갑습니다. 아이작 뉴튼입니다.”

“네.”

“제국 황실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 실례가 많았군요.”


·······.


이해해주겠다니 넘어갔다. 아니면 귀찮은 일이 생겼을 텐데. 아줌마도 진정했으니, 이 정도 수고쯤이야.


“화이트 경(卿), 오늘의 인사는 잊지 않겠소.”

“그러세요. 잊지 말고 제국에 돌아가 소문이라도 내세요.”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때 갚지요.”


·······.


돌발적인 사고를 뒤로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자작, 무슨 짓이야?”

“아줌마를 도와줬는데, 뭐가 잘못됐어요?”

“왜 일을 크게 만들어!”

“그건 아줌마 전문이고, 저는 뒤를 받쳤는데요.”


“아무튼, 다시 그러지 마.”


·······.


길에 남은 붉은 머리 아이작 교수와 익스퍼트 둘.

싸움을 겪은 후라기보다, 마치 새로운 실험이라도 마친 연구자들처럼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저자로군요, 쟈클 레이먼드.”


“교수님, 예상보다 그의 반응이 극단적입니다.”

“흠, 과정을 보지 말고 결과를 보면 어떨까요?”

“결과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이유라도?”

“화이트 경(卿)이 흥분했던 시작과 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끝났습니다.”


익스퍼트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수법이라면·······.”

“·······.”

“뛰어나다 못해 무모하게 치밀한 자(者)로군요.”

“교수님, 저자가 일부러 그랬다는 겁니까?”

“그랬을 겁니다.”


“무엇을 노리고?”

“일이 커지는 걸 방지하려는 목적이었겠죠.”

“그자가 일을 더 크게 만들려 했는데·······.”

“화이트 경(卿)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선택입니다.”


아이작 교수는 익스퍼트 둘에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작 당사자보다 더 흥분한 척 날뛰어서, 제3자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심리 기법. 당사자는 왜 흥분했는지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금세 차분해지게 되죠.”


“아!”

“흠!”


·······.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니·······, 확실히 보통 인물은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가 누군지도 몰랐을 텐데요.”


잠시 그들 사이에 정적이 지나갔다.


“교수님, 우리의 접근 방법이 옳은 판단일까요?”

“쟈클 레이먼드에 대한 1차 분석은 이미 끝났습니다.”

“제 생각엔 그보다 우리가 더 무모한 것이 아닌지·······.”

“실패했던 방식을 다시 시도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대비하고 있을 테니까요.”


익스퍼트들은 마음이 안 놓이는지, 상대가 지나간 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한 인상을 남겼으니, 첫 만남의 목표는 이룬 셈이군요.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황실 아카데미에서 전략·전술을 가르치는 아이작 교수. 그리고 그를 도와줄 아귀레토의 익스퍼트 둘이 황제의 조문 사절단에 끼어 카드리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목표. 쟈클 레이먼드를 표적으로.


*


집으로 돌아와 따로 아줌마에게 묻지는 않았다.


필요하면 알려주겠지. 스톰의 권유로 화이트 가문을 받아들였는데, 서로 사연 하나 없겠나. 둘 다 제국에서 왔고, 한 명은 수십만 명을 이끌던 작전관 출신의 망명자.

나머지 한 명은 돌격 대장까지 하고도 영지도 없는 신세라니. 얽힌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


*

*

*


국왕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제국 조문 사절단의 도착을 마지막으로, 주요 인사는 참석 완료. 식전 예비절차가 진행되고, 그동안 관 속에 고이 보관하던 국왕의 시신이 모두에게 공개됐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시간.


가족들부터 시작해 가까운 친인척, 오랜 지인, 권력자들 순으로 짧은 재회를 끝냈다. 장례식 절차는 까다로웠지만, 막상 소요 시간은 채 1시간을 넘지 않았다.


“쟈클 자작님, 안녕하십니까?”


개인적으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국왕과는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니까. 그보다는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

나도 왕국에서 꽤 높은 서열이라는 걸 깨달은 시간이랄까.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고인을 생각하며 조용히 보내는 날이면 좋을 텐데, 국가 행사란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식(式) 직후에 감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새로운 얼굴도 익히고, 인사도 나누고, 눈치도 주고받았다.


“이번에 장례식을 맡은 사람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죽은 이에겐 마지막이, 또 다른 누구에겐 시작.


인사로 바쁜 일 왕자는 지나쳤다. 오히려 다가와 아는 척하려는 귀족도 상당수.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면 너무 저자세로 나와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반대로 가장 곤란한 일.

사이가 좋지 않은 백작들과 처음 대면하는 생경함이라니.


·······.


“쟈클 레이먼드입니다.”

“나르치스를 이끌고 있네.”

“노(老) 가주님과 에밀리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부럽군.”

“네?”


“난 자네 얘기를 주로 참모들에게서 듣는데.”


“·······.”


은회색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나르치스 백작이 그간의 잔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어쩔 수 있나. 힘없고, 끗발 낮은 놈이 참아야지.


