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프롤로그
“그만 죽여줘··· 이렇게 아픈 건 싫단 말이야”
황녀의 작은 외침이 있었지만, 마법사에게 팔다리가 사라져버린 그녀를 바라볼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덧 얼음의 장벽에 균열이 발생하였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마치 지금의 고통을 대신하려는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원망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변명의 말을 담아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방어벽이 밝은 빛과 함께 폭사되어 버렸다.
언제부터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하였기에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보이는 것은 고기덩이로 변해버린 시체들의 웅덩이 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싸움의 소음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남아있는 기력을 동원하여 그 피로 젖어있는 흙더미 속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체내에 보유한 마나를, 바닥까지 소모한 것이 원인이었던지 머리의 색감이 백발로 변해버렸지만, 얼음의 방어벽이 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 삶의 수단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마법사가 목표로 하는 장소에는 그도 알고 있는, 한 어린 소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황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드리안님···”
마법사는 그 소녀를 보고, 희망의 끈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땅을 기어가면서 부러진 손가락도 의식하지 못한 체, 그녀들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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