“나르치스에 유능한 참모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왜 이번엔 우리 밀전대를 박살 내려고?”

“하하! 전혀 그런 뜻이·······.”


·······.


“결혼식에는 꼭 와 주십시오. 오시지 않으면 에밀리가 슬퍼할 겁니다.”


머리를 최대한 쥐어짜,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 자리에서 얼굴 붉혀봤자, 싹수없는 놈이라고 낙인찍힐 뿐. 내용과 실질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나이나 계급으로 무작정 밀어붙이면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도 숱하니까.

오늘은 조용히, 오늘 하루 공손히, 오늘만은 조카사위로.


“자작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겠네.”


·······.


휴우!


노(老) 가주가 왜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섰는지, 얼핏 이해됐다. 게다가 옆에 선 인물. 잘생긴 얼굴에 환한 미소는 좋은데, 왠지 샤인 나르치스의 모습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반갑습니다. 샤인 소영주님.”

“쟈클 자작님, 오랜만이군요.”

“북부 산맥에서 애국(愛國)하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애는 쓰고 있습니다.”

“훌륭한 모범입니다. 4대 가문의 자제 중에, 특히 샤인 소영주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은 귀족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하하하!”


애써 웃음 짓는 샤인, 삶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 밝게 빛나던 외모마저 세월의 때가 묻어 보이고. 그나저나, 철은 좀 들었으려나.


·······.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넘겼는데 문제는 다음, 스팅스 백작.


이사벨 스팅스와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아버지 곁에 머무르는 그녀. 백작이 도통 나와 시선을 맞춰주질 않아, 뻘쭘히 주위를 서성이며 기다렸다.


제기랄! 텃세라도 부리겠다는 거야 뭐야!

때마침 어네스트 할버른이 꼬마 영주와 함께 여기저기 인사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꼬마 영주님, 잘 계셨죠?”

“대부님, 안녕하세요.”

“네, 영주님이 해주시는 기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어네스트 할버른을 바라봤다.


“스팅스 백작과는 아직 인사 전이시죠?”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막상 다가가자니 또 그렇습니다.”

“같이 가시죠. 설마 어린 영주님을 박대하진 않을 테니까요.”


할버른의 꼬마 영주를 앞세워 스팅스 백작에게 다가갔다.

어네스트 할버른이 어린 영주의 등을 밀자, 영특한 꼬마 영주가 알아서 스팅스 백작의 눈길을 끌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누구?”

“할버른 자작입니다.”

“·······, 그, 그래. 반갑다.”

“저도 왔습니다. 쟈클 레이먼드입니다.”


“·······.”


백작이 다른 곳으로 눈 돌리기 전에 얼른 끼어들었다.

대답도 없는 스팅스 백작. 이사벨이 이 어색한 상황을 깨고, 도움을 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버지!”

“·······.”

“아버지!”

“크흠, 반갑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가 좀 바빠서 이만.”


스팅스 백작이 자리를 피해 버렸다.


물론 날 반겨줄 일은 없겠지. 그래도 저런 소갈딱지로 어떻게 지배자 가문까지 올랐는지. 이사벨이나 그 이모보다 못한 그릇처럼 느껴졌다.


·······.


휴우!


이 나라 권력자는 모두 만난 것인가. 아직 남았다. 한 무더기의 사람을 이끌고 다가오는 이 왕자. 아는 처지에 피할 수도 없고, 그저 웃으며 맞을 수밖에.


“쟈클 자작님, 공식 행사는 처음이시죠?”

“하핫! 정신이 없네요. 인사하러 가지 못해 송구합니다.”

“제가 오면 될 일을, 크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그의 주위 사람 중에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붉은 머리 아이작.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네.”

“제국 황실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입니다.”

“·······.”


아이작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또 뵙는군요. 쟈클 자작님.”


중간에 다리를 놓던 이 왕자의 얼굴에 반가움과 놀람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자작님을 아시는군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 왕자의 소개라니, 제국에 연줄이라도 만들었나. 그렇다면 둘이서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뜻인데·······.


“북부에 아이작 교수와 같이 갈까 합니다.”

“파병 가는 곳에 교수님이 왜?”

“학술 연구 목적입니다. 신분은 제가 보증하죠.”


이 왕자가 보증한다는데, 의심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고.


·······.


이것들이 내가 누군지 잘 모르나 보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인간관계는 다르다. 원인, 과정, 결과. 이렇게 순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순간. 그 첫 0.1초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그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뭐하는 새끼지? 어이없게도 우연이 겹치는 놈이 있네.’


세상에 반복되는 우연은 없다. 그것이 권력의 주변이라면 더욱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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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41화 그림자 2대 +16 19.06.15 2,087 58 13쪽
4 제140화 두 번째 부인 +14 19.06.14 2,211 61 12쪽
» 제139화 아이작 뉴튼 +6 19.06.13 2,181 63 13쪽
2 제138화 호우(好雨) +14 19.06.12 2,477 58 12쪽
1 제137화 노(老) 가주의 당부 +22 19.06.09 2,966 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